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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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세계바둑 역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불세출의 프로 기사입니다. 화려하고 장쾌한 전투 바둑으로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자 '일지매'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 반상을 호령했습니다. 개인사의 뼈아픈 비극과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음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국가대표팀 감독과 한국기원 사무총장 등 굵직한 행정가로 변신해 한국 바둑의 부흥에 헌신했습니다. 환갑을 앞둔 최근까지도 시니어 무대의 패권을 쥐고 젊은 후배들과 숨 막히는 초속기 대결을 펼치며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영원한 낭만 승부사입니다.
연표
1966
[대한민국 서울에서 출생]
훗날 세계 바둑계를 대표할 전설적인 공격수 유창혁이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납니다. 바둑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길 천재의 첫걸음이 시작된 해입니다.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두각을 나타내며 빠르게 승부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히 빠르고 정확한 수읽기와 천재적인 기재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한국 바둑의 미래를 책임질 특급 유망주로 큰 기대를 모으게 됩니다.
1979
[어린이 국수전 3연패 제패]
불과 10대의 어린 나이에 전국 최강을 가리는 어린이 국수전을 3년 연속 제패하며 '천재 소년'의 무서운 등장을 만천하에 알립니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학생 바둑계를 완전히 평정했습니다.이해 학초배 우승을 포함해 당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어린이 국수전에서 3연패의 대위업을 달성합니다. 이는 훗날 냉혹한 프로 무대에서 보여줄 폭발적인 공격력과 천재성의 화려하고도 짜릿한 예고편이었습니다.
1983
[최연소 아마국수 등극]
아마추어 바둑 최고의 영예이자 실력의 상징인 '아마국수' 타이틀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거머쥡니다. 당시 자타공인 최강자였던 임동균을 꺾고 이룬 쾌거로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아마추어 무대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음을 확실하게 증명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성인 고수들이 즐비한 무대에서 10대 소년이 정상에 오르며, 프로 입단 전부터 이미 완성형 기사라는 극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1984
[세계아마바둑 선수권 준우승]
대한민국을 대표해 출전한 세계아마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세계의 강호들과 치열하게 겨뤄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미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당시 한국 바둑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뜻깊은 국제적 성과였으며, 세계 각국의 최고수들과 부딪히며 귀중한 실전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이 값진 경험은 훗날 그가 세계 메이저 대회를 휩쓰는 아주 든든한 밑거름이 됩니다.
[프로 바둑 기사 공식 입단]
바둑계의 엄청난 기대와 스포트라이트 속에 마침내 바늘구멍 같은 입단대회를 통과하며 프로 1단으로 정식 데뷔합니다. 진정한 프로 승부사로서의 기나긴 영광의 여정이 본격적인 닻을 올립니다.거침없는 기세로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디딘 그는 데뷔 직후부터 선배 기사들을 매섭게 위협하며 반상에 거대한 신풍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바둑의 지형도를 완전히 뒤바꿀 '일지매' 유창혁 시대의 장엄하고 화려한 서막이 올랐습니다.
