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도노
연표
1569
[요도도노의 탄생]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여성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자 히데요시의 외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인 요도도노가 오미국 오다니성에서 태어났다.
요도도노는 1569년경 오미국 오다니성에서 센고쿠 다이묘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동생 오이치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아자이 차차 또는 아자이 기쿠코이다.
1573
[아버지 아자이 나가마사의 죽음]
아버지 아자이 나가마사가 외숙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으로 성을 잃고 자결했다. 요도도노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구출되어 목숨을 건졌다.
1573년, 아버지 아자이 나가마사가 외숙인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공격받아 성을 잃고 자결했다. 가문의 후계자이자 동생인 만보쿠마루도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죽음을 당했다. 요도도노는 어머니 오이치, 동생 하쓰, 에요와 함께 후지카케 나가카쓰에 의해 구출되었다. 이후 또 다른 외숙 오다 노부카네에게 거두어져 기요스성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582
[어머니 오이치의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암살당한 후, 어머니 오이치가 오다 가문의 가신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하면서 기타노쇼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1582년, 외숙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암살당했다. 같은 해 어머니 오이치가 오다 가문의 가신인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하여 가쓰이에의 거성인 에치젠국 기타노쇼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1583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양부와 어머니의 죽음]
양부 시바타 가쓰이에가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해 자결하고, 어머니 오이치도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583년, 양부 시바타 가쓰이에는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싸움인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하여 자결했고, 어머니 오이치 또한 남편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히데요시의 보호로 살아남은 요도도노를 비롯한 세 자매는 이후 오다 나가마스에게 거두어져 아즈치성에 머물렀다.
1588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다. 히데요시가 요도도노의 어머니 오이치를 사모하여 그녀를 닮은 요도도노를 선택했다는 설도 있다.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다. 차차가 측실이 된 데에는 차차의 어머니 오이치를 사모하였던 히데요시가 세 자매 중 가장 오이치를 닮은 차차를 선택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589
[아들 쓰루마쓰 출산과 요도 성 하사]
아들 쓰루마쓰를 출산하였고, 기뻐한 히데요시로부터 야마시로국 요도성을 하사받아 '요도노 가타'로 불리게 되었다.
1589년 아들 쓰루마쓰를 출산하였다. 아들의 탄생에 기뻐한 히데요시로부터 야마시로국 요도성(淀城)을 하사받으면서 「요도노 가타(淀の方)」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1591
[아들 쓰루마쓰의 죽음]
1589년에 태어난 아들 쓰루마쓰가 사망했으나, 곧 둘째 아들 히데요리가 태어나 후계자 문제가 해결되었다.
1589년 태어난 아들 쓰루마쓰는 1591년 사망하였으나, 1593년 차남 히데요리가 태어나면서 후계자 문제는 해결되었다.
1593
[차남 도요토미 히데요리 출산]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출산하여 도요토미 가문의 후계자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히데요리의 후견으로서 도요토미 가문 내에서 실권을 쥐었다.
1593년 차남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태어나면서 후계자 문제는 해결되었다. 히데요리의 후견으로 자신의 유모 등을 중용하여 도요토미 가문 내에서 실권을 쥐었다. 또한 고야산 지묘인에 양친의 초상을 모시고 아자이 일족의 명복을 빌기 위한 요겐인을 건립하였다.
1600
[세키가하라 전투 발발]
이시다 미쓰나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했다. 도요토미 가문은 표면적으로 관망했으나 상당수의 직할령을 잃었다.
1600년, 부교 이시다 미쓰나리가 다이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키면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였다. 이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은 표면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관망하는 태도를 유지하였으나 상당수의 직할령을 상실하였다.
1615
[오사카 전투 패배와 자결]
에도에 무가 정권을 수립하기 시작한 이에야스와 대립하다가 오사카 전투에서 완패하고 아들 히데요리, 가신 오노 하루나가 등과 함께 자결했다.
이후 에도에 노골적으로 무가 정권을 수립하기 시작한 이에야스와 대립하였으나, 1615년 오사카 전투에서 완패하면서 아들 히데요리, 가신 오노 하루나가 등과 함께 자결하였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히데요리와 함께 달아났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