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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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국제도시, 항구도시, 경제자유구역 + 카테고리

대한민국 중서부에 위치한 인천광역시는 서해에 접한 항구도시이자 국제공항을 품은 국제 도시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근대화 시기에는 최초의 철도, 전신 등을 도입하며 한국 근대화를 선도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며, 현재는 경제자유구역 개발과 UN 녹색기후기금(GCF) 본부 유치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물류, 비즈니스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주민등록인구 300만 명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3대 도시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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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BC 7k

[신석기 시대부터의 거주 추정]

문학산, 계양산 등지에서 발견된 석기류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인천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부족 세력이 이곳에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인천에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문학산, 계양산 등에서 발견된 각종 석기류들로 미루어 신석기 시대인 것으로 추정되며, 학익, 주안, 문학 등에 분포된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에 부족세력이 거주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BC 1C

[미추홀의 탄생과 비류 십제의 도읍지]

원삼국시대에 인천은 '미추홀'이라 불렸고, 비류 십제의 도읍지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미추홀'은 물가 또는 거친 들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인천은 원삼국시대에 미추홀(彌鄒忽)로 불렸으며 비류 십제의 도읍지이기도 하였다. 미추홀이란 이름은 물가에 있는 지역을 뜻하는 뭇골, 또는 거친 들판이 있는 지역을 뜻하는 맷골의 음차라는 해석이 있다.

475

[고구려, 인천 지역에 매소홀현 설치]

백제의 영토였던 인천 지역이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백제 공격으로 점령된 후 '매소홀현'이 설치되었습니다.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의 영토였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면서 남하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이 일대에 매소홀현(買召忽縣)을 설치하였다.

550

[신라, 인천 지역 편입 및 통치]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에 의해 인천 지역이 신라 영토로 편입되었고, 이후 약 400년간 신라의 중요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6세기 중반 신라의 진흥왕이 점령하여 신라에 편입되어, 10세기까지 약 400년간 신라의 영토로 활약했다.

757

[통일신라, 매소홀현을 소성현으로 개칭]

삼국통일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매소홀현이 '소성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인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됐다.

1105

[소성현, 고려 숙종 대 경원군으로 승격]

1105년 고려 숙종 때, 문종의 왕비 인예태후 이씨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소성현이 '경원군'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경사의 근원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성현은 고려 때에는 수주(樹州)에 속했다가 1105년(고려 숙종 10년), 고려 문종의 왕비이자 고려 순종, 고려 선종, 고려 숙종, 의천을 비롯한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생산한 인예태후 이씨(仁睿太后 李氏)의 외향이라 하여 경사의 근원지를 뜻하는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하였다.

1122

[인종의 어머니 친정이라는 이유로 인주로 재승격]

고려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 문경태후 이씨의 친정이라는 이유로 경원군은 다시 '인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후 17대 국왕 고려 인종(仁宗) 역시 어머니 순덕왕후 문경태후 이씨의 친정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재승격시켰으며

1232

[고려, 몽골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

몽골 제국의 침략에 맞서 고려 정부는 1232년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에 팔만대장경 편찬이 이루어졌습니다.

13세기에 이르러 고려-몽골 전쟁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입하자, 1232년(고려 고종 19년) 고려 정부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쟁하였다. 이 시기 고려는 강화도에서 부처의 힘으로 국가적 혼란을 극복하겠다는 마음으로 팔만대장경을 편찬하였다. 강화는 강도(江都)로 불리며 1270년(고려 원종 11년)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개경 환도 이후 발생한 삼별초의 난 시기에는 삼별초가 안남도호부를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강화도에 강화 고려궁지이 세워지자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는데, 왕궁과 성곽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지 확보를 위해 본격적으로 간척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강화도의 면적은 크게 확장되었으며 본래 두 개의 섬이었던 강화도는 하나의 섬이 되었다.

1270

[강화도 수도 시대 종료, 개경 환도]

38년간 고려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던 강화도가 1270년, 몽골과의 항쟁 후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수도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강화는 강도(江都)로 불리며 1270년(고려 원종 11년)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1390

[고려 공양왕 대 경원부로 개칭]

1390년 고려 공양왕 때, 7대 동안 왕비를 배출한 '칠대어향'이라는 이유로 '인주'가 다시 '경원부'로 개칭되었습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칠대어향(七代御鄕)으로 경원부(慶源府)로 개칭되었는데, 문종조에서 인종조까지 7대에 이르는 동안 인주이씨 집안에서 다섯 왕비(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 사숙왕후, 순덕왕후)가 나왔고, 다섯 임금(고려 순종, 고려 선종, 고려 헌종, 고려 숙종, 고려 인종)이 인주이씨 왕비의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1392

[조선 건국 후 인주로 격하]

조선 건국 원년인 1392년, 경원부는 '인주'로 격하되었습니다.

