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겐신
연표
1530
[우에스기 겐신 탄생]
에치고 슈고다이 나가오 다메카게의 넷째 아들로 가스가 산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명은 도라치요였습니다.
교로쿠 3년 음력 1월 21일(양력 2월 18일) 에치고 슈고다이 나가오 다메카게의 넷째 아들로 가스가 산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같은 에치고 스요시 성 성주로 고시 나가오 집안의 나가오 후사카게의 딸인 세이간인이었습니다. 아명인 도라치요(虎千代)는 그가 태어난 해가 인(寅)의 간지 해에서 연유합니다.
1536
[린센지 입문]
아버지 나가오 다메카게가 은거하고 형 하루카게가 가문을 이어받았으며, 도라치요는 린센지에 입문하여 승려 덴시쓰 고이쿠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덴분 5년 8월, 아버지 다메카게는 물러나 은거하고 가문은 도라치요의 형인 하루카게가 이어받았습니다. 도라치요는 성 아래 린센지에 입문해, 주직(住職) 덴시쓰 고이쿠(天室光育)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543
[나가오 가게토라로 개명 및 도치오 성주 취임]
성인식을 치르고 나가오 가게토라로 개명한 뒤, 형 하루카게의 명을 받아 고시군지로서 가스가 산성을 출발해 도치오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덴분 12년 8월 15일에 성인식을 하고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라고 개명한 뒤, 9월에는 하루카게의 명을 받아 고시군지(古志郡司)로서 가스가 산성을 출발해 산조 성, 나아가 도치오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목적은 나카고리(中郡)의 반 슈고다이 세력을 평정하고 나가오 집안의 영지를 통치하며, 나아가 시모고리(下郡)의 아가키타슈를 제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544
[도치오 성 전투 승리]
병약한 형 하루카게를 가볍게 보던 에치고 호족들이 모반을 일으켜 도치오 성을 공격해왔으나, 가게토라가 소수의 병력으로 본대를 기습하여 궤멸시키고 첫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덴분 13년 봄, 병약한 하루카게를 가볍게 보던 에치고의 호족이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15세의 가게토라도 애송이 취급해 얕잡아보던 인근 호족들은 도치오 성을 공격해 왔고 가게토라는 소수의 병사를 둘로 나누어 한쪽이 가라카사마쓰(傘松)에 진을 치고 있던 적의 본대의 배후를 급습하게 한 뒤, 적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노려 성에서 본대를 돌격시킴으로써 마침내 궤멸시켰습니다. 이것이 가게토라의 첫 전투였습니다.
1545
[구로타키 성 전투]
슈고 우에스기 집안의 노신 구로다 히데타다가 나가오 씨에 대한 모반을 일으켜 가스가 산성을 공격하자, 가게토라가 총대장으로서 공격을 지휘해 히데타다를 항복시켰습니다.
덴분 14년 10월, 슈고 우에스기 집안의 노신으로 구로타키 성의 성주로 있던 구로다 히데타다가 나가오 씨에 대한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히데타다는 슈고다이 하루카게가 있던 가스가 산성까지 공격해 왔고 가게토라의 형 나가오 가게야스 등도 이때 죽었으며, 그 뒤 곧장 구로타키 성으로 돌아가 농성했습니다. 가게토라는 형을 대신해 우에스기 사다자네로부터 토벌 명령을 받아, 총대장으로서 공격을 지휘하여 히데타다를 항복시켰습니다.
1548
[나가오 씨 가독 상속 및 에치고 슈고다이 취임]
슈고 우에스기 사다자네의 조정을 통해 형 하루카게가 은거하고, 나가오 가게토라가 19세의 나이로 가문을 상속받아 에치고의 슈고다이가 되었습니다.
덴분 17년 12월 30일, 슈고 우에스기 사다자네의 조정을 바탕으로 하루카게가 가게토라를 양자로 삼아 가문을 양도한 뒤 은거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습니다. 가게토라는 나가오 씨의 본거지 가스가 산성에 입성하고 19세의 나이로 가문을 상속받아 에치고의 슈고다이가 되었습니다.
