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마 유타

num_of_likes 5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이야마 유타
바둑 기사, 프로 기사 + 카테고리
현대 일본 바둑계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제1인자이자, 일본 바둑 역사상 최초로 7대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한 전설적인 기사입니다. 오사카 출신으로 만 12세에 프로에 입단하여 '헤이세이 시대의 천재'로 주목받았으며, 20세에 최연소 명인 등극을 시작으로 일본 바둑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전관왕(7관왕) 달성과 연간 그랜드슬램이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세워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세계 대회에서도 아시아 TV 바둑 선수권 우승 등을 거머쥐었습니다. 2018년에는 바둑 기사 최초로 일본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며 국가적 영웅으로 대우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후배들과 치열한 승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89

[이야마 유타 탄생]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에서 태어났습니다. 5세 무렵 아버지가 사온 비디오 게임을 통해 처음 바둑을 접했습니다.
아마추어 고단자였던 할아버지의 훈도 아래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임에도 불구하고 바둑을 시작한 지 단 반년 만에 5급, 다시 반년 만에 3단에 오르는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1997

[전국 소년소녀 바둑대회 우승]

초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제18회 전국 소년소녀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듬해에도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우승은 과거 야마시타 케이구 이후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습니다. 같은 해 전일본 어린이 바둑대회의 초대 챔피언으로도 등극하며 헤이세이 시대의 신동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02

[만 12세 프로 입단]

중학교 1학년 때 일본기원 간사이 총본부 소속으로 정식 프로 기사가 되었습니다. 만 12세 입단은 린하이펑 명예 천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입니다.
원생 리그에서 46연승을 포함해 71승 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입단 관문을 뚫었습니다.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첫 번째 프로 기사로 기록되며 바둑계의 미래를 짊어질 유망주로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2005

[아함동산배 최연소 우승]

제12기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을 꺾고 생애 첫 공식 기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6세 4개월의 나이로 일본 바둑 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장쉬, 왕리청, 조치훈 등 초일류 기사들을 연파하고 거둔 우승이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4단에서 7단으로 파격적인 월반 승단을 이뤄냈으며, 이는 일본 바둑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고속 승단 사례로 남았습니다.

2007

[최연소 3대 리그 진입]

만 17세 10개월의 나이로 기성전과 명인전 리그에 동시에 진입하며 역대 최연소 리그 진입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린하이펑 등 쟁쟁한 선배들을 물리치고 이뤄낸 성과로, 10대의 나이에 일본 최고의 기사들이 모이는 리그 무대에 당당히 입성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타이틀 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시기입니다.

2008

[최연소 7대 타이틀 도전자 등극]

명인전 리그를 제패하며 장쉬 명인에 대한 도전권을 획득했습니다. 만 19세 3개월의 나이로 7대 타이틀전 최연소 도전자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조치훈 9단이 보유하고 있던 최연소 도전자 기록을 갈아치우며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우뚝 섰습니다. 도전권을 획득함과 동시에 규정에 따라 프로 8단으로 승단하는 겹경사를 누렸습니다.

2009

[최연소 명인 등극 및 9단 승단]

제34기 명인전에서 장쉬 9단을 4-1로 꺾고 사상 최연소 명인(20세 4개월)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입단 후 최단기간(8년 10개월) 9단 승단 기록도 경신했습니다.
일본 바둑의 최고 권위인 명인 자리에 최연소로 오르며 '이야마 시대'의 개막을 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9단 승단 역시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달성하며 엘리트 코스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2011

[최연소 2관왕 달성]

십단전 결승에서 장쉬 9단을 물리치고 생애 첫 십단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로써 명인과 십단을 동시에 보유한 사상 최연소 2관왕이 되었습니다.
21세 11개월의 나이에 거둔 성과로, 다관왕 경쟁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천원 타이틀까지 연달아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의 권력 구조를 완전히 재편했습니다.

