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밴드)
연표
1991
[오아시스 결성 및 노엘 갤러거 합류]
폴 맥기건, 폴 아서스, 토니 맥캐롤, 리암 갤러거로 구성된 밴드가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고, 이후 리암의 형인 노엘 갤러거가 합류하며 음악적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오아시스는 1966년 비틀즈의 곡에서 이름을 따온 레인(The Rain)이라는 밴드에서 출발했습니다. 폴 맥기건(베이스), 폴 아더스(기타), 토니 맥캐롤(드럼), 그리고 보컬 크리스 후튼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맥기건이 학교 친구인 리암 갤러거를 보컬로 영입한 후 리암은 밴드 이름을 '오아시스'로 바꾸었습니다. 몇 달 뒤,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드 매니저로 독일 투어 중이던 노엘 갤러거는 동생 리암의 공연을 보고 놀라 밴드 합류를 제안받았습니다. 그는 음악이 형편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리더로서 모든 곡을 쓰고 상업적 성공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다는 조건으로 합류했습니다.
[맨체스터 보드워크 클럽 첫 공연]
오아시스는 맨체스터의 보드워크 클럽에서 첫 공연을 가졌고,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드 매니저였던 노엘 갤러거가 이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오아시스는 1991년 8월 맨체스터의 보드워크라는 클럽에서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당시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로드 매니저로 독일 투어 중이었던 노엘 갤러거는 어머니와의 통화 중 리암이 밴드에서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의 공연을 보러 왔습니다.
1993
[크리에이션 레코드와 계약]
글래스고 클럽에서 크리에이션 레코드 사장 앨런 맥기의 눈에 띄어 4일 후 전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며 큰 기회를 잡았습니다.
1년 이상 라이브 공연과 연습을 하고 괜찮은 데모 테이프(《Live Demonstration》)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중, 1993년 5월 31일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 앨런 맥기(Alan McGee)를 만나게 되면서 밴드는 큰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오아시스는 연습실을 같이 쓰던 시스터 러버스(Sister Lovers)라는 밴드의 초대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King Tut's Wah Wah Hut이라는 클럽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아시스는 클럽 입장을 거부당했지만 막무가내로 쳐들어가 가까스로 오프닝 공연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그날 밤 자기 회사 소속밴드인 18 휠러(18 Wheeler)의 공연을 보러온 맥기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맥기는 그 자리에서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았고, 4일 후 오아시스는 크리에이션 레코드와 전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994
크리에이션 레코드와의 계약 후, 첫 싱글 'Supersonic'은 1994년 4월에 발매되어 차트 31위까지 올랐습니다. 이후 세 번째 싱글 'Live Forever'는 처음으로 영국 차트 1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 발매 및 기록 경신]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를 발매하여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영국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 기록을 세웠습니다.
녹음과 믹싱 과정에서 난항을 겪은 후 마침내 완성된 그들의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는 1994년 9월에 발매되어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영국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오아시스의 크리스마스 싱글로 커트되어 영국 차트 3위까지 오른 'Whatever'와 'Talk Tonight'은 보다 부드러운 사운드를 들려주며 다음 앨범의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리암-노엘 갈등 및 노엘의 잠시 이탈]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리암 갤러거의 돌발 행동으로 노엘 갤러거가 잠시 밴드를 떠났으나, 이후 복귀하여 'Talk Tonight'을 녹음했습니다.
최고의 한 해였지만 쉴 틈 없는 라이브 공연/녹음 스케줄과 방탕한 생활은 밴드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1994년 9월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필로폰에 취한 리암이 미국 관중들에게 무례한 발언을 하고 탬버린으로 노엘을 때리는 등 공연이 난장판으로 바뀌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노엘은 잠시 밴드를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버렸습니다. 노엘은 그 해 10월, 마음을 추스리고 텍사스의 녹음실로 복귀한 후 밴드를 떠나있는 동안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Talk Tonight'을 녹음했습니다.
