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스톡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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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제, 록 페스티벌, 문화 현상, 히피 운동 + 카테고리

196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설적인 음악 축제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 반문화의 상징입니다. 30만 명 이상이 모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었으며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정점이자 사회 변화의 염원을 담은 거대한 문화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영화와 음반으로 막대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후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반문화 시대의 종말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관련 영화가 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기획되었으나 아쉽게 무산된 역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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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알타몬트 페스티벌 비극]

1969년 12월, 롤링 스톤스 무료 콘서트인 알타몬트 페스티벌에서 경비대 '헬스 앤젤스'가 흑인 청년을 살해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우드스톡의 자유분방함과 대비되는 이 사건은 1960년대 히피 반문화의 낙관주의가 막을 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약물과 소요로 인한 사상자가 늘던 시기였으나, 알타몬트의 비극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며 1960년대 록 이데올로기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 개막]

1969년 8월 15일, 미국 뉴욕주 베델에서 '3 Days of Peace & Music'을 슬로건으로 내건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역사적인 막을 올렸습니다.당국과 주민 반발로 무산될 뻔했으나, 농장주 막스 야스거의 도움으로 극적 성사되었죠.열악한 시설과 폭우 속에서도 30만 명 이상이 몰려(세계 최대 규모) 사랑과 평화의 히피 정신을 만끽했습니다.마약과 자유로움 속에서 '우드스톡네이션'을 이룬 이 축제는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젊은 세대의 저항과 반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문화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9

['테이킹 우드스탁' 칸 진출]

200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숨은 조력자 엘리엇 타이버의 회고록을 영화화한 '테이킹 우드스탁'이 이안 감독의 연출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습니다.영화는 페스티벌이 무산될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전설이 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담습니다.엘리엇은 베델에서 모텔을 운영하며 맨해튼에서 게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이중생활을 하던 인물입니다.그는 우드스톡 주최팀에 맥스 야스거의 농장을 추천하며 페스티벌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는 그의 삶과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엘리엇 타이버는 유대계 이민자 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며, 애정 결핍과 자신감 부족 속에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미술에 재능을 보여 헌터 칼리지에 진학했지만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됩니다. 그는 열한 살부터 동성애적 경험을 시작했으며, 대학 입학 무렵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했습니다. 맨해튼에서 테네시 윌리엄스, 트루먼 카포티 등 게이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동성애 혐오가 만연하던 시대의 황폐함을 목격합니다. 이중생활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우드스톡 유치는 그의 삶은 물론 베델이라는 시골 마을과 미국 사회까지 변화시키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2010

['테이킹 우드스탁' 한국 개봉]

2010년 6월,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비화를 다룬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이 한국 관객들을 찾아왔습니다.팝 칼럼니스트 성문영 씨가 번역을 맡아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영화 특유의 유머와 감동을 한국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드스탁 코리아' 기획]

2010년 8월 6일부터 8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평화누리공원에서 '우드스탁 코리아'를 개최할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기획자 아티 콘펠트의 참여와 밴드 라인업 협의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아티 콘펠트가 3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8월 한국 우드스탁에서 봅시다(see y ou at woodstock korea artie kornfeld august)"라는 글을 올려 더욱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우드스탁 코리아' 전격 취소]

2010년 7월 30일, '우드스탁 코리아' 주관사 SK M&C는 공연 일주일 전 돌연 취소를 발표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미국 우드스톡벤처스의 명칭 사용 가처분 신청과 기획 비용 확보 난항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더욱이 홍보 과정에서 출연을 알렸던 일부 밴드들과 실제 계약 합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기대 속의 '한국판 우드스톡'은 결국 시작도 하기 전에 아쉬움 속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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