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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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치인, 도쿄도지사 + 카테고리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의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정치인입니다. 젊은 나이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이후 정치계에 진출하여 중의원 의원과 환경청 장관, 운수 대신을 역임했습니다. 1999년부터 4선 도쿄도지사로서 도정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강력한 우익적 성향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많은 논란과 관심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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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32

[이시하라 신타로의 출생]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아버지 이시하라 기요시와 어머니 이시하라 미쓰코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32년 9월 30일, 효고현 고베시 스마구에서 야마시타 기선에 근무하던 아버지 이시하라 기요시와 어머니 이시하라 미쓰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기요시는 에히메현 나가하마정, 어머니 미쓰코는 히로시마현 미야지마 출신이었다.

1934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 출생]

훗날 유명 배우가 되는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태어났습니다.

1934년에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태어났다.

1956

[동생 유지로의 영화 데뷔]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태양의 계절'에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배우로 데뷔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 '태양의 계절'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배우로 데뷔하며 이후 스타 배우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양의 계절" 아쿠타가와상 수상]

소설 "태양의 계절"로 제3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당시 사상 최연소 기록을 세웠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태양족"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습니다.

1956년 1월 23일, 소설 "태양의 계절"로 제3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는 당시 사상 최연소 기록이었으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태양족", "신타로 가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 졸업]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며 학업을 마쳤습니다.

1956년 3월,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법학 사회학부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에 학부 개편으로 인해 법학 사회학 부가 법학부와 사회학부로 분리되어 법학부를 졸업했다.

1957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 출생]

훗날 중의원 의원이 되는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태어났습니다.

1957년 4월 19일,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태어났다. 노부테루는 훗날 아버지와 함께 중의원 의원을 지내게 된다.

1967

[베트남 전쟁 취재]

요미우리 신문사의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며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67년, 요미우리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며 세계정세에 대한 시각을 넓혔다.

1968

[참의원 당선, 사상 첫 300만 표 기록]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 전국구에 출마하여 사상 최초로 300만 표 이상을 얻어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며 정치계에 화려하게 입문했습니다.

1968년 7월, 자유민주당 참의원 전국구로 출마해 사상 최초로 300만 표 당선 기록을 세웠다. 이는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득표였다.

1972

[중의원 당선]

중의원 도쿄 2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정치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1972년 12월, 중의원 도쿄 2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

[정치 모임 "상쾌한 바람회" 결성]

와타나베 미치오, 나카가와 이치로 등과 함께 정치 모임인 "상쾌한 바람회"를 결성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73년, 와타나베 미치오, 나카가와 이치로, 후지오 마사유키 등과 함께 "상쾌한 바람회"를 결성하며 보수 정치권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했다.

1975

[도쿄도지사 선거 낙선]

도쿄도지사 선거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33만 표를 득표하고도 미노베 료키치에게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1975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233만 표를 득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현직이던 미노베 료키치에게 패하여 낙선했다.

1976

[환경청 장관 취임]

중의원으로 복귀한 뒤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환경청 장관으로 취임하여 첫 입각을 경험했습니다.

1976년 12월, 중의원으로 복귀하여 후쿠다 다케오 내각의 환경청 장관으로 취임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내각 입성이다.

1987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 사망]

평생 절친했던 유명 배우 남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52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1987년 7월 17일, 동생 이시하라 유지로가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훗날 동생을 기리는 소설 "남동생"을 발표하기도 했다.

[운수 대신 취임]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운수 대신을 맡아 주요 각료직을 역임했습니다.

1987년 11월 6일,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운수 대신을 맡아 일본의 교통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89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출판]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을 출판하며 일본의 대미 관계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989년,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을 출판했다. 이 책은 일본이 미국에 대해 좀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어 당시 큰 논란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0

[장남 노부테루 중의원 당선, 부자 의원 탄생]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총선거에서 당선되며,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중의원 의원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1990년 총선거에서 장남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이로써 이시하라 신타로와 노부테루는 일본 정치 역사상 드물게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중의원 의원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1995

[중의원 의원직 사퇴]

의원 재직 25주년 기념 의회 연설에서 의원직 사퇴를 표명하며 새로운 정치 행보를 예고했습니다.

1995년, 의원 재직 25주년 기념 의회 연설에서 돌연 의원직 사퇴를 표명했다. 이는 이후 도쿄도지사 출마의 발판이 되었다.

1999

[도쿄도지사 당선]

유머러스한 인사와 함께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166만 표를 득표하며 당선되어 도쿄 도정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1999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입후보 출마 당시 기자 회견 첫마디였던 "아마도 이시하라 유지로의 형일 겁니다"라는 유머러스한 인사가 화제가 되었다. 유력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166만 표를 득표해 당선되었고, 이후 4선까지 역임하며 도쿄도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3

[도쿄도지사 재선, 최고 득표율 기록]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08만 표를 득표하여 사상 최고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며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했습니다.

2003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08만 표(득표율 사상 최고)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며 도쿄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07

[도쿄도지사 3선 성공]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07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세 번째 당선에 성공하며 도정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

2009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 실패]

도쿄를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유치하려던 노력이 아쉽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009년 10월, 도쿄의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 추진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올림픽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2011

[도쿄도지사 4선 성공]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네 번째 당선되며 초유의 4선 도지사 시대를 열었습니다.

2011년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네 번째 당선에 성공하며 일본 역사상 최장수 광역단체장 중 한 명이 되었다.

2012

[센카쿠 열도 구입 의사 표명]

미국 방문 중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도쿄도가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12년 4월, 방미 중 센카쿠 열도를 도쿄도가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중국과의 영토 분쟁을 격화시키며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도쿄도지사 사임 및 신당 창당 표명]

도쿄도지사 직을 사임하고 신당 창당을 발표하며 다시 한번 일본 정치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2012년 10월 25일, 도쿄도지사 직에서 사임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그의 정치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태양당 창당 및 일어나라 일본과 합병]

태양당을 창당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라 일본'과 역합병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 했습니다.

2012년 11월, 신당 '태양당'을 창당했으며, 11월 13일 '일어나라 일본'과 역합병을 진행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자 했다.

[태양당과 일본유신회 합당]

태양당이 하시모토 도루가 이끄는 일본유신회와 합당하여 더 큰 보수 세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2012년 11월 17일, 이시하라가 이끌던 태양당이 하시모토 도루가 대표로 있던 일본유신회와 합당하여 '일본유신회'라는 거대 보수 정당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4

[일본유신회 이시하라파와 하시모토파 분당]

이시하라파와 하시모토파가 일본유신회를 분당하기로 결의하며 보수 정치권 내의 갈등이 표면화되었습니다.

2014년 6월 22일, 일본유신회가 이시하라파와 하시모토파로 분당하기로 결의되었다. 이는 당내 노선 갈등이 심화된 결과였다.

[차세대당 창당]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새로운 보수 정당인 '차세대당'을 창당하며 독자적인 정치 노선을 추구했습니다.

2014년 8월 1일, 일본유신회 분당 후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차세대당'을 창당했다. 이는 그의 마지막 정당 활동이 되었다.

2022

[이시하라 신타로 사망]

일본의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이시하라 신타로가 8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2022년 2월 1일, 일본의 저명한 작가이자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사망 전까지 일본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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