장무 (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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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중국의 연호, 촉한의 연호, 삼국시대 + 카테고리
장무(章武)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촉)의 초대 황제인 소열제 유비가 사용한 첫 번째 연호입니다. 221년 유비가 성도에서 황제에 등극하며 한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제정되었으며, 223년 유비가 사망하고 태자 유선이 즉위하여 건흥(建興)으로 개원할 때까지 약 3년간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촉한의 건국과 체제 정비가 이루어진 창업기인 동시에, 관우의 복수를 위해 단행한 이릉 대전에서의 참패와 유비의 붕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교차하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장무 연간은 촉한이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에서 독자적인 정권으로서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과 그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분기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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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초기 내각 구성]

건국과 동시에 제갈량을 승상으로, 허정을 사도로 임명하여 국가 통치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장비를 거기장군으로 삼고 태자 유선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등 문무 관료의 서열을 정비했습니다. 이는 신생 국가인 촉한의 내부 결속을 다지고 행정 체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장무 연호 개원 및 유비 칭제]

유비가 성도(成都)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국호를 '한(漢)'이라 하고 연호를 '장무(章武)'로 선포하였습니다.
조비가 후한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건국하자, 유비는 한실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대사면을 단행하고 연호를 장무 원년으로 삼아 촉한 정권의 공식적인 출범을 알렸습니다.

[장비의 피살]

오나라 정벌을 준비하던 중, 거기장군 장비가 부하 장수 범강과 장달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장비는 평소 부하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등 엄격하게 대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부하들이 그가 잠든 틈을 타 살해했습니다.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목을 베어 오나라로 도주하였고, 이는 유비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습니다.

[동오 정벌 감행 (이릉 대전의 서막)]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공격에 나섰습니다.
제갈량과 조운 등 많은 신하들이 위나라가 주적이라며 오나라와의 전쟁을 만류했으나 유비는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무현(巫縣)과 자귀(秭歸)를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진격했습니다.

222

[효정(이릉) 대치]

촉한군이 오나라 영토 깊숙이 진격하여 효정(猇亭) 지역에 이르렀으나, 오나라 대도독 육손의 방어선에 막혀 대치 국면에 들어갔습니다.
유비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수백 리에 걸친 긴 진영(연영)을 구축했습니다. 육손은 촉한의 예봉을 피하고 지구전을 펼치며 촉군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릉 대전 패배]

육손의 화공(불 공격) 작전으로 인해 촉한의 진영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대패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와 숲이 우거진 지형에 진을 쳤던 촉군은 화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유비의 군대는 무너졌고, 풍습과 장남 등 유능한 장수들이 전사하거나 투항하며 촉한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습니다.

[백제성 퇴각 및 영안 개칭]

패전 후 유비는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백제성으로 퇴각하였으며, 이곳의 이름을 영안(永安)으로 고치고 머물렀습니다.
유비는 패전의 부끄러움과 악화된 건강 탓에 수도 성도로 돌아가지 않고 영안궁에 기거했습니다. 조운이 지원군을 이끌고 와 오나라 군대의 추격을 막아냈습니다.

[손권과의 화친 모색]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자, 손권은 유비에게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고 유비가 이를 수락했습니다.
위나라 문제 조비가 오나라를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양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손권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유비 역시 더 이상의 전쟁 수행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종전협정을 맺어 동맹 관계를 복원했습니다.

223

[영안탁고와 유비의 붕어]

병세가 위독해진 유비가 제갈량을 불러 후사를 부탁하는 유언을 남기고 영안궁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내 아들이 재능이 있으면 돕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스스로 취하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유비는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선 즉위 및 건흥 개원]

태자 유선이 황제에 즉위하고, 연호를 장무에서 건흥(建興)으로 바꾸었습니다.
유선은 유비의 유언에 따라 제갈량을 아버지처럼 모시며 국정을 일임했습니다. 이로써 3년 남짓 사용된 장무 연호는 막을 내리고,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는 건흥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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