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시게루
연표
1878
1878년 도쿄 근처 요코스카시에서 다케우치 쓰나의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다케우치 쓰나는 무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유명한 자유민권운동 활동가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심복이었다.
1905
도쿄 제국 대학에서 정치학 교육을 받은 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외교단에 가입하여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930
[유럽 주재 대사 활동 및 퇴직]
1930년대에 이탈리아와 영국 주재 일본 대사로 활동하며 국제 외교 경험을 쌓았고, 1938년 런던 대사직을 끝으로 퇴직했다.
193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와 영국 주재 일본 대사로 활약했다. 특히 1938년 런던 주재 대사를 마지막으로 퇴직하며 오랜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
1945
[전후 지도자로 부상]
전후 1945년, 잠시 징역살이를 겪었으나 곧 일본의 주요한 전후 지도자로 부상하며 혼란스러운 시대를 이끌 준비를 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몇 달 간의 징역살이를 마친 그는 전후 일본 재건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46
[제45대 총리 취임 (요시다 내각 시작)]
친미, 친영 성향과 서방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연합군 점령지 상황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받아 제45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다.
1946년 5월 22일, 그는 제45대 총리가 되었다. 교육과 정치적 업무를 통해 얻은 그의 친미적, 친영적 관념들과 서방 사회에 대한 상식은 전후 연합국 점령지에서 그를 완벽한 후보로 만들었다.
1947
1947년 5월 24일, 선거에 패배하여 잠시 가타야마 데쓰에게 총리직을 내주게 되었다.
1948
[제48대 총리 취임 (두 번째 요시다 내각 시작)]
제48대 총리로 다시 직위에 올라, 일본의 전후 재건과 국제 관계 구축에 대한 강력한 리더십을 다시 발휘하기 시작했다.
1947년 잠시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1948년 10월 15일 제48대 총리로서 다시 직위에 복귀했다.
1949
요시다 시게루는 1949년 2월 16일 치러진 제49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다시 한번 국민의 지지를 확인했다.
1952
[총리 암살 음모 발각]
하토야마 이치로를 총리로 세우기 위한 음모로 일본 제국 육군 사관 출신 핫토리 다쿠시로가 50만 명의 지지를 받아 요시다 총리 암살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2005년 중앙정보부 기밀 해제로 밝혀졌다.
2005년 비밀 해제된 중앙정보부 문서에 따르면, 1952년 하토야마 이치로를 총리로 세우기 위해 일본 제국 육군 사관 출신 핫토리 다쿠시로가 500,000명의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요시다 총리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50대 총선 승리]
제50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연이어 총리직을 유지, 전후 일본의 안정화를 이끄는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했다.
요시다 시게루는 1952년 10월 30일 치러진 제50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계속해서 일본의 총리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1953
1953년 1월, 미국 방문을 위해 일본에 들른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과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제51대 총선 승리]
제51대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흔들림 없는 국민적 지지 속에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요시다 시게루는 1953년 5월 21일 치러진 제51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직을 계속 이어갔다.
1954
[조선의옥 스캔들 발생]
여당 뇌물 의혹을 막기 위해 법무대신에게 지휘권을 발동한 '조선의옥 스캔들'이 터져 반대파의 거센 반발을 샀고, 이는 요시다 내각 총사퇴의 원인이 되었다.
1954년, 여당에 대한 뇌물 의혹 조사를 막기 위해 이누카이 다케루 법무대신에게 지휘권을 발동하게 한 '조선의옥 스캔들'이 발생하여 반대파가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요시다 내각은 총사퇴하게 된다.
[제51대 총리직 사임 (내각 총사퇴)]
'조선의옥 스캔들'과 반대파의 움직임으로 결국 하토야마 이치로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사임했다.
1954년 12월 10일, '조선의옥 스캔들'로 인한 반대파의 불신임 예상으로 요시다 내각은 총사퇴하고, 요시다 시게루는 하토야마 이치로에게 총리직을 넘겨주었다.
1963
총리직 사임 후에도 일본 국회 의원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요시다 시게루는 1963년 국회에서 은퇴하며 공식적인 정치 생활을 마무리했다.
1967
1967년, 요시다 시게루는 자신의 인생 대부분 동안 자신이 가톨릭 신자였음을 숨겨왔으며, 임종에 이르러서야 영세를 받았다. 그의 장례식은 도쿄 성마리아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1967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도쿄에 있는 성마리아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2009
2009년 3월 22일, 요시다 시게루가 살던 저택이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