1986
[제2기 신인왕전 우승]
프로 데뷔 불과 2년 만에 기라성 같은 동기들을 제치고 신인왕전에서 통쾌한 우승을 차지합니다. 자신이 차세대 선두 주자임을 오직 바둑판 위의 실력만으로 완벽하게 입증합니다.프로 무대의 높고 험난한 벽을 뚫고 생애 첫 공식 기전 타이틀을 획득한 감격적이고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동갑내기 이창호 등과 함께 한국 바둑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이끄는 핵심 주역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1988
[제6기 대왕전 우승]
기존의 노련한 최강자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대왕전 우승컵을 높이 들어 올립니다. 이제 촉망받는 신예를 훌쩍 넘어 당당하고 파괴적인 정상급 기사로 완벽히 발돋움합니다.조훈현, 서봉수 등 당대 최고의 절대 강자들이 철옹성처럼 군림하던 시기에 그들의 아성을 깨부수고 쟁취한 대단히 값진 우승이었습니다. 유창혁 특유의 화려하고 매서운 공격 바둑이 본격적으로 만개하며 팬들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1990
[제2기 기성전 우승]
프로 4단으로 승단한 이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주요 기전인 기성전에서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바둑계의 중심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힙니다.조훈현과 이창호가 철저히 양분하던 타이틀 판도에 유창혁이 강력하고 무서운 도전자로 본격 뛰어들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최고의 공격수'라는 별명에 걸맞은 호쾌한 대국 내용으로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1992
[제27기 왕위전 우승]
한국 바둑의 가장 뼈대 있는 핵심 타이틀 중 하나인 왕위전을 제패하며 명실상부한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엽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무려 왕위전 4연패라는 무시무시한 대기록을 작성하게 됩니다.같은 해 치러진 SBS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도 한국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1992년을 온전한 자신의 해로 장식했습니다.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절대 통할 수 있는 압도적인 기량을 완벽하게 증명한 눈부신 한 해였습니다.
1993
[제6회 후지쓰배 제패 (첫 세계 우승)]
메이저 세계대회인 후지쓰배에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하며 마침내 세계 최정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섭니다. 유창혁의 이름이 세계 바둑 역사에 굵직하게 새겨진 역사적인 첫 순간입니다.결승에서 당대 최고의 고수들을 통쾌하게 꺾고 들어 올린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였습니다. 같은 해 국가대항전인 진로배에서도 한국 대표로 맹활약하며 우승을 이끌었고, 그 빛나는 공로를 인정받아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을 휩쓰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1994
[천원전 및 왕위전 3연패]
국내 주요 기전인 천원전을 우승하고 왕위전 3연패를 여유롭게 달성하며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최강자의 면모를 무섭게 과시합니다.후지쓰배 준우승 등 세계 대회에서도 쉴 새 없이 꾸준히 성적을 내며 최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수읽기와 거침없는 전투력으로 국내외 기전에서 상대들이 가장 마주치기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습니다.
1996
[프로 9단 특별 승단]
탁월한 성적과 한국 바둑의 세계적 위상 제고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기존 7단에서 9단으로 단숨에 뛰어오르는 극히 이례적인 특별 승단을 전격적으로 하게 됩니다.바둑 기사에게 있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입신(入神·9단의 별칭)'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1984년 입단 후 12년 만에 이룬 초고속 쾌거로, 그의 압도적인 기량과 위상을 한국기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뜻깊은 사건입니다.
[제3회 응씨배 세계대회 우승]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4년 주기의 최대 상금 권위 대회 응씨배에서 일본의 자존심 요다 노리모토 9단을 3승 1패로 완벽하게 꺾고 화려하게 우승합니다.세계대회 중에서도 가장 우승하기 어렵고 권위 있는 응씨배를 당당히 제패하며 명실상부한 당대 세계 1인자임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거액의 우승 상금 40만 달러를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유창혁표 화려한 공격력으로 전 세계 바둑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1998
[제6기 배달왕전 우승]
내로라하는 강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내 주요 타이틀인 배달왕전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무대에서도 식지 않은 맹렬한 건재함을 알립니다.LG배와 동양증권배 등 국제 무대에서 아쉬운 준우승을 거두며 잠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여전히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요 기전 결승 무대의 단골손님으로 활약했습니다. 승패를 떠나 언제나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호쾌한 기풍은 결코 변함이 없었습니다.
