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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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바둑 기사, 프로 기사, 방송인, 보드게임 개발자 + 카테고리
이세돌은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 바둑 기사로, 세계 바둑계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승부사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프로에 입단하여 역대 최연소 입단 3위를 기록했으며, 압도적인 수읽기와 변칙적인 흔들기를 바탕으로 메이저 세계 대회 14회 우승을 포함해 통산 50회의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의 공식 대결에서 불굴의 투지로 1승을 거두며, 인공지능을 상대로 공식전에서 승리한 유일한 인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2019년 바둑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울산과학기술원 특임교수 활동, 방송 출연, 보드게임 개발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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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83

[전라남도 신안군 출생]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자 아마추어 5단이었던 아버지 이수오 씨의 지도를 받으며 5살 때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는 이미 아버지의 기력을 완전히 넘어설 정도로 비범한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1992

[서울 상경 및 도장 입문]

만 9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로 올라와 권갑용 도장의 내제자로 들어갔습니다.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바둑 교육을 받기 위해 고향 비금도를 떠나 상경했습니다. 이후 천재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차세대 유망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습니다.

1995

[프로 바둑 기사 입단]

12세 4개월의 나이로 한국기원 프로 기사로 정식 입단하였습니다.
친형 이상훈을 따라 어린 나이에 입단 관문을 뚫어내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는 조훈현, 이창호 등에 이어 한국 바둑 역사상 역대 최연소 입단 5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었습니다.

1998

[부친상]

자신에게 바둑을 처음 가르쳐준 스승이자 든든한 조력자였던 아버지가 암으로 별세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프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그에게 큰 충격과 슬픔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바둑에 더욱 매진하며 정상급 기사로 도약할 준비를 했습니다.

2000

[32연승 달성 및 불패소년 등극]

프로 무대에서 기량이 만개하며 파죽의 32연승을 달성하고,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32연승 기록은 김인 9단의 40연승에 이은 한국 바둑 역대 2위의 대기록입니다. 압도적인 성적을 인정받아 그해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하며 최고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2002

[제15회 후지쯔배 세계대회 우승]

3단의 신분으로 세계 대회인 제15회 후지쯔배 결승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메이저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1992년 이창호가 세웠던 최저단(5단) 세계 대회 제패 기록을 3단으로 새롭게 경신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유창혁 등을 차례로 꺾으며 세계 바둑계에 이세돌의 시대를 알리는 강렬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2003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결승 5번기에서 절대적인 일인자로 군림하던 대선배 이창호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국제 대회 결승에서 4년간 무패 행진을 벌이던 이창호를 상대로 쟁취한 승리였기에 바둑계의 충격은 매우 컸습니다. 이 승리를 기점으로 이창호의 독주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세돌을 필두로 한 소장파 기사들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한국기원 승단 규정 개정 및 9단 승단]

승단 대회 불참을 선언했던 이세돌의 행보를 계기로 한국기원의 승단 규칙이 대폭 개정되었으며, 이후 단 5개월 만에 9단으로 초고속 승단했습니다.
세계 대회를 우승하는 최정상급 기사임에도 승단 대회에 참여하지 않아 3단에 머물던 모순이 규정 개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세계 대회 우승 시 3단 승단 등의 새 규칙이 적용되어, 제7회 LG배, 제2회 KT배, 제16회 후지쯔배 성적을 합산해 순식간에 9단에 올랐습니다.

2006

[김현진 씨와 결혼]

동갑내기인 김현진 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결혼 이후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며 승부사로서 더욱 성숙하고 날카로운 기량을 뽐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딸 이혜림 양을 두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중국 갑조리그 파격 계약]

중국 바둑 리그에 용병으로 참가하며 '이기면 돈을 받고 지면 받지 않는' 파격적인 조건의 승부 수당 계약을 최초로 체결했습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계약이었으며, 이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다른 한국 기사들이 중국 리그에 진출할 때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승리 수당 계약을 맺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었습니다.

[딸 이혜림 출생]

결혼 후 첫 자녀인 딸 이혜림 양이 태어났습니다.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자주 드러낸 이세돌에게 딸의 탄생은 승부사 인생에 큰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방송과 매체에서도 아내와 딸을 향한 깊은 사랑을 여러 차례 표현한 바 있습니다.

