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협력 기구
이슬람 협력 기구(OIC)는 전 세계 이슬람 세계의 집단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고 국제 평화와 화합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정부 간 기구입니다. 1969년 예루살렘 알악사 모스크 방화 사건이라는 비극적 촉매제를 통해 24개국이 결성한 이래, 현재는 4개 대륙에 걸친 57개 회원국을 보유한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슬람 성지 보호에 집중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경제 개발, 인권, 과학 기술, 인도적 지원 등 광범위한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2011년 기구 명칭 변경과 헌장 개정을 통해 현대적인 국제 기구로서의 면모를 일신했으며, 오늘날에도 이슬람 문명권의 권익 보호와 글로벌 갈등 중재를 위한 핵심적인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표
1969
[알악사 모스크 방화 사건]
예루살렘의 성스러운 장소가 공격받자 이슬람 세계는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슬람권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하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분노와 위기감 속에서 지도자들은 역사적인 첫 만남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알악사 모스크에서 발생한 의도적인 방화 사건은 전 세계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Ummah)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분산되어 있던 이슬람 국가들이 종교적 성지를 보호하고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결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이슬람권 지도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였으며, 이는 기구 창설을 위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제1차 이슬람 정상회담]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이슬람권 지도자들이 모여 기구의 창설을 공식화했습니다. 24개국 정상들이 참여하여 이슬람 세계의 단결과 협력을 선언했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현대 이슬람 외교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최초의 정상회담은 이슬람 국가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정부 간 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자리였습니다.
정상들은 이슬람 가치의 보존과 회원국 간의 사회적,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 회의의 결과로 오늘날 이슬람 협력 기구의 전신인 '이슬람 회의 기구'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70
[제1차 외무장관 회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첫 번째 이슬람 외무장관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기구의 행정을 담당할 사무국을 제다에 설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직의 기틀을 잡기 위한 실무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다에서 열린 이 회의는 정상회담의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행정 절차를 수립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기구의 상설 사무국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두기로 확정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기구의 본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대 사무총장을 선출하기 위한 논의와 함께 기구의 예산 및 운영 원칙에 대한 초안이 작성되었습니다.
1972
[최초의 기구 헌장 채택]
기구의 목적과 운영 방식을 규정한 공식 헌장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헌장을 통해 기구는 법적 토대를 갖춘 국제 조직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슬람 국가 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가 명문화되었습니다.
제3차 이슬람 외무장관 회의에서 채택된 최초의 헌장은 기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중요한 문서였습니다.
헌장에는 회원국 간의 주권 존중, 불간섭 원칙, 영토 보존과 함께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지원이 명시되었습니다.
이로써 기구는 단순한 협의체를 넘어 국제법적 지위를 가진 정부 간 기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4
[제2차 이슬람 정상회담]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열린 회담에서 팔레스타인의 권리 회복을 강력히 천명했습니다. 방글라데시가 새로운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기구의 외연이 확장되었습니다. 무슬림 공동체의 정치적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라호르 정상회담은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이슬람 세계의 결속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팔레스타인 인민의 유일하고 정당한 대표로 인정하는 결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간의 화해를 중재하여 방글라데시가 정식 회원국으로 합류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75
[이슬람 개발은행 설립]
회원국들의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를 지원할 금융 기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슬람 율법에 부합하는 독자적인 경제 협력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가난한 회원국들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슬람 개발은행(IsDB)은 회원국 간의 경제적 자립과 상호 원조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의 산하 전문 기관입니다.
이 은행은 샤리아(이슬람법) 원칙에 따라 이자를 받지 않는 금융 거래 방식을 채택하여 전통적 금융과 차별화했습니다.