2012

[본인방 등극 및 4관왕 달성]

본인방전에서 야마시타 케이구 9단을 꺾고 챔피언에 올라 '본인방 문유(文裕)'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명인, 본인방, 십단 등 4대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했습니다.
전통의 본인방 가문의 명맥을 잇는 칭호를 얻으며 명실상부한 일본 바둑의 왕자로 군림했습니다. 같은 해 왕좌 타이틀까지 추가하며 역사적인 5관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2013

[사상 첫 6관왕 대위업 수립]

기성전에서 우승하며 기성, 명인, 본인방, 천원, 왕좌, 고성(碁聖) 등 7대 타이틀 중 6개를 동시에 보유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6관왕 고지에 오르며 독보적인 1인자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남은 타이틀은 십단전뿐이었으며, 전관왕을 향한 대장정이 본격화되었습니다.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 우승]

국제 대회인 제25회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한국의 박정환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일본 기사로서는 8년 만에 거둔 세계 대회 우승이자, 자신의 첫 메이저급 국제 타이틀이었습니다. 국내용 챔피언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고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실력임을 증명했습니다.

2016

[역사상 최초의 7관왕 전관왕 달성]

십단전 타이틀을 획득하며 마침내 일본 바둑계의 7대 주요 타이틀을 모두 한 손에 거머쥐는 사상 최초의 전관왕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모든 영광의 자리를 독식하며 일본 바둑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단 한 명의 기사가 모든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은 현대 바둑 기전 체제하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2017

[사상 최초 7관왕 2회 복귀]

명인 타이틀을 되찾아오며 한때 잃었던 전관왕의 지위를 다시 회복했습니다. 7관왕을 두 번이나 달성한 것 또한 역사상 유일한 기록입니다.
시바노 도라마루 등 신예들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다시 한번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 바둑 팬들은 그를 향해 경외심을 담아 '마왕(魔王)'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2018

[일본 국민영예상 수상]

바둑을 통한 지대한 공헌과 전관왕 달성의 업적을 인정받아 쇼기 기사 하부 요시하루와 함께 바둑 기사 최초로 일본 국민영예상을 수상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국가적 영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바둑이 단순한 게임을 넘어 문화 예술적 가치를 지닌 국가적 자산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였습니다.

[월드 바둑 챔피언십 준우승]

세계 최고의 기사들이 모인 월드 바둑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박정환 9단과 결승에서 맞붙어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꾸준히 결승 경쟁력을 보여주며 일본 바둑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세계 정상급 기사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21

[농심배 4연승 기적과 5관왕 복귀]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에서 일본 주장으로 출전하여 한국과 중국의 강자들을 연파하며 4연승을 기록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왕좌 타이틀을 탈환하며 5관왕에 복귀했습니다.
신진서, 판팅위 등 세계 최강자들을 상대로 보여준 연승 행진은 일본 바둑의 부활을 알리는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국내외 무대에서 여전한 파괴력을 과시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2022

[본인방전 11연패 대기록 수립]

제77기 본인방전에서 도전자 이치리키 료를 4-0으로 완파하고 대회 11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조치훈 9단의 기존 10연패 기록을 갈아치운 신기록입니다.
장장 11년 동안 한 번도 본인방 자리를 내주지 않는 철권통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단일 타이틀전에서 거둔 가장 압도적이고 지속적인 성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2023

[본인방 타이틀 상실]

11년간 굳건히 지켜왔던 본인방 타이틀을 후배 이치리키 료 9단에게 내어주며 기나긴 연패 행진을 마감했습니다.
세대교체의 거센 흐름 속에서 아쉽게 왕좌를 내려놓았으나, 그가 세운 11연패의 기록은 향후 수십 년간 깨지기 힘든 위대한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타이틀 상실 이후에도 여전히 주요 기전의 상위권에서 활약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2024

[명예 왕좌 칭호 획득]

왕좌전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통산 10기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규정에 의해 '명예 왕좌'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미 기성, 천원, 고성 타이틀에서 명예 칭호를 확보한 데 이어 왕좌까지 섭렵하며 다관왕 명예 칭호 보유자가 되었습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가장 많은 명예 타이틀 자격을 가진 기사로 기록되었습니다.

2025

[왕좌 및 십단 타이틀 상실]

새해 벽두부터 이어진 주요 기전 결승에서 후배 기사들에게 잇따라 패배하며 왕좌와 십단 타이틀을 동시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체력과 수읽기에서 앞서는 어린 후배들의 거센 도전 앞에 아쉽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현재는 고성(碁聖) 타이틀만을 보유한 상태이나, 여전히 각종 리그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이야마 유타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