1995
[노엘 갤러거의 논란의 발언]
노엘 갤러거가 블러 멤버들에 대한 논란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으나, 이후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기에 영국 언론은 같은 브릿팝 밴드였던 블러와 오아시스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집중 보도했습니다. 노엘 갤러거는 이에 발맞추어 옵저버(The Observer)와의 인터뷰에서 블러의 데이먼 알반과 알렉스 제임스가 '에이즈에 걸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는 이후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에 공식 서한을 보내 에이즈 환자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Some Might Say' 1위 및 드러머 교체]
2집의 첫 싱글 'Some Might Say'로 데뷔 이후 첫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드러머 토니 맥캐롤이 탈퇴하고 앨런 화이트가 영입되었습니다.
1995년 4월, 오아시스는 2집의 첫 번째 싱글 'Some Might Say'로 데뷔 이후 첫 싱글 차트 정상을 맛봤습니다. 동시에 드러머 토니 맥캐롤이 탈퇴하고, 스타클럽(Starclub)이라는 밴드 멤버였고 퍼커셔니스트 스티브 화이트(Steve White)의 동생인 런던 출신 앨런 화이트(Alan White, 1972-)를 폴 웰러의 추천으로 영입했습니다. 앨런 화이트는 '탑 오브 더 팝스'에 출연하여 'Some Might Say'를 함께 연주하며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베이시스트 폴 맥기건의 잠시 이탈 및 복귀]
베이시스트 폴 맥기건이 신경쇠약을 이유로 잠시 밴드를 떠났다가 스콧 맥로드로 대체된 후 다시 복귀했습니다.
1995년 9월 베이시스트 폴 맥기건이 신경쇠약을 이유로 잠시 밴드를 떠났습니다. 스콧 맥로드(Scott McLeod)가 그를 대신해 몇몇 투어와 'Wonderwall' 뮤직비디오에 참여했으나 그 역시 미국 투어 중 돌연 떠나버렸습니다. 맥로드는 나중에 노엘 갤러거에게 연락하여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맥기건을 돌아오도록 설득하여 투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발매 및 대성공]
두 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발매하여 영국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고,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브릿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소프트해진 사운드에 대한 엇갈린 평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첫 교체 멤버와 함께 작업한 오아시스의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영국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9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수록곡인 'Wonderwall'과 'Don't Look Back in Anger'는 각각 싱글 차트 2위와 1위를 기록했습니다. 앨범의 첫곡인 'Hello'는 따라 부르기 쉬운 곡조로 인해 오아시스의 라이브 공연 단골 메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평가들의 폭넓은 찬사를 얻으며 미국 차트 20위까지 오른 히트곡 'Champagne Supernova'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브릿팝 전쟁 발발]
블러와 오아시스가 같은 날 새 싱글을 발표하며 '브릿팝 전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블러의 'Country House'가 오아시스의 'Roll with It'을 판매량으로 앞서며 승리했습니다.
1995년 8월 14일, 블러와 오아시스는 같은 날 새 싱글을 발표하며 그 주 음악 뉴스를 떠들썩하게 한 '브릿팝 전쟁'(The Battle of Britpop)을 촉발시켰습니다. 결과는 한 주 동안 'Roll with It'으로 216,000장을 판 오아시스에 비해 'Country House'로 274,000장을 판 블러의 승리였습니다. 오아시스의 매니지먼트사는 이에 대해 싱글 가격 차이와 B-Side 버전 차이 등 몇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1996
['Top of the Pops' 역사적인 두 곡 연주]
오아시스는 비틀즈와 더 잼에 이어 'Top of the Pops'에서 하루에 두 곡을 연주한 세 번째 밴드가 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6년 2월, 오아시스는 비틀즈와 더 잼에 이어 영국의 음악 프로그램 'Top of the Pops'에서 하루에 두 곡('Don't Look Back in Anger'와 슬레이드(Slade)의 'Cum on Feel the Noize')을 연주한 세 번째 밴드가 되었습니다.
