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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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정치인 + 카테고리

이응준은 1890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대좌로 복무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기여하여 초대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그의 아들이 관련된 육군대학교 진급 심사 커닝 사건으로 논란이 있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되었고, 1985년 96세로 사망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90

[이응준 출생]

평안남도 안주에서 이응준이 태어났다.

이응준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수안 이씨이다.

1906

[한성부 상경 및 군인 결심]

16세에 한성부로 올라와 신학문을 접했으며, 고향 선배들의 영향으로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이응준은 16세가 되던 해 한성부로 올라와 신학문을 접했다. 이때 고향 선배인 노백린과 이갑의 영향을 받아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09

[일본 유학]

이갑의 지원으로 보성중학교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갑의 지원을 받아 보성중학교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쳤다.

1914

[일본 육사 졸업 및 임관]

일본 육군사관학교 제26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소위로 임관하여 복무를 시작했다.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제26기로 졸업했으며, 이후 일본군 소위로 임관하여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는 1945년까지 일본군에 복무했다.

1918

[시베리아 파견]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에 육군 중위 신분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되어 한국인 대민 정탐 활동을 수행했다.

10월 혁명 이듬해 일본군이 시베리아 지역 반혁명군 지원을 위해 출병했을 때, 육군 중위였던 이응준은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되어 이 지역 한국인들을 이용한 대민 정탐 활동을 주요 임무로 수행했다.

1919

[3·1 운동과 망명 모의]

3·1 운동이 일어나자 김경천, 지청천과 함께 중국 망명을 모의했으나, 일본군 장교로 남았다.

3·1 운동이 발발하자 김경천, 지청천과 함께 중국 망명을 모의했으나, 두 사람과는 달리 이응준은 망명을 결행하지 않고 일본군 장교로 계속 복무했다.

1925

[만주 봉천 출동]

육군 대위 시절 만주의 봉천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 출동했다.

육군 대위 시절,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할 때 만주의 봉천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 출동했다.

1928

[만주 봉천 재출동]

육군 대위 시절 만주의 봉천 지역으로 두 번째로 국경을 넘어 출동했다.

육군 대위 시절,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할 때 만주의 봉천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 출동한 일이 또 있었다.

1935

[훈4등 서보장 수여]

일본 정부로부터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훈4등 서보장을 수여받았다.

1936

[중좌 진급 및 배속 장교 근무]

중좌로 진급한 뒤 중일 전쟁 직전까지 경성의학전문학교와 경성약학전문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담당하는 배속 장교로 근무했다.

중좌로 진급한 후, 중일 전쟁 발발 직전까지 경성의학전문학교와 경성약학전문학교에서 배속 장교로 근무하며 군사 교육을 책임졌다.

1937

[중일 전쟁 참전 및 전투 참여]

중일 전쟁에 참전하여 사단사령부와 북지파견군 사령부 등에서 병무 및 병참 업무를 수행했으며, 난위엔 전투와 산둥성 팔로군 게릴라 토벌에도 직접 참여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사단사령부와 북지파견군 사령부 등에서 병무 업무와 병참수송 업무를 주로 수행했다. 중일 전쟁 확전의 빌미가 된 난위엔 전투에 직접 참여했으며, 산둥성에서는 팔로군 게릴라 토벌 부대의 지휘관을 맡았다.

1939

[훈3등 서보장 수여]

일본 정부로부터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훈3등 서보장을 수여받았다.

1941

[육군 대좌 승진]

일본 육군 대좌로 승진했다.

일본 육군 대좌로 승진하였다.

1943

[징병제 지지 및 학도병 참전 독려]

징병제 실시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인력 동원에 앞장섰으며, 부민관 강연회에서 학도병으로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징병제가 실시되자, 이응준은 이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적극적인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며 인력 동원에 앞장섰다. 부민관 강연회에 참석하여 지원병 제도를 홍보하고 학도병으로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는 등 친일 행위를 벌였다.

1945

[일본 패망 및 서울 귀환]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망과 동시에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개인적으로 탈출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했을 때,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원산항 수송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이응준은 패전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탈출하여 서울로 입성했다.

1946

[국군 창설 참여]

미군정의 군사 고문으로 위촉되어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일본 패망 후 미군정의 군사 고문으로 위촉되어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때부터 대한민국 육군 복무가 시작되었다.

1948

[초대 육군참모총장 취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육군 참모총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초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되어 이듬해 5월 8일까지 재임했다.

1949

[육군참모총장 경질]

춘천 8연대의 월북 사건으로 인해 육군 참모총장 직에서 경질되었다.

춘천 8연대의 강태무, 표무원 대대의 월북 사건으로 인해 육군 참모총장 직에서 경질되었다.

1950

[제5사단장 임명]

육군 참모총장 경질 후 제5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육군 참모총장 경질 이후 제5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한국 전쟁 발발]

대한민국 서울에서 한국 전쟁을 맞이하였고, 수원지구방위사령관 등으로 참전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이응준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전쟁을 맞이했으며, 수원지구방위사령관 등의 직책으로 참전하여 전쟁 수행에 임했다.

1952

[육군 중장 진급]

육군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던 중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다.

육군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는 영예를 안았다.

1955

[육군대학교 커닝 사건]

육군대학교 총장 재직 중 아들 이창선 중령을 포함한 진급 심사 커닝 사건이 발생하여 아들이 예편했다.

이응준이 육군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시기, 육군대학교 진급 심사 시험 중 커닝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준장 2명, 대령 2명, 그리고 당시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이던 그의 장남 이창선 중령이 군복을 벗고 예편했다.

[체신부 장관 취임]

육군 중장 예편 후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1958년 9월 8일까지 재임했다.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제7대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3년간 공직을 수행했다.

[육군 중장 예편]

아들의 육군대학교 커닝 사건 여파로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아들 이창선 중령의 육군대학교 진급 심사 커닝 사건의 여파로,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게 되었다.

1967

[한국반공연맹 이사장 취임]

한국반공연맹 이사장에 취임하여 반공 활동에 참여했다.

한국반공연맹 이사장에 취임하며 반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2

[보국훈장 통일장 서훈]

반공유공자로서 보국훈장 통일장을 서훈받았다.

반공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반공유공자 보국훈장 통일장을 서훈받았다.

1979

[국정자문위원 역임]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하며 국가 정책 자문에 기여했다.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하며 다양한 국가 정책에 대한 자문 활동을 펼쳤다.

1980

[국방정책자문위원장 및 국토통일원 고문 역임]

국방정책자문위원장과 국토통일원 고문을 역임했다.

국방정책자문위원장과 국토통일원 고문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1985

[이응준 사망]

9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육군장으로 치러진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07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 군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8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등재]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포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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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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