1392년(조선 태조 1년) 인주로 격하된 후,

1413

['인천'이라는 지명 공식 탄생]

1413년 태종 13년, 주(州)가 들어간 지명을 '산'이나 '천'으로 바꾸는 정책에 따라 '인천'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이 날은 현재 '인천 시민의 날'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1413년(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지는 도호부 이하의 군·현 명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함으로, "인천"(仁川)"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 날(1413년 10월 15일)에서 유래하여 매년 10월 15일을 '인천 시민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1460

[세종비 소헌왕후 외향으로 인천 도호부 승격]

1460년 세조 6년,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외향이라는 이유로 인천은 '인천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이 지위는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습니다.

1460년(세조 6년)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의 외향이라 하여 인천 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1875

[운요호 사건 발생, 개항 결정의 촉매]

1875년 운요호 사건이 발생한 후, 이듬해 체결된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부산, 원산과 함께 인천의 개항이 결정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이 발생하고 이듬해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약 내용에 의해 부산광역시|부산, 원산시|원산과 함께 개항이 결정되었으며,

1883

[제물포 개항 및 인천감리서 설치]

1883년 제물포가 개항되면서 인천감리서가 설치되고, 사실상 인천의 중심지가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옮겨갔습니다.

1883년(대한제국 고종 20년) 제물포 개항으로 제물포에 인천감리서가 설치되면서 사실상의 읍치가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이전하였다.

1895

[갑오개혁, 인천부로 개편]

갑오개혁에 따른 지방관제 개편으로 1895년, 인천은 전국 23부 중 하나인 '인천부'가 되었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갑오개혁의 지방관제 개편으로 전국을 23부로 개편하여 인천부(仁川府)가 되었다.

1896

[경기도 인천부로 재편]

1896년, 인천부는 경기도 소속의 '인천부'로 다시 개편되었습니다.

1896년(건양 원년) 다시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다.

1898

[한국 최초 전화 통화 기록]

1898년 1월 28일, 인천 감리가 외아문에 영국 범선 입항을 보고한 기록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화 통화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통화 기록은 1898년 1월 28일 인천 감리가 외아문(外衙門)에 “오후 3시에 영국 범선 3척이 입항할 것”이라고 보고한 것이다.

1899

[한국 최초 철도, 경인선 개통]

1899년 9월 18일,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인천역에서 노량진역까지 33km 구간을 개통하며 인천은 철도 역사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이다. 1899년 9월 18일 인천역에서 노량진역까지 33㎞의 구간이 개통되었다. 당시 개통된 역은 인천역|인천 - 동인천역|축현 - 우각동역|우각동 - 부평역|부평 - 소사역|소사 - 오류동역|오류동 - 노량진역|노량진의 7개 역이었다.

1900

[한강철교 개통으로 서울-인천 철도 완성]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개통되고 이틀 뒤 서울역까지 철도가 연결되면서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 교통망이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개통되었고 7월 7일 서울역까지 연결되어 서울-인천간 철도 교통이 완성되었다.

1902

[일반인 대상 전화 서비스 시작]

1902년, 일본의 불법 전화 가설 시도에 대응하여 조선이 사업을 서둘러 시작하면서 일반인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인이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02년으로 일본이 서울-인천 간 전화를 불법으로 가설하려하자 조선이 서둘러 사업을 시작하였다.

1906

[인천부 행정구역 명칭 변경]

1906년, 인천부의 부내면이 '구읍면'으로 개칭되고 개항장 일대가 새로운 부내면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포면은 남양군으로 이관되며 행정구역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1906년 인천부 부내면은 1906년 인천부 구읍면으로 개칭되었고, 부내면의 이름은 당시 다소면의 일부였던 개항장(현재의 인천광역시 중구)으로 넘어갔다. 다소면의 일부였던 개항장 일대가 부내면으로, 관교동 일대를 비롯한 종래의 부내면이 '구읍면'으로 각각 개칭되었고, 이포면이 남양군으로 이관되었다.

1910

[일제강점기, 인천부 관할구역 유지 결정]

일제는 강제 합병 후 1910년 10월 1일, 인천부의 관할구역을 종래대로 유지하는 총독부령을 발표했습니다.