인프라 구축, 교육 환경 개선, 빈곤 퇴치 프로젝트를 통해 회원국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9
[이집트의 회원 자격 정지]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한 이집트의 자격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었습니다. 기구 내에서 공동의 입장을 저버린 국가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단행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기구 내부의 정치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자, 기구는 이를 이슬람 공동체의 결의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모로코 페즈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의를 통해 이집트의 회원 자격 정지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기구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얼마나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81
[제3차 이슬람 정상회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타이프에서 지도자들이 결집했습니다. 예루살렘 보호를 위한 '메카 선언'을 발표하며 결속력을 과시했습니다. 성지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단결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습니다.
이슬람의 가장 거룩한 도시인 메카에서 열린 이 회담은 기구의 종교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상징적 의미가 컸습니다.
정상들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을 규탄하며 국제 사회의 개입과 공정한 해결을 촉구하는 강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회원국 간의 과학 기술 협력과 경제 공동체 형성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들이 처음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었습니다.
1984
[제4차 이슬람 정상회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개최된 회담에서 이집트의 복귀가 승인되었습니다. 분열되었던 이슬람 세계의 통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에 맞춰 유연한 외교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카사블랑카 정상회담은 자격이 정지되었던 이집트를 다시 기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집트의 복귀는 기구 내 아랍권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이슬람 세계의 대동단결을 꾀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회의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종식을 촉구하는 중재 노력과 함께 아프리카 지역의 기근 문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방안도 다뤄졌습니다.
1987
[제5차 이슬람 정상회담]
쿠웨이트에서 열린 회담에서 이란-이라크 전쟁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역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 노력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한 평화적 해법이 모색되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 있던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이 회담은 같은 무슬림 국가 간의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정상들은 무조건적인 휴전을 촉구하며 이슬람 법에 기초한 분쟁 해결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습니다.
정치적 현안 외에도 이슬람 문화유산 보호와 교육 체계 현대화를 위한 문화 협력 기금 조성에 합의했습니다.
1990
[카이로 이슬람 인권 선언]
이슬람 율법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인권 지침이 발표되었습니다. 보편적 인권과 이슬람 가치의 조화를 도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국제 인권 담론에서 이슬람 세계의 시각을 공식적으로 정립했습니다.
카이로에서 열린 제19차 외무장관 회의에서 채택된 이 선언은 샤리아를 인권의 근본적인 기준으로 설정했습니다.
서구 중심의 인권 개념에 대응하여 가족 보호, 종교적 권리, 존엄성 유지 등 이슬람적 가치관을 명문화했습니다.
이 문서는 기구 회원국들 사이에서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참조되는 핵심적인 윤리적 지침이자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1991
[제6차 이슬람 정상회담]
세네갈 다카르에서 냉전 종식 이후의 새로운 국제 질서를 논의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신생 독립국들이 대거 참여하며 기구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기구의 생존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무슬림 국가들이 기구에 합류하면서 조직의 지정학적 지도가 크게 변화했습니다.
정상들은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안보 협력 체계 구축을 논의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부흥을 위한 특별 기금 설치를 의결하며 대륙 간 불균형 해소에 앞장섰습니다.
1994
[제7차 이슬람 정상회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기구 설립 25주년을 기념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등 무슬림이 박해받는 지역에 대한 지원을 결의했습니다. 국제적 갈등 지역에서의 무슬림 인권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기구 창설 4반세기를 맞이한 이 회의에서 정상들은 과거의 성과를 평가하고 미래 25년의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발칸 반도에서 벌어지던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 사회의 군사적 개입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이슬람 공포증(Islamophobia)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홍보 전략 수립을 공식화했습니다.
1997
[제1차 특별 정상회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독립 50주년을 맞아 특별 회담이 열렸습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발맞춘 정기적 외교의 중요성을 확인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정규 정상회담 외에 특정 현안이나 기념일을 위해 개최되는 첫 번째 특별 정상회담이었습니다.
정상들은 이슬람 세계의 과학 기술적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한 고등 교육 기관 설립에 합의했습니다.
이 회의는 기구가 긴급한 글로벌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특별 회의 체제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8차 이슬람 정상회담]
이란 테헤란에서 문명 간의 대화와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온건한 이슬람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서구 세계와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새로운 외교적 수사가 등장했습니다.