1999
[제12회 후지쓰배 두 번째 제패]
세계대회인 후지쓰배 결승에서 또다시 우승컵을 번쩍 들어 올리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무시무시한 찬사를 전 세계 바둑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킵니다.배달왕기전 2연패를 달성하고 바둑문화상 감투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1999년 한 해를 매우 뜨겁고 화려하게 달궜습니다. 세계 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펼친 압도적인 반면 운영은 유창혁 바둑 미학의 정수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김태희 아나운서와 세기의 결혼]
단아하고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당시 MBC 간판 김태희 아나운서와 10월에 백년가약을 맺으며 바둑계와 방송계 양쪽에 엄청난 화제를 뿌립니다.언론에서 '미남 프로기사와 미녀 아나운서의 세기의 만남'으로 대서특필되며 수많은 대중의 부러움과 진심 어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내 김태희는 특유의 싹싹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동료 기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남편의 가장 든든하고 완벽한 내조자였습니다.
2000
[제5회 삼성화재배 우승]
또 하나의 굵직한 메이저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통쾌하게 승리하며 바둑 역사상 전인미답의 그랜드슬램을 향한 거침없는 발걸음을 힘차게 이어갑니다.결혼 이후 얻은 심리적인 평온함과 안정감을 바탕으로 기량이 과거보다 더욱 성숙하고 원숙해졌다는 엄청난 평가를 받았습니다.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교한 수읽기와 예리한 타이밍의 공격으로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며 제2의 최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2001
[제3회 춘란배 우승]
중국이 주최하는 거대 세계대회인 춘란배에서 기어코 우승을 차지하며 전무후무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에 단 한 걸음, 한 대회만을 남겨두게 됩니다.같은 해 제2회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우승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맹폭격을 펼쳤습니다. 당시 세계 바둑계는 이창호와 유창혁의 절대적인 양강 구도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만큼 두 사람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찔렀습니다.
2002
[제6회 LG배 우승 및 그랜드슬램 달성]
마침내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영광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바둑 역사상 최초로 5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위대한 '그랜드슬램'의 전설을 완벽하게 달성합니다.후지쓰배, 응씨배, 삼성화재배, 춘란배에 이어 마지막 퍼즐인 LG배까지 모조리 휩쓸며 바둑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유창혁의 천재성과 폭발적인 공격력이 세계 바둑의 모든 정상을 굴복시킨 가장 감격스럽고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2연패]
오직 9단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최고 권위와 명예의 기전인 맥심배에서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입신 중의 입신으로 우뚝 섭니다.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엄청난 업적과 함께 국내 최고 단 기전까지 제패하며 2002년을 완벽하고 화려한 자신의 해로 굳게 장식했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기복 없고 완성된 형태의 무결점 바둑을 팬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장남 유동훈 출생]
행복한 결혼 생활 3년 만에 간절히 기다리던 건강한 첫째 아들 동훈 군을 품에 안으며 한 가정의 든든한 아버지로서 더없는 기쁨과 환희를 누립니다.깊이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첫 아이는 천하의 유창혁에게 냉혹한 승부사로서의 책임감과 듬직한 가장으로서의 행복을 동시에 가득 안겨주었습니다. 바둑계 최고 전성기와 겹쳐 집안팎으로 겹경사를 맞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2003
[제37기 패왕전 우승]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타이틀인 패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최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타이틀 홀더로서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킵니다.후지쓰배, LG배, 삼성화재배 등 각종 세계 대회 본선에서도 활발하게 맹활약하며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변함없는 경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풍부한 노련미가 더해진 유창혁의 공격 바둑은 여전히 상대 기사들에게 몹시 큰 위협과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2004