조선총독부령 제7호 (1910년 10월 1일) 일제는 대한제국에 대한 1910년 8월 29일의 강제합병에 따른 인천부의 새 관할구역을 종래의 인천부 일원으로 유지한다는 총독부령을 발표했다.

1914

[인천부 분할 및 부천군 신설]

1914년 4월 1일, 인천부는 항구 주변 도심지 외 나머지 면과 부평군이 합쳐져 '부천군'으로 개편되는 등 행정구역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인천부를 분할하여, 항구 주변의 도심지만을 인천부로 지정하고, 인천부의 나머지 면과 부평군을 부천군으로 개편하였다.

1936

[부천군 일부 지역 인천부로 재편입]

1936년 10월 1일, 부천군 다주면과 문학면의 일부 지역이 다시 인천부로 편입되어 인천의 행정구역이 확장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부천군 다주면(도화리 일원, 장의리 일원, 용정리 일원, 사충리 일원, 간석리 일부)과 문학면 일부(옥련리 일원, 학익리 일원, 관교리 일부, 승기리 일부)를 인천부에 재편입하였다. 이때 간석리, 관교리, 승기리 각 일부는 주안동|주안정으로 편입되어 현재에도 주안동의 일부를 구성한다.

1940

[부천군 4개 면 인천부로 재편입]

1940년 4월 1일, 부천군 소속의 문학면, 남동면, 부내면, 서곶면이 인천부에 다시 편입되면서 인천의 행정구역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령 제40호 (1940년 3월 28일) 부천군 문학면, 남동면, 부내면, 서곶면을 인천부에 (재)편입하였다.

1945

[인천부, 제물포시로 일시 개칭]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10일, 인천부가 '제물포시'로 잠시 이름이 바뀌는 행정 변화가 있었습니다.

1945년 10월 10일: 인천부를 제물포시로 개칭하였다.

[제물포시, 다시 인천부로 환원]

'제물포시'로 변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945년 10월 27일, 다시 원래 이름인 '인천부'로 환원되었습니다.

1945년 10월 27일: 제물포시를 인천부로 환원하였다.

1946

[일본식 지명, 한국식으로 변경]

해방 후 1946년 1월 1일, 인천 내 일본식 '정(町)' 명칭들이 한국식 지명으로 일괄 개정되었습니다.

1946년 1월 1일: 일본식 정(町)명을 개정하였다. (구역별 상세 내용은 원문 참조)

1949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인천시로 개칭]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8월 15일, 인천부는 '인천시'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법률 제32호 지방자치법 (1949년 7월 4일) 인천부를 인천시로 개칭하였다.

1950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군에 점령]

한국전쟁 발발 9일 만인 1950년 7월 4일, 인천시는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950년 7월 4일: 한국전쟁 발발 9일 뒤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도시 수복]

1950년 9월 15일, 연합군의 성공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인천시는 북한군으로부터 극적으로 수복되었으며, 이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하였다.

1963

[부천군 작약도, 인천시로 편입]

1963년 1월 1일, 부천군 영종면 운남리에 속했던 작약도가 인천시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법률 제1175호 시 · 군 관할 구역 변경 및 면의 폐치에 관한 법률 (1962년 11월 21일) 부천군 영종면 운남리 작약도가 인천시로 편입되었다.

1968

[인천시, 4개 구(區) 설치]

1968년 1월 1일, 인천시에 중구, 동구, 남구(현 미추홀구), 북구(현 부평구)가 설치되며 현대적인 행정구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법률 제1919호 인천시 구 설치에 관한 법률 (1967년 3월 30일) 중구 (인천광역시)|중구, 동구 (인천광역시)|동구, 미추홀구|남구, 부평구|북구를 설치하였다.

1974

[수도권 전철 1호선 경인선 구간 운행 개시]

1974년 경인선 구간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 운행이 시작되면서 인천과 서울을 잇는 대중교통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도시간 간선 철도는 1974년에 경인선을 포함한 구간에서 전철(수도권 전철 1호선) 운행이 시작되면서 운행을 중지하였으며,

1981

[경기도에서 분리, 인천직할시로 승격]

1981년 7월 1일, 경기도 소속이었던 인천시가 독립하여 '인천직할시'로 승격되며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법률 제3424호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및 인천직할시 설치에 관한 법률 (1981년 4월 13일) 경기도 인천시 일원을 관할로 인천직할시가 설치되었다.

1988

[서구와 남동구 분리 신설]

1988년 1월 1일, 인천직할시 북구에서 서구가, 남구에서 남동구가 각각 분리 신설되며 행정구역이 더욱 세분화되었습니다.

