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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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투수, 국가대표 + 카테고리

한국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뱀직구의 전설적인 투수. KBO NPB MLB까지 정복하며 세 리그를 모두 경험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해태-삼성-KIA를 거치며 철벽 마무리와 에이스 선발을 오가는 활약으로 수많은 우승과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최연소 구원왕 KBO 역대 2번째 100승 200세이브 등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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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76

[임창용은 1976년 6월 30일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5

[해태 타이거즈 입단]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에 고졸우선지명으로 입단했습니다.첫 해는 2군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6

[해태 8번째 우승 기여]

입단 2년차부터 불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김성근 2군 감독의 지도 아래 기량을 성장시켰고, 해태의 정규 시즌 1위와 8번째 우승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1997

[풀타임 마무리 '창용불패']

풀 타임 마무리 투수로 데뷔하여 14승 8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마지막 우승을 이끌었습니다.135이닝을 소화하며 '창용 불패'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135이닝은 선동열 선수의 1993년 125이닝보다 많은 이닝이었습니다.

1998

[최연소 구원왕 등극]

시즌 최다인 34세이브를 기록하며 만 2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구원왕에 등극했습니다.한국 프로야구사에 기록될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습니다.

해태의 심각한 경영난으로 삼성은 양준혁, 황두성, 곽채진에 현금 20억원을 더한 KBO 리그 사상 최대 규모의 3:1 현금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임창용을 영입했습니다.

1999

[이적 후 삼성의 영웅]

삼성 이적 후 첫 시즌부터 마무리 투수로 맹활약하며 38세이브, 2.1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두 부문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팀 투수진의 약점을 메우기 위해 138.2이닝을 소화하며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임을 입증했습니다.

2000

[최고 마무리 양대 산맥]

마무리 투수로 계속해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30세이브를 추가, 역대 첫 번째로 3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진필중과 함께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KBO 최연소 100세이브]

대구 해태전에서 만 23세 10개월 10일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100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이는 KBO 역사에 남을 대기록입니다.

2001

[선발투수 변신 성공]

팀의 투수진 보강 필요에 따라 선발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습니다.첫 해 14승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변신을 알렸습니다.

2002

[삼성 통합 우승 주역]

선발 투수로서 17승을 거두며 팀의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이 해 국제 대회에서도 국가대표로 활약했습니다.

2003

[다시 마무리, 최강 수호신]

13승을 기록하며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쌓았습니다.선동열 코치 부임 후 다시 마무리로 돌아와 36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여전히 최강 마무리임을 입증했습니다.

2004

[日 진출 무산 및 고액 계약]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모색했으나, 포스트시즌 부진과 높은 몸값 부담으로 계약에 실패했습니다.결국 삼성과 2년간 18억원에 재계약하며 KBO 최고 고액 연봉 선수 중 한 명으로 잔류했습니다.

[최연소 150세이브]

사직 롯데전에서 만 28세 23일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150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이와 함께 KBO 통산 2번째로 100승 150세이브를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05

[혹사 후유증 및 수술]

선발로 다시 보직을 옮겼으나, 혹사의 후유증과 구위 난조로 5승 8패 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프로 최악의 성적을 남겼습니다.결국 시즌 도중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았습니다.

2006

[부활의 신호탄]

재활에 전념하며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한국시리즈 3차전 연장 12회에 구원 등판해 148km/h의 강속구로 김태균을 삼진 처리하며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2007

[일본 야쿠르트 진출]

기량 회복에 어려움을 겪자 새로운 동기 부여를 찾아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다시 시도했습니다.'인생의 황금기는 한 번이 아니다'라는 각오로 낮은 몸값에도 불구하고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2년간 연봉 1,500만엔에 계약하며 일본 무대에 도전했습니다.

