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시스
인포시스의 역사는 250달러라는 아주 작은 자본과 7명의 엔지니어가 품은 원대한 꿈에서 시작된 현대판 기업 신화입니다. 인도 푸네의 작은 아파트에서 출발해 전 세계 디지털 혁신의 중심지로 거듭나기까지, 이들은 '글로벌 딜리버리 모델'이라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통해 인도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세계 무대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숱한 경제 위기와 리더십의 변화 속에서도 기술적 탁월함과 윤리적 경영을 지켜온 이들의 여정은 오늘날 인공지능과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더욱 강력한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성장이 아닌, 한 국가의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전 인류의 디지털 환경을 업그레이드해온 끊임없는 도전의 기록입니다.
연표
1981
[첫 번째 고객 확보]
뉴욕에 본사를 둔 데이터 베이직 코퍼레이션과 첫 번째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인도 밖의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확인한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미국 시장으로의 첫 진출은 향후 인포시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북미 시장 공략의 초석이 되었습니다.\n계약 체결을 통해 인도 엔지니어들의 역량이 국제 표준에 부합함을 입증했습니다.\n이 계약은 설립 초기 회사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위대한 여정의 시작]
7명의 야심 찬 엔지니어들이 푸네에서 인포시스 컨설턴츠 프라이빗 리미티드를 설립했습니다. 나루아나 머티를 필두로 한 창립 멤버들은 인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세계로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주 적은 초기 자본금으로 시작된 이 도전은 인도 IT 산업의 판도를 바꿀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창립 멤버는 나루아나 머티, 난단 닐레카니, 크리스 고팔라크리슈난, S. D. 시부랄, K. 디네쉬, N. S. 라가반, 아쇼크 아로라 총 7명입니다.\n설립 당시 자본금은 머티의 아내인 수다 머티가 제공한 1만 루피(당시 약 250달러)였습니다.\n회사는 처음 인도 푸네에 위치한 나루아나 머티의 아파트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1983
[뱅갈로르 본사 이전]
회사의 전략적 성장을 위해 본사를 푸네에서 뱅갈로르로 이전했습니다. 당시 떠오르던 IT 허브로 자리를 옮기며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이 결정은 뱅갈로르가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성장하는 역사와 궤를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뱅갈로르는 당시 풍부한 기술 인력과 인프라 덕분에 IT 기업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n본사 이전은 기업 규모를 확장하고 본격적인 채용을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n현재까지도 뱅갈로르는 인포시스의 글로벌 경영을 책임지는 핵심 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985
[하드웨어 제품 개발]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으로 자리 잡기 전 잠시 하드웨어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전자 텔렉스 기기와 키보드 집중 장치 등을 제작하며 기술력을 다방면으로 시험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사는 1980년대 중반 하드웨어 시장의 수요를 반영하여 일부 기기를 직접 제작하고 유통했습니다.\n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로 완전히 전환하기 전의 과도기적 활동이었습니다.\n이후 서비스 중심의 비즈니스로 방향을 선회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1987
[보스턴 해외 사무소 개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첫 번째 해외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현지 고객과의 긴밀한 소통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인포시스가 글로벌 IT 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보스턴 사무소는 미국 내 주요 기술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거점이 되었습니다.\n현지 영업망을 구축함으로써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습니다.\n이는 향후 수십 개국으로 뻗어 나갈 글로벌 영업 전략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1989
[창립 멤버 아로라의 퇴사]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아쇼크 아로라가 회사를 떠나며 자신의 지분을 다른 공동 창립자들에게 매각했습니다. 초기 경영진 구성의 변화가 있었으나 나머지 멤버들은 더욱 단합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창립자들의 리더십이 공고해지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아로라의 퇴사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주요 경영진의 이탈이었습니다.\n나머지 6명의 창립자들은 그의 지분을 나누어 인수하며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n이러한 지배 구조의 안정은 인포시스가 장기적인 비전을 실행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1
[경제 자유화의 물결]
인도의 경제 자유화 조치 이후 오프쇼어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인포시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1991년의 경제 개혁은 외환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n인포시스는 이를 활용해 해외 인프라를 확충하고 전용 통신선을 도입하는 등 기술 투자를 단행했습니다.\n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이 세계 시장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시대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1992
[회사 이름의 변경]
사명을 인포시스 테크놀로지스 프라이빗 리미티드로 변경했습니다. 단순한 컨설팅을 넘어 기술 중심의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한 것입니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을 위해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명칭은 2011년까지 약 20년 동안 인포시스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n'테크놀로지스'라는 단어의 추가는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n이 시기부터 회사는 주식회사 전환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주식회사로의 전환]