1550
[에치고 국주 지위 인정]
에치고 슈고 우에스기 사다자네가 후계 없이 사망하자,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가게토라를 에치고의 국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2년 후인 덴분 19년, 사다자네가 후계 없이 죽자,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가게토라의 에치고 국주(國主)의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1551
[에치고 통일]
일족인 사카도시 성주 나가오 마사카게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가게토라가 사카토 성을 포위하여 진압하고 에치고 국의 내란을 수습하여 통일을 이뤘습니다.
덴분 19년 12월에는 일족인 사카도시 성주 나가오 마사카게가 가게토라의 가문 상속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가게토라는 덴분 20년 1월에 마사카게측의 홋치 나가요시의 거성인 이타기 성을 쳐서 이기고, 8월에는 사카토 성을 포위하여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마사카게의 반란이 진압되면서 에치고 국의 내란도 일단 수그러들었고, 에치고는 통일되었습니다.
1552
[호조 우지야스와의 적대 관계 시작]
호조 우지야스에게 쫓겨난 간토간레이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에치고로 도망쳐 구원을 요청했고, 가게토라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호조 우지야스와 적대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덴분 21년 1월, 사가미국의 호조 우지야스의 공격을 받아, 고즈케 히라이 성의 간토간레이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성을 버리고 에치고로 도망쳐 와서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가게토라는 노리마사를 받아들여 관저에 들이면서 우지야스와 적대관계가 되었습니다.
덴분 21년 4월 23일에 가게토라는 종5위하 단조소히쓰(彈正少弼)의 관직을 수여받았습니다.
1553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나노 호족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시나노를 침공한 다케다 하루노부 토벌을 결의하고 직접 군대를 인솔해 출진했습니다.
덴분 22년 4월에는 시나노 국 하니시나 군의 가쓰라오 성 성주 무라카미 요시키요도 하루노부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가게토라에게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마침내 가게토라는 하루노부 토벌을 결의하고, 8월에 친히 군대를 인솔해 시나노 국으로 출진했습니다. 9월에는 에치고로 돌아왔습니다.
[천황 알현 및 칙명 수여]
교토로 상경하여 고나라 천황과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알현하고, 천황으로부터 어검과 천배를 하사받으며 '적을 토벌하라'는 칙명을 받았습니다.
9월 상경해 고나라 천황과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알현합니다. 교토에서 입궐하여 고나라 천황을 배알한 자리에서 가게토라는 천황으로부터 어검(御劍)과 천배(天盃)를 하사받고 '적을 토벌하라'는 칙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상경 때 사카이를 유람하며 고야 산을 참배하고, 교토로 돌아와 전임 다이도쿠지 주지 데쓰슈 소쿠 아래서 참선하여 '소신(宗心)'이라는 법명을 하사받았습니다.
1555
[제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및 화친]
시나노로 출병하여 다케다 하루노부와 가와나카지마의 사이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으며,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중개로 다케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화친했습니다.
덴분 24년 4월에 다시 시나노로 출병, 하루노부와 가와나카지마의 사이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합니다.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중개 아래 화친하고 물러났습니다. 다케다측의 아사히 산성을 부수고 다케다가 빼앗았던 가와나카지마의 영지도 본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가게토라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1556
[출가 소동]
가신들 간의 영토 분쟁 조정에 심신이 지쳐 돌연 출가를 선언하고 고야 산으로 떠났으나, 측근들의 설득으로 단념하고 에치고로 돌아왔습니다.
고지 2년 6월, 가신들 간의 영토 싸움을 조정하느라 심신이 완전히 지쳐버린 탓인지 가게토라는 돌연 출가를 선언하고, 고야 산으로 가버렸습니다. 덴시쓰 고이쿠나 나가오 마사카게 등의 설득으로 출가를 단념한 가게토라는 다시 에치고로 돌아와 엣추로 일단 물러났다가 다시 에치고로 침입하려던 도모히데를 쳐부수었습니다.