[미국 투어 중 노엘 귀국 및 해체설]
노엘 갤러거가 미국 투어 중 갑자기 귀국하여 밴드 해체설이 불거졌으나, 밴드는 해체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룹은 다음 달 미국 공연을 위해 떠났는데 불과 며칠 후 노엘이 혼자 귀국해버렸고 나머지 밴드들도 따라 귀국하게 됐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그들은 오아시스가 해체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즉시 발표하여 팬들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1996년 4월 27, 28일에는 맨체스터의 메인로드 축구장에서 자신들의 첫 번째 대규모 야외 콘서트를 가졌으며, 둘째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그 해 말 '...There and Then'이라는 이름의 비디오로 출시되었습니다.
[넵워스 콘서트 개최 및 관중 신기록]
넵워스에서 이틀 연속 콘서트를 열어 350만 명 이상이 응모하고 25만 명이 참가하는 당시 영국 야외 공연 관중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들의 경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오아시스는 1996년 8월 10, 11일 넵워스에서 연속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두 공연의 티켓은 불과 몇 분 만에 매진됐는데, 350만 명 이상의 응모자 중 당첨된 25만 명의 관중이 참가했으며, 이는 당시 영국 야외 공연 관중 신기록이었습니다.
[MTV Unplugged 공연 불발]
리암 갤러거가 목 상태를 이유로 MTV Unplugged 공연을 거부하고 노엘 갤러거가 대신 노래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다음 달 그룹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8월 23일 오아시스는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에서 유명한 MTV Unplugged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리암이 목 상태가 좋지 않다며 공연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공연장 2층에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공연을 지켜봤고, 노엘이 노래를 부르는 중 야유를 보냈다고 합니다.
1997
['Be Here Now' 발매 및 초기 성공과 비판]
세 번째 앨범 'Be Here Now'를 발매하여 발매 첫날 423,000장이 팔려 영국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가는 냉혹해졌습니다.
오아시스는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역사적인 애비 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s)에서 3집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Be Here Now'는 1997년 8월에 발매됐는데 전통적으로 월요일에 발매하던 것을 깨고 목요일에 발매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언론의 관심과 과대포장 덕분에 이 앨범은 발매 첫 날 423,000장이 팔려 영국 역사상 가장 빠른 판매고를 올린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영국 앨범 차트 2위에 올랐습니다. 초기 언론들의 리뷰는 긍정적이었지만, 일단 흥분이 가라앉고 나자 이 앨범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비판 및 몇몇 곡들이 지나치게 늘어지는 점과 무거운 사운드, 의욕과잉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습니다. 노엘은 이 앨범에 대해 '코카인에 취한 놈들이 ... 스튜디오에 모여서 ... 아무렇게나 만든 앨범'이라고 평했습니다.
1998
[컴필레이션 앨범 'The Masterplan' 발매]
B 사이드 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The Masterplan'이 발매되어 팬들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브릿팝 운동은 끝났고 밴드는 'Be Here Now'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재앙과도 같았던 'Be Here Now' 투어를 마친 후 언론의 혹독한 비평 속에 그들은 서로를 멀리하며 1998년을 별다른 활동 없이 보냈습니다. 또한 노엘 갤러거는 수많은 곡들을 B 사이드로 잘라버린 점에 대해서도 비판을 들었습니다. 다행히 1998년 11월 B 사이드 곡 14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The Masterplan'이 발매되면서 그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습니다.