공개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대규모 자본 조달을 위한 법적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기업 공개를 향한 중요한 행정적 절차의 완료를 의미했습니다. 회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한회사 체제에서 주식회사 체제로 바뀜에 따라 경영 감시 체계가 강화되었습니다.\n많은 수의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되어 향후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용이해졌습니다.\n회사의 지배 구조를 현대화하여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국제 전용 통신선 개통]
뱅갈로르 본사와 보스턴 사무소를 잇는 인도 최초의 64kbps 국제 전용 통신선을 설치했습니다. 실시간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오프쇼어 개발 모델의 효율성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적 혁신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민간 기업이 고속 국제 통신선을 보유하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n이 통신선 덕분에 고객사들은 인도의 개발진과 실시간으로 프로젝트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n'글로벌 딜리버리 모델'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든 기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3
[인도 시장 기업 공개]
인도 주식 시장에서 처음으로 기업 공개를 단행했습니다. 공모가 95루피로 시작된 IPO는 초기에는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으나 외국의 지원으로 극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재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IPO 당시 투자자들의 관심이 낮아 목표 미달 위기에 처했으나 모건 스탠리가 지분 13%를 인수하며 구원투수로 나섰습니다.\n상장 성공 이후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하여 많은 인도인들에게 투자 성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n확보된 자금은 대규모 캠퍼스 건립과 인재 채용에 전폭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증권 거래소 공식 상장]
인도 봄베이 증권 거래소에 주식이 공식 상장되어 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거래일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높은 145루피를 기록하며 시장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인포시스가 대중적인 기업으로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상장 직후부터 투명한 회계와 주주 친화적인 정책으로 인도 주식 시장의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n직원들에게 주식 매수 선택권(ESOP)을 부여하여 동기 부여를 강화한 것도 이 시기부터입니다.\n이후 인포시스는 인도 증시의 대표 지수인 SENSEX의 핵심 구성 종목이 되었습니다.
1994
[뱅킹 소프트웨어 출시]
은행 자동화 패키지 소프트웨어인 Bancs2000을 정식으로 출시했습니다.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독자적인 제품군을 보유한 기술 기업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는 훗날 세계적인 금융 플랫폼 '피나클'의 전신이 된 중요한 제품이었습니다.
전 세계 금융 기관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이 소프트웨어는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n기업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기술적 지적 재산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인포시스가 금융 IT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갖게 만든 첫 번째 히트 상품이었습니다.
1995
[미들웨어 아키텍처 개발]
서로 다른 시스템을 연결하는 미들웨어 제품인 Entark를 선보였습니다. 복잡해지는 기업 환경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며 기술적 리더십을 강화했습니다. 다양한 시스템 통합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핵심 도구가 되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의 상호 운용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n고객사들에게 단순 코딩을 넘어 시스템 설계와 아키텍처 컨설팅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n회사의 기술 스택이 점차 고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1996
[유럽 시장의 첫 관문]
영국 밀턴케인스에 첫 번째 유럽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미국에 이어 유럽 시장까지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을 마련한 것입니다. 글로벌 서비스 제공 범위를 넓혀 명실상부한 다국적 기업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유럽 내에서도 IT 수요가 매우 컸던 지역으로, 현지 사무소는 강력한 영업 거점이 되었습니다.\n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유럽 고객들의 요구에 맞춘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n이는 유럽 전역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Y2K 위기 대응 솔루션]
전 세계적인 Y2K 문제 해결을 위해 전용 툴셋인 In2000을 개발했습니다. 밀레니엄 버그 위협에 직면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해결책을 제공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인포시스의 인지도를 전 세계적으로 높이는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Y2K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수많은 엔지니어를 투입하여 정밀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과제였습니다.\n인포시스의 효율적인 개발 프로세스는 이 대규모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했습니다.\n전쟁과도 같았던 이 시기를 거치며 인포시스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각인되었습니다.