[차남 유정훈 출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둘째 아들 정훈 군이 무사히 태어나며 화목하고 평온한 가정에 새로운 생명의 거대한 축복이 찾아옵니다.두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중이었습니다. 평소 아내 김태희 아나운서와의 금슬이 바둑계에서 워낙 소문날 정도로 좋았던 터라, 주변 동료들과 수많은 팬들의 따뜻한 축하가 쏟아졌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슬럼프]
둘째 아들을 출산한 지 불과 19일 만에, 평생의 반려자 김태희 아나운서가 자택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너무나 끔찍하고 가슴 아픈 비극이 발생합니다.사랑하는 아내의 믿기 힘든 돌연사에 유창혁은 형언할 수조차 없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끝없는 슬픔의 나락에 빠졌습니다. 한국 바둑계 전체가 눈물로 애도했으며, 이 엄청난 개인적 비극은 훗날 그의 바둑 인생에 회복하기 힘든 지독한 슬럼프를 가져오는 뼈아픈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2014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견디기 힘든 개인사의 깊은 상처를 묵묵히 딛고 일어나, 중국의 기세에 밀려 깊은 침체에 빠진 한국 바둑을 구원하기 위해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풍부한 세계 무대 우승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기사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 헌신했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신진서, 박정환 등 차세대 에이스들이 발굴되고 성장하며 한국 바둑 재도약의 튼튼한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바둑대상 시니어기사상 수상]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보여준 헌신적인 리더십과 시니어 무대에서의 훌륭한 활약을 동시에 인정받아 연말 2014 바둑대상에서 시니어기사상을 명예롭게 수상합니다.천재 승부사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룬 그의 노고에 바둑계가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비록 전성기 시절의 세계대회 타이틀은 아니었지만,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몸을 바치는 영원한 레전드에 대한 가장 값진 헌사였습니다.
2016
[한국기원 사무총장 전격 취임]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한국 바둑 행정을 총괄하는 최고위직인 한국기원 사무총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새롭게 맡아 양복을 입습니다.수개월 동안 이어진 바둑계의 거듭된 요청을 고사하다 마침내 수락한 자리였습니다. 프로기사 간의 심각한 소득 양극화 해소, 유소년 바둑 보급 확대, 대중국 경쟁력 강화 등 바둑계의 거대한 혁신과 체질 개선을 목표로 행정가로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고군분투했습니다.
2018
[한국기원 사무총장직 사퇴]
여러 복잡한 바둑계 현안을 두고 동료 기사들과의 팽팽한 의견 조율에 큰 어려움을 겪던 끝에, 갈등을 봉합하고자 기사회 총회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사무총장직에서 스스로 짐을 내려놓습니다.행정가로서 한국 바둑의 부흥을 위해 의욕적으로 많은 정책을 밀어붙였으나, 뼈를 깎는 개혁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진통과 반발을 피하지 못하고 무거운 직책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를 계기로 행정의 짐을 벗고 다시 온전한 승부사 본연의 반상으로 돌아가는 좋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019
[한중일 세계시니어 바둑대회 제패]
행정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 다시 본격적인 프로 승부사의 세계로 돌아와, 한중일 시니어 최강자들이 자존심을 걸고 겨루는 제3회 무대에서 당당히 우승을 휩씁니다.젊은 시절 부럽지 않은 전혀 녹슬지 않은 무서운 파괴력과 칼날 같은 수읽기를 과시하며 동시대의 전설적인 라이벌들을 차례로 꺾고 우승컵을 품에 꽉 안았습니다. '영원한 최고의 공격수'의 화려한 귀환을 전 세계 올드 바둑 팬들에게 통쾌하게 알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2021
[1004섬 신안 국제시니어 바둑대회 우승]
풍광 좋은 전남 신안군에서 성대하게 열린 제3회 1004섬 신안 국제시니어 바둑대회를 제패하며 자신이 시니어 무대의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강자임을 다시 한번 실력으로 완벽히 증명합니다.오랜 세월이 흘러도 절대 빛바래지 않는 유창혁만의 깊고 날카로운 공격적 기풍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세계대회를 호령하던 젊은 시절의 맹렬하고 뜨거운 전투력에 세월이 빚어낸 연륜의 여유까지 더해진 참으로 아름다운 승리였습니다.
