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치인)
연표
1966
[부산에서 태어나다]
대한민국 부산직할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성장하며 훗날 진보 정치인의 길을 걷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1984
[학생운동 시작 및 대학 중퇴]
한국외국어대학교 홍보학과에 입학한 후, 전태일 열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가두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5일간 구금되었고, 결국 대학을 중퇴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삶을 시작했다.
[말표산업 입사, 노동 현장 경험]
구두약 제조업체인 말표산업에 입사하여 노동자로서의 삶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는 그녀가 노동현장의 현실을 직접 체감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88
[영원통신 입사 및 노동조합 결성]
인천 주안 6공단에 위치한 영원통신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운동권 경력이 회사에 알려지자 사실상 퇴사를 종용받았으나,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며 불합리한 상황에 맞섰다.
1989
[영원통신 노조 탄압 및 해고]
영원통신 노조를 돕던 백순기 보좌신부가 사측에 의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고, 결국 영원통신 노동조합은 사측과 단체교섭을 체결했지만, 이정미를 포함한 3명의 노동자는 해고되었다.
영원통신 측이 노조를 돕던 백순기 보좌신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 이로 인해 노동조합은 사측과 단체교섭을 체결할 수 있었으나, 이정미를 비롯한 3명의 노동자는 해고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이정미는 주안공단에서 노조 결성을 지원하고 노동자 교육에 힘쓰는 등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1995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활동]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여했다.
노동 현장을 넘어 더 넓은 영역에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
1998
[민족통일전국연합 활동]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며 사회운동 영역을 확장했다.
이후 2000년에는 여성국장을, 2001년에는 반미여성회 조직위원장 및 2003년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2000
[민주노동당 입당]
민주노동당 창당과 동시에 입당하며 본격적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헌신해 온 노동 및 사회 운동의 경험을 제도권 정치에서 펼치려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2004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및 총선 출마]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며 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다.
같은 해 제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5번으로 출마했으나 아쉽게 낙선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2008
[영등포구갑 총선 출마 및 대변인]
제18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구 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4위에 그치며 낙선했다.
이 시기 민주노동당 대변인을 역임하며 당의 주요 정책과 입장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2012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이 발생하면서 당내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정미는 이 사건 이후 비당권파에 합류하며 당의 혁신과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혁신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
강기갑을 중심으로 한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다.
대변인을 겸직하며 당의 혁신을 위한 노력에 앞장섰다.
[통합진보당 탈당]
부정 경선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사퇴가 불발되자, 강기갑 등 신당권파 주요 인사들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이는 새로운 진보 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한 결단이었다.
[진보정의당 창당 주도]
통합진보당 탈당파가 진보정의당(훗날 정의당으로 당명 변경)을 창당했다.
이정미는 창당 초기부터 당의 1기 당지도부 최고위원과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진보 정당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3
[정의당 부대표 취임]
정의당 부대표로 선임되어 당의 주요 운영에 참여했다.
이는 그녀가 진보 정당 내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아왔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2014
[수원 재보궐선거 중도 사퇴]
경기도 수원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야권 단일화를 위해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양보하고 중도에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아쉽게도 본선에서 야권연대는 실패로 돌아갔다.
2016
[20대 총선 비례대표 1번 선정]
제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당원 2만여 명의 지지를 받아 여성 1위를 차지하며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그녀의 오랜 정당 활동과 공헌이 당원들에게 인정받은 결과였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정의당이 정당 득표율 7.23%를 기록하며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고, 비례대표 1번이었던 이정미는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초선 국회의원의 영예를 안았다.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역임]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되어 원내 전략 수립 및 당 정책 추진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2017
[정의당 당대표 당선! (최초 여성/비례대표 출신)]
정의당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박원석 후보를 누르고 정의당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출된 그녀는 정의당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대표이자 비례대표 출신 당대표라는 기록을 세우며 젊고 역동적인 당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정의당은 지지율 상승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정의당 당직 선거에서 56.05%의 득표율로 박원석 후보를 누르고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이는 정의당 창당 이래 최초의 여성 당대표이자 비례대표 출신 당대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취임 1년 만에 정의당은 광역 정당 득표율 8.97%, 지지율 10.4%를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민주평화당과 함께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구성하며 제도권 정치의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8
[노회찬 사망 및 고용노동소위 배제]
노회찬 의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 해체되었다.
이후 제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달리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배제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진보 정당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으로 공동 원내교섭단체가 해체된 후, 이정미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배제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이 노동소위에서 배제된 전례가 없던 일이기에 정의당은 강력히 반발했으며, 이정미 의원 본인도 재고를 요청하며 민주당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2019
[정의당 당대표 임기 만료]
2017년 7월 11일부터 시작된 정의당 당대표 임기를 마쳤다.
그녀는 임기 동안 당의 지지율 상승과 외연 확장에 크게 기여하며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22
[정의당 당대표 재선출]
다시 한번 정의당 당대표로 선출되어 당을 이끌게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당을 재건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2023
[정의당 당대표 임기 만료 (두 번째)]
두 번째 정의당 당대표 임기를 마쳤다.
그녀의 리더십은 당의 안정과 재도약을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