1997
[캐나다 사무소 개소]
캐나다 토론토에 새로운 사무소를 열며 북미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미국 인접 국가인 캐나다의 금융 및 통신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현지 법인 설립을 통해 더욱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토론토 사무소는 캐나다 대형 은행들과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n미국 시장과의 시너지를 통해 북미 전체 고객을 지원하는 통합 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n현지 인력을 채용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기여도 확대했습니다.
1998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런칭]
대기업의 비즈니스 전반을 관리하는 전사적 자원 관리(ERP) 중심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단순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을 돕는 전략적 동반자로 진화했습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시장인 컨설팅 영역으로의 본격적인 확장이었습니다.
SAP, 오라클 등 글로벌 솔루션 파트너들과 협업하여 통합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n고객사의 비즈니스 효율을 극대화하는 맞춤형 최적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n이 프로그램은 인포시스가 단순한 하청 업체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받게 했습니다.
1999
[차세대 금융 플랫폼 출시]
기존 Bancs2000을 계승하는 차세대 코어 뱅킹 소프트웨어 Finacle을 전 세계에 선보였습니다. 이 플랫폼은 디지털 뱅킹 시대에 맞춰 설계된 혁신적인 금융 솔루션이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수많은 대형 은행들이 사용하는 금융 IT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피나클은 확장성과 유연성이 뛰어나 글로벌 금융 기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n인포시스의 매출 중 제품 판매 수익 비중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n현재까지도 엣지버브(EdgeVerve)를 통해 전 세계 금융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자산입니다.
[연구 혁신 센터 설립]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SETLabs를 창설했습니다. 이는 훗날 '인포시스 랩'으로 개칭되어 회사의 R&D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고객에게 최신 기술 트렌드를 반영한 고도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차세대 기술을 선제적으로 연구하여 프로젝트에 적용했습니다.\n회사가 단순 서비스 제공에 머물지 않고 기술적 통찰력을 제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했습니다.\n수많은 특허를 출원하며 인포시스의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매출 1억 달러 달성]
연간 매출액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하며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랐음을 증명했습니다. 초기 소규모 벤처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체급을 키우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창립 18년 만에 일궈낸 값진 성과였습니다.
폭발적인 성장세는 글로벌 오프쇼어 모델이 시장에서 완벽히 검증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n늘어나는 매출에 맞춰 뱅갈로르 외 인도 전역으로 개발 센터를 확장했습니다.\n투자자들에게 강력한 성장 잠재력을 보여줌으로써 주가 상승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품질 인증의 정점]
전 세계에서 21번째로 소프트웨어 품질 인증인 CMM 레벨 5를 획득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의 개발 프로세스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공식적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고난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품질 기준을 확립했습니다.
CMM 레벨 5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이 극대화된 상태를 의미합니다.\n품질에 민감한 글로벌 금융사나 제조사들이 인포시스를 선택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습니다.\n내부적으로는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정착시켜 휴먼 에러를 최소화했습니다.
[나스닥 입성 신화]
인도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NASDAQ) 시장에 상장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인도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세계 자본 시장의 중심에서 인도 기술력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습니다.
나스닥 상장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n미국 내에서의 브랜드 신뢰도가 급상승하며 대형 계약 수주가 더욱 용이해졌습니다.\n당시 나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위권 내에 진입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2001
[일본 개발 센터 개소]
아시아 시장 확대를 위해 일본에 개발 센터를 설립하며 보수적인 일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현지 기업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아시아 기술 네트워크를 강화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서비스 거점을 더욱 촘맣게 만드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일본 특유의 높은 품질 기준과 비즈니스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중요한 학습 기회가 되었습니다.\n현지 고객을 직접 지원함으로써 언어와 시차의 장벽을 극복했습니다.\n아시아권의 대형 전자 및 자동차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
각종 경제 매체로부터 인도 최고의 고용주로 선정되며 인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수한 복지와 개방적인 기업 문화가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고 유지하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인포시스의 채용 시험은 높은 난이도로 유명하여 인도 수재들의 꿈의 무대로 여겨졌습니다.\n직원 중심의 경영 철학은 낮은 이직률과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졌습니다.\n기업의 성장이 직원의 성장과 함께한다는 믿음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습니다.
