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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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기업인 + 카테고리

이브 생로랑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21세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어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하며 여성복에 남성복의 요소를 과감히 도입, 르 스모킹과 사파리 재킷 같은 혁신적인 스타일을 창조하며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또한 오트 쿠튀르와 함께 고급 기성복인 '리브 고쉬'를 선보여 대중에게 패션을 더 가깝게 만들었으며, 예술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대를 앞서가는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모던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미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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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36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출생]

프랑스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이브 앙리 도나 마티외생로랑이다.

이브 앙리 도나 마티외생로랑은 1936년 8월 1일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된다.

1952

[국제양모사무국 디자인 콘테스트 1위]

이브 생로랑이 국제양모사무국 디자인 콘테스트 드레스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패션계에 재능을 알렸다.

파리 의상 조합 학교에 잠깐 다닌 뒤, 이브 생로랑은 1952년 국제양모사무국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드레스 부문 1위를 수상하며 그의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1953

[크리스티앙 디오르 입사]

이브 생로랑은 프랑스 패션의 거장 크리스티앙 디오르에 입사하여 그의 패션 경력을 시작했다.

1953년 이브 생로랑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에 입사하여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인 1955년 보그 프랑스 편집장의 소개로 디오르의 어시스턴트가 되었다.

1957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임명]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당시 21세의 이브 생로랑이 그의 후임으로 디오르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195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사망하자, 이브 생로랑은 21살의 어린 나이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는 그의 패션 경력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58

[첫 번째 컬렉션 '트라페즈' 대성공]

이브 생로랑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첫 번째 컬렉션인 '트라페즈'를 선보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1958년 1월, 이브 생로랑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로 첫 번째 컬렉션 '트라페즈'를 발표했다. 이 컬렉션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젊은 디자이너의 능력을 입증했다.

1960

[디오르에서 해고, 징병]

프랑스 군 병원에 징병된 이브 생로랑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회사에서 면직당하며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마르크 보앙에게 넘겨주었다.

1960년 이브 생로랑은 프랑스 파리의 발 드 그라스 군병원에 징병되어 회사로부터 면직당했다. 그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마르크 보앙으로 교체되었다. 이 사건은 그가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하는 계기가 된다.

1961

[이브 생로랑 하우스 설립]

이브 생로랑은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만의 의상실인 '이브 생로랑 하우스'를 설립하며 독자적인 패션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브 생로랑은 디오르에서 만난 회사 동료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만의 의상실인 '이브 생로랑 하우스'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미국의 기업가 J.맥 로빈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1961년 회사를 설립하고 그래픽 디자이너 카상드르를 고용해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다.

1962

[흑인 모델을 런웨이에 세운 최초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은 피델리아를 시작으로 흑인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운 최초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되었으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를 앞서갔다.

1962년 이브 생로랑은 피델리아를 런웨이에 세우며 흑인 모델들을 처음으로 기용한 디자이너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이후 카투샤 니안, 팻 클리브랜드, 레베가 아요코, 이만 압둘마지드 등 다양한 아시아 및 아프리카 출신의 모델들이 그의 무대에 올랐다.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 발표]

이브 생로랑 하우스의 첫 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파리 스폰티니 거리에서 공개되며 현대적인 여성복의 새 시대를 열었다.

1962년 1월 29일, 이브 생로랑은 파리 스폰티니 거리 2번지에서 자신만의 이름으로 된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곳에서 그는 12년 동안 현대적인 여성 옷을 디자인하며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6

[여성용 턱시도 '르 스모킹' 발표]

이브 생로랑은 남성복의 상징인 턱시도를 여성용으로 재해석한 '르 스모킹'을 발표하며 여성 패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66년, 이브 생로랑은 여성을 위한 턱시도인 '르 스모킹'을 창시했다. 그는 남성복의 코드를 여성 패션에 도입하여 여성들에게 자신감, 과감함, 그리고 힘을 부여하고자 했으며, 이는 여성 패션의 역사에 길이 남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고급 기성복 부티크 '리브 고쉬' 오픈]

부유한 고객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이 오트 쿠튀르를 입기를 바랐던 그는 파리에 유명 여성복 디자이너가 만든 최초의 기성복 부티크 'Saint Lauren rive gauche'를 열었다.

