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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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유아인
배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갤러리스트, 작가 영화/드라마 배우

대한민국 대표 배우이자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활약.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리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 영화 베테랑 사도의 연이은 성공으로 천만 배우 타이틀 획득 2015년 아인시대를 선도. 창작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 공동 대표로서 예술 활동과 사회 환원에도 적극적으로 기여. 최근 프로포폴 대마 코카인 케타민 등 마약류 상습 투약 혐의로 사회적 물의를 빚으며 현재 복역 중.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86

1986.10.6 0세

[유아인(본명: 엄홍식)은 1986년 10월 6일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남구에서 태어났습니다.]

2003

[라면 광고로 데뷔]

본명 엄홍식에서 '유아인'이라는 예명으로 라면 TV 광고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연예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된 그의 데뷔는 예상치 못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배우나 연기에 대한 꿈보다는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길거리 캐스팅되어 상경했습니다. 아이돌 가수를 꿈꾸며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4

[드라마 데뷔]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 오디션 탈락 후 재연락을 통해 정식 데뷔하였습니다. 서양화과 학생 유아인 역을 맡아 데뷔했습니다. KBS 《반올림》에 당초 단발성 출연 예정이었으나 고정 출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수목드라마 《4월의 키스》, 《최강칠우》 및 엘리트 학생복, 네이버 한게임 등 광고 모델로 활동하였습니다.

2006

[부산국제영화제 첫 참석]

배우로서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며 공식적인 영화계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이는 그의 배우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해당 영화제에서는 스크린 데뷔작인 독립영화 를 통해 초청받아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크린 데뷔 및 봉사]

독립영화 촬영을 시작하며 스크린에 첫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이 작품은 그의 배우 인생에서 '첫 활시위'와 같은 작품으로, 배우로서 고유한 소년성을 갖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동시에 월드비전 청소년 해피 프렌즈 봉사단의 초대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개봉한 와 를 통해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로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과 제3회 평택 피어선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연기에 대한 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2008

[첫 사극 도전 및 수상]

KBS 월화드라마 를 통해 첫 사극 연기에 도전했습니다.냉정하고 어두운 자객 '흑산'과 양반집 자제 '김혁'을 오가며 나이답지 않은 카리스마를 선보여 '완소자객'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같은 해 영화 에서는 천재 복서 출신의 파티쉐 견습생 역할을 위해 체중을 늘리고 복싱과 베이킹을 배우는 등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작품으로 제11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남자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충무로 기대주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는 주연 배우들 못지않은 조연들의 호연으로 호평받았으며, 유아인은 이 작품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에서는 95% 이상의 케이크를 직접 먹어가며 촬영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이 두 작품은 그가 연기라는 예술 장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2010

['걸오앓이' 신드롬]

KBS 드라마 에서 '걸오 문재신' 역을 맡아 '걸오앓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배우로서 한정된 이미지를 벗고 연기 폭을 넓히는 전환점을 맞았습니다.초반 원작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강한 남성미와 내면의 아픔을 동시에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아인은 기존의 유약한 미소년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운동에 매진했으며,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캐릭터의 내면에 깊이 공감하며 몰입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던 모습을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이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1

2011.12.5 25세

[500만 돌파]

영화 에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도완득'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선배 김윤석과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으며 20대 대표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유아인은 이 역할을 위해 강도 높은 킥복싱 훈련과 매일 검은 분장을 하는 등 외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과 방황했던 시기를 떠올리며 캐릭터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영화는 그에게 2012년 제3회 올해의 영화상 '올해의 발견상'을 안겨주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3

[아름다운재단 7700만원 기부]

아름다운재단에서 진행하는 '나는 아이들의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 캠페인에 목표 모금액의 1%를 남기고 7,700만원을 기부하며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이는 기부자 스스로 악성 댓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선한 영향력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그의 소신이 담긴 행동이었습니다.유아인의 기부 이후 해당 캠페인은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기부 배경을 밝히며 "남은 사흘 동안 다른 사람들의 참여로 100% 다 채워지기를 희망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웃 아이들을 돕고도 나는 기름진 삼겹살로 외식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행운아"라며 자신의 행운을 소외받는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진심을 담은 이메일 전문이 공개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14

[, 촬영 시작]

JTBC 드라마 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 역을 맡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키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동시에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의 '조태오' 역 촬영에 돌입하며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가는 연기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는 당시 종편으로는 이례적인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유아인은 실제 피아니스트들의 영상을 연구하며 연주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클래식 전문가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에서 '사연 없는 악역'을 원하는 유아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의 첫 악역 도전을 전격 캐스팅했습니다. 그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크게 넓혔다고 평가했습니다.

[뉴키즈유아인기금 조성]

의류 브랜드 '뉴키즈 노앙'의 '러브 시티' 티셔츠 수익금을 기부하며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뉴키즈유아인기금'을 조성했습니다.이 기금은 보육시설 아동들의 문화체험 지원 및 퇴소 대학생들의 교육비 지원에 사용되며, 소외계층 아동·청소년들이 진취적인 미래의 주역이 될 기회를 제공하려는 그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유아인은 "선택의 기회는 가능한 균등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라고 기금 개설 취지를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그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행보였습니다.

2015

2015.8.29 29세

[천만 배우 등극]

영화 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데뷔 후 첫 악역인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인상 깊게 소화하며 연기 호평과 함께 흥행까지 잡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이로써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아인은 조태오 역할을 위해 몸을 불리고 의상 아이디어를 직접 내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액션씬 촬영 중 어깨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도 감수했습니다. 그는 이 역할을 '번외편'이라고 표현하며, 작품의 흥행으로 대중들이 자신을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봐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2015.9.16 29세

[영화 개봉]

영화 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다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를 연기했습니다.이 작품은 그가 배우로서 그려왔던 불안한 청춘과 반항아적 이미지를 집약한 인물로, "12년간 준비해왔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이 강한 작품입니다.함께 출연한 송강호, 이준익 감독으로부터 테크닉을 넘어선 진솔한 연기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촬영 중 돌에 머리를 찧어 부상을 입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유아인은 사도세자 역할이 자신의 연기 인생의 '정점'이라고 표현하며 깊은 감정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 같은 순간'이라고 회상했습니다. 그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인물의 비극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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