2002
[BPO 전문 계열사 설립]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을 전담하는 자회사 Progeon을 설립했습니다. 시티그룹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여 사업의 공신력을 높였습니다. IT 서비스에서 나아가 기업 운영 전반을 대행하는 종합 아웃소싱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회사는 현재 '인포시스 BPM'으로 불리며 전 세계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습니다.\n금융, 회계, 고객 관리 등 다양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전문성을 확보했습니다.\n정보기술과 비즈니스 운영이 결합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글로벌 교육 센터 건립]
인도 마이소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 대학인 인포시스 글로벌 교육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수천 명의 신입 사원들이 동시에 교육받을 수 있는 압도적인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만의 균질한 기술력을 유지하는 지식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이 캠퍼스는 축구장 수십 개 크기의 부지에 최첨단 기숙사와 강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n신입 사원들은 이곳에서 몇 달간 집중적인 코딩 및 비즈니스 교육을 이수해야 현장에 투입됩니다.\n전 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는 완벽한 인재 육성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난단 닐레카니의 CEO 취임]
창립자 나루아나 머티의 뒤를 이어 공동 창립자 난단 닐레카니가 새로운 CEO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가 창립 멤버들 간의 안정적인 경영 승계를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닐레카니는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매출 확대를 주도했습니다.
닐레카니의 재임 기간 동안 인포시스는 매출 규모를 수십 배로 키우며 글로벌 대형 기업으로 안착했습니다.\n그는 '평평해진 세계'의 상징적 인물로 불리며 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n창립자들의 유대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 리더십이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03
[호주 IT 기업 인수]
호주의 IT 서비스 기업인 Expert Information Services를 인수하며 오세아니아 시장 공략을 강화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 역사상 초기 주요 인수합병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지역별 거점 확보를 위해 현지 기업을 흡수하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2,300만 달러로, 호주 내 금융 및 공공 부문 고객사를 대거 확보했습니다.\n현지 지식과 인포시스의 오프쇼어 모델을 결합하여 서비스 단가를 낮추고 효율을 높였습니다.\n글로벌 M&A를 통한 외연 확장의 성공적인 첫 단추였습니다.
2004
[매출 10억 달러 시대]
연간 매출액이 마침내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인도 기업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가 글로벌 거대 IT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음을 의미합니다. 성장의 가속도가 붙으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창립 이후 23년 만에 달성한 이 기록은 인도 경제의 부상을 상징하는 지표가 되었습니다.\n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R&D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n글로벌 2000대 기업들 중 상당수가 인포시스의 주요 고객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컨설팅 전문 자회사 설립]
미국 캘리포니아에 인포시스 컨설팅(Infosys Consulting)을 설립하여 전략 컨설팅 역량을 극대화했습니다. 단순 인력 파견을 넘어 경영 전략을 설계하는 지적 비즈니스로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컨설턴트들을 영입하여 서비스의 격을 높였습니다.
본사를 기술 혁신의 중심지인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에 두어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했습니다.\n고객사의 비즈니스 난제를 해결하는 고도의 맞춤형 전략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n회사의 수익 구조를 고단가 컨설팅과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이원화하여 내실을 다졌습니다.
2006
[BPO 지분 완전 인수]
시티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Progeon의 지분 23%를 전량 매입하여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이는 BPO 사업의 수익성이 검증되었으며 회사의 핵심 역량으로 내재화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일관된 경영 전략 하에 아웃소싱 사업을 통합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1억 1,500만 달러로, 시티그룹과의 파트너십은 유지하되 지배 구조를 단순화했습니다.\n이후 사명을 '인포시스 BPO'로 변경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습니다.\n정보기술 서비스와 비즈니스 운영 서비스 간의 시너지가 극대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출 20억 달러 달성]
매출액이 10억 달러를 돌파한 지 단 2년 만에 20억 달러를 달성하며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보였습니다. 글로벌 IT 수요의 폭발과 인포시스의 시장 지배력 강화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성장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성과는 인포시스가 대형 글로벌 고객사들과의 장기 계약을 연이어 성공시킨 덕분이었습니다.\n인도 내 개발 인력도 수만 명 단위로 늘어나며 거대 조직으로 진화했습니다.\n투자자들에게 변함없는 성장 신뢰를 주며 주식 시장의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머티 의장의 현역 은퇴]
창립자 나루아나 머티가 만 60세 생일을 맞아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며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는 회사의 도덕적 지주로서 '명예 회장(Chairman Emeritus)'으로 남았습니다. 창립자의 품격 있는 은퇴는 인도 기업계에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는 퇴임 후에도 인포시스의 정신적 가치를 수호하며 사회 공헌 활동에 매진했습니다.\n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을 돕기 위해 미리 계획된 결정이었습니다.\n그가 남긴 '소프트웨어 수출을 통한 국가 번영'의 철학은 회사의 근간으로 남았습니다.
