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베르 드 지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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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베르 드 지방시
패션 디자이너, 기업인 + 카테고리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오트 쿠튀르 패션 디자이너로, 1952년 럭셔리 패션 및 향수 하우스인 '지방시(Givenchy)'를 설립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파리 패션계를 선도하며 시대를 앞서간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세기의 아이콘인 오드리 헵번과 평생에 걸친 깊은 우정과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상징적인 블랙 드레스를 비롯해 그녀의 영화 의상과 일상복을 디자인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재클린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시프트 드레스(Shift dress)', '베이비돌 드레스' 등의 혁신적인 실루엣을 패션계에 도입했습니다. 또한 1970년대 오트 쿠튀르 쇼에 흑인 모델들을 선구적으로 기용하는 등 패션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995년 은퇴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지방시 하우스를 이끌며 패션의 우아함을 재정의한 위대한 디자이너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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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27

[프랑스 보베 출생]

프랑스 우아즈주의 보베에서 개신교 귀족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위베르 제임스 마르셀 타팽 드 지방시라는 본명으로, 타팽 가문은 1713년에 귀족 작위를 받았습니다. 외가는 역사적인 고블랭 태피스트리 공장의 소유주 및 예술가 집안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예술적 감각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930

[부친상]

위베르가 3살이던 해에 아버지가 인플루엔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으며, 외가 쪽의 깊은 예술적 전통이 어린 위베르가 훗날 패션과 디자인에 눈을 뜨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44

[에콜 데 보자르 입학 및 파리 이주]

17세의 나이에 파리로 이주하여 프랑스 국립 고등 미술 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했습니다.
파리에서 패션 디자인에 대한 꿈을 키웠으며, 198cm(6피트 6인치)에 달하는 훤칠한 키로 파리 사교계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1945

[자크 파트 밑에서 디자이너 경력 시작]

당대 유명 디자이너였던 자크 파트(Jacques Fath) 하우스에서 패션 디자인 업무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946년에는 로베르 피게, 뤼시앵 를롱 등에서 일하며 당시 무명이었던 피에르 발망, 크리스챤 디올과 함께 경험을 쌓는 등 패션계의 거장들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1947

[엘사 스키아파렐리 하우스 합류]

아방가르드 패션의 대가인 엘사 스키아파렐리 밑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1951년까지 그녀의 부티크를 관리했습니다.
스키아파렐리와 일하면서 초현실주의적이고 독창적인 패션 감각을 흡수했으며,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하기 전 가장 중요한 실무 경력을 쌓았습니다.

1952

[지방시 하우스 설립]

파리의 플렌 몽소(Plaine Monceau)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인 '지방시(Givenchy)'를 정식으로 오픈했습니다.
당시 25세의 나이로 진보적인 파리 패션계에서 가장 젊은 디자이너였습니다. 첫 컬렉션은 경제적 이유로 저렴한 남성용 셔츠 면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혁신적이고 활용도 높은 '세퍼레이트 룩(Separates)'을 선보여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53

[오드리 헵번과의 첫 만남]

영화 '사브리나'의 의상 피팅을 위해 파리를 방문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과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캐서린 헵번이 오는 줄 알았으나 신인인 오드리가 나타났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의 절친한 친구이자 패션 뮤즈 관계를 맺게 됩니다. 지방시는 그녀의 개인 옷장뿐만 아니라 주요 영화 의상 대부분을 디자인하게 되었습니다.

1954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의 만남 및 프레타포르테 데뷔]

자신의 평생의 우상이었던 스페인의 전설적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를 만나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에 고급 기성복인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을 데뷔시켰습니다.
발렌시아가와 지방시는 서로의 컬렉션 일정과 디자인 철학을 공유하며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지방시의 초기 기성복 디자인은 헐렁한 핏으로 편안하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형태가 잘 유지되어 극찬을 받았습니다.

