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리키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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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리키 료
바둑 기사, 일본의 일인자, 응씨배 챔피언 + 카테고리
이치리키 료는 현대 일본 바둑의 자존심이자, 19년 만에 일본에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컵을 안긴 불세출의 천재 기사입니다. 1997년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태어나 2010년 프로에 입단한 그는, 가호신보사(河北新報社)의 후계자라는 독특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승부사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이야기마 유타의 독주 체제를 무너뜨리고 기성(棋聖) 등 일본 주요 타이틀을 휩쓸며 국내 무대를 평정했으며, 2024년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전 세계에 일본 바둑의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최적화된 날카로운 수읽기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신진서, 중국의 에이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새로운 바둑 르네상스를 선도하고 있는 위대한 챔피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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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97

[이치리키 료의 탄생]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훗날 일본 바둑의 지형도를 바꿀 천재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신문사를 경영하는 유력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명석한 두뇌를 뽐내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가호신보사(河北新報社) 사장 이치리키 마사히코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업 승계라는 안정적인 미래가 약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접한 바둑의 매력에 빠져 험난한 승부사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2010

[프로 바둑 기사 공식 입단]

만 13세의 나이에 일본기원 도쿄본원 소속 전문 기사로 정식 입단하며 프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한국인 프로 기사 송광복 9단의 문하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결실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입단에 성공하며 일본 바둑의 미래를 책임질 특급 유망주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스승인 송광복 9단은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강력한 기풍을 전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2012

[나카노배 U20 우승]

20세 이하 유망주들이 겨루는 나카노배 선수권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로 데뷔 초기부터 동세대 기사들 중 단연 선두 주자임을 실력으로 입증했습니다.
전년도 3위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털어내고 정상에 오르며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렸습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승단 포인트까지 충족하며 프로 2단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2013

[오카게배 초대 우승]

제4회 오카게배 결승에서 안자이 노부아키를 꺾고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기도상(棋道賞) 신인상과 승률 1위를 동시에 거머쥐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히로시마 알루미늄배 약리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다관왕에 올랐습니다. 3단으로 승단함과 동시에 일본 내 각종 신예 기전을 휩쓸며 차세대 일인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기 시작했습니다.

2014

[글로비스배 세계 U-20 우승]

제1회 글로비스배 세계 바둑 U-20 결승에서 쉬자위안을 꺾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일본의 신예가 세계적인 유망주들을 제치고 거둔 기념비적인 국제 대회 성과였습니다.
이 대회 우승을 통해 일본 내수용 기사라는 편견을 깨고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 같은 해 일본 신인왕전에서도 요다 노리모토가 가졌던 최연소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했고, 공로를 인정받아 7단으로 파격 승단했습니다.

2015

[NHK배 최연소 결승 진출]

제62기 NHK배 TV 바둑 토너먼트에서 17세의 나이로 결승에 오르며 대회 사상 최연소 결승 진출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속기전에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베로재팬배 우승과 농심신라면배 일본 대표팀 선봉으로 나서 3연승을 거두는 등 기복 없는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일본 바둑계는 이야마 유타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6

[용성전 우승 및 천원전 도전]

일본 용성전 결승에서 이야마 유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메이저 기전에서의 경쟁력을 드러냈습니다. 기세를 몰아 천원전 도전권까지 획득하며 정상을 향해 맹렬히 진격했습니다.
오카게배 우승과 히로시마 알루미늄배 2연패 등 국내 기전에서 눈부신 성과를 쏟아냈습니다. 비록 천원전 본선 결승에서는 이야마 유타의 벽을 넘지 못했으나, 그의 턱밑까지 추격하며 일본 바둑의 세대교체를 예고했습니다.

2017

[프로 8단 승단 및 갑조리그 진출]

일본 기사로는 드물게 세계 최강자들이 모인 중국 바둑 갑조리그에 진출하여 실력을 겨뤘습니다. 이 시기에 거둔 뛰어난 성적을 인정받아 8단으로 승단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NHK배 준우승 등 꾸준한 성적으로 승단 포인트를 충족했습니다. 중국의 거친 기풍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수읽기의 깊이를 더했고, 이는 훗날 그가 세계 대회에서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이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2018

[아함동산배 우승 및 왕좌전 도전]

제25기 아함동산배 전일본 속기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타이틀 홀더가 되었습니다. 명인전과 왕좌전에서도 연달아 도전권을 획득하며 이야마 유타와의 숙명적 대결을 이어갔습니다.
기성(棋聖)전 결승전까지 올랐으나 이야마 유타에게 패하며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모든 주요 기전에서 결승 무대를 밟는 저력을 과시하며 명실상부한 일본 랭킹 2위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2019

[NHK배 첫 우승 및 용성전 제패]

수차례 준우승에 머물렀던 NHK배에서 마침내 정상에 오르며 속기 최강자의 면모를 뽐냈습니다. 용성전 결승에서는 우에노 아사미를 꺾고 대회 2연패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한중일 용성전 준우승 등 국제적인 이벤트에서도 꾸준히 성적을 냈습니다. 비록 아함동산배 준우승과 농심배에서의 패배 등 아쉬운 순간도 있었으나, 승리를 향한 집념은 더욱 단단해져만 갔습니다.