2023
[대주배 남녀 시니어 최강자전 우승]
국내 남녀 시니어 최강자들이 한자리에 총출동한 제10기 대주배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정상에 오르며 시니어 바둑계의 패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단단히 움켜쥡니다.치고 올라오는 여러 후배 시니어 기사들의 거센 도전을 묵묵히 물리치고 흔들림 없는 관록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바둑을 향한 도무지 식지 않는 놀라운 열정과 철저한 끝없는 자기 관리 능력을 대중에게 여실히 보여준 뜻깊은 무대였습니다.
[제5회 신안 월드 바둑 챔피언십 쾌거]
제3회 대회 우승에 이어 제5회 대회 결승에서도 다시 한번 가장 높은 정상에 등극하며 국제 시니어 대회를 향한 자신의 막강하고 굳건한 지배력을 온 천하에 과시합니다.각국을 대표하는 역전의 명장들이 칼을 갈고 모인 험난한 무대에서 또다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여전한 클래스와 위엄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화려하고 불꽃 튀는 대국은 올드 팬들에게 진한 과거의 향수와 짜릿한 쾌감을 동시에 넉넉히 선사했습니다.
2025
[충암학원 관선이사 임기 종료]
바둑계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선한 영향력으로 봉사했던 그는, 바둑 명문으로 손꼽히는 충암학원의 관선이사로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맡은 바 임기를 무사히 명예롭게 마칩니다.자신을 훌륭한 프로로 키워준 모교이자 한국 바둑 인재의 산실인 충암학원의 정상화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행정적 조언과 지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학교의 발전과 후진 양성에 크게 기여한 후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2026
[농심 백산수배 2연승 맹활약]
한중일 시니어 국가대항전인 제3회 농심 백산수배에 한국의 최후 보루인 마지막 주자로 나서, 중국의 류샤오광과 일본의 전설 고바야시 고이치를 연달아 격파하는 엄청난 투혼을 발휘합니다.벼랑 끝에 몰려 패색이 짙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등판한 그는,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 하는 무서운 집중력과 타격력으로 2연승을 질주했습니다. 절대 위기에 유독 강한 진정한 승부사 유창혁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며 팀에 희망의 횃불을 다시 지폈습니다.
[농심 백산수배 아쉬운 최종전]
극적인 국가 역전 우승을 바로 코앞에 두고 출전한 농심 백산수배 최종 11국에서, 중국의 마지막 수문장 위빈 9단에게 피 말리는 치열한 접전 끝에 아쉽게 불계패를 당하며 짐을 내려놓습니다.비록 원하던 우승컵을 한국으로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팀의 최후의 보루로서 홀로 짊어진 막중한 압박감 속에서 그가 보여준 눈물겨운 헌신과 투혼은 지켜보던 수많은 바둑 팬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올스타전 성별을 뛰어넘은 승리]
2026 대방건설배 레전드 vs 여자 바둑리그 올스타전 1국에 한국 바둑 레전드 대표로 당당히 출전하여, 여자 정상급 기사인 김채영을 상대로 8.5집의 넉넉한 승리를 거두는 저력을 뽐냅니다.성별과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무척 흥미로운 이벤트 대국에서도 조금의 빈틈도 없는 여유로운 반면 운영을 선보이며 레전드의 굳건한 자존심을 완벽히 지켜냈습니다.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운 볼거리를 선사하는 동시에 톱클래스의 녹슬지 않은 계산력을 뽐냈습니다.
[2026 블리츠 Open 본선 승리]
가장 최근 치러진 공식 대국인 2026 블리츠 오픈 본선 32강전에서 불과 며칠 전 만났던 김채영과 다시 격돌하여, 이번에는 더욱 통쾌한 흑 불계승을 거두며 지치지 않는 노익장을 맘껏 과시합니다.순발력과 찰나의 빠른 수읽기가 극도로 요구되는 블리츠(초속기) 대국에서도 젊고 날고 기는 후배 기사들을 압도하는 맹활약을 거침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현역으로 불꽃 튀는 승부를 펼치는 유창혁의 바둑 인생은 여전히 가장 찬란하게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