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스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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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변호사 + 카테고리

월리스 스티븐스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와 뉴욕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미국의 모더니즘 시인이자 변호사입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보험회사 사내 변호사로 일하면서 여가 시간에 시를 썼습니다. 44세에 첫 시집 '소풍금'을 발간하며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1955년, 퓰리처상과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영예가 겹쳤던 해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는 상징적 기법과 난해한 은유, 풍부한 시어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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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79

[월리스 스티븐스 출생]

미국의 모더니즘 시인이자 보험법 변호사인 월리스 스티븐스가 펜실베이니아주 리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루터교를 믿는 부유한 변호사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월리스 스티븐스는 1879년 10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리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18세기 초 종교적 박해를 피해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으로, 그는 루터교를 믿는 부유한 변호사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1897

[하버드 대학교 수학]

하버드 대학교에 특대생(비학위과정)으로 입학하여 1900년까지 수학했습니다. 이 시기에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를 만나 그의 저서 '시의 해석과 종교'를 읽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월리스 스티븐스는 1897년부터 1900년까지 하버드 대학교를 특대생(비학위과정)으로 다녔습니다. 그 당시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를 만나 그의 저서 '시의 해석과 종교'(1900)를 읽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산타야나는 스티븐스에게 멘토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1903

[뉴욕 법학전문학교 졸업 및 변호사 활동 시작]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잠시 기자 생활을 거쳐 뉴욕 법학전문학교를 마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1904년에 엘시 몰을 만나 구애를 시작하기 전의 일입니다.

스티븐스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후 뉴욕에서 잠시 기자 생활을 하다가 뉴욕 법학전문학교(New York Law School)를 마치고 그의 형제들처럼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몇몇 회사의 사내변호사를 거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1904

[엘시 몰과 만남 및 구애 시작]

펜실베이니아 고향을 방문했을 때 속기사 엘시 몰을 만나 오랜 구애를 시작했습니다. 이 만남은 1909년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스티븐스는 1904년 펜실베이니아의 고향을 찾았다가 속기사를 하는 엘시 몰(1886-1963)을 만나 오랜 구애를 시작했습니다. 스티븐스의 부모는 엘시의 신분이나 학력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하였으나, 스티븐스는 1909년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1909

[엘시 몰과 결혼]

엘시 몰과 오랜 구애 끝에 결혼하였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사실상 부모님과 의절하다시피 지냈습니다. 신혼살림은 뉴욕에서 시작했습니다.

스티븐스는 1904년 엘시 몰을 만난 후 오랜 구애 끝에 1909년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며느리감의 신분이나 학력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하였고, 그 후 스티븐스는 부모와 의절하다시피 지냈습니다. 뉴욕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스티븐스는 아내의 옆얼굴 모습이 조각가 아돌프 와인만이 조각한 10센트(Mercury Dime)와 50센트 주화에 등장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1914

[에퀴터블 보증보험회사 입사]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에퀴터블 보증보험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이는 그의 직장 이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던 스티븐스는 몇몇 회사의 사내변호사를 거쳐 1914년 에퀴터블 보증보험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그의 회사가 합병되면서 그는 1916년 하트퍼드 손해보험회사로 이동하게 됩니다.

1916

[하트퍼드 손해보험회사로 이동 및 정착]

근무하던 회사가 합병되면서 하트퍼드 손해보험회사 본사가 있는 코네티컷주 하트퍼드로 거주지를 옮겨 평생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부사장 직위까지 올랐습니다.

스티븐스의 회사가 합병됨에 따라 1916년 하트퍼드 손해보험회사 본사가 있는 코네티컷주의 하트퍼드로 옮겨 평생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스티븐스는 보험회사의 임원으로서 보험금 사정 및 각종 소송 업무를 담당했으며, 하트퍼드 보험회사의 부사장 직위까지 올랐습니다. 회사에서는 그가 시를 쓰는 줄 몰랐을 정도로 회사업무와 시작 활동을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1923

[첫 시집 '소풍금' 간행]

44세가 되던 해, 첫 시집 '소풍금(Harmonium)'을 간행했습니다. 초판은 많이 팔리지는 못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으며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월리스 스티븐스는 44세가 되던 1923년 처음으로 시집 '소풍금(小風琴, ''Harmonium'')'을 간행했습니다. 비록 초판은 별로 팔리지는 못했으나, 비평가들로부터는 크게 주목을 받으며 그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집은 1930년에 약간 손질되어 재출판되기도 했습니다.