1999
1999년 초 그들은 4번째 정규 음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월에 마크 '스파이크' 스텐트(Mark 'Spike' Stent)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앨범의 대부분 곡은 1998년 여름 코카인을 끊어 맑은 정신상태였던 노엘 갤러거가 작곡했습니다. 이 사실은 앨범의 가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원년 멤버 폴 아더스, 폴 맥기건 탈퇴]
원년 멤버인 폴 '본헤드' 아더스와 베이시스트 폴 '귁시' 맥기건이 탈퇴하며 밴드 구성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녹음 작업은 4월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되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8월 원년 멤버였던 폴 '본헤드' 아더스가 탈퇴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탈퇴 이유에 대해 노엘이 '아더스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탈퇴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좋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더스는 '다른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떠난다고 밝혔습니다. 오아시스 팬들은 며칠 후 베이시스트 폴 '귁시' 맥기건의 탈퇴 발표 소식을 접하며 더 큰 충격에 빠지게 됐습니다. 후에 맥기건은 친구의 탈퇴가 본인 스스로도 떠나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셋만 남게 된 오아시스는 앨범 녹음을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노엘 갤러거가 아더스의 기타 부분과 맥기건의 베이스 부분을 대부분 재녹음하였습니다. 또한 새 멤버 영입을 위한 노력도 계속했는데, 먼저 헤비 스테레오(Heavy Stereo)의 멤버였던 겜 아처가 리드/리듬 기타리스트로 확정됐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아더스의 탈퇴가 공식 발표된 지 불과 며칠 후 노엘 갤러거로부터 의사 타진을 받았다고 합니다. 밴드에 합류한 후 아처가 처음 맡은 역할은 1999년 11월 5일, 새 앨범에서 첫 싱글로 커트된 'Go Let It Out'의 뮤직비디오 촬영이었습니다. 그들은 라이드(Ride)와 허리케인 넘버원(Hurricane#1)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였던 앤디 벨(Andy Bell)을 새 베이시스트로 영입했고 1주일 후 이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2000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 및 리암의 문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두 차례 대규모 콘서트를 가졌으며, 첫째 날 공연은 라이브 앨범 'Familiar to Millions'로 발매되었으나, 둘째 날 공연은 리암의 행동으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여전한 형제 간의 불화로 인해 밴드는 두어 달 동안 해체설에 시달렸지만, 노엘은 영국과 아일랜드 공연을 위해 팀에 복귀했는데,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에서의 두 차례 대규모 콘서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중 첫째 날 공연이 2000년 말 'Familiar to Millions'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어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여 개국에서 방송된 둘째 날 공연은 엉망이었습니다. 분명 술에 취한 상태였던 리암이 별거 중이었던 부인 팻시 켄짓(Patsy Kensit)과 그의 형 노엘에 대해서 경멸적인 발언을 하는 등 횡설수설했던 것입니다. 또한 곳곳에서 음정과 가사를 틀리거나, 아예 노래를 부르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4집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발매]
크리에이션 레코드 해산 후, 노엘 갤러거의 음반사 빅 브라더 레코딩스를 통해 네 번째 앨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보다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였고, 'Go Let It Out'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크리에이션 레코드가 해산함에 따라 오아시스는 노엘을 의미하는 빅 브라더 레코딩스(Big Brother Recordings)라는 음반사를 설립하여 오아시스의 모든 음반을 영국과 아일랜드에 직접 출시하게 됐습니다. 오아시스의 4집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는 2000년 2월 발매되어 첫 주에 괜찮은 판매 실적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평단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전형적인 그들의 사운드를 다소나마 확실히 탈피한, 보다 실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밴드를 둘러싼 여러 변화와 함께 새 앨범 표지ㅡ그래픽으로 처리된 뉴욕 풍경ㅡ에는 겜 아처가 디자인한 새로운 로고가 박혀있고, 최초로 리암 갤러거가 작곡한 'Little James'가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비록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가 오아시스 앨범 중 현재까지 전 세계 판매량이 가장 저조한 앨범이긴 하지만, 'Go Let It Out'은 영국 차트 1위에 올랐으며 'Fuckin' in the Bushes'는 오아시스의 콘서트 오프닝 곡으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2001
[결성 10주년 기념 공연]
'Ten Years of Noise and Confusion'이라는 이름으로 밴드의 10년간 라이브 활동을 기념하는 공연을 영국에서 6회 가졌습니다.
2001년 한 해 동안 오아시스는 5집 앨범 작업과 월드 투어에 매진했습니다. 1월에는 남미에서 세 개의 축제에 참가한 후 영국으로 돌아와 스튜디오 작업을 했습니다. 5월에는 한 달 내내 북미 지역에서 The Black Crowes, Spacehog과 함께 Tour of Brotherly Love 투어를 가졌습니다. 이 투어에서는 앨런 화이트가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그의 형 스티브가 대신 연주를 했습니다. 공연의 피날레는 노엘과 겜이 The Black Crowes와 합동으로 록의 명곡들을 연주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6월에는 파리에서 닐 영의 콘서트를 도와주었고, 7월에는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및 태국 방콕의 페스티벌 쇼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두어 달 동안 녹음 작업을 한 후, 10월에는 런던, 맨체스터, 글래스고에서 6회 공연을 가졌는데 전회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Ten Years of Noise and Confusion'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공연은 밴드의 10년 간의 라이브 활동을 기념하는 공연이었습니다.