1557
[제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하루노부가 맹약을 깨고 나가오측의 가쓰라 산성을 공략하고 이야마 산성까지 공격하자, 구원 요청을 받고 가와나카지마로 다시 출진했습니다.
고지 3년 2월, 하루노부는 맹약을 깨고 나가오측의 가쓰라 산성을 공략했습니다. 나아가 시나노와 에치고의 국경 부근까지 진군하여, 가게토라측의 시나노 호족 다카나시 마사요리의 거성 이야마 산성을 공격했습니다. 마사요리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은 가게토라는 4월에야 다시 가와나카지마로 출진하여 다카이 군 야마다 성과 후쿠지마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나가누마 성과 젠코지를 탈환, 요코야마 성에 진을 친 가게토라는 나아가 앞서 헐렸던 아사히 산성을 다시 쌓아 본영으로 삼았습니다.
1559
에이로쿠 2년 5월, 가게토라는 전년에 했던 약속대로 교토로 상경해서 오기마치 천황과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알현했습니다. 가게토라는 그때 요시테루로부터 관령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1560
[엣추 출진]
엣추의 시나 야스타네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엣추로 출진하여 진보 나가모토의 거성 도야마성을 함락시키고 야스타네를 구원했습니다.
에이로쿠 3년 음력 3월, 엣추의 시나 야스타네가 진보 나가모토의 공격을 받아서 가게토라에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인 가게토라는 처음으로 엣추로 출진하여 곧바로 나가모토의 거성 도야마성을 함락시켰습니다. 나아가 나가모토가 달아난 마스 산성까지 함락시키고 야스타네를 구원했습니다.
[간토 출병 시작]
호조 우지야스를 토벌하기 위해 에치고에서 간토로 출진하여 미쿠니 고개를 넘고 고즈케 국으로 들어간 뒤 여러 호조측의 성들을 차례대로 공략하며 우마야바시 성을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에이로쿠 3년 음력 5월에는 마침내 호조 우지야스를 토벌하기 위해 에치고에서 간토로 출진해 미쿠니 고개를 넘고, 고즈케 국으로 들어간 가게토라는 오가와·나구루미·묘간·누마타·이와시타·시라이·나와·우마바야시 등 호조측의 여러 성들을 차례대로 공략하고, 우마야바시 성을 간토에서의 거점으로 삼아 이곳에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1561
[오다와라 성 전투]
간토간레이 우에스기 노리마사를 끼고 간토의 여러 무장들을 규합한 10만 대군으로 호조 우지야스의 거점인 오다와라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에이로쿠 4년이 되자마자 군을 인솔하여 고즈케 국에서 무사시 국으로 진격, 후카야·시노부·하뉴 등의 성을 차례대로 차지하고, 우지야스의 거점이었던 오다와라 성을 목표로 사가미 국까지 침공해 2월에는 가마쿠라를 함락시켰습니다. 3월에 가게토라는 간토간레이 우에스기 노리마사를 끼고 여러 옛 우에스기 가신들을 중심으로 한 10만 대군으로 오다와라 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1만 8천의 군사를 인솔해 가와나카지마로 출진하여 다케다 신겐군과 치열한 결전을 벌였고, 다케다군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간토로 귀국한 뒤인 에이로쿠 4년 8월, 마사토라는 1만 8천의 군사를 인솔해 가와나카지마로 출진합니다. 이때 마사토라는 마바리대와 군사 5천을 젠코지에 남겨두고 1만 3천의 병력을 이끌고 다케다 영내에 깊숙이 침공하여, 사이조 산에 포진했습니다. 이때 가와나카지마에서 다케다 군과의 치열한 결전을 벌여, 다케다 군의 많은 적장을 전사시키고 총대장 신겐도 부상을 입는 등, 다케다군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데루토라로 개명]
쇼군 요시테루의 이름을 받아 데루토라(輝虎)로 개명하고 에치고에 돌아가지 않고 고즈케의 우마야바시 성에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12월, 마사토라는 쇼군 요시테루의 이름을 받아 데루토라(輝虎)라고 개명했습니다. 그는 에치고에 돌아가지 않고 고즈케의 우마야바시 성에서 해를 보냈습니다.