2007
[고팔라크리슈난의 CEO 취임]
공동 창립자 크리스 고팔라크리슈난이 새로운 CEO로 취임하며 창립 멤버 중심의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기술적 통찰력이 뛰어난 리더로 평가받으며 연구 개발 투자를 장려했습니다.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인포시스는 차세대 클라우드 및 데이터 기술을 비즈니스에 적극 도입했습니다.\n글로벌 고객들과의 기술적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n창립자 간의 순환 보직 체계가 회사 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008
[순이익 10억 달러 돌파]
연간 순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압도적인 수익성까지 갖췄음을 보여주는 지표였습니다. 고효율의 운영 모델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이익률을 달성했습니다.
매출 성장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와 효율적인 비용 관리의 결실이었습니다.\n확보된 막대한 이익은 다시 미래 성장을 위한 기술 투자와 배당으로 환원되었습니다.\n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의 활발한 비즈니스 환경을 완벽하게 활용한 결과였습니다.
2009
[글로벌 다우 지수 편입]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150개 기업을 선정하는 '글로벌 다우(The Global Dow)' 지수의 구성 종목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가 전 세계를 대표하는 우량 기업으로 공인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수 편입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을 촉진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었습니다.\n인도 기업의 위상을 전 세계 자본 시장에서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회사의 지배 구조와 재무 건전성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보험 전문 솔루션 사 인수]
미국의 보험 비즈니스 아웃소싱 전문 기업인 McCamish Systems를 인수했습니다. 보험 산업에 특화된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하여 금융 서비스 영역을 더욱 넓혔습니다. 복잡한 보험 관리 시스템을 인포시스의 플랫폼에 통합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3,800만 달러로, 북미 보험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었습니다.\n보험금 지급 관리 등 정밀한 프로세스 처리가 필요한 서비스를 대행하기 시작했습니다.\n산업별 특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버티컬' 전략의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2011
[심플한 이름으로의 변화]
사명을 기존 '인포시스 테크놀로지스'에서 '인포시스 리미티드'로 간소화했습니다. 이는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컨설팅, 아웃소싱 등을 아우르는 종합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으로의 도약을 상징합니다. 더욱 간결하고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름에서 '테크놀로지스'를 뺀 것은 기술이 비즈니스 전략의 도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n종합 솔루션 제공업체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여 더 넓은 영역의 사업 기회를 모색했습니다.\n전 세계 어디서나 '인포시스'라는 이름 하나로 통하는 브랜드 일원화를 추진했습니다.
[시부랄의 CEO 취임]
공동 창립자 S. D. 시부랄이 새로운 CEO 및 매니징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인포시스의 초기 운영 체계를 확립했던 인물로, 내실 있는 성장을 목표로 했습니다. 창립 멤버들이 돌아가며 경영을 맡는 전통의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인포시스는 매출 60억 달러를 돌파하며 덩치를 키웠습니다.\n전 세계 직원 수가 12만 명을 넘어서며 거대 조직 관리 역량을 시험받았습니다.\n하지만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외부 전문가 영입의 필요성이 대두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2012
[유럽 컨설팅 강화 인수]
스위스의 경영 컨설팅 전문 기업인 Lodestone Holding을 인수했습니다. 유럽 지역의 고급 컨설팅 역량을 확보하여 고부가가치 시장 공략을 가속화했습니다. 유럽 내 제조 및 생명공학 분야 대형 고객사들을 대거 흡수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3억 4,500만 달러로, 당시 인포시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딜 중 하나였습니다.\n이 인수를 통해 유럽 내 현지 컨설턴트 수백 명을 팀에 합류시켰습니다.\n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유럽 시장 심장부로 진입하는 성공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뉴욕 증권 거래소 상장]
나스닥에 있던 주식을 뉴욕 증권 거래소(NYSE)로 이전 상장하며 새로운 도약을 알렸습니다. 이는 유럽 투자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더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거래소인 NYSE에서 인도 대표 기업의 위상을 뽐냈습니다.