대통령령 제12367호 서울특별시 송파구 등 13개 구 설치와 구의 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 (1987년 12월 31일) 부평구|북구에서 서구 (인천광역시)|서구를, 미추홀구|남구에서 남동구를 각각 분리·설치하였다.

1989

[김포·옹진군 일부 지역 인천에 편입]

1989년 1월 1일,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이 북구에, 옹진군 영종면과 용유면이 중구에 편입되면서 인천의 관할 면적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법률 제4051호 부산직할시 강서구 설치 및 시·도의 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 (1988년 12월 31일)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이 부평구|북구에, 경기도 옹진군 (인천광역시)|옹진군 영종면과 용유면이 중구 (인천광역시)|중구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5

[인천직할시, 인천광역시로 명칭 변경]

1995년 1월 1일,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명칭을 변경하며 현재의 도시 위상과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법률 제4789호 지방자치법 (1994년 12월 20일) 인천광역시로 개칭하였다.

[강화군, 옹진군 등 편입 및 구 증설로 광역시 면모 강화]

1995년 3월 1일, 경기도 강화군, 옹진군 및 김포군 검단면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고,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남구에서 연수구가 분리 신설되며 인천은 현재의 광역시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법률 제4802호 서울특별시 광진구 등 9개 자치구 설치 및 특별시 · 광역시 · 도간 관할 구역 변경 등에 관한 법률 (1994년 12월 22일) 인천광역시에 경기도 옹진군 (인천광역시)|옹진군, 강화군과 김포군 검단면(서구 (인천광역시)|서구로 편입)이 편입되었고, 북구를 부평구와 계양구로, 미추홀구|남구에서 연수구를 각각 분리·설치하였다.

1999

[인천 도시철도 1호선 개통]

1999년,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되면서 인천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한 단계 발전했습니다.

인천 도시철도 1호선(계양역~송도달빛축제공원역 구간, 30.3km)이 개통되었다.

2001

[대한민국 최대 관문, 인천국제공항 개항]

2001년 3월 29일, 영종도에 대한민국 최대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며 인천은 동북아시아 허브 도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대한민국 최대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중구 (인천광역시)|중구 영종도에 위치해 있다.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하였으며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하고 있다. 인천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의 59.7%가 대한민국의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노선이며 나머지 40.3%는 외국 항공사들에 의해 운항되고 있다. 인천공항을 통하여 서울특별시|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도시들과 도쿄, 상하이, 뉴욕, 싱가포르, 홍콩, 런던, 파리시|파리, 프랑크푸르트, 오사카시|오사카 등 전세계 수많은 도시들이 항공교통으로 연결되고 있다. 주차대행을 운영하고 있으며 비행거리 3시간 내에 인구 100만 명 이상 도시 61개가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불리며 중요한 지리·경제적 이점을 갖고 있다.

2002

[2002 FIFA 월드컵 경기 개최]

2002년 6월 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가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2002년 6월 14일 인천문학경기장|문학경기장에서 2002년 FIFA 월드컵|2002 FIFA 월드컵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렸다.

2003

[대한민국 최초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개청]

2003년, 대한민국 최초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개청되어 송도, 청라, 영종 지구를 관할하며 인천이 동북아시아의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03년 인천광역시경제자유구역청이 개청되어 송도국제도시|송도·청라국제도시|청라·영종하늘도시|영종 지구를 관할한다. 2003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 내에서는 최초로 지정되었다. 동북아시아의 물류, 비즈니스, 레저, 관광산업 중심지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 청소년 할인 제도 시행]

2003년 6월 18일, 인천광역시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학생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확대 시행하여, 학생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청소년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2003년 6월 18일 대한민국 최초로 학생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처음 시행하였으며 인천광역시를 기점으로 전국에서 점점 학생할인에서 청소년할인으로 바꾸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고 덕분에 학생/비학생 구분없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모든 혜택을 누리고 할 수 있도록 하는 시발점 역할을 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대중교통을 특정으로 한 것이 아쉽지만 이 시작으로 인해서 지금의 모든 청소년들이 혜택을 받고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발점을 인천광역시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07

[인천국제공항철도 개통]

2007년, 인천국제공항과 서울을 잇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어 공항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인천공항2터미널역~계양역 구간(36.8km)의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었다.

