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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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설가, 반전 운동가, 노벨상 수상자 문학가(시인/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입니다. 그는 전쟁의 상흔과 사회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으로 시작하여,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문제를 탐구했습니다. 핵 시대의 지구와 우주를 그린 미래소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던진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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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35

[일본 에히메현에서 태어나다]

일본 에히메현 오세촌(현 우치코정)에서 7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주었으며, 아버지의 사망 후에는 어머니로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배웠다.

시코쿠 에히메현 우치코의 오세라는 마을에서 7형제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예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할머니는 1944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그 다음해 태평양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오에 겐자부로를 가르치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 닐스의 모험 같은 책을 사주었는데, 그는 그 책들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에 심취했다.

1957

[작가 데뷔 및 등단]

도쿄 대학 불문과 재학 중이던 1957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등단작인 <기묘한 일>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동시대 프랑스 및 미국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18세 때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로 갔으며, 도쿄 대학 불문과 재학 시절이었던 1957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시대 프랑스와 미국 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등단작은 <기묘한 일>이다.

1958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및 '젊은 일본 모임' 결성]

데뷔 이듬해인 1958년, 소설 <사육>으로 제39회 아쿠타가와상을 23세의 나이에 수상하며 당시 최연소 타이 수상자가 되었다. 같은 해 젊은 문화인들과 '젊은 일본 모임'을 결성하여 60년 안보투쟁에 반대했다.

데뷔한 다음 해인 1958년, 자신의 첫 장편소설 <아이 싹 훑기>를 발표했다. 같은 해에 <사육>으로 제39회 아쿠타가와상을 23세의 나이에 수상하였다. 1956년에 수상한 이시하라 신타로에 이어 당시 최연소 타이 수상자가 되었다. 한편, 같은 해 이시하라 신타로, 에토 준 등 젊은 문화인들과 ‘젊은 일본 모임(若い日本の会)’을 결성하여 60년 안보(안보투쟁)에 반대하였다.

1959

[도쿄대 졸업 및 작품 발표]

도쿄대를 졸업하고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대하여>라는 졸업논문을 썼다. 같은 해 새로운 장편 소설 <우리들의 시대>를 발표하며 작품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1959년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하였다. 졸업논문의 제목은 <사르트르 소설의 이미지에 대하여>. 같은 해에 새로운 장편 <우리들의 시대>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우울함과 허무감, 괴상하고 폐쇄적인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전면에 내세워 통렬한 비난을 받았으나, 이 작품으로 인해 처음으로 작품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이 해 작곡가인 다케미쓰 토오루를 알게 되었다.

1960

[이타미 유카리와 결혼]

1960년, 이타미 유카리(이타미 주죠의 누이동생)와 결혼했다.

1960년, 이타미 유카리(이타미 주죠의 누이동생)와 결혼했다.

1961

[<세븐틴>, <정치소년 죽다> 발표 및 단행본 발매 중단]

<정치와 성> 주제를 집대성한 <세븐틴>과 <정치소년 죽다>를 발표했으나,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과 연관되어 우익 단체의 협박을 받아 <정치소년 죽다>는 이후 단행본으로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와 성>의 주제를 집대성한 작품인 <세븐틴>을 《문학계》 1월호에, <정치소년 죽다>-세븐틴 제2부를 익월호에 발표하였다.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에서 촉발되어 범인인 야마구치 오토야를 모델로 ‘성을 탐닉하고, 정치에 도취한 우익소년’을 그렸으나, 이 작품을 둘러싸고 문예춘추 등이 우익단체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정치소년 죽다>는 그 이후 어떠한 단행본으로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1963

[장애를 가진 장남 오에 히카리 탄생]

두개골에 이상이 있어 지적 장애를 안은 장남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다. 이 사건은 작가에게 정신적인 전환점이 되어 이후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개골에 이상이 있어 지적 장애를 안은 장남 오에 히카리가 태어났다. 무거운 장애를 안은 아이의 탄생은 전후사회에서 희망이 없는 청년과 그 사회에 맞선 절망적 반항과 저주를 독자적으로 그려 온 작가에게 정신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64

[<개인적 체험>으로 신초샤 문학상 수상 및 <히로시마 노트> 연재 시작]

장남 히카리의 탄생을 기점으로 쓴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으로 제11회 신초샤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식의 죽음을 바라는 아버지의 정신 편력을 그렸다. 같은 해 르포르타주 <히로시마 노트> 연재를 시작했다.