2002
[5집 'Heathen Chemistry' 발매]
앤디 벨, 겜 아처와 함께 작업한 첫 앨범이자 다섯 번째 앨범 'Heathen Chemistry'를 발매했습니다. 리암 갤러거가 작곡한 히트곡 'Songbird'가 수록되었습니다.
오아시스가 앤디 벨, 겜 아처와 함께 작업한 첫 앨범인 'Heathen Chemistry'는 2002년 7월 발매되었습니다. 이 음반은 밴드의 예전 앨범들에서부터 시도되던 사운드적 실험을 혼합했으며, 60-70년대 영국 록 분위기의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일취월장한 리암은 히트곡 'Songbird'를 작곡했습니다. 또한 'Heathen Chemistry'에서는 앨런 화이트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작곡에 참여함으로써 밴드 전체가 녹음 과정에 고른 역할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통해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보다 편안한 느낌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녹음실에서 술과 마약, 싸움을 자제한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Johnny Marr가 몇 곡에서 기타 및 백업 보컬로 참여했습니다. 'Heathen Chemistry'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은 미온적이었지만,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뮌헨 나이트클럽 폭력 사건]
리암 갤러거와 앨런 화이트 등이 뮌헨 나이트클럽에서 폭력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었고, 유럽 투어 일정이 연기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02년 12월 리암 갤러거, 앨런 화이트 및 밴드 스태프 3명이 뮌헨의 나이트클럽에서 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유럽 투어 중 독일 공연 일정이 연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아시스 쪽 전원이 구속되어 소속사에서 17만 파운드의 보석금을 납입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당시 그들은 만취한 상태였으며, 검사 결과 리암은 코카인도 투약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2년 후 이 사건으로 리암은 3만5천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는데, 일부 금액은 리암으로부터 사타구니를 심하게 걷어차인 경찰관의 치료비로 지급되었습니다. 한편 리암은 앞니 두 개가 부러졌고 화이트는 머리에 약한 부상을 입어 뇌 스캔을 받았습니다.
2003
['Songbird' 싱글 발매]
'Heathen Chemistry'의 네 번째 싱글이자 노엘 갤러거가 작곡하지 않은 첫 싱글 'Songbird'를 발매하여 영국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2003년은 'Heathen Chemistry'의 네 번째 싱글 'Songbird'를 발매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 곡은 오아시스의 싱글 중 노엘 갤러거가 작곡하지 않은 첫 번째 싱글이었으며, 그 해 2월 영국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3월에 더블린에서 두 번의 공연을 가진 후, 연기되었던 네 차례의 독일 공연을 마무리함으로써 'Heathen Chemistry' 투어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2004
[드러머 앨런 화이트 탈퇴 및 잭 스타키 합류]
오랜 기간 함께 했던 드러머 앨런 화이트가 탈퇴하고, 잭 스타키가 녹음 및 투어에 참여했으나 정식 멤버는 아니었습니다.
오아시스는 2003년 12월 말 콘월의 쏘밀즈 스튜디오(Sawmills Studios)에서 프로듀싱 그룹인 데쓰 인 베가스(Death in Vegas)와 함께 6집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당초 이 앨범은 'Definitely Maybe' 발매 10주년에 맞춰 2004년 9월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밴드의 거의 모든 곡에서 드럼을 맡았던 앨런 화이트가 2004년 1월 초 탈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의 형 스티브 화이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앨런이 밴드 생활을 더 이상 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여자친구와 함께 지내고 싶어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노엘 역시 인터뷰에서 자신은 앨런에게 아무런 나쁜 감정이 없으며, 단지 앨런이 사생활 때문에 오아시스에 전념하기 힘들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테렌스 커크브라이드(Terence Kirkbride)가 임시로 드럼 세션을 맡아 녹음이 진행됐는데, 그가 녹음한 곡은 'Mucky Fingers' 한 곡 뿐이었고, 더 후(The Who)의 드러머이자 비틀즈 링고 스타의 아들이기도 한 잭 스타키가 녹음에 참가했습니다.