테헤란 회담은 이란의 국제적 고립을 해소하고 이슬람 세계 내에서의 화해를 도모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정상들은 테러리즘과 이슬람을 동일시하는 서구의 시각을 비판하며 진정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임을 강조했습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와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기구 내 특별 위원회 설치를 승인하는 진보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2000
[제9차 이슬람 정상회담]
카타르 도하에서 정보 통신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격차 해소를 논의했습니다. 21세기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지식 기반 산업 육성에 뜻을 모았습니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열린 이 회의는 이슬람 국가들이 정보화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무역 활성화를 위한 '이슬람 자유무역지대' 구상이 구체적으로 제안되었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인민의 저항인 인티파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성지 수호의 의지를 재차 확인했습니다.
2003
[제10차 이슬람 정상회담]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이슬람 세계의 현대화와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닥친 외부적 압박에 대한 공동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내부적인 혁신을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세계에 대한 국제적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열린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습니다.
정상들은 극단주의 세력의 폭력 행위를 강력히 비판하며 '이슬람의 온건한 중도성(Wasatiyyah)'을 회복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저명인사 그룹(EPG)을 구성하여 전면적인 조직 개편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습니다.
2005
[제3차 특별 정상회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기구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10개년 실행 계획을 채택했습니다. 이슬람 공포증에 대응하기 위한 홍보 기구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시간표를 마련했습니다.
이 회의는 기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개혁 조치들이 발표된 변곡점으로 평가받습니다.
향후 10년간 추진할 정치, 경제, 문화적 목표를 담은 'OIC-2015 실행 계획'이 승인되었습니다.
이 계획에는 회원국 간 무역 비중 확대, 빈곤 퇴치 기금 증액, 여성 인권 증진 등의 구체적 수치가 포함되었습니다.
2008
[제11차 이슬람 정상회담]
세네갈 다카르에서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담은 개정 헌장을 채택했습니다. 인권과 법치주의, 민주적 가치를 기구의 주요 원칙으로 포함시켰습니다. 현대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1972년 채택된 최초 헌장 이후 36년 만에 전면 개정된 새로운 헌장이 이 회의에서 승인되었습니다.
개정 헌장은 인권 존중, 좋은 통치(Good Governance), 환경 보호 등을 기구의 핵심 목표로 명시했습니다.
이로써 기구는 종교적 연대를 넘어 현대적인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정치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했습니다.
[새로운 기구 헌장의 발효]
다카르에서 승인된 새 헌장이 즉각 발효되며 기구 운영의 투명성이 강화되었습니다. 상설 인권 위원회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회원국 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이 보강되었습니다.
새로운 헌장의 발효는 이슬람 협력 기구가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적 국제 기구로 진화했음을 상징합니다.
특히 기구 내부에 독립적인 상설 인권 위원회를 두기로 한 결정은 국제 인권 단체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회원국들은 새 헌장에 따라 경제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테러리즘 대응에 적극 협조하기로 서약했습니다.
2011
[기구 명칭의 공식 변경]
기존의 '이슬람 회의 기구'에서 '이슬람 협력 기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로고를 발표했습니다. 단순히 모이는 곳이 아닌 실질적인 협력을 이끄는 곳임을 강조했습니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 조직의 역동성을 높였습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38차 외무장관 회의에서 기구의 명칭을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으로 변경했습니다.
기존의 명칭인 Conference가 일시적인 모임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수용하여 상시 협력을 뜻하는 Cooperation으로 수정했습니다.
로고 역시 지구를 배경으로 카바 신전을 형상화한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교체되어 글로벌 기구로서의 면모를 다졌습니다.
2012
[시리아의 회원 자격 정지]
시리아 내전 중 발생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리아의 자격을 정지했습니다. 회원국 내부의 유혈 사태에 대해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인권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기구 차원의 단호한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린 제4차 특별 정상회담에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폭력적인 탄압을 규탄하며 자격 정지를 의결했습니다.