히카리의 탄생을 기점으로 쓴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으로 제11회 신초샤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식의 죽음을 바라는 아버지 '버드(Bird)'가 온갖 정신 편력을 겪은 끝에 상상력에 의해 현실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같은 해 히로시마를 수차례 방문했던 경험과 세계원수폭금지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한 르포르타주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67

[<만엔 원년의 풋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

30대 초반에 장편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을 발표하고 최연소로 제3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일본 사회의 폐쇄적 정황에 대한 혁신적인 반항을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67년, 30대 초반에 장편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을 발표하고, 최연소(2010년까지도 기록으로 남아있음)로 제3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다. 만엔 원년(1860년)에 시코쿠의 마을에서 일어난 폭동과 100년 후의 일본에서 일어난 안보투쟁을 결합시켜 폐쇄적 정황에 대한 혁신적인 반항을 그려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69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출판]

일본 사회와 공존하는 비정상적이고 작은 세상들을 그려낸 단편집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를 출판했다.

일본 사회와 공존하는 비정상적이고 작은 세상들을 그려낸 단편집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를 출판했다.

1971

[천황관 개혁 주제의 중편 발표]

중편 <스스로 눈물을 닦는 아픈 날>과 <달의 남자>를 발표하며, 이쓰시마 사건을 토대로 천황관을 개혁할 것을 주제로 삼았다.

1971년에 발표된 중편<스스로 눈물을 닦는 아픈 날>,<달의 남자>(Moon Man)에서는 그 전년도의 이쓰시마 사건을 토대로 천황관을 개혁할 것을 주제로 삼았다.

1973

[<내 영혼에 이르러> 발표 및 노마문예상 수상]

<내 영혼에 이르러>를 발표하고 노마문예상을 수상했다. 이후 천황제나 핵문제 등 리얼리즘을 초월한 세계관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내 영혼에 이르러>(1973년, 노마문예상수상)를 발표했으며, 이후 천황제나 핵문제 대해 고민하고 리얼리즘을 초월한 세계관을 그리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핀치러너 조서>를 발표했다.

1979

[<동시대 게임> 발표]

<마을=국가=우주>의 역사를 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동시대 게임>을 발표했다.

1979년에 발표된 <동시대 게임>에서 <마을=국가=우주>의 역사를 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썼지만, 문화평론가로부터 명성을 얻은 후의 사치스런 것이라고 비판 받았다.

1982

[<레인트리(Rain Tree)를 듣는 여자들> 발표 및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

연작집 <레인트리(Rain Tree)를 듣는 여자들>을 발표하고 다음 해 제34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음악가 다케미쓰 토오루에게 영감을 주었다.

1982년, 연작집 <레인트리(Rain Tree)를 듣는 여자들>을 발표하고 다음해에 제34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다케미쓰 토오루는 연작집의 첫 번째 이야기인 <머리 좋은 <레인트리>>에 영감을 얻어 <비의 수목>(Rain Tree)을 작곡했다.

1983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로 오사라기 지로 상 수상]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여 자서체 소설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를 집필, 제10회 오사라기 지로 상을 수상했다.

1983년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에서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하여 그의 문헌이나 관련 연구를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깨달은 사상을 오에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며, 세심한 필체로 자서체 소설로 사생활을 그려내어 제10회 오사라기 지로 상을 수상했다.

1985

[<하마에게 물리다> 발표]

연합적군 사건을 사상적으로 총괄해 낸 <하마에게 물리다>를 발표했다.

1985년에는 연합적군 사건을 사상적으로 총괄해 낸 <하마에게 물리다>를 발표했다.

1986

[ 발표]

<동시대 게임>의 세계관을 현실세계로 비추어 낸 를 발표했다.

1986년에는 <동시대 게임>의 세계관을 현실세계로 비추어 낸 를 발표했다.

1987

[<그리운 날들로의 편지> 발표]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자신의 반생, 사상, 주역의 변천 등을 서사적으로 그려낸 <그리운 날들로의 편지>를 발표했다.

1987년에는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자신의 반생, 사상의 편력, 주역의 변천등을 서사적으로 그려낸 <그리운 날들로의 편지>를 발표했다.

1989

[<인생의 친척>으로 이토세이 문학상 수상 및 <치료탑> 연작 발표]

장편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인생의 친척>을 발표하고 제1회 이토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아이를 잃은 여자의 비극과 재기 과정을 그렸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는 SF 형식의 연작 <치료탑>과 <치료탑혹성>을 발표했다.

1989년에 <인생의 친척>에서는 장편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아이를 잃은 여자의 비극과 재기하기까지를 그려 내 제1회 이토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9-1990년에 발표 된 연작 <치료탑> 과 그 연속편인 <치료탑혹성>에서는 넓은 의미로의 SF형식을 사용하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빌려 핵과 인류구제의 주제를 그리고 있다.

1993

[3부작 장편소설 <타오르는 푸른 나무> 연재 시작]

<신조>에 있어서 가장 긴 장편소설 3부작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이후 노벨 문학상 수상 직전에 간행되었다.