2009

[프로기사회 갈등 및 휴직계 제출]

기보 저작권 및 대국료 공제 문제 등으로 한국기원 및 프로기사회와 극심한 마찰을 빚은 끝에 18개월간의 휴직계를 냈습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세계 바둑계를 호령하던 1인자의 갑작스러운 휴직 선언은 바둑계 안팎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국바둑리그 불참 선언과 이에 따른 징계성 결의가 휴직이라는 초강수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010

[복직 직후 24연승 돌풍]

휴직 사태를 마치고 바둑계에 복귀하자마자 억눌렸던 기량을 폭발시키며 파죽의 24연승을 달렸습니다.
휴직 기간 동안 잃어버렸던 실전 감각에 대한 우려를 완벽하게 불식시키는 압도적인 성적이었습니다. 그의 호전적이고 변칙적인 수읽기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음을 입증하며 황제의 귀환을 알렸습니다.

[제2회 BC카드배 세계대회 우승]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 9단을 3대 0으로 완파하며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특히 16강전에서 당시 중국 랭킹 1위였던 쿵제 9단을 상대로 초반 대마가 잡혀 85집을 잃고도 믿기 힘든 대역전승을 거두는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천재적인 흔들기와 승부 호흡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우승이었습니다.

[한국기원 전격 복직]

휴직 6개월 만에 한국기원이 내건 기사회 내규 준수, 기보 저작권 위임 등의 조건을 수락하며 복직에 합의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기원을 직접 방문하여 관련 문서에 자필 서명함으로써 앙금을 털어내고 반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팬들의 열렬한 복귀 여론에 부응하여 다시 큐를 잡은 이세돌의 행보에 엄청난 이목이 쏠렸습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국가대표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이겨내고 한국 팀이 바둑 전 종목을 석권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개인적인 명예를 넘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인 매우 영광스럽고 뜻깊은 대회였습니다.

2011

[제3회 BC카드배 우승]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중국의 구리 9단을 결승에서 만나 3승 2패의 땀 쥐는 신승을 거두며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구리 9단과의 라이벌 매치는 언제나 바둑계의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이 결승전 역시 수많은 명장면을 남겼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사수하며 2010년대 초반 세계 바둑계 1인자의 위용을 어김없이 과시했습니다.

2012

[삼성화재배 우승]

결승 3번기에서 또다시 구리 9단을 만나 1국 반집승, 2국 불계패, 3국 반집승이라는 초유의 결과로 2승 1패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도합 한 집(반집+반집) 차이로 우승컵의 향방이 갈리는 영화 같은 드라마가 펼쳐지며 바둑 팬들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통산 4번째 삼성화재배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구리 9단과의 전적 격차도 좁혔습니다.

2013

[영재 정상 바둑대결 승리]

합천군이 초청한 특별 대국에서 차세대 유망주였던 신진서 초단(당시)을 상대로 선배 기사 중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신진서가 대선배 이창호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킨 대회였으나, 이세돌은 철저한 수읽기로 반집승을 이끌어내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바둑을 후배를 위해 일부러 미세한 반집 승부로 이끌었다는 비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2014

[이세돌-구리 10번기 최종 승리]

중국의 최대 라이벌 구리 9단과 역사적인 10번기를 펼쳐 최종 전적 6승 2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승 상금 500만 위안(약 8억 4천만 원)이 걸린 이 세기의 대결은 1월부터 시작되어 매달 1국씩 치러지는 피 말리는 장기전이었습니다. 10번기에서의 완승을 통해 동갑내기 숙적 구리와의 대결에서 최종 승자임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2016

[제43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우승]

국내 최고 권위의 기전 중 하나인 명인전 결승에서 후배 박정환 9단을 3승 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박정환 9단과 KBS바둑왕전, 명인전을 연달아 치르는 일명 '8번기'를 벌였고, 명인전에서 승리하며 통산 4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알파고와의 대결을 앞두고 국내 기전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준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알파고 대국 제1국 패배]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의 챌린지 매치 제1국에서 186수 만에 불계패를 당했습니다.
많은 바둑계 인사들이 이세돌의 완승을 예상했으나, 비약적으로 발전한 인공지능의 실력에 전 세계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바둑의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인류 지능에 대한 거대한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알파고 대국 제2국 패배]

연이어 벌어진 알파고와의 제2국에서도 고전 끝에 불계패를 당하며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알파고가 두는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수법들에 해설진조차 당황했지만, 대국을 진행하며 알파고의 기풍을 맹렬히 분석하려는 이세돌의 눈빛이 빛났습니다. 인공지능의 냉혹한 계산력을 다시 한번 절감한 힘겨운 대국이었습니다.