2004년 6월, 오아시스와 잭 스타키는 1995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참가하게 됐고, 히트곡으로 짜여진 세트 리스트에 겜의 'A Bell Will Ring'과 리암의 'The Meaning of Soul'을 추가로 들려주었습니다. 이 공연은 그들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과 형제간의 다툼 문제도 있고 성의 없는 무대였다는 엇갈린 평을 받았습니다.
['Definitely Maybe: The DVD' 출시]
데뷔 앨범 10주년을 기념하여 'Definitely Maybe: The DVD'를 출시했습니다.
2004년 9월, 그들은 데뷔 앨범 발매 10주년을 기념하여 'Definitely Maybe: The DVD'를 출시했습니다. 이 DVD에는 고음질 버전의 1집 수록곡들과 4시간 분량의 라이브 공연 뒷이야기들, 밴드 멤버 및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005
[6집 'Don't Believe the Truth' 발매 및 성공]
여섯 번째 정규 앨범 'Don't Believe the Truth'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팬들과 비평가들로부터 2집 이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러 가지 난항을 겪은 후 마침내 그 해 10월부터 12월까지 로스앤젤레스의 캐피틀 스튜디오에서 밴드의 6집이 녹음되었습니다. 10년 이상 밴드의 리더로서 프로듀서 역할도 맡고 있던 노엘이 한 발 물러서고, 데이브 사르디(Dave Sardy)가 메인 프로듀싱을 담당했습니다. 3년간 여러 번에 걸친 녹음 끝에 2005년 5월 오아시스는 6번째 정규 음반 'Don't Believe the Truth'를 발표했고, 이 앨범으로 소니 BMG와의 계약이 만료됐습니다. 이번에도 전작인 'Heathen Chemistry'와 마찬가지로 노엘이 작곡을 전담하지 않고 멤버들이 공동 작업하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또한 이 앨범은 거의 10년간 드럼을 맡았던 앨런 화이트 대신 잭 스타키가 드럼을 맡은 첫 앨범이기도 했습니다. 이 음반은 팬들 및 비평가들로부터 공히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이후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찬사를 받았습니다. 'Lyla'와 'The Importance of Being Idle'이 각각 영국 싱글 차트 1위에(오아시스의 7번째, 8번째 차트 1위곡임), 'Let There Be Love'는 2위에 오르며 큰 히트를 쳤습니다. 오아시스는 Q Awards에서 특별인기상(a special People's Choice Award) 및 베스트 앨범상을 받게 됐습니다. 물론 이전 5개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Don't Believe the Truth' 역시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앨범의 큰 성공으로 오아시스는 자신들의 전성기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팬들을 흡입할 수 있음을 증명해냈습니다.
[대규모 월드 투어 진행]
런던 아스토리아 극장을 시작으로 2006년 3월 31일 멕시코 시티 공연까지 이어진 대규모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2005년 5월, 그들은 엄청난 대규모 월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2005년 5월 10일 런던 아스토리아 극장을 시작으로 2006년 3월 31일 매진을 기록한 멕시코 시티 공연까지 이어진 이 투어는, 1994년-1995년의 'Definitely Maybe'투어 이후로 가장 대규모 투어였는데, 26개국 110회의 공연에서 170만 명의 관객이 그들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또한 별다른 불상사 없이 끝났으며, 최근 10년간 오아시스의 투어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투어 스케줄에는 뉴욕 시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과 LA 헐리웃 보울 공연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우상인 존 레논이 그 두 장소를 두고 밴드가 미국 투어를 왔다면 반드시 공연해야 할 장소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 만큼, 갤러거 형제에게는 매우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2006
[베스트 앨범 'Stop the Clocks' 발매]
두 장짜리 베스트 앨범 'Stop the Clocks'를 발표했습니다. 소니뮤직과의 계약 만료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2006년 오아시스는 'Stop the Clocks'라는 이름의 두 장짜리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베스트 앨범 내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아했지만, 소니뮤직과의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후문입니다. 2006년 11월에는 05/06년 월드 투어를 기록한 'Lord Don't Slow Me Down'이라는 제목의 록 다큐멘터리가 발표됐습니다. 같은 달 노엘과 겜이 드러머 테렌스 커크브라이드와 함께 'Stop the Clocks'를 홍보하기 위한 짧은 투어를 시작하여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10여 차례 공연을 펼쳤습니다.
