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식 (조선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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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관료, 조선귀족 남작, 친일반민족행위자 + 카테고리
이강식은 조선귀족 남작 이기원의 장남으로, 부친의 뒤를 이어 작위를 습작하고 일제 식민 통치에 협력한 인물입니다.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실무 관료로 활동하였으며, 중일전쟁 시기에는 국방헌금을 헌납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보를 보였습니다. 3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나, 그의 행적은 사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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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09

[이강식 출생]

경성부 장사정에서 조선귀족 남작 이기원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조부는 남작 이봉의입니다.
명문 친일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본관은 전주이며, 훗날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관료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33

[경성부 서기 임용]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부 서기(주임대우)로 임용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식민지 행정의 중심인 경성부에서 실무 관리로 근무하며 일제 행정 시스템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는 귀족 신분에 안주하지 않고 실무 관료로서의 경력을 쌓았음을 보여줍니다.

1937

[남작 작위 수작]

부친 이기원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남작 작위를 승계받았습니다. 이로써 3대에 걸친 조선귀족 작위 세습이 이루어졌습니다.
부친 이기원은 1937년 6월 9일 사망하였으며, 이강식은 그 직후인 1937년 6월에서 9월 사이에 작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이로써 그는 조선귀족령에 따른 특권과 지위를 공식적으로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국방헌금 헌납]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종로경찰서에 금비녀와 현금을 국방헌금으로 헌납하며 일본군의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금비녀 1개와 현금 20원을 헌납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돕는 명백한 친일 행위로 기록되었습니다.

1939

[정5위 서위]

일본 정부로부터 정5위(正五位)의 품계에 서위되었습니다. 이는 조선귀족으로서의 위상과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높은 품계인 정5위를 받은 것은 그가 식민 지배 체제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망하기 약 10개월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강식 사망]

향년 30세를 일기로 요절하였습니다. 그의 작위는 아들 이홍재가 다시 습작하였습니다.
그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남작 작위는 이기원-이강식-이홍재로 이어지는 3대 습작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적극적인 친일 활동으로 인해 훗날 역사의 단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2009

2009.11 사후 70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재]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습작과 국방헌금 헌납 등의 행적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었습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어 그의 행적은 공식적으로 단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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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식 (조선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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