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리수
연표
1910
일제강점기 연극배우 겸 가수로 활동한 이애리수는 1910년 1월 1일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음전이다. '애리수'는 서양 이름 '앨리스'를 음차한 예명으로 알려져 있다.
1918
[아역 배우 활동 시작]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9세 때부터 외삼촌의 도움으로 순회 극단에 합류, 아역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이애리수는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9세가 되던 해(1918년경) 외삼촌의 도움으로 순회 극단에 들어가 아역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극좌, 민중극단, 취성좌 등 다양한 극단에서 활동하며 점차 유명한 여배우로 성장했고, 조선연극사, 연극시장 등 흥행극단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다.
1931
대중가요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배우가 가수를 겸하던 시기에, 이애리수는 인기 배우로서 막간 가수로 활동하다가 1931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메리의 노래〉, 〈라인강〉, 〈부활〉 등 번안곡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가수 데뷔를 했다.
1932
[히트곡 〈황성의 적〉 발표]
빅타레코드로 이적 후 전수린 작곡의 〈황성의 적〉을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 대중가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 곡은 그녀의 고향인 개성의 만월대를 소재로 한 노래이다.
1932년 이애리수는 빅타레코드로 소속사를 옮긴 뒤 전수린 작곡의 〈황성의 적〉을 발표했다. 이 곡은 그녀의 고향인 개성의 만월대를 배경으로 나라 잃은 슬픔을 담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오늘날 〈황성옛터〉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다. 이 곡의 공전의 히트로 그녀는 대중가요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1935
[연예계 은퇴]
1930년대 중반 전문 여가수들이 등장하며 인기가 수그러들었고, 두 차례 음독자살 소동 후 결혼과 출산을 거쳐 연예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전문 여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애리수의 인기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 시기 그녀는 두 번이나 음독자살 소동을 겪었으며, 이후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연예계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은퇴했다.
2008
연예계 은퇴 후 소식이 끊기면서 한때 사망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던 이애리수가 2008년 일산의 한 요양원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09
2009년 3월 31일, 향년 99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별세하여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