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연표
1916
[일본 도쿄에서 출생]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월터 아우구스투스 드 하빌랜드, 어머니는 릴리안 폰테인입니다. 여동생 조앤 폰테인 역시 유명한 배우입니다.
올리비아 메리 드 하빌랜드는 1916년 7월 1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인 법학교수 월터 아우구스투스 드 하빌랜드였고, 어머니는 배우 릴리안 폰테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훗날 함께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연기 대결을 펼치게 될 여동생 조앤 폰테인이 있었습니다.
1933
[연극으로 배우 데뷔]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연극 활동을 통해 연기력을 다지고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33년 연극 무대에 오르며 배우로서 공식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전 연기 경력을 쌓는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35
[할리우드 영화계 진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영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1988년까지 활발하게 작품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1935년부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할리우드에서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첫 출연작 중 하나인 '캡틴 블러드'를 시작으로 그녀는 할리우드 황금기에 수많은 명작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1938
['로빈 훗의 모험' 출연]
영화 '로빈 훗의 모험'에 출연하여 에롤 플린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38년 개봉한 영화 '로빈 훗의 모험'에서 레이디 마리안 역을 맡아 에롤 플린과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그녀를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193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출연]
세계적인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멜라니 해밀턴 역으로 출연하여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이 역할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1939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멜라니 해밀턴 역을 맡았습니다. 이 역할을 통해 그녀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1946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단순한 미녀 배우를 넘어선 연기파 배우임을 입증했습니다.
1946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영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에서의 열연으로 제1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1946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작가 마커스 굿리치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7년 만인 1953년에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1948
[베네치아 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스네이크 핏'에서의 탁월한 연기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48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영화 '스네이크 핏'에서 정신병원에 갇힌 여인의 연기를 소름 끼치게 소화해냈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49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배우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1949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영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에서 압도적인 연기로 다시 한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두 번의 오스카를 거머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1952
1952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고전 미스터리 드라마 '나의 사촌 레이첼'에 출연하여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1953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53년 작가 마커스 굿리치와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1955
1955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프랑스 언론인 피에르 갈랑트와 결혼하며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 결혼에서 그녀는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1964
['허쉬...허쉬, 스윗 샬롯' 출연]
영화 '허쉬...허쉬, 스윗 샬롯'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습니다.
1964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영화 '허쉬...허쉬, 스윗 샬롯'에서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 주연을 맡아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고전 스릴러의 명작으로 꼽힙니다.
1979
1979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피에르 갈랑트와 이혼하며 두 번째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2010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문화적 공헌을 기리는 의미입니다.
2010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프랑스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의 최고 훈장 중 하나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습니다.
2017
[대영 제국 훈장 2등급(DBE) 수훈]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2등급(DBE)을 수여받았습니다. 이 훈장으로 그녀는 Dame 작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2017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01세의 나이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2등급(DBE)을 받았습니다. 이는 영국 문화에 대한 그녀의 공헌을 인정하는 작위급 훈장으로, 그녀는 '데임(Dame)'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0
[104세의 나이로 별세]
104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평화롭게 별세했습니다. 그녀의 사망으로 할리우드 황금기의 전설적인 배우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2020년 7월 26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10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할리우드 황금기 마지막 생존 배우 중 한 명으로, 그녀의 별세는 영화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