1955

[시프트 드레스(Shift dress) 도입]

허리선이 들어가지 않고 일자로 떨어지는 '시프트 드레스'를 패션계에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실루엣은 기존의 코르셋처럼 조이는 스타일에서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1957년 이를 변형한 '색 드레스(Sack dress)' 라인으로 이어져 당시 기성 패션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1957

[첫 향수 '랭떼르디(L'Interdit)' 출시]

오드리 헵번을 위해 특별히 조향한 향수 '랭떼르디(L'Interdit)'를 대중에게 출시했습니다.
본래 헵번만을 위해 만든 향수였으나 그녀의 허락을 받아 시판하게 되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직접 향수 광고의 모델로 나섰는데, 이는 유명 영화배우가 향수 캠페인의 얼굴이 된 역사상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1958

[베이비돌 드레스 및 벌룬 코트 창작]

기하학적인 절개선과 실험적인 구조가 돋보이는 상징적인 '벌룬 코트(balloon coat)'와 '베이비돌 드레스(baby doll dress)'를 디자인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영향과 자신만의 혁신적 시도가 융합된 결과물로, 1950년대 후반의 패션 구조 실험을 주도하며 최고의 쿠튀리에 중 한 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1961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블랙 드레스 디자인]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은 명작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디자인했습니다.
진주 목걸이와 함께 매치된 이 우아한 블랙 드레스는 패션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모방이 많이 된 영화 의상 중 하나로 남아있으며, 지방시의 이름을 세계 대중문화에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1969

[남성복 라인 론칭]

기존 여성복 중심의 컬렉션에서 영역을 확장하여 브랜드 최초의 남성복(Gentleman Givenchy) 라인을 론칭했습니다.
특유의 정제된 테일러링과 세련미를 남성 패션에 접목시켜 호평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종합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70

[국제 베스트 드레서 명예의 전당 헌액]

자신만의 우아한 스타일과 패션계에 미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 베스트 드레서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Best Dressed List Hall of Fame)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60년대 후반 미니스커트와 캐주얼 열풍 속에서도 자신만의 포멀하고 고전적인 우아함을 지키며 상류층 여성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오트 쿠튀르 흑인 모델 선구적 기용]

1970년대 후반, 하이패션계의 백인 중심주의를 깨고 지방시 오트 쿠튀르 쇼에 미국 출신 흑인 여성 모델 5명을 하우스 전속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이는 오트 쿠튀르 하우스가 글래머러스함은 백인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선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샌디 배스 등 이 모델들은 다른 유명 디자이너 쇼에서도 러브콜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1

[지방시 하우스 분할 및 매각]

지방시 하우스의 사업 구조가 개편되면서 향수 라인은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패션 부문 역시 1989년에 글로벌 럭셔리 대기업인 LVMH 그룹에 인수되었습니다. 매각 이후에도 그는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유지하며 크리에이티브 방향성을 계속 지휘했습니다.

1983

[레지옹 도뇌르 훈장 기사장 수훈]

프랑스 국가와 패션 산업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Chevalier de la Légion d'honneur)을 수훈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프렌치 시크의 정수와 글로벌 명성은 국가적 자부심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92년에는 문예공로훈장(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추가로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1988

[비벌리 힐스 회고전 개최]

자신의 패션 디자인 경력을 총망라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캘리포니아주 비벌리 힐스의 비벌리 윌셔 호텔에서 개최했습니다.
수십 년간 영화계와 상류사회를 장식했던 그의 아름다운 드레스와 디자인 유산들이 대거 전시되어 미국 패션계와 할리우드 명사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1995

[패션계 공식 은퇴]

40년 넘게 이끌어온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에서 물러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존경받는 패션계의 원로로서 조용히 지냈으며, 17~18세기 청동 및 대리석 조각품을 수집하거나 개인 전시회를 기획하는 등 미술 애호가로서의 삶에 집중했습니다.

2014

[마드리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회고전]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명성 높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그의 창작물 95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특별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이 전시는 그가 남긴 세기의 패션 유산이 순수 예술의 경지에 올랐음을 미술관 전시를 통해 입증한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2018

[사망]

프랑스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 위치한 자신의 르네상스 양식 저택(샤토 뒤 종셰)에서 수면 중 91세를 일기로 평화롭게 타계했습니다.
그의 오랜 동반자였던 패션 디자이너 필립 베네(Philippe Venet)가 곁을 지켰으며, 패션 역사의 가장 우아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알렸습니다. 유해는 파리의 파시 묘지(Passy Cemetery)에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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