[알파고 대국 제3국 패배]

제3국에서 초읽기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결국 176수 만에 불계패를 당하며 매치 최종 스코어에서 패배가 확정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을 상대로 인간계 최강자가 3연패를 당하며 많은 이들이 허무함과 비관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승패가 확정되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은 대국에 임하려는 이세돌의 숭고한 투혼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알파고 대국 제4국 승리 (78수 묘수)]

인류의 자존심을 걸고 임한 제4국에서 불리한 형세를 뒤집고 알파고를 상대로 역사적인 불계승을 거두었습니다.
대국 중반 이세돌이 날린 변칙적인 '신의 한 수(78수)'에 알파고가 치명적인 버그와 실수를 연발하며 결국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현역 프로 기사가 세계 최상급 바둑 인공지능을 상대로 거둔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승리로 기록되며 전 세계에 엄청난 감동을 안겼습니다.

[알파고 대국 제5국 패배]

마지막 제5국에서 흑을 잡고 분전했으나 아쉽게 불계패하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1승 4패로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최종 매치 결과는 패배였으나, 이세돌은 이 대국을 통해 바둑의 진정한 즐거움을 다시 깨달았다고 회회했습니다. 알파고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류의 위대한 도전 정신을 보여준 일련의 과정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프로기사회 탈퇴]

기사회의 획일적이고 불합리한 제 규정과 기금 공제 방식에 반발하여 친형 이상훈 9단과 함께 한국프로기사회를 공식 탈퇴했습니다.
최상위권 기사에게만 과도하게 부여되는 불공정한 기금 납부 의무 등에 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내린 초강수였습니다. 이후에도 한국기원 소속 프로 기사로서의 신분은 유지하며 활동했으나 협회와의 법적, 행정적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제35기 KBS 바둑왕전 우승]

결승전에서 나현 7단을 종합전적 2-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며 2016년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1국에서 175수 끝 흑 불계승, 2국에서 274수 끝 백 1집반승을 거두며 완벽한 경기력을 뽐냈습니다.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 이후에도 여전히 국내 최강자로서의 폼을 유지하고 있음을 널리 입증한 대회였습니다.

2017

[안희정 캠프 국민 후원회장 위촉]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첫 국민 후원회장 직을 수락하며 정치적 행보에 참여했습니다.
자신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히며, 경선 결과에 따라 문재인 후보가 선출되자 그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TV 찬조 연설자로도 나서며 바둑계를 넘어선 폭넓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8

[세계바둑명인전 우승]

중국 윈난성에서 열린 제5회 동준약업배 세계바둑명인전 결승에서 중국의 롄샤오 9단에게 대역전 불계승을 거두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조차 이세돌의 승률을 15.7%로 예측할 만큼 절망적인 형세였으나, 163수째 승부수를 던지며 판세를 완전히 뒤집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한·중·일 명인전 타이틀 홀더들이 맞붙은 왕중왕전에서 이세돌 특유의 매서운 흔들기가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해비치 커제 특별대국 승리]

제주 해비치 호텔에서 개최된 중국 최강자 커제와의 맞대결에서 293수 만에 극적인 1집 반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중반까지 팽팽하던 흐름 속에서 117수의 실수로 패색이 짙어졌으나, 특유의 야금야금 조여가는 흔들기로 기어이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양 선수가 인공지능과 바둑에 대한 소회를 나누며 훈훈하게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12회 춘란배 24강 탈락]

춘란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24강전에서 객관적 전력이 한참 아래로 평가받던 일본의 모토키 가쓰야에게 대마를 잡히며 패배했습니다.
연초에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선전하던 상황에서 발생한 뼈아픈 일격으로, 국내 바둑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승률과 랭킹 포인트가 점차 하락하며 30대 중반 승부사로서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JTBC배 우승]

국내 속기전인 JTBC배 결승에서 허영호 9단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의 부진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국내 토너먼트에서만큼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정상권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우승은 그의 막바지 전성기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값진 타이틀로 기록되었습니다.

[GS칼텍스배 준우승]

제23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결승에서 무섭게 떠오르던 후배 신진서 9단과 명승부를 펼친 끝에 2승 3패로 석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젊은 피 신진서를 상대로 노장의 날카로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나, 아쉽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랭킹이 하락하며 본격적인 세대교체의 흐름을 담담히 수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로 통산 1,300승 대기록 달성]

천부배 세계바둑선수권 대표 선발전에서 이영구 9단을 꺾으며 프로 데뷔 이후 통산 1,300번째 승리를 거두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조훈현(1949승), 이창호(1749승), 서봉수(1653승) 등 전설적인 선배 기사들에 이어 한국 바둑 역사상 네 번째로 달성된 대기록입니다. 수십 년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반상을 지켜온 그의 성실함과 위대함을 수치로 증명한 뜻깊은 성과입니다.