삼성은 그가 해외 진출을 원할 경우 조건 없이 풀어주기로 합의했었습니다. 2007년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종료 직후 일본 진출 의사를 밝혔고, 야쿠르트는 투수진 보강이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2008

['뱀직구' 신드롬]

첫 시즌부터 팀의 간판 마무리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33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그의 속구는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지나가는 직구'라는 뜻의 '뱀직구'라 불렸으며, 최고 구속 160km/h를 기록, 일본 역대 3위, 아시아 선수로는 2번째 기록이었습니다.

[NPB 데뷔 첫 세이브]

요미우리와의 개막 2차전에서 마무리로 등판하여 일본 진출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첫 삼진의 희생양은 한국의 홈런왕 이승엽 선수였습니다.155km 광속구를 뿌리며 일본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2009

[NPB 연봉 폭등 및 WBC 준우승]

일본 진출 2년 만에 기량을 인정받아 200% 증가한 기본 연봉 160만 달러에 재계약했습니다.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WBC 국가대표로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NPB 올스타 팬투표 1위]

일본 진출 한국 선수 최초로 올스타전 팬 투표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했습니다.특히 홈런 선두 타자를 상대로 95km 초저속 커브를 던지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2012

[NPB 방출 및 미국 진출 선언]

시즌 중 발생한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에 전념했으나, 결국 이 날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방출되었습니다.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미국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시카고 컵스 입단]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이로써 KBO, NPB, MLB 세 리그에서 모두 활약한 역대 3번째 선수가 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2013

[메이저리그 승격]

마이너리그에서 성공적인 재활과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승격되었습니다.한국인으로는 14번째 메이저리거가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MLB 최고령 데뷔]

밀워키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최고 93마일(150km)의 구속을 선보였습니다.만 37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고령 MLB 데뷔 기록을 경신하는 역사를 썼습니다.

[시카고 컵스 방출]

시카고 컵스에서 논텐더 방출되었습니다.이후 초청 선수 자격으로 재합류해 MLB 재진입을 노렸으나 마이너 강등 후 방출을 요청하며 한국 복귀를 모색했습니다.

2014

[KBO 복귀 및 구원승]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 후 SK 와이번스전에서 구원 등판하여 2408일 만에 구원승을 달성하며 화려한 KBO 복귀를 알렸습니다.

[한일 300세이브 및 기부]

NC 다이노스전에서 한일 통산 300세이브를 기록하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이후 받은 격려금 2,000만원 전액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기부하며 선행을 보여주었습니다.

2015

[100승 200세이브 달성]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세 자릿수 승리 및 20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이는 김용수 선수에 이어 역대 2번째 100승 200세이브 기록입니다.

[한일 350세이브 및 최고령 구원왕]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한일 통산 350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이 해 역대 최고령 구원왕에 등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해외 도박 사건 및 징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마카오 해외 도박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이로 인해 한국시리즈와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습니다.검찰 조사에서 4,000만원대 도박 혐의를 시인하고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며, KBO로부터 72경기 출장 정지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삼성의 통합 5연패를 좌절시킨 요인이 되었으며, 11월 25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혐의를 시인, 11월 30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2016년 1월 8일 KBO의 징계가 확정되었습니다.

2016

[친정팀 KIA 복귀]

도박 사건 후 반성과 재기를 다짐하며 친정팀 KIA 타이거즈에 복귀했습니다.연봉 3억 원에 계약을 맺었으며, 사죄의 뜻으로 연봉 전액을 기부했습니다.

2017

[무면허 접촉사고 논란]

WBC 국가대표 출전 예정이었으나 오키나와 전지훈련 중 면허 갱신 기간 만료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면허 접촉 사고를 일으켜 벌금을 납부하였습니다.

[경기 중 스마트폰 논란]

SK 와이번스전 경기 도중 불펜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을 빚었습니다.구단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2018

[KIA 타이거즈 방출]

KIA 타이거즈에서 재계약을 포기하고 방출되었습니다.이로써 그의 파란만장했던 24년간의 프로 야구 선수 경력이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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