[첫 내한 공연]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졌으며, 예매 3주 만에 매진을 기록하며 한국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2006년 2월 21일 오아시스는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결성 이후 첫 내한 공연이었던 만큼 예매 3주 만에 5500여 석이 매진되어, 기획사 측에서 특별히 100석을 추가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오아시스는 그들의 공연이 늘 그렇듯 특별한 이벤트나 멘트 없이 19곡을 연주하며 음악 자체에 충실한 공연을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뜨거운 호응으로 화답했습니다. 이후 오아시스는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공연이 '우리가 가졌던 최고의 공연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함으로써 한국 공연이 만족스러웠음을 표시했습니다.
2007
2007년 2월 14일, 오아시스는 브릿 어워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수상 무대에서 잭 스타키와 함께 'Cigarettes & Alcohol', 'The Meaning of Soul', 'Morning Glory', 'Don't Look Back in Anger', 'Rock 'n' Roll Star'등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7집 'Dig Out Your Soul' 녹음 시작]
7집 앨범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갔으며, 데이브 사르디가 프로듀싱을 맡고 모든 멤버가 작곡에 참여했습니다.
노엘의 인터뷰를 통해 7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음악 잡지 'NME' 2007년 4월호에서 그는 '7집 앨범의 작곡은 벌써 끝났다고 보면 된다. 내가 8곡을 썼는데 꽤나 맘에 든다. 리암이 쓴 곡 중에 지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곡도 한두 곡 있다. 겜과 앤디의 곡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모여앉아서 '우리 녹음 언제 하지?' 이것만 결정하면 되는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잭 스타키가 더 후 투어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 앨범 녹음은 아무리 빨라도 2007년 8월 이전에는 시작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밴드는 2007년 11월 5일 스튜디오로 다시 들어가 2008년 3월 즈음에 녹음을 끝냈습니다. 새 앨범의 프로듀서는 2005년 전작 'Don't Believe the Truth'와 동일하게 데이브 사르디(Dave Sardy)가 맡았으며 전설적인 에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 후 L.A.에서 믹싱 작업을 거쳤습니다. 4명의 멤버가 모두 작곡에 참여했습니다. 노엘 갤러거가 6곡, 리암 갤러거가 3곡, 겜 아처가 1곡, 앤디 벨이 1곡씩 작곡했습니다.
2008
[잭 스타키 이탈 및 크리스 샤록 합류]
잭 스타키가 7집 앨범 녹음 후 밴드를 떠났고, 크리스 샤록이 투어 드러머로 합류했으나 공식 멤버는 아니었습니다.
2008년 5월, 잭 스타키는 밴드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녹음하고 밴드를 떠났습니다. 전(前) 로비 윌리엄스의 드러머인 크리스 샤록이 오아시스의 투어에서 잭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 역시 잭처럼 밴드의 공식적인 멤버가 아니며, 오아시스는 네 명의 멤버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2008년 6월, 밴드는 Sony BMG와 세 장의 앨범을 더 내기로 재계약하였습니다.
['Dig Out Your Soul' 월드 투어 시작]
7집 'Dig Out Your Soul' 발매 두 달 전부터 U.S.A 시애틀 공연을 시작으로 13개월간의 대규모 월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오아시스는 7집 'Dig Out Your Soul' 발매 2달 전인 2008년 8월 26일부터 U.S.A(Seattle)-WaMu Theater를 시작으로 마지막 공연인 2009년 8월 22일 U.K(Staffordshire) V Festival까지 13개월간 26개국(영국, 미국, 한국, 일본, 남아공, 독일, 아르헨티나 등) 115회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첫 싱글 'The Shock of the Lightning' 발매]
7집 앨범의 첫 싱글 'The Shock of the Lightning'이 발매되었습니다.
