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휘
연표
1921
[전설의 시작, 장동휘 출생]
훗날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명배우 장동휘가 경기도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장갑순으로, 뚝심 있는 연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그의 긴 여정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39
[연극 무대에 첫발을 딛다]
콜럼비아 악극단 소속으로 연극배우로 정식 데뷔하며 연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베이징과 만주 신징을 오가며 연기 경험을 쌓는 등, 뜨거운 연기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1955
[협객 임꺽정으로 연기력 입증]
연극 '협객 임꺽정'에서 주인공 임꺽정 역을 맡아 무대 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으로 연기력을 확실히 인정받으며 충무로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연극 '협객 임꺽정' 주연으로 임꺽정 역을 맡음.
1957
[스크린 장악! 영화 배우 데뷔]
영화 '아리랑'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드디어 스크린에 데뷔했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연기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영화 '아리랑' 주연으로 영화 배우 데뷔.
1963
[청룡영화상 첫 수상 영예]
제1회 청룡영화상에서 집단연기 부문 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를 빛낼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연기력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첫 번째 주요 수상 기록입니다.
제1회 청룡영화상 특별상(집단연기) 수상.
1966
[배우 넘어 제작자로 변신!]
영화 '맹호작전'의 주연을 맡는 동시에 영화 제작자로도 데뷔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단순한 배우를 넘어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에도 직접 기여하려는 그의 열정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영화 '맹호작전' 주연 및 영화 제작자 데뷔.
1967
[영화 기획가로 영역 확장]
영화 '영호작전'에서 주연과 제작을 겸하며, 더 나아가 영화 기획가로서도 처음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배우, 제작자에 이어 기획까지 섭렵하며 한국 영화계에 다재다능한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냈습니다.
영화 '영호작전' 주연, 제작 및 영화 기획가 데뷔.
1971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 쾌거]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제10회 대종상에서 마침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제10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
1976
[대종상 남우조연상 수상]
제15회 대종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주연뿐 아니라 조연으로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순간입니다.
제15회 대종상 남우조연상 수상.
1994
['만무방'으로 연기력 재조명]
영화 '만무방'을 통해 다시 한번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제32회 대종상 영예로운 배우상과 제5회 춘사대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영화 '만무방'으로 제32회 대종상 영예로운 배우상, 제5회 춘사대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1995
[옥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헌신적인 연기 활동과 영화 산업 기여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가장 큰 예우이자 찬사입니다.
옥관문화훈장 수훈.
2000
[춘사영화예술인상 수상]
제8회 춘사대상영화제에서 춘사영화예술인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오랜 연기 경력과 예술가로서의 삶이 높이 평가된 순간입니다.
제8회 춘사대상영화제 춘사영화예술인상 수상.
2005
[영원한 배우, 장동휘 별세]
한국 영화계의 거목 장동휘 배우가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한국 대중문화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에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