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연표
1799
[오노레 발자크 탄생]
오노레 발자크가 투르에서 태어났다.태어나자마자 보모에게 맡겨져 어머니의 사랑 없는 유년 시절의 시작을 알렸다.
1803
[어머니에게 돌아오다]
태어나자마자 보모에게 맡겨졌던 어린 발자크가 4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감정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1807
[방돔 중학교 기숙 시작]
6년간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고 기숙하며 독서에 몰두했다.'생각의 충혈'이라는 특이한 증상까지 겪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의 면모를 보였다.
1813
1814
1816
[법학 공부와 견습]
젊은 발자크가 법학과에 지원하여 소르본에서 강의를 듣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견습했다.이 경험은 훗날 그의 소설 창작에 큰 영감을 주었다.
1819
[다락방 예비 작가 생활]
파리를 떠나기 싫어 문학에 몸을 바치겠다고 선언한 후, 부모님의 지원으로 2년간 다락방에서 글쓰기에만 몰두하며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1820
[첫 비극 '크롬웰' 발표]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1,906행의 비극 《크롬웰》을 집필했으나, 인척들의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1821
[필명으로 상업 문학 시작]
자신의 평판을 우려하여 '룬 경'이라는 필명으로 《L'Héritière de Birague》 등 '작은 상업문학 일'이라 불린 작품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1822
[필명 '생토뱅' 사용]
기존 필명을 버리고 '오라스 드 생토뱅'으로 활동하며 《Le Centenaire ou les Deux Beringheld》 등을 출간했다.그러나 이 중 일부는 비난을 받거나 출간 금지당하기도 했다.
1824
[문예지 참여와 집필]
폐간 예정인 문예지에 참여하여 《옷치장의 규범》, 《정직한 이들의 규범》 등 실용적인 작품들을 집필하였습니다.
1825
[인쇄소 설립 및 출판업 도전]
자신이 경멸하던 상업 문학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에 실망하여, 출판업자-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인쇄소를 설립했다.
1826
[출판업 실패와 부채]
야심 차게 시작한 출판업이 서적 판매 부진으로 실패하며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이는 평생 그를 괴롭히는 빚의 시작이었다.
1827
[활자 사업 재정 실패]
인쇄소 실패에도 불구하고 활자 주조 사업에 도전했으나, 이 역시 재정적 실패로 이어지며 빚은 더욱 늘어났다.
1828
[올빼미당 집필 시작]
마음의 평온과 자료 수집을 위해 푸제르로 떠나, 훗날 그의 첫 성공작이 될 정치-군대 소설 《올빼미당》의 집필을 시작했다.
1829
[첫 성공과 본명 사용]
정치-군대 소설 《올빼미당》을 본명으로 출간했으며, 《결혼의 생리학》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드디어 작가로서 첫 성공을 거두었다.이 책은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편지를 불러왔다.
1831
[조르주 상드와 인연]
남편과 멀리 지내던 오로르 뒤드방(조르주 상드)을 만나 《나귀가죽》을 읽게 하며 문학적 교류를 시작했다.이 외에도 올랭프 펠리시에 등 여러 여인들과 관계를 가졌다.
[이름에 '드'를 붙이다]
아버지 사망 2년 뒤, 자신의 이름 '발자크'에 귀족을 상징하는 '드(de)'를 붙여 '오노레 드 발자크'로 개명했다.
1832
[카스트리 공작부인과 만남]
팬레터를 보낸 카스트리 공작부인을 만나 교류를 시작했다.그녀는 그의 작품 속 여러 여성 인물의 모델이 되었다.
['인간 희극' 구상 시작]
뷔퐁의 박물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회 계층별 인간을 동물 종처럼 분류한 세계 최초의 소설 연작 '인간 희극'을 구상했다.이는 등장인물들이 여러 작품에 걸쳐 재등장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1833
[딸 마리카롤린 출생]
마리 뒤 프레네와 비밀스런 관계를 맺었으며, 그녀는 발자크의 딸 마리카롤린 뒤 프레네를 임신했다.그는 유언에 딸을 언급하기도 했다.
1834
[고리오 영감 집필]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인간 희극'의 핵심 특징인 등장인물 재등장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이로써 그의 작품들은 실제 인생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1836
[이탈리아 토리노 방문]
친분이 있던 귀도보니비스콘티 가의 대리인 자격으로 모호한 상속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탈리아 토리노를 방문했다.
1837
['잃어버린 환상' 집필]
'인간 희극'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잃어버린 환상》의 집필을 시작했다.이 작품은 발자크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38
['창녀들의 영광과 몰락' 집필]
장기간에 걸쳐 '인간 희극'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창녀들의 영광과 몰락》을 집필했다.이 작품은 파리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그린다.
[조르주 상드와 문학 교류]
노앙 성에서 조르주 상드와 6일 동안 오후 5시부터 아침 5시까지 밤새도록 잡담하며 문학과 인생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1841
['인간 희극' 총서 공식 기획]
자신이 집필한 모든 작품과 향후 작품을 아우르는 '인간 희극'이라는 거대한 총서를 공식적으로 기획했다.등장인물만 2천여 명이 넘는 방대한 규모로, 프랑스 문학사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1845
['인간 희극' 계획 축소]
145편에 달하는 '인간 희극' 계획이 그의 건강 악화로 인해 축소되었다.결국 작가 생전에는 총 90편이 출판되었다.
1846
['종매 베트' 출간]
그의 걸작 중 하나인 《종매 베트》를 출간했다.이 작품은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사실주의 문체가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한스카 딸 결혼식 참석]
사랑하는 에벨리나 한스카의 딸 안나의 결혼을 돕고자 비스바덴에 방문했다.이는 한스카 부인과의 오랜 관계의 한 부분이었다.
1847
['사촌 퐁스' 출간]
또 다른 걸작인 《사촌 퐁스》를 출간했다.이 작품 역시 '인간 희극'의 중요한 부분으로, 당대 사회상을 반영한다.
[창조력 고갈 예감]
점차 작품 집필 속도가 늦어지며 스스로 창조 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인정했다.그의 첫 대작 주인공처럼 이른 실패를 예감한 듯했다.
1848
[우크라이나 방문]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방문을 위한 여권을 받고 10월 2일 그곳에 도착했다.사랑하는 한스카 백작부인과의 결혼을 위한 행보였다.
1849
[결혼 좌절과 아카데미 낙선]
오랜 염원이었던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다시 한번 낙선했고, 한스카 백작부인과의 결혼을 위한 차르의 특별 칙령도 거절당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1850
[에벨리나 한스카와 결혼]
17년간 사랑을 키워온 에벨리나 한스카 공녀와 마침내 결혼했다.평생의 숙원이 이루어졌지만, 그의 건강은 이미 쇠약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