첫 번째 싱글은 노엘 갤러거가 쓴 'The Shock of the Lightning'으로 2008년 9월 29일 싱글컷되었습니다.
[7집 'Dig Out Your Soul' 발매]
일곱 번째 정규 앨범 'Dig Out Your Soul'이 발매되어 영국 차트 1위, 빌보드 200에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오아시스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인 'Dig Out Your Soul'은 10월 6일 발매되었으며, UK차트 1위, 빌보드 200에서 5위를 차지했습니다.
2009
[두 번째 내한 공연]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약 10,000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 밴드 오아시스는 1일 오후 8시 30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약 10,000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시키며 자신들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을 열었습니다. 3년 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팬들과 만난 이들은 두 시간 가까이 최신 앨범 수록곡을 포함한 21곡의 히트곡을 연주하며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습니다. 일본 공연 당시 세트리스트와 거의 똑같은 순서와 구성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오아시스의 일본 최고 인기곡 '왓에버(Whatever Noel's Acoustic Version)'가 빠진 대신 한국만을 위한 특별한 곡이라며 '리브 포레버(LiveForever Noel's Acoustic Version)'가 새롭게 포함된 것이 특징입니다.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참가 (세 번째 내한 공연)]
경기도 이천의 지산리조트에서 열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통해 세 번째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3개월 뒤 오아시스는 3번째 내한 공연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통해서 가졌습니다. 7월26일 오후 9시 30분 경기도 이천의 지산리조트에서 약 20,000여 락 팬들을 브릿락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노엘 갤러거 탈퇴 및 오아시스 해체]
노엘 갤러거가 오아시스 탈퇴를 선언했으며, 이후 리암 갤러거가 밴드의 해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2009년 8월 29일, 노엘 갤러거는 오아시스에서 탈퇴를 선언하였고, 이것은 팬들에게 큰 경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0월 8일 리암 갤러거가 '오아시스는 끝났다.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이로써 오아시스가 완전히 해체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리암 갤러거의 새 밴드 활동 예고]
리암 갤러거가 겜 아처, 앤디 벨, 크리스 샤록 등 전 오아시스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곡들을 녹음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09년 11월 19일, 리암 갤러거는 새 앨범을 겜 아처, 앤디 벨(현재는 베이시스트가 아닌 기타리스트로서), 크리스 샤록과 아직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베이시스트와 함께 새로운 곡들을 녹음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2010년 7월 안에 앨범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리암은 또한 라이브 키보디스트인 제이 달링턴 역시 밴드에 정식으로 가입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2010
[비디 아이(Beady Eye) 결성]
리암 갤러거가 전 오아시스 멤버들과 함께 '비디 아이(Beady Eye)'라는 이름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5월 26일 리암 갤러거는 지난 오아시스 멤버인 리암 갤러거(보컬)와 겜 아처(기타리스트), 앤디 벨(베이시스트), 크리스 샤록(드러머)의 구성을 발표하였으며, 스티븐 릴리화이트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비디 아이'라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성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오아시스 사이트에는 노엘 갤러거를 뺀 4명의 멤버 사진도 실었습니다.
2014
노엘 탈퇴 후 오아시스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던 리암은 남은 멤버들과 함께 비디 아이(Beady Eye)라는 밴드로 새롭게 활동하였으나 2014년 해체하였습니다.
2017
하지만 리암은 2017년 다시 음악계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솔로 데뷔 앨범 발매를 위해 워너 뮤직과 계약을 체결하여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24
[오아시스 공식 재결합 선언]
오아시스가 공식적으로 재결합을 발표했으며, 2025년 영국을 시작으로 '오아시스 라이브 25' 투어 콘서트를 개최하였습니다.
노엘은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라는 밴드로 활동하다가 2024년 8월 27일 다시 복귀했습니다. 2024년 8월 27일 오아시스가 다시 재결합을 했습니다. 2025년 영국을 시작으로 '오아시스 라이브 25' 투어 콘서트를 개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