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홀든
연표
1918
어머니 메리 블란치는 교사, 아버지 윌리엄 프랭클린 비들은 약사였으며, 로버트와 리처드 두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의 증조모는 1817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17세기에 버지니아주 랭카스터 카운티에 정착했습니다.
1937
[파라마운트의 눈에 띄다]
사우스패서디나 고등학교와 패서디나 시티 대학교를 졸업한 후, 파라마운트 픽처스로부터 탤런트 스카우트를 받아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그의 첫 영화는 1938년에 개봉한 《범죄자 농장》이었으나,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1939
[《골든 보이》, 첫 주연급 역할]
영화 《골든 보이》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권투 선수로 변하는 역할을 맡으며 첫 번째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역할로 그는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컬럼비아 픽처스와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오가며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1941
1950
[《선셋 대로》로 스타덤에 오르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선셋 대로》에서 돈을 못 버는 시나리오 작가 역할을 맡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첫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 영화에서 무성 영화 시대의 대스타 글로리아 스완슨과 함께 연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54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 《제17포로수용소》로 마침내 염원하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역할로 그는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연이은 흥행작 출연]
빌리 와일더 감독의 《사브리나》에서 험프리 보가트, 오드리 헵번과 호흡을 맞추고,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원한의 도곡리 다리》에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출연했습니다.
1957
[대작 《콰이 강의 다리》의 시어즈 소령]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콰이 강의 다리》에서 시어즈 소령 역을 맡아 전 세계적인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69
1971
1974
1976
이 영화는 그의 뛰어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1
[생애 마지막 영화 《할리우드의 건달들》]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할리우드의 건달들》(S.O.B.)에 출연하며 생애 마지막 연기 활동을 펼쳤습니다.
[위대한 배우, 생을 마치다]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아파트에서 술에 취해 미끄러져 탁자에 부딪힌 후 과다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비극적인 사고로 63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