2019

[한국기원 상대 민사소송 제기]

기사회 탈퇴 이후에도 한국기원이 부당하게 공제해 간 상금의 반환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법정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손수호 변호사를 선임하여 2016년 기사회 탈퇴 이후 3년간 원천 징수된 3,200만 원에 대한 반환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 소송은 바둑계 내부의 구조적 모순과 상금 배분 시스템의 투명성에 대한 굵직한 화두를 사회적으로 던졌습니다.

[프로 바둑 기사 공식 은퇴 선언]

한국기원에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며 24년 4개월에 걸친 길고 찬란했던 프로 바둑 기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은퇴의 결정적인 이유로 인공지능(AI)의 등장에 따른 깊은 좌절감을 꼽으며 '더 이상 내가 최고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덤덤히 심경을 밝혔습니다. 팬들은 반상을 호령하던 마왕의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퇴장에 큰 아쉬움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AI 한돌과 은퇴 대국 제2국 패배]

1국의 승리로 핸디캡 없이 동등한 조건(호선)으로 치러진 제2국에서는 한돌의 완벽한 계산력을 넘지 못하고 불계패했습니다.
치수 없이 맞붙은 인공지능과의 정면 승부에서 초반부터 밀리며 결국 인공지능 기술의 진보를 다시 한번 체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돌을 쥐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AI 한돌과 은퇴 대국 제3국 패배 및 고별]

자신의 고향인 신안군에서 열린 한돌과의 최종 3국에서 다시 2점 치수를 받고 분투했으나 결국 돌을 거두며 프로 인생의 마지막 대국을 마쳤습니다.
유리한 형세를 구축하기도 했으나 후반 끝내기에서 인공지능의 오차 없는 방어벽을 뚫어내지 못하고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이 대국을 끝으로 이세돌은 파란만장했던 승부의 세계를 영원히 떠나며 한 시대를 온전히 마무리했습니다.

[AI 한돌과 은퇴 대국 제1국 승리]

NHN이 개발한 국산 바둑 인공지능 '한돌'을 상대로 한 은퇴 기념 3번기 제1국에서 2점의 치수(핸디캡)를 받고 통쾌한 불계승을 거두었습니다.
경기 전에는 인공지능의 우세가 강하게 점쳐졌으나, 알파고와의 4국을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승부수로 한돌의 치명적인 오류를 유도해 냈습니다. 은퇴를 앞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죽지 않은 승부사의 날 선 감각을 전 국민 앞에서 멋지게 증명했습니다.

2020

[SBS '집사부일체' 출연]

은퇴 이후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SBS '집사부일체'에 일일 사부로 흔쾌히 출연하여 대중과 반갑게 소통했습니다.
치열했던 승부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결 여유롭고 유쾌한 입담을 선보여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알파고와의 잊지 못할 대국 비하인드 스토리와 은퇴 후의 소박한 심경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큰 공감을 샀습니다.

2021

[박영선 서울시장 예비후보 공개 지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 경선 과정에서 녹화 영상을 통해 박영선 예비후보를 향한 강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정치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지만 오랜 인연과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박 후보의 능력을 믿는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습니다. 이는 은퇴 이후에도 사회 각계의 중요한 흐름에 목소리를 내는 그의 열린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2023

[보드게임 작가 전격 데뷔]

자신의 뛰어난 전략적 두뇌를 활용하여 '그레이트 킹덤', '킹스 크라운', '나인 나이츠' 등의 위즈스톤 시리즈를 개발해 보드게임 작가로 변신했습니다.
바둑판 위에서 펼치던 고도의 수싸움과 전략적 감각을 일반인들도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룰의 보드게임으로 치밀하게 녹여냈습니다. 은퇴 후 멈추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며 다양한 채널에서 자신이 만든 게임을 직접 시연하고 홍보하며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2025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 시즌2' 참가]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의 인기 두뇌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데블스 플랜: 데스룸'에 핵심 플레이어로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바둑으로 단련된 극한의 수읽기와 철인 같은 멘탈을 십분 발휘하여 다른 참가자들과 숨 막히는 심리전과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쳤습니다. 방송 내내 엄청난 예능감과 예리한 통찰력을 동시에 발산하며 대중들에게 또 다른 매력적인 천재의 모습을 톡톡히 보여주었습니다.

2026

[제30회 LG배 결승 현장 방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치러진 LG배 결승 3번기 최종국 현장에 깜짝 방문하여 자신의 제자인 신민준 9단의 우승을 뜨겁게 응원했습니다.
오랜만에 바둑계 공식 석상에 반가운 얼굴을 드러내어 대국 후 진행된 복기에도 진지하게 참여하는 등 깊은 애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직접 키운 제자가 세계 대회 정상에 우뚝 서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며 선배이자 스승으로서의 든든하고 따뜻한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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