상장 기념 타종 행사에 경영진이 참여하며 인도 IT 산업의 성공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n거래소 이전과 동시에 유럽의 유로넥스트 시장에도 상장하여 글로벌 자본 조달 창구를 다변화했습니다.\n투자자들에게 더욱 안정적이고 큰 규모의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3
[머티 의장의 깜짝 복귀]
은퇴했던 창립자 나루아나 머티가 실적 부진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이사회 의장으로 긴급 복귀했습니다. 이는 인포시스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창립자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머티는 복귀 후 비용 구조를 효율화하고 핵심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n그의 복귀는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회사가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n그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개혁의 기틀을 닦고 차기 리더십에게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2014
[소프트웨어 자회사 창설]
기업용 소프트웨어 제품을 전문으로 하는 EdgeVerve Systems를 별도 법인으로 설립했습니다. 서비스 중심의 비즈니스에서 플랫폼 중심의 비즈니스로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금융 플랫폼 피나클 등 핵심 제품들을 이곳으로 통합 관리했습니다.
비즈니스 운영, 조달, 상거래 분야의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고 공급했습니다.\n라이선스 기반의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n현재까지도 인포시스의 디지털 전환 제품군을 이끄는 핵심 자회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외부 CEO 영입]
창립 멤버가 아닌 외부 출신의 비샬 시카를 새로운 CEO로 영입하며 경영 체제의 대전환을 맞이했습니다. SAP CTO 출신인 그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통한 기술적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창립자 시대를 지나 전문 경영인 시대로 접어든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시카는 인포시스에 '디자인 씽킹' 문화를 도입하고 혁신을 장려했습니다.\nAI 플랫폼 '마나(Mana)'와 자동화 기술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현대화하려 노력했습니다.\n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보수적이었던 인포시스 내부에 신선한 자극과 갈등을 동시에 가져왔습니다.
2015
[혁신 펀드의 발족]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5억 달러 규모의 인포시스 혁신 펀드를 설립했습니다. 인공지능, 자율 주행, 생명 공학 등 미래 기술을 가진 젊은 기업들을 지원하고 협력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외부의 혁신 에너지를 회사 내부로 수혈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인도 내 유망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별도로 2억 5,000만 달러를 할당했습니다.\n투자를 통해 최신 기술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했습니다.\n대학 연구소나 벤처 기업들과의 협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기술 기업 인수]
테스트 자동화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의 Panaya를 인수했습니다. 개발 공정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하여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이는 비샬 시카 CEO의 기술 중심 인수합병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2억 달러로, SAP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주었습니다.\n이 인수는 훗날 경영진과 이사회 간의 갈등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n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인포시스의 자동화 플랫폼인 '피나야'로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디지털 커머스 기업 인수]
미국의 디지털 경험 및 커머스 솔루션 기업인 Skava를 인수했습니다. 모바일 쇼핑과 디지털 고객 경험이 중요해지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소매 및 유통 업종 고객사들에게 강력한 디지털 전환 도구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1억 2,000만 달러로, 클라우드 기반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역량을 흡수했습니다.\n모바일 앱 개발과 최적화된 고객 인터페이스 설계 능력을 한층 강화했습니다.\n이후 인포시스 에퀴녹스(Equinox)라는 디지털 커머스 브랜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복장 자율화의 전격 실시]
경직된 기업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수십 년간 유지해온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폐지했습니다. 직원들이 청바지와 평상복을 입고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유연한 사고를 장려했습니다. 젊은 엔지니어들의 높은 호응을 얻으며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두 번 반드시 넥타이를 착용해야 하는 등 엄격한 규정이 있었습니다.\n이 결정은 인포시스가 더 이상 관료적인 대기업이 아닌 '테크 기업'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였습니다.\n글로벌 구직 시장에서 인포시스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인수]
미국의 정보 관리 컨설팅 기업인 Noah Consulting을 인수했습니다. 특히 에너지, 석유 및 가스 산업에 특화된 데이터 관리 역량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산업별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7,000만 달러로, 에너지 기업들의 복잡한 데이터를 자산화하는 기술을 얻었습니다.\n업스트림 석유 가스 프로젝트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n인포시스가 특정 산업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2016
[통합 AI 플랫폼 런칭]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을 통합한 차세대 지식 기반 플랫폼 Mana를 출시했습니다. 기계 학습을 통해 기업 운영 자동화와 의사 결정 지원을 고도화했습니다. 이는 훗날 '인포시스 니아(Nia)'로 발전하여 회사의 핵심 AI 자산이 되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비즈니스 통찰력을 제공하고 단순 반복 업무를 제거했습니다.\n고객사들에게 미래 예측 모델링과 효율적인 자원 관리 솔루션을 제안했습니다.\nAI 시대를 맞이하여 서비스 제공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 결과물이었습니다.
