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연표
1942
원자바오는 1942년 9월 15일 중국 허베이성 톈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난카이 학교를 거쳐 베이징지질학원에 입학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965
베이징지질학원에서 수학하던 1965년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졸업 후 간쑤성 지질국에서 기술자와 정치적 교사로 활동하며 공산당원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68
[베이징지질학원 졸업]
베이징지질학원에서 구조 지질학 학위를 취득하고 중앙으로 전출되기 전까지 간쑤성에서 지질 분야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1968년 베이징지질학원을 수료하고 구조 지질학에서 졸업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중앙으로 전출될 때까지 간쑤성에서 지질 분야와 관계된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1982
1982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의 부주임으로 임명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1985년에는 판공청 주임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1985
쑹핑 등 유력 지도자들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1985년 당 중앙판공청 부주임에 발탁되었고, 덩샤오핑의 지시로 같은 해 주임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는 1992년까지 당의 사무국장이라 할 수 있는 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으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89
[톈안먼 사건 현장 동행]
톈안먼 사건 당시 자오쯔양 서기장을 동행하여 시위 수습을 시도했으나 군중 데모자들을 위한 후원의 행위로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던 자오쯔양을 동행하여 베이징에 집결한 인민 군중들의 시위를 수습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이는 군중 데모자들을 위한 후원의 행위인 것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93
[중앙위원회 서기국 위원 임명]
자오쯔양 서기장 구금 이후에도 큰 정치적 손해 없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전임 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톈안먼 사건 이후 자오쯔양이 구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바오는 야오이린, 자오쯔양 등과의 오랜 교제 덕분에 큰 정치적 손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1993년 그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의 전임 위원이 되며 다시 한번 입지를 다졌습니다.
1998
1997년 중앙 정치국위원 중앙서기처 서기를 거쳐, 1998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4명의 부총리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농업, 빈곤대책, 금융 분야에서의 뛰어난 실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3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취임]
주룽지 총리의 뒤를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제6대 총리로 취임하며 중앙정치국상무위원, 국무원총리 당조서기를 겸임했습니다.
농업, 빈곤대책, 금융 분야에서의 높은 실무 능력이 평가되어 2003년 3월 16일 청렴 개혁 총리 주룽지의 뒤를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새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동시에 중앙정치국상무위원과 국무원총리 당조서기도 겸임하며 중국 최고 지도부에 합류했습니다.
2008
[쓰촨성 지진 구조 활동 지휘]
총리로 재선된 후 쓰촨성 대지진 발생 시 구조 노력을 지휘하며 비극 수습의 일선에서 지도적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2008년 5월 총리로서 재선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남서부의 쓰촨성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자바오는 지진 발생 직후 현장을 찾아 구조 노력들을 직접 지휘하며 중국 정부의 비극 수습과 국제적 동정심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13
2013년 3월 15일, 원자바오는 10년간 중화인민공화국 총리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퇴임했습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정치 개혁 요구를 언급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보였으며, 그의 후임은 리커창이 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