[간토간레이 취임 및 우에스기 마사토라로 개명]
우에스기 노리마사의 요청으로 가마쿠라의 쓰루가오카 하치만구에서 야마노우치 우에스기씨의 가독과 간토간레이직을 상속받고, 이름을 우에스기 마사토라로 개명했습니다.
가게토라는 우에스기 노리마사의 요청으로 가마쿠라부의 쓰루가오카 하치만구에서 에이로쿠 4년 윤3월 16일, 야마노우치 우에스기씨의 가독과 간토간레이직을 상속받아 이름을 우에스기 마사토라(上杉政虎)로 바꾸었습니다.
1562
[엣추 진보 나가모토 진압]
엣추 국으로 출진하여 시이나 야스타네를 압박하고 있던 진보 나가모토를 항복시켰으나, 데루토라가 돌아간 뒤 나가모토는 다시 반란을 일으켜 9월에 재차 진압했습니다.
에이로쿠 5년 7월에는 엣추 국으로 출진하여 시이나 야스타네를 압박하던 진보 나가모토를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나가모토는 데루토라가 에치고로 돌아간 뒤 다시 군사를 일으켰고, 데루토라는 9월에 다시 엣추 국으로 돌아와 나가모토를 항복시켰습니다.
1563
[간토 성 공략]
다케다와 고호조 연합군의 공격으로 마쓰 산성이 함락되자, 반격에 나서 무사시의 기사이 성을 함락시키고 시노부 성주 나리타 나가야스를 항복시키는 등 간토의 여러 성들을 공략했습니다.
마쓰 산성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에 나섰지만, 간발의 차이로 에이로쿠 6년 2월에 마쓰 산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반격에 나선 데루토라는 무사시로 쳐들어가서 오타 도모오키가 지키고 있던 기사이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도모오키의 형으로 무사시 시노부 성주 나리타 나가야스를 항복시킵니다. 그리고 고즈케로 가서 4월에 가라자와 산성을 공격, 사노 마사쓰나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오야마 히데쓰나가 지키고 있던 시모스케의 오야마 성을 공격하고, 나아가 시모우사 국까지 진출하여 히데쓰나의 동생인 유키 성 성주 유키 하루토모를 복속시키고 간토의 여러 성들을 차례차례 공략해 나갔습니다.
1564
[제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다케다 신겐과 다시 가와나카지마에서 대치했으나, 신겐이 결전을 피하며 60일간의 대치 끝에 에치고로 철수하여 다섯 차례에 걸친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에이로쿠 7년 4월, 다케다 신겐과 손잡고 에치고로 쳐들어온 아시나 모리우지를 격파했습니다. 그 사이 신겐에게 시나노 국 미즈우치 군의 노지리 성을 빼앗기기도 했으나 곧 탈환했고, 8월에는 신겐과 다시 가와나카지마에서 대치합니다. 그러나 신겐이 본진을 시오자키 성에 두고 데루토라와의 결전을 피했기 때문에, 60일에 이르는 대치 끝에 에치고로 철수했고, 끝내 결판을 내지 못한 채 다섯 차례에 걸친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끝이 났습니다.
1565
[세키야도 성 방어전]
간토 중부의 요충지인 세키야도 성이 호조 우지야스의 공격을 받자, 성주 야나다 하루스케를 구원하기 위해 시모우사 국에 침공하여 우지야스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에이로쿠 8년 3월, 간토 중부의 요충지·세키야도 성이 호조 우지야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지야스는 이와쓰키 성이나 에도 성을 거점으로 도네강의 수계 등 간토에서의 수운 요충지인 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데루토라는 세키야도 성주 야나다 하루스케를 구원하기 위해 시모우사 국에 침공, 히타치의 사타케 요시시게도 세키야도 성에 원군을 보냈습니다. 때문에 우지야스는 공성전을 중지하고 데루토라와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물러났습니다.