1993년 9월부터 <신조>에 있어서 가장 긴 장편소설 3부작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94

[노벨 문학상 수상]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26년 만에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기념 연설에서 <애매한 일본의 나>를 주제로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연재중이던 1994년 10월 13일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26년만에 일본인으로써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수상기념 연설문, <애매한 일본의 나>를 통해 그는 일본적인 신비주의에 대한 회의, 조국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한국의 김지하나 중국 작가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 휴머니즘 정신을 말하였다. 노벨상 위원회가 이 연설문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타오르는 푸른 나무> 간행 시작]

노벨상 수상 직후, 연재 중이던 3부작 장편소설 <타오르는 푸른 나무>의 간행이 시작되었다.

노벨상 수상 직후인 11월부터 <타오르는 푸른 나무>간행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시코쿠의 마을을 무대로 한 <구세주>에 의한 전통 계승과 부활, 교회의 <구세주> 일파로의 공격, 시민과 교회의 격한 대립을 줄거리로 하여 아우구스티누스나 예이츠를 인용 <영혼의 구제>를 주제로 집필하였다.

1995

[<타오르는 푸른 나무> 완성 및 '마지막 소설' 선언]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라 선언했던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완성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에는 1995년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조일상 수상]

1994년도에 조일상(朝日賞)을 수상했다.

1995년 1월, 1994년도에 조일상(朝日賞)을 수상하였다.

1999

['마지막 소설' 선언 번복 후 집필 재개]

1995년 '마지막 소설'이라 했던 선언을 번복하고, 다케미쓰 토오루를 위한 신작 <공중회전>을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이는 테러를 막기 위해 탈교한 교주의 파란과 살인을 그린 전환작이다.

오에는 1995년 자신의 '마지막 소설'인 <타오르는 푸른 나무>를 완성했지만, 1996년 다케미쯔 토오루의 영결식에서 그를 위해 신작을 바치겠다고 약속하고 1999년 <공중회전>에서 집필을 다시 시작했다. 테러를 막기 위해 <탈교>한 교주 <의사(성인)>의 파란과 살인속에서 교단의 재건을 삼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전환작이 되었다. 이후의 창작활동은 오에 자신의 말을 빌려 <후기의 작품활동(Late Work)>이라고 불린다.

2000

[<뒤바뀐 아이> 발표]

이타미 주죠의 죽음을 위해 쓴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뒤바뀐 아이>(체인지링)를 발표했다.

이타미 쥬죠의 죽음을 위해 쓴 작품 <뒤바뀐 아이>(체인지링)(2000년)를 발표했다.

2002

[<우울한 얼굴의 아이> 및 <200년의 아이들> 발표]

<뒤바뀐 아이>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우울한 얼굴의 아이>와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 <200년의 아이들>을 발표했다.

<우울한 얼굴의 아이>(2002년)를 발표했으며, 3부작을 집필하고 있던 2002년에는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 <200년의 아이들>을 발표했다.

2005

[<안녕, 나의 책이여!> 발표]

<뒤바뀐 아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안녕, 나의 책이여!>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문제를 자신의 인생에 투영시켜 데뷔작으로 회귀하는 듯한 복잡한 구성을 택했다.

<안녕,나의 책이여!>(2005년)는 <스워드커플>(이상한 2인조)이 등장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문제를 자신의 인생에 투영시켜 데뷔작 <기묘한 일들>로 회귀하는 듯한 복잡한 구성을 택했다.

2006

[오에 겐자부로상 설립]

자신의 이름을 딴 '오에 겐자부로상'이 설립되어 다음 세대의 젊은 작가들을 응원하는 움직임에 발돋움했다.

창작활동 이외에는 2006년에 오에 겐자부로상이 설립되어 다음 세대의 젊은 작가들을 응원하는 움직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2007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 발표]

수장되었던 영화를 재구성하여 <이상한 노인>들의 늘그막의 모험담을 그린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를 발표했다.

그 후 2007년에는 수장되었던 영화를 재구성하여 <이상한 노인>들의 늘그막의 모험담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가 신조사에 실렸다.

2009

[<익사> 발표 및 북한 핵문제 관련 발언]

익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그려내려고 한 작가의 행동을 다양하게 표현해 낸 <익사>가 강담사에 실렸다. 같은 해 6월 2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강연에서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간의 신뢰관계 형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

2009년에는 익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그려내려고 한 작가의 행동을 다양하게 표현해 낸 <익사>가 강담사에 실렸다. 2009년 6월 2일, 강연에서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사이의 신뢰관계가 없으면 핵무기 폐기가 시작될 수 없다. 우리들이 싸우지 않는 태도를 일관한다면, 북한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만들어내는 커다란 조건이 되지 않을까"라는 뜻의 발언을 했다. 때마침 이 발언은 5월 25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나온 발언이여서 많은 물의를 빚었다.

2023

[일본 도쿄에서 사망]

2023년 3월 3일, 일본 도쿄에서 향년 88세의 일기로 사망하며 일본 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2023년 3월 3일, 일본 도쿄도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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