1924

[외동딸 홀리 스티븐스 출생]

첫 시집 출간 이듬해, 외동딸 홀리 스티븐스(1924-1992)를 얻었습니다. 그의 아내 엘시 몰은 나이가 들면서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고, 부부는 한 지붕 아래 별거 상태로 지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티븐스는 첫 시집 '소풍금'을 낸 이듬해인 1924년 외동딸 홀리 스티븐스(1924-1992)를 얻었습니다. 그의 전기작가에 따르면, 아내 엘시 몰이 나이가 들면서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그들 부부는 결혼생활을 유지했으나 한 지붕 아래 별거상태에 있었다고 합니다.

1930

[첫 시집 '소풍금' 재출판]

첫 시집 '소풍금(Harmonium)'을 약간 손질하여 다시 출판했습니다. 이후 여러 시집을 잇달아 펴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스티븐스는 1930년 첫 시집 '소풍금'을 약간 손질하여 다시 출판했습니다. 이후 '질서의 관념(1936)', '부엉이의 클로버(1936)', '푸른 기타를 가진 사나이(1937)' 등을 잇달아 펴내며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1936

[시집 '질서의 관념', '부엉이의 클로버' 출판]

시집 '질서의 관념(Ideas of Order)'과 '부엉이의 클로버(Owl's Clover)'를 잇달아 출판하며 문학적 역량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1930년 '소풍금' 재출판 이후의 활발한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스티븐스는 1936년에 시집 '질서의 관념(Ideas of Order)'과 '부엉이의 클로버(Owl's Clover)'를 연달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첫 시집 '소풍금'의 재출판(1930) 이후 더욱 왕성한 시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37

[시집 '푸른 기타를 가진 사나이' 출판]

시집 '푸른 기타를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Blue Guitar)'를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1937년, 스티븐스는 시집 '푸른 기타를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Blue Guitar)'를 펴냈습니다. 그는 '질서의 관념'(1936)과 '부엉이의 클로버'(1936) 등을 발표한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7

[시집 '여름으로의 이동' 출판]

노년에 이르러 시집 '여름으로의 이동(Transport to Summer)'을 출판했습니다. 이는 그가 생애 후반에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월리스 스티븐스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1947년 시집 '여름으로의 이동(Transport to Summer)'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가을의 오로라'(1950) 등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1950

[볼링겐상 수상 및 시집 '가을의 오로라' 출판]

볼링겐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가을의 오로라(The Auroras of Autumn)'를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받았습니다.

1950년 월리스 스티븐스는 볼링겐상(賞)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시집 '가을의 오로라(The Auroras of Autumn)'를 출판했습니다. 이 시집은 이듬해인 1951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주었습니다.

1951

[전미도서상 및 로버트 프로스트 메달 수상]

'가을의 오로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으며, 시인에게 큰 영예인 로버트 프로스트 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로써 그의 문학적 위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1951년, 스티븐스는 시집 '가을의 오로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시인으로서 큰 영예인 로버트 프로스트 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는 업무상 출장 중 플로리다 키 웨스트에서 로버트 프로스트를 만나 시에 관한 토론을 자주 하기도 했습니다.

1954

[시선집 'The Collected Poems of Wallace Stevens' 출판]

75세가 되던 해,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선집(The Collected Poems of Wallace Stevens)'을 꾸준히 발표하며 여전히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시선집은 이듬해 퓰리처상 수상작이 됩니다.

월리스 스티븐스는 75세가 되던 1954년,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선집(The Collected Poems of Wallace Stevens)'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이 시선집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주었습니다.

1955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상]

시선집으로 전미도서상을 두 번째로 수상하고, 퓰리처상까지 받으며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또한 하트퍼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여러 영예가 겹쳤습니다.

1955년, 월리스 스티븐스는 '월리스 스티븐스 시선집'으로 전미도서상을 두 번째로 수상했으며, 같은 해 퓰리처상까지 받으며 문학계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이와 더불어 하트퍼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여러 영예가 겹쳤습니다. 그는 같은 해 위암과 담석증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영면하게 됩니다.

[월리스 스티븐스 사망]

위암과 담석증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향년 75세로 영면했습니다. 그 해 그는 퓰리처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적 영예를 누린 해였습니다.

1955년, 월리스 스티븐스는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을 때 위암과 담석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 해 하트퍼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영예가 겹쳤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8월 2일 향년 75세로 영면했습니다. 그의 사후에도 여러 차례 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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