이 결정은 이란 등 일부 국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기구가 회원국 내부의 심각한 인권 유린 사태에 대해 정치적, 종교적 연대를 넘어선 결단을 내린 사례로 기록됩니다.
2013
[제12차 이슬람 정상회담]
이집트 카이로에서 아랍의 봄 이후 변화한 역내 정세를 점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재확인했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 열풍과 안보 위기를 동시에 다루었습니다.
아랍의 봄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집트에서 개최된 이 회담은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정치적 역동성을 반영했습니다.
정상들은 말리, 시리아 등 분쟁 지역의 평화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중재안들을 논의했습니다.
또한 이슬람 공포증에 대응하기 위한 '관측소(Observatory)'의 기능을 강화하여 서구 사회와의 소통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2016
[제13차 이슬람 정상회담]
터키 이스탄불에서 테러리즘 근절과 지역 안정을 위한 협력을 다짐했습니다. 종파 간 갈등을 극복하고 단합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회원국 간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평화적 중재 노력이 강조되었습니다.
이 회의의 주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단결과 연대'로 설정되어 이슬람 세계의 내적 화합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정상들은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ISIS 등의 활동을 강하게 비판하며 테러 방지를 위한 군사적, 사상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청년 실업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OIC 2025 실행 프로그램'을 새롭게 승인했습니다.
2017
[예루살렘 관련 특별 정상회담]
미국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에 대응하여 터키 이스탄불에서 긴급 소집되었습니다.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선언하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국제 사회에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시금 촉구했습니다.
미국 행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승인하자, 기구는 이를 국제법 위반이자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습니다.
정상들은 동예루살렘을 점령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원한 수도로 인정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 사건은 기구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결집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8
[가자 지구 사태 특별 정상회담]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자 긴급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국제적인 진상 규명과 팔레스타인 보호를 위한 평화 유지군 파견을 제안했습니다. 희생된 무슬림 형제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 긴급 정상회의는 가자 지구 경계에서 벌어진 유혈 진압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소집되었습니다.
정상들은 이스라엘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국제 형사 재판소의 조사를 촉구했습니다.
또한 피해 가족들을 돕기 위한 긴급 구호 기금을 즉각 조성하여 현장에 전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9
[제14차 이슬람 정상회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기구 창설 5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변화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이슬람 국가들의 단결된 대응을 강조했습니다. 반세기 동안의 성과를 축하하며 새로운 50년의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기구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된 이 회담은 '미래를 위해 함께 결집하자'는 구호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슬람 국가들이 당면한 빈곤, 질병, 테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책임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로힝야 무슬림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박해받는 소수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법적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2021
[아프가니스탄 인도적 위기 회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심각한 굶주림과 위기를 돕기 위한 특별 회의가 열렸습니다. 인도주의적 신탁 기금을 설치하여 긴급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념을 넘어선 형제애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고립된 아프가니스탄 인민들을 돕기 위해 기구의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회의 결과 아프간 인도주의 신탁 기금이 설립되었으며, 이슬람 개발은행이 이를 관리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정치적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아프간 백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원조 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2023
[가자 지구 전쟁 특별 회의]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자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긴급 공개 회의를 가졌습니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인도적 구호 물품의 안전한 전달 경로 확보를 요구했습니다.
가자 지구의 인도적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기구는 회원국들의 일치된 목소리를 국제 사회에 전달했습니다.
정상들은 가자 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병원과 학교 등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24
[제15차 이슬람 정상회담]
감비아의 반줄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통한 단결과 연대'를 주제로 개최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발전과 이슬람 세계의 협력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글로벌 난제 해결을 위한 이슬람 국가들의 새로운 의지를 선포했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 개최된 이 회의는 기구가 아프리카 회원국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상들은 기후 변화 대응, 식량 안보 강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 추진에 합의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글로벌 현안들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입장을 정리한 '반줄 선언'을 채택하며 회담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