2017
[머신러닝 기술력 강화]
미국의 머신러닝 전문 기업인 Skytree를 인수하며 AI 역량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의 작업을 자동화하고 정밀도를 높이는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더욱 강력한 AI 분석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최적화 기술을 내재화했습니다.\n방대한 산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nAI 플랫폼 '니아'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비샬 시카 CEO의 사임]
이사회 및 창립자들과의 지속적인 갈등 끝에 비샬 시카 CEO가 전격 사임했습니다. 이는 회사의 지배 구조와 경영 방향성을 둘러싼 심각한 내부 진통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UB 프라빈 라오가 임시 CEO를 맡으며 안정을 꾀했습니다.
창립자 머티는 시카의 일부 경영 방식과 인수 합병 과정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n이 갈등으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는 등 회사는 일시적인 혼란에 빠졌습니다.\n결국 이사회가 대대적으로 개편되고 새로운 리더십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
[살릴 파레크의 CEO 취임]
캡제미나이 출신의 살릴 파레크가 새로운 CEO 및 매니징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혼란에 빠진 조직을 빠르게 수습하고 실질적인 실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인포시스가 다시 한번 견고한 성장을 시작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파레크는 디지털 전환과 클라우드 중심의 전략으로 회사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렸습니다.\n대형 글로벌 고객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이끌어냈습니다.\n그의 차분하고 실질적인 리더십 아래 회사는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시기 중 하나를 맞이했습니다.
[북유럽 세일즈포스 파트너 인수]
핀란드의 세일즈포스 컨설팅 전문 기업인 Fluido Oy를 인수했습니다. 북유럽 시장에서의 디지털 마케팅 및 고객 관계 관리(CRM) 역량을 확보했습니다. 클라우드 기반 비즈니스 솔루션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6,500만 유로로, 북유럽 최대의 세일즈포스 파트너사를 확보했습니다.\n현지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인포시스의 글로벌 자원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냈습니다.\n클라우드 서비스 분야의 전문성을 높여 고객사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습니다.
2019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역량 강화]
미국의 유명 광고 및 디자인 에이전시인 WongDoody를 인수했습니다. 기술 중심의 서비스에 창의적인 디자인과 마케팅 감각을 결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고객 경험(CX) 설계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7,500만 달러로,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 인력을 대거 영입했습니다.\n디지털 광고 기획부터 앱 디자인까지 통합적인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n'기술과 창의성의 결합'이라는 현대적인 서비스 모델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모기지 서비스 인수]
네덜란드의 모기지 관리 서비스 기업인 Stater N.V.를 인수했습니다. 유럽 내 주택 담보 대출 관리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융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분야의 전문성을 더욱 정교하게 다졌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1억 2,750만 유로로, 네덜란드 ABN AMRO 은행과의 파트너십이 기반이 되었습니다.\n수십만 건의 대출 계좌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대규모 플랫폼 운영 능력을 증명했습니다.\n유럽 내 핀테크 및 금융 아웃소싱 시장에서의 매출 비중을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20
[클라우드 컨설팅 대규모 인수]
미국의 세일즈포스 컨설팅 선두 주자인 Simplus를 인수했습니다. 클라우드 기반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시장에서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서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대규모 클라우드 전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군단을 확보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최대 2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딜이었습니다.\n미국 및 호주 시장에서의 클라우드 컨설팅 매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n기업들이 기존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신뢰받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혁신적 제품 디자인 기업 인수]
미국의 제품 디자인 및 개발 전문 기업인 Kaleidoscope Innovation을 인수했습니다. 의료 기기 및 소비자 제품의 물리적 디자인 역량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와 결합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4,200만 달러로, 의료 공학 및 디자인 분야의 깊은 전문성을 얻었습니다.\n기술적 아이디어를 실제 만질 수 있는 제품으로 구현하는 '엔드 투 엔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n특히 헬스케어 산업 고객들에게 혁신적인 R&D 파트너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동유럽 IT 전략 거점 확보]