2020

[기성(碁聖) 및 천원전 우승과 9단 승단]

기성(碁聖)전과 천원전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메이저 2관왕에 올랐습니다. 이 눈부신 성과로 인해 프로 기사의 최고 단위인 9단으로 특별 승단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야마 유타의 독주 체제에 강력한 제동을 걸며 일본 바둑의 새로운 일인자 시대를 열었습니다. 오카게배 우승까지 더해 한 해에만 수많은 트로피를 수집하며 세계 바둑 기계(棋界)의 중심 인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2021

[NHK배 우승 및 명인전 분전]

KBS 바둑왕전과 유사한 격인 NHK배에서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안정적인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기성(碁聖)전과 명인전 등 주요 타이틀 방어전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이야마 유타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무르는 아픔도 겪었으나, 두 기사의 대결은 일본 바둑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천원전 타이틀까지 내어주는 시련을 겪었지만, 이는 더 큰 비상을 위한 숨 고르기였습니다.

2022

[기성(棋聖)전 우승, 일본 서열 1위 등극]

일본 내 최대 상금과 권위를 자랑하는 기성(棋聖)전에서 이야마 유타를 꺾고 대망의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로써 이야마 유타의 기성전 9연패를 저지하고 명실상부한 일본 바둑 일인자임을 선포했습니다.
NHK배에서도 2년 연속 우승하며 속기와 장고를 모두 섭렵한 진정한 제왕으로 군림했습니다. 본인방전과 기성(碁聖)전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일본 랭킹 1위의 위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2023

[기성(棋聖)전 수성 및 혼인보전 탈환]

가장 중요한 기성(棋聖)전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데 이어, 유서 깊은 혼인보전 결승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본인방 칭호를 쟁취했습니다. 아함동산배 우승까지 추가하며 다관왕의 위엄을 뽐냈습니다.
이야마 유타와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치열한 라이벌 구도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승리를 따내며 우위를 점했습니다. 천원전 타이틀까지 되찾아오며 일본 국내 기전을 사실상 완벽하게 평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24

[일본 국내 5관왕 위업]

기성(棋聖), 명인, 혼인보, 천원, 아함동산배 등 주요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며 일본 국내 5관왕에 올랐습니다. 이야마 유타 이후 처음으로 일본 바둑계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절대 지존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국내에서의 압도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맹활약하며 명실상부한 '이치리키 료의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특히 명인전에서 시바노 도라마루를 상대로 승리하며 타이틀을 획득한 것은 그의 커리어 하이를 장식하는 중요한 마일스톤이 되었습니다.

[응씨배 우승, 세계 정상 탈환]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 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셰커를 3대 0으로 완파하고 우승했습니다. 일본 기사로서는 무려 19년 만에 일궈낸 메이저 세계 대회 제패였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결승 5번기에서 단 한 판도 내주지 않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2005년 장쉬 9단의 LG배 우승 이후 끊겼던 일본 바둑의 세계 대회 우승 계보를 다시 이으며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역사적 대사건입니다.

2025

[기성(棋聖)전 4연패 대기록]

제49기 기성(棋聖)전 결승에서 숙적 이야마 유타와 7번기 혈투를 벌인 끝에 4대 3으로 승리하며 대회 4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일본 최고 권위 기전에서의 장기 집권을 현실화했습니다.
혼인보전 3연패, 명인전 2연패 등 기존 보유한 모든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내는 괴력을 보였습니다. 왕좌전 우승컵까지 추가하며 6관왕에 육박하는 지배력을 과시, 일본 바둑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일인자 중 한 명으로 거듭났습니다.

2026

[일본 상금왕 3연패 달성]

일본기원이 공식 발표한 상금 랭킹에서 3년 연속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응씨배 우승 상금과 국내 7대 기전 타이틀 상금을 싹쓸이하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가업의 후계자라는 배경을 뛰어넘어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일본 스포츠계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스타로 부상했습니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은 후배 기사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며, 일본 바둑의 대중적 인기를 견인하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LG배 세계기왕전 준우승]

제3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에 진출하여 한국의 신민준 9단과 우승컵을 다퉜으나,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응씨배 우승에 이은 연이은 세계 대회 결승 진출로 최정상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메이저 세계 대회 결승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일시적인 활약이 아닌 진정한 월드클래스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성과를 통해 그는 일본 바둑의 부활이 단기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르네상스임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농심배 최종국 통한의 역전패]

제27회 농심신라면배 최종 14국에서 일본의 마지막 대장으로 출전하여 한국의 신진서와 결승 대결을 펼쳤습니다. 중반까지 큰 우세를 잡으며 우승을 눈앞에 뒀으나, 막판 초읽기 실수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비록 패배하며 한국의 6연패를 허용했으나, 세계 최강 신진서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그의 기력은 전 세계 바둑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 바둑이 한국, 중국과 대등한 위치까지 다시 올라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뜨거운 승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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