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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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 거장, 소설가, 언론인 + 카테고리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자 언론인. 90편이 넘는 대작 인간 희극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과 삶을 기록하려 한 야심가. 평생 빚에 쫓기면서도 하루 커피 40잔 16시간씩 집필한 열정적인 작업가. 결혼 5개월 만에 사망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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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799

[오노레 발자크 탄생]

오노레 발자크가 투르에서 태어났다.태어나자마자 보모에게 맡겨져 어머니의 사랑 없는 유년 시절의 시작을 알렸다.

1803

[어머니에게 돌아오다]

태어나자마자 보모에게 맡겨졌던 어린 발자크가 4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감정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1807

[방돔 중학교 기숙 시작]

6년간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고 기숙하며 독서에 몰두했다.'생각의 충혈'이라는 특이한 증상까지 겪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의 면모를 보였다.

1813

[건강 악화로 귀가]

과도한 독서로 인한 건강 악화로 심각하게 야위어져 학교에서 가족에게 돌려보내졌다.

1814

[파리로 이사, 학업 지속]

콜레주 드 투르에 통학하다 가족이 파리 마레 구로 이사하며 청소년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다.

1816

[법학 공부와 견습]

젊은 발자크가 법학과에 지원하여 소르본에서 강의를 듣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견습했다.이 경험은 훗날 그의 소설 창작에 큰 영감을 주었다.

1819

[다락방 예비 작가 생활]

파리를 떠나기 싫어 문학에 몸을 바치겠다고 선언한 후, 부모님의 지원으로 2년간 다락방에서 글쓰기에만 몰두하며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법학시험 합격 후 작가 결심]

법학과 1차 졸업 시험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을 포기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820

[첫 비극 '크롬웰' 발표]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1,906행의 비극 《크롬웰》을 집필했으나, 인척들의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1821

[필명으로 상업 문학 시작]

자신의 평판을 우려하여 '룬 경'이라는 필명으로 《L'Héritière de Birague》 등 '작은 상업문학 일'이라 불린 작품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1822

[필명 '생토뱅' 사용]

기존 필명을 버리고 '오라스 드 생토뱅'으로 활동하며 《Le Centenaire ou les Deux Beringheld》 등을 출간했다.그러나 이 중 일부는 비난을 받거나 출간 금지당하기도 했다.

1824

[문예지 참여와 집필]

폐간 예정인 문예지에 참여하여 《옷치장의 규범》, 《정직한 이들의 규범》 등 실용적인 작품들을 집필하였습니다.

1825

[인쇄소 설립 및 출판업 도전]

자신이 경멸하던 상업 문학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에 실망하여, 출판업자-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인쇄소를 설립했다.

1826

[출판업 실패와 부채]

야심 차게 시작한 출판업이 서적 판매 부진으로 실패하며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이는 평생 그를 괴롭히는 빚의 시작이었다.

1827

[활자 사업 재정 실패]

인쇄소 실패에도 불구하고 활자 주조 사업에 도전했으나, 이 역시 재정적 실패로 이어지며 빚은 더욱 늘어났다.

1828

[올빼미당 집필 시작]

마음의 평온과 자료 수집을 위해 푸제르로 떠나, 훗날 그의 첫 성공작이 될 정치-군대 소설 《올빼미당》의 집필을 시작했다.

1829

[첫 성공과 본명 사용]

정치-군대 소설 《올빼미당》을 본명으로 출간했으며, 《결혼의 생리학》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드디어 작가로서 첫 성공을 거두었다.이 책은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편지를 불러왔다.

1831

[조르주 상드와 인연]

남편과 멀리 지내던 오로르 뒤드방(조르주 상드)을 만나 《나귀가죽》을 읽게 하며 문학적 교류를 시작했다.이 외에도 올랭프 펠리시에 등 여러 여인들과 관계를 가졌다.

[이름에 '드'를 붙이다]

아버지 사망 2년 뒤, 자신의 이름 '발자크'에 귀족을 상징하는 '드(de)'를 붙여 '오노레 드 발자크'로 개명했다.

1832

[카스트리 공작부인과 만남]

팬레터를 보낸 카스트리 공작부인을 만나 교류를 시작했다.그녀는 그의 작품 속 여러 여성 인물의 모델이 되었다.

['인간 희극' 구상 시작]

뷔퐁의 박물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회 계층별 인간을 동물 종처럼 분류한 세계 최초의 소설 연작 '인간 희극'을 구상했다.이는 등장인물들이 여러 작품에 걸쳐 재등장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1833

[딸 마리카롤린 출생]

마리 뒤 프레네와 비밀스런 관계를 맺었으며, 그녀는 발자크의 딸 마리카롤린 뒤 프레네를 임신했다.그는 유언에 딸을 언급하기도 했다.

1834

[고리오 영감 집필]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인간 희극'의 핵심 특징인 등장인물 재등장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이로써 그의 작품들은 실제 인생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1836

[이탈리아 토리노 방문]

친분이 있던 귀도보니비스콘티 가의 대리인 자격으로 모호한 상속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탈리아 토리노를 방문했다.

1837

['잃어버린 환상' 집필]

'인간 희극'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잃어버린 환상》의 집필을 시작했다.이 작품은 발자크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838

['창녀들의 영광과 몰락' 집필]

장기간에 걸쳐 '인간 희극'의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창녀들의 영광과 몰락》을 집필했다.이 작품은 파리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그린다.

[조르주 상드와 문학 교류]

노앙 성에서 조르주 상드와 6일 동안 오후 5시부터 아침 5시까지 밤새도록 잡담하며 문학과 인생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1841

['인간 희극' 총서 공식 기획]

자신이 집필한 모든 작품과 향후 작품을 아우르는 '인간 희극'이라는 거대한 총서를 공식적으로 기획했다.등장인물만 2천여 명이 넘는 방대한 규모로, 프랑스 문학사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1845

['인간 희극' 계획 축소]

145편에 달하는 '인간 희극' 계획이 그의 건강 악화로 인해 축소되었다.결국 작가 생전에는 총 90편이 출판되었다.

1846

['종매 베트' 출간]

그의 걸작 중 하나인 《종매 베트》를 출간했다.이 작품은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사실주의 문체가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한스카 딸 결혼식 참석]

사랑하는 에벨리나 한스카의 딸 안나의 결혼을 돕고자 비스바덴에 방문했다.이는 한스카 부인과의 오랜 관계의 한 부분이었다.

1847

['사촌 퐁스' 출간]

또 다른 걸작인 《사촌 퐁스》를 출간했다.이 작품 역시 '인간 희극'의 중요한 부분으로, 당대 사회상을 반영한다.

[창조력 고갈 예감]

점차 작품 집필 속도가 늦어지며 스스로 창조 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인정했다.그의 첫 대작 주인공처럼 이른 실패를 예감한 듯했다.

1848

[우크라이나 방문]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방문을 위한 여권을 받고 10월 2일 그곳에 도착했다.사랑하는 한스카 백작부인과의 결혼을 위한 행보였다.

1849

[결혼 좌절과 아카데미 낙선]

오랜 염원이었던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다시 한번 낙선했고, 한스카 백작부인과의 결혼을 위한 차르의 특별 칙령도 거절당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1850

[에벨리나 한스카와 결혼]

17년간 사랑을 키워온 에벨리나 한스카 공녀와 마침내 결혼했다.평생의 숙원이 이루어졌지만, 그의 건강은 이미 쇠약해져 있었다.

[파리에서 사망]

오랜 투병 끝에 결혼 5개월 만에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그의 사망은 프랑스 문학계에 큰 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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