체코에 본사를 둔 서비스나우(ServiceNow) 파트너 GuideVision을 인수했습니다. 동유럽의 우수한 인재풀을 활용하여 유럽 전역에 최적화된 디지털 워크플로우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운영 자동화 시장의 핵심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3,000만 유로로, 유럽 내 서비스나우 기술 역량을 대폭 강화했습니다.\n독일, 헝가리, 폴란드 등 인접 국가로의 서비스 네트워크를 확장했습니다.\n기업 내부 운영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플랫폼 구축 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21
[시가총액 1000억 달러 달성]
인도 기업 역사상 네 번째로 시가총액 1,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인포시스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IT 기업 중 하나임을 입증하는 상징적인 수치였습니다. 주주들에게 막대한 가치를 환원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디지털 및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의 폭발적인 성장이 주가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n투자자들에게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모델임을 완벽히 입증했습니다.\n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트폴리오의 핵심 종목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2022
[독일 디지털 마케팅 기업 인수]
독일의 디지털 마케팅 및 디자인 에이전시인 Oddity를 인수했습니다. 유럽 최대 경제권인 독일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 경험 설계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기술 중심의 독일에 창의적인 마케팅 솔루션을 결합하여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5,000만 유로로, 독일 내 수백 명의 크리에이티브 인력이 합류했습니다.\n유럽 내 럭셔리 브랜드 및 자동차 제조사들과의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했습니다.\n인포시스가 전 세계 어디서나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생명과학 컨설팅 역량 강화]
덴마크의 생명과학 컨설팅 기업인 BASE life science를 인수했습니다. 제약 및 의료 기기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북유럽 생명과학 시장의 거점을 마련하고 고도의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1억 1,000만 유로로, 비바(Veeva) 솔루션 등에 대한 깊은 전문성을 얻었습니다.\n글로벌 제약사들의 임상 데이터 관리와 규제 대응을 돕는 파트너로 성장했습니다.\n헬스케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실히 확보했습니다.
2024
[반도체 설계 시장 진출]
인도의 반도체 설계 및 임베디드 서비스 기업인 InSemi를 인수했습니다. 하드웨어의 두뇌인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하여 차세대 기술 시장에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넘어 칩 수준의 최적화까지 가능한 기술 스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28억 루피로, 반도체 부족 사태 이후 중요성이 커진 설계 능력을 내재화했습니다.\nAI용 칩과 사물인터넷 기기에 최적화된 설계 서비스를 고객사에게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n인포시스가 고도의 공학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독일 엔지니어링 R&D 인수]
독일의 엔지니어링 연구 개발 전문 기업인 in-tech를 인수했습니다. 자동차 및 제조 산업의 디지털 엔지니어링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였습니다. 독일의 제조 기술과 인포시스의 소프트웨어 역량이 결합된 시너지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4억 5,000만 유로로, 대규모 엔지니어링 인력을 확보한 중대한 딜이었습니다.\n자율 주행, 커넥티드 카 등 미래형 운송 수단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n독일 내 대형 자동차 제조사들의 핵심 기술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2025
[에너지 컨설팅 추가 확보]
미국의 MRE Consulting을 인수하며 북미 에너지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높였습니다. 석유, 가스 및 재생 에너지 기업들을 위한 데이터 관리와 운영 효율화 서비스를 강화했습니다.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의 기술 수요를 선제적으로 공략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3,600만 달러로, 에너지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가속화를 지원합니다.\n복잡한 원자재 거래 및 관리 시스템 구축 분야에서 독보적인 노하우를 얻었습니다.\n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 연구에도 이 역량이 활용될 예정입니다.
[호주 사이버 보안 강화]
호주의 사이버 보안 및 클라우드 전문 기업인 The Missing Link를 인수했습니다. 디지털 자산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강력한 보안 솔루션 역량을 확보했습니다. 오세아니아 지역 고객들에게 안전한 클라우드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약 9,800만 호주 달러로, 호주 내 보안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n위협 탐지 및 대응, 클라우드 거버넌스 분야의 고도화된 기술을 통합했습니다.\n인포시스의 글로벌 보안 서비스(Cyber Next)와 결합하여 전 세계 고객을 보호하는 방패를 구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