1566
[미노와 성 함락]
서부 고즈케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미노와 성이 다케다 신겐의 공격으로 함락되면서, 서부 고즈케 전역에 다케다 세력이 확고하게 성장했습니다.
에이로쿠 9년 9월에는 고즈케 가네야마 성의 성주 유라 나리시게가 데루토라를 저버리고 돌아섰습니다. 같은 달에는 서부 고즈케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미노와 성이 신겐의 공격으로 함락되고(성주 나가노 나리모리는 할복), 서부 고즈케 전역에 다케다 세력이 성장했습니다.
1568
[혼조 시게나가 모반]
엣추의 잇코잇키와 시이나 야스타네를 제압하기 위해 마쓰쿠라 성 등을 공격하던 중, 신겐과 내통한 중신 혼조 시게나가의 모반으로 에치고로 귀환했습니다.
에이로쿠 11년 엣추의 잇코잇키와 시이나 야스타네가 다케다 신겐과 내통하고 있는 엣추를 제압하기 위해 엣추 마쓰쿠라 성, 엣추 모리야마 성을 공격했지만, 음력 5월 신겐과 내통한 중신 혼조 시게나가(本庄繁長)의 모반 때문에 에치고로 돌아갑니다.
1569
[월상동맹 체결]
다케다 신겐을 견제하기 위해 호조 우지야스와 동맹(월상동맹)을 맺었으며, 이듬해에는 우지야스의 아들을 양자로 맞아들였습니다.
1569년 음력 3월, 다케다 신겐을 견제하기 위해 데루토라는 호조 우지야스와 동맹을 맺습니다 (월상동맹). 1570년 우지야스의 7번째 아들로 있는 호조 우지히데를 양자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우지히데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이름이었던 가게토라라는 이름을 주는가 하면 일족으로서 후대했다고 합니다.
1570
1570년 12월에는 법명을 겐신(謙信)으로 정합니다.
1571
[엣추 도야마 성 탈환]
호조 우지야스 사후, 호조 우지마사가 다케다와 화친하며 우에스기와의 동맹을 파기하자, 공격 방향을 엣추로 돌려 잇코잇키 세력으로부터 도야마 성을 빼앗았습니다.
1571년 우지야스가 죽고, 대를 이은 호조 우지마사는 우에스기와의 동맹을 파기, 다케다 신겐과 다시 화친했기 때문에, 양 군대는 도네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합니다. 8월, 북국으로 공격 방향을 돌려 엣추의 잇코잇키세력으로부터 도야마성을 빼앗았습니다.
1573
1573년 숙적 다케다 신겐이 병사하고 다케다씨의 위협이 수그러들자 엣추의 과반을 제압했습니다.
1574
[간토 재출병]
호조 우지마사가 고즈케를 침공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간토로 출진하여 가나야마성, 기사이성, 하뉴 성 등 관동의 여러 성들을 차례차례 공략했습니다.
같은 해 우지마사가 고즈케를 침공하자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1574년 간토로 출진 가나야마성, 기사이성, 하뉴 성 등 관동의 여러 성을 차례차례 공략합니다.
1575
1575년 1월 우에스기 가게카쓰에게 단조쇼히쓰를 양도합니다.
1576
[반 노부나가 포위망 구축]
노부나가와의 싸움으로 곤경에 처한 혼간지 겐뇨와 강화를 맺어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새롭게 겐신을 맹주로 하는 반(反)노부나가 포위망이 구축되었습니다.
덴쇼 4년 5월 무렵부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중개로 가이의 다케다 씨와 사가미의 고호조씨와의 고소에쓰 잇카(甲相越一和)가 시도되었습니다. 이 무렵 겐신은 노부나가와의 싸움으로 곤경에 처해 있던 혼간지의 겐뇨와 강화를 맺었고 이로써 노부나가와의 동맹도 깨졌습니다. 다케다 가쓰요리와도 화친을 하고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파기하는 등, 새롭게 겐신을 맹주로 하는 반(反)노부나가 포위망이 구축됩니다.
