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키 히로시
연표
1948
이츠키 히로시(본명: 마츠야마 카즈오)는 1948년 3월 14일 일본 후쿠이현 미하마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64
1964년, 《제15회 일본 콜롬비아 전국 가요 콩쿨》에서 우승한 후 작곡가 우에하라 겐토의 제자로 들어가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1965
[데뷔와 초기의 좌절]
'마츠야마 마사루'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여 총 6장의 싱글 앨범을 발표했으나,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며 초반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65년 '마츠야마 마사루'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으나, 총 6장의 싱글 앨범이 모두 히트하지 못하며 고된 무명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1967년에는 '이치조 에이치', 1969년에는 '미타니 켄'으로 이름을 바꾸며 재도전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971
[이츠키 히로시로 새출발]
가수 생활의 마지막 각오로 《전일본가요선수권》에 출연하여 10주 연속 우승을 거두며 지명도를 높였고, 이때 작사가 야마구치 요코로부터 '이츠키 히로시'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데뷔 후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그는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전일본가요선수권》에 출연, 10주 연속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심사위원이었던 작사가 야마구치 요코와 작곡가 히라오 마사아키의 제자가 되었고, 야마구치 요코는 그에게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의 성씨를 따 '이츠키 히로시'라는 새로운 예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요코하마 황혼》 대히트와 스타덤]
새 이름 '이츠키 히로시'로 발매한 《요코하마 황혼》이 오리콘 차트에서 65만 매 판매를 기록하며 대형 신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 곡으로 각종 음악상을 휩쓸며 《NHK 홍백가합전》에도 처음 출연했습니다.
1971년 3월, '이츠키 히로시'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곡 《요코하마 황혼(よこはま・たそがれ)》이 오리콘 차트에서 65만 매 이상 팔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노래를 통해 그는 단숨에 대형 신인으로 떠올랐고,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쓰는 것은 물론, 그해 《NHK 홍백가합전》에도 처음으로 출연하며 일본 가요계의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8
[레코드대상 10년 연속 금상 수상]
《일본 레코드대상》에서 10년 연속 금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첫 특별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1988년을 기해 《일본 레코드대상》에서 무려 10년 연속으로 금상을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이츠키 히로시는 해당 시상식의 역사상 첫 특별상 수상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1989
[배우 카즈 유우코와의 결혼]
배우 카즈 유우코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시 5억엔이 넘는 규모의 호화로운 피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1989년, 이츠키 히로시는 배우 카즈 유우코와 결혼식을 올리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 피로연은 5억엔이 넘는 엄청난 규모로 치러져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2020
[《NHK 홍백가합전》 최다 연속 출연 기록 수립]
1971년부터 《NHK 홍백가합전》에 50회 연속 출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여 역대 최다 연속 출장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츠키 히로시는 1971년부터 2020년까지 《NHK 홍백가합전》에 무려 50회 연속으로 출연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홍백가합전 역사상 가장 많은 연속 출장 기록이며, 총 출연 횟수로는 키타지마 사부로와 함께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업적입니다. 그는 또한 남성팀 피날레 무대를 총 13회, 전체 피날레를 6회 맡으며 프로그램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