2009

[대한민국 최장 교량, 인천대교 완공]

2009년 10월,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21.38km 길이의 인천대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7번째로 긴 교량으로, 인천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2009년 10월 완공된 인천대교는 연수구 옥련동과 영종도를 연결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교량이자 세계에서 7번째로 긴 교량이다. 2009년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길이 21.38km의 인천대교가 개통되었다. 인천대교는 대한민국 최장 교량이자 세계 7위 규모이다.

[송도국제도시에서 인천세계도시축전 개최]

2009년 8월 7일부터 10월 25일까지 80일간 송도국제도시에서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며 인천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2009년 8월 7일부터 10월 25일까지 80일간 송도국제도시에서 개최되었다. 2010년 G20재무차관회의를 개최하였다.

[수도권 통합요금제 참여 시작]

2009년 10월 10일, 인천광역시는 서울 및 경기도와 함께 수도권 통합요금제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인천광역시는 2009년 10월 10일부터 서울특별시·경기도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수도권 통합요금제에 참여해 시행하였다.

2012

[아시아 최초, UN 녹색기후기금(GCF) 본사 유치 성공]

2012년,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UN 산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본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며 아시아 최초로 UN 국제기구 본사를 가진 도시가 되었고, 국제적인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2012년 UN 국제기구 녹색기후기금(GCF) 본사를 인천의 송도국제도시에 유치하면서 인천은 아시아 최초로 UN 소속의 국제기구 본사를 가진 도시가 되었으며 현재 인천이 보유한 국제기구는 19개에 이른다.

[황해와 한강을 잇는 경인 아라뱃길 개통]

2012년, 황해와 한강을 연결하는 '경인 아라뱃길'이 개통되면서 새로운 내륙 수로가 열렸고, 물류 및 관광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내륙 수로로는 황해와 한강을 잇는 경인 아라뱃길이 2012년 개통되었다.

2013

[청라국제도시와 서울 잇는 BRT 개통]

2013년, 청라국제도시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을 연결하는 BRT(간선급행버스체계)가 개통되어 지역 간 이동 편의성이 증대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청라국제도시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을 잇는 청라국제도시 신교통|BRT가 개통되었다.

2014

[송도 동북아무역타워 준공 및 IFEZ 이전]

2014년 7월, 송도국제도시에 동북아무역타워가 준공되었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G타워로 이전하면서 송도의 국제 비즈니스 허브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2014년 7월 송도국제도시에 포스코타워-송도|동북아무역타워가 준공되었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아트센터대로 175에 위치한 G타워로 이전하였다.

[제17회 인천 아시안 게임 성공적 개최]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에서 제17회 아시안 게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도시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개최되었다. 2015년에는 아시아에서 3번째이자 대한민국 최초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수도 국제 행사를 개최했다.

2016

[인천 도시철도 2호선 개통]

2016년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되어 인천 내부 교통망이 더욱 확충되었습니다.

인천 도시철도 2호선(검단오류역~운연역 구간, 29.1km)이 개통되었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인천공항1터미널역~용유역 구간, 6.0km)도 같은 해 개통되었다.

[서울, 부산에 이어 3번째 인구 300만 돌파]

2016년 10월, 인천의 총인구(등록외국인 포함)가 300만 명을 돌파하며 서울과 부산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300만 도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2016년 10월 인천의 인구는 300만 445명으로, 서울과 부산에 이어 3번째로 300만을 넘어섰는데, 이는 인천시의 주민등록인구에 등록외국인 5만8,652명을 합산한 것이다.

2017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 구간 개통]

2017년 3월 23일,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의 인천~김포 구간이 개통되며 인천의 광역 교통망이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2017년 3월 23일에는 인천을 통과하는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인천 ~ 김포 구간이 개통되었다.

2018

[남구, 미추홀구로 명칭 변경]

2018년 7월 1일부로 인천광역시 남구의 명칭이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미추홀구'로 변경되었습니다.

2018년 7월 1일: 남구의 명칭을 미추홀구로 변경하였다.

2020

[수인선 전철 전 구간 개통]

2020년 수인선 전철이 전 구간 개통되면서 인천 남동부와 서해안 지역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수인선(소래포구역~인천역 구간, 15.0km) 전철이 개통되었다.

2024

[주민등록인구 300만명 돌파]

2024년 1월, 인천광역시의 주민등록인구가 300만 명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주요 대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4년 1월: 인천광역시의 주민등록인구가 300만명을 돌파하였다.

2026

[중구, 동구 폐지 및 제물포, 영종, 검단구 신설 예정]

2026년 7월 1일부로 중구와 동구가 폐지되고 제물포구, 영종구, 검단구가 신설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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