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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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 + 카테고리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를 시로 저항한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 옥중에서 27세 젊은 나이로 비극적 죽음을 맞았으며 사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어 큰 울림을 주었다. 탄압 속에서도 자아성찰과 민족의식을 담아낸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사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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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17

[시인의 탄생과 민족 정신의 뿌리]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은 '동방을 밝히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당시 북간도에서 가장 큰 한인촌으로, 그의 가족은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하는 환경 속에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1925

[문학의 씨앗을 싹 틔우다]

명동소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고종사촌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하며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선보였다.

1935

[첫 시 발표와 학업의 고난]

평양 숭실중학교 학우지 '숭실활천'에 시 '공상(空想)'을 발표하며 공식적인 첫 작품을 세상에 내보였다.

숭실중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면서, 윤동주는 친구 문익환과 함께 용정의 광명중학교로 편입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938

[연희전문학교 입학과 학문적 성장]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학문적 깊이를 더해갔다.

언어학자 최현배 선생이 한국어 과목에 만점을 줄 정도로 학업에 뛰어났고, 다양한 언어를 익히며 폭넓은 지식을 쌓았다.

1939

[첫 원고료, 문인의 길을 걷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과 시를 발표하고, 그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게재하며 첫 원고료를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1941

[고통스러운 창씨개명과 '참회록']

일본 유학을 위해 집안의 성씨를 '히라누마(平沼)'로 창씨개명해야 했다.

그는 이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비애를 느꼈고, 닷새 후 이러한 참담한 심정을 담아 시 '참회록'을 썼다.

그의 창씨개명은 본인의 의사가 아닌, 일제 탄압과 유학 수속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이 알려져 있다.

[미완의 첫 시집, 정병욱에게 맡겨지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틈틈이 썼던 시 19편을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걱정하는 주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대신 이 소중한 원고를 후배 정병욱에게 맡겼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속에서도 이 시집 원고를 항아리에 담아 집안에 보관하며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냈고, 이는 훗날 윤동주 시집이 출간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2

[일본 유학과 배움의 열정]

일본 도쿄 릿쿄 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그해 10월 자신이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이 다닌 교토 도시샤 대학교 영문학과로 편입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1943

[일제에 체포되다]

귀향길에 오르기 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그는 이미 일본 경찰의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감시 대상이었다.

1944

[독립을 향한 열망, 옥중 투쟁으로 이어지다]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판결문에는 그가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1945

[민족 시인의 비극적인 최후]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옥중에서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았으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망 전보가 고향집에 도착한 후에도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사망 시 시체 해부용 제공'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10일이나 늦게 배달되어 가족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1948

1948.2 사후 3년

[영원히 기억될 시집의 탄생]

윤동주 3주기 추도식에 맞춰 그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이 임시 발간되었고, 같은 해 3월 정식으로 출간되어 그의 생전 소망을 마침내 이루어주었다.

1968

1968.11.2 사후 23년

[연세대학교에 윤동주 시비 건립]

연세대학교에 윤동주의 유작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가 건립되어 그의 시정신을 기리게 되었다.

그의 모교였던 연희전문학교의 후신인 연세대학교에서 그의 문학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1985

[윤동주문학상 제정]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 의해 제정되어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며 그의 문학적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1986

[세대를 초월한 사랑, 가장 사랑받는 시인으로 선정]

그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며 시대를 초월한 영향력을 입증했다.

그의 시가 젊은 세대에게도 깊은 공감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적인 사실이다.

1990

1990.8.15 사후 45년

[대한민국 정부,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는 1962년 유족들이 사양했던 서훈이 늦게나마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1992

1992.9 사후 47년

[모교 용정 중학교에 시비 건립]

그의 모교인 용정 중학교에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

이는 그의 고향과 학창 시절을 기리는 중요한 기념물이 되었다.

1995

1995.2.15 사후 50년

[일본 도시샤 대학에 시비 건립]

일본 도시샤 대학에도 윤동주의 친필 '서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

이는 그의 문학이 일본에서도 인정받고 기려지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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