1966년 이브 생로랑은 파리에 유명 여성복 디자이너가 만든 최초의 기성복 부티크인 'Saint Lauren rive gauche'를 열었다. 이는 모든 여성들이 고급 패션을 접할 수 있게 하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며, 기성복 컬렉션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브랜드는 1968년 뉴욕, 1969년 런던으로 확장되었고, 같은 해 첫 남성 부티크도 개점했다.

1980

[마조렐 정원 매입 및 공개]

이브 생로랑은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마조렐 정원을 매입하고 대중에게 개방하여 문화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

1966년 모로코를 처음 발견한 이후 그곳에서 큰 영감을 받던 이브 생로랑은 1980년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프랑스인 쟈크 마조렐이 설립한 마라케시의 마조렐 정원을 매입했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식물원을 대중들에게 개방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198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초의 생존 디자이너 회고전]

이브 생로랑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살아있는 디자이너로서 최초로 자신의 회고전을 개최하는 영예를 안았다.

1983년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제안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브 생로랑의 회고전이 열렸다. 이는 해당 미술관에서 살아있는 디자이너의 전시회를 개최한 최초의 사례로, 이브 생로랑의 세계적인 위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베이징, 모스크바, 시드니, 도쿄, 파리 등 전 세계에서 전시회가 이어졌다.

1985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이브 생로랑이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1985년 이브 생로랑은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했다. 이는 그의 패션계에 대한 기여와 예술적 업적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02

[패션계 은퇴 선언]

이브 생로랑이 언론 기자회견에서 패션계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40년간의 화려한 디자이너 생활을 마무리했다.

2002년 7월 1일, 이브 생로랑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패션계에 몸담으며 수많은 혁신을 이끌어왔으며, 그의 은퇴는 패션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퐁피두 센터 회고전 개최]

은퇴 발표 후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300명이 넘는 모델들과 함께 40년간의 업적을 회고하는 대규모 패션쇼가 열렸다.

2002년 7월 22일,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300명이 넘는 모델들이 참여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브 생로랑은 40년 넘게 이어온 그의 패션 여정과 업적을 되돌아보았으며, 그의 마지막 S/S 컬렉션을 선보였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 창설]

이브 생로랑의 업적을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이 창설되었다.

2002년 12월 5일,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이 창설되었다. 재단은 이브 생로랑의 5천여 벌의 오트 쿠튀르 의상과 15만여 개의 장신구, 스케치 등을 보존하며, 패션, 그림, 사진, 장식 예술 등 다양한 테마의 전시회 개최 및 교육적, 문화적 활동 지원을 목표로 한다.

2008

[파리에서 뇌종양으로 사망]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이브 생로랑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8년 6월 1일, 이브 생로랑은 자신의 저택인 파리 바빌론가 55번지에서 뇌종양으로 7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어머니, 카트린 드뇌브,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부, 장 폴 고티에, 발렌티노 가라바니 등 수많은 정치, 연예계, 패션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그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2009

[소장품 경매, 3억 7천 5백만 유로 기록]

피에르 베르제와 이브 생로랑이 수집한 733점의 걸작 소장품이 경매에 부쳐져 총 3억 7천 5백만 유로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2009년 2월, 크리스티스와 피에르 베르제 연합 주관으로 그랑 팔레 홀에서 피에르 베르제와 이브 생로랑이 평생 수집한 733점의 걸작 소장품 경매가 열렸다. 피카소, 마티스, 피트 몬드리안, 페르낭 레제 등의 그림과 고대 이집트 조각 등 다양한 예술품이 포함되었으며, 총 3억 7천 5백만 유로의 수익금은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과 에이즈 연구에 기부되었다.

2017

[이브 생로랑 미술관 개관]

이브 생로랑의 유산을 기리고 전시하는 두 개의 전용 미술관이 마라케시와 파리에서 동시에 개관했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로랑 재단은 이브 생로랑 전용 미술관 두 곳을 건립했다. 하나는 그가 영감을 얻었던 모로코 마라케시에, 다른 하나는 그의 패션 하우스가 있던 프랑스 파리에 위치하며, 두 미술관 모두 2017년에 문을 열어 그의 예술 세계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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