[엣추 평정]
쇼군 요시아키의 요청으로 상경하기 전 엣추를 공격하여 잇코잇키 지배하에 있던 주요 성들을 접수하고, 슈고다이 시이나 야스타네를 죽임으로써 엣추를 평정했습니다.
쇼군 요시아키의 요청으로 상경하기 한 달 전인 9월, 겐신은 이름뿐인 간레이 하타케야마씨가 슈고로 있던 엣추를 공격해 잇코잇키 지배 아래 놓여있던 진보 우지하루의 도야마 성, 모리야마 성 등을 차례대로 접수하고, 엣추의 슈고다이 시이나 야스타네의 하스누마 성을 함락시키고 야스타네를 죽임으로서 엣추를 평정합니다.
덴쇼 4년 11월부터 겐신은 노토로 출정해 구마키 성, 아나미즈 성, 가부토 산성, 쇼인카와시리 성, 도기 성 등 노토의 주요 성들을 차례대로 공략하며 나나오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나나오 성은 난공불락의 거성으로 힘으로 밀어붙이기는 곤란했고, 우에스기군은 공격하다 지쳐 해를 넘겼습니다.
1577
[제2차 나나오 성 전투 시작]
간토에서의 호조 우지마사 침공으로 가스가 산성으로 일시 철퇴했다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따라 다시 노토에 침공하여 여러 성들을 함락시키고 나나오 성을 재차 포위했습니다.
덴쇼 5년 간토에서 호조 우지마사가 에치고, 고즈케를 침공했기 때문에 가스가 산성으로 일시 철퇴합니다. 반전을 결의한 겐신은 윤7월 다시 노토에 침공해 여러 성들을 쳐서 함락시키고 나나오 성을 다시 포위합니다.
[나나오 성 함락 및 노토 장악]
성내에 역병이 돌고 있는 가운데, 수비대장 조 쓰구쓰라에 반대하는 유사 쓰구미쓰가 겐신과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난공불락의 나나오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덴쇼 5년 9월 15일, 전쟁에 염증을 느낀 유사 쓰구미쓰가 겐신과 내통해 반란을 일으켜, 노부나가와 내통하고 있던 쓰구쓰라는 살해되고 마침내 나나오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이틀 뒤인 17일에는 가가 국의 국경에 있던 스에모리 성까지 함락시키면서 노토도 완전히 우에스기의 지배하로 들어옵니다.
[데토리가와 전투 대승]
나나오 성을 구원하기 위해 파견된 오다 노부나가군이 데토리 강을 건너 진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남하하여 데토리 강을 건너던 오다군을 추격해 격파했습니다.
덴쇼 5년 9월 18일, 시바타 가쓰이에가 인솔하는 오다군은 데토리 강을 건너 미즈시마에 진을 쳤지만, 이미 나나오 성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겐신은 대군을 인솔해 단번에 남하했고, 가가 국에 들어와 가호쿠 군과 이시카와 군을 눈깜짝할 사이에 제압하고서 마쓰토 성까지 진출했습니다. 9월 23일에 오다군은 겐신이 이끄는 군대가 오다군과는 지척의 거리인 마쓰토 성에 진을 치고 있다는 급보를 접했고, 당황한 가쓰이에는 철퇴 명령을 내렸지만, 이에 맞선 우에스기군은 데토리 강을 건너느라 허둥대던 오다군을 추격해 격파했습니다.
1578
[우에스기 겐신 급사]
1578년 3월 15일 원정 개시를 위해 동원령을 내렸으나, 3월 9일 가스가 산성에서 쓰러져 3월 13일 오후 2시(미시)에 사망하였습니다.
향년 49세. 쓰러지고 난 뒤의 혼수상태와 관련해 겐신의 사인은 뇌일혈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