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전
연표
2010
[北, 한국군 훈련 경고]
북한이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영해에 대한 포 사격 시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경고한다"는 통지문을 대한민국 국방부에 발송했다.
이 통지문은 나중에 '전통문 논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연평도 해병대 사격훈련]
연평도 주둔 해병대가 서해상에서 4시간 동안 총 3, 657발의 사격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훈련은 북방한계선(NLL) 남쪽을 향해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北, 연평도 기습 포격 개시]
대한민국 해병대의 사격 훈련 종료 10분 후, 북한이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76.2mm 평사포, 122mm, 130mm 대구경 포 등을 이용해 무차별 포격을 시작했다.이 포격으로 해안포 포격을 받아 불타는 연평도의 모습이 전파되며 큰 충격을 주었다.
북한이 발사한 포탄 중에는 인명살상용(방사포, 열압력탄)이 포함되어 있어, 의도적인 인명 살상 목적이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해병대 K9 자주포 부대는 즉시 대피시설로 숨는 등 초기 혼란을 겪었다.
[공군 KF-16 긴급 출격]
북한의 포격이 시작되자마자 대한민국 공군이 KF-16 전투기 2대를 긴급 출격시켰고, 이후 추가로 KF-16 2대와 F-15K 4대를 출격시키며 즉각적인 대응 태세를 갖췄다.
긴급 출격한 전투기들은 공중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주시했으나, 실제 공습은 이뤄지지 않아 이후 '대응 수준 논란'의 배경이 되었다.
[해병대, 즉각 대응 포격]
북한의 최초 포격 후 13분 만에 대한민국 해병대 K-9 자주포 부대가 재배치되어 북측 무도 포진지 쪽에 50여 발, 개머리 포진지 쪽에 30여 발 등 총 80여 발의 대응 포격을 가했다.이는 북한의 기습 공격에 대한 즉각적인 자위권 행사였다.
대응 사격 과정에서 K-9 자주포 6문 중 절반이 작동 불능 상태였던 것이 드러나 '장비 불량 논란'을 야기했으며, 대응 사격의 정확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北 공격 중단, 대규모 피해]
약 1시간 동안 지속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170여 발 발사된 후 중단되었다.이 공격으로 대한민국 해병대원 2명 전사, 16명 부상, 민간인 2명 사망, 3명 부상 등 총 4명의 사망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다수의 가옥과 시설이 파괴되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군이 대한민국의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세계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며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다. 피해 규모는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민간인 김치백 씨와 배복철 씨가 사망했다.
[국회, 北 규탄 결의문 채택]
대한민국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사건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재석 의원 271명 중 찬성 261명, 반대 1명, 기권 9명으로 가결했다.이는 북한의 도발이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 행위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결의안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며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를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李대통령, 교전수칙 변경 지시]
이명박 대통령은 안보경제점검회의에서 "민간인이 공격받을 시 더욱 강력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서해 5도의 군 전력 증강"을 지시하며 교전수칙 수정을 명령했다.이는 국방력 강화를 통해 자국민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번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거리 120km의 저가 정밀타격 탄도 미사일 개발이 추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도발 원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전사 해병대원 장례식]
국군수도병원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해병대원 故 서정우 하사와 故 문광욱 일병의 장례식이 해병대장으로 엄수되었다.이들은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례식을 찾아 "영웅들이여, 고이 잠드소서"라는 글을 남기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사상 최대 규모 한미 연합훈련]
대한민국과 미국은 서해상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 해상 훈련을 4일간 실시했다.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하여 북한 전역과 중국 일부 주요 지역까지 작전 반경에 포함시켜 국제 사회의 큰 이목을 끌었다.
F-22 랩터 전투기, E-8 조인트스타스 정찰기, 한국군의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함 등이 동원되었으며, 중국은 이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계획했던 보복 공격을 미국이 만류했음을 회고록에서 밝혔다.
[김관진 국방장관 취임]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사임한 후, 김관진 장관이 새로 취임했다.그는 취임사에서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력한 대응 의지를 밝혔다.
김관진 장관의 취임과 함께 대한민국군의 교전규칙이 대폭 강화되고 국방백서에 '적'이라는 표현이 다시 사용되는 등 대북 정책 기조에 변화가 나타났다.
[ICC, 전범 여부 예비조사]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의 진정에 따라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침몰 두 사건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다.이는 북한의 행동이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배한 전쟁 도발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연평도 포격이 "계획적인 한국 영토 조준 공격,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 대량 살상용 방사 포탄 사용" 등으로 보아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며 김정일과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했다.
[연평도 단독 포격 훈련]
대한민국군은 연평도 부근 서해상에서 K-9 자주포, 105mm 견인포, 해안포 등 다양한 화기를 동원한 단독 포격 훈련을 실시했다.북한은 이 훈련에 대해 핵전쟁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위협했으나, 실제 군사적 도발은 발생하지 않았다.
훈련은 오후 2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130여 발의 포탄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10km 이상 떨어진 곳을 향해 발사되며 진행됐다. 주한미군도 U2 정찰기를 출격시키는 등 훈련에 참여하여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김정은, 北軍 영웅 칭호 수여]
북한 김정일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연평도 포격 당시 사망한 북한군 5명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북한이 연평도 포격을 자신들의 승리로 포장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포격 이후에도 도발에 대한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주장을 계속했다.
2011
[北, 남북 대화 제의]
연평도 포격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이나 6자회담 재개를 제안하는 등 대화 국면을 유도하려 했다.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주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많았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북한의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2011년 2월 9일 남북 군사 실무 회담이 열렸으나 입장 차이로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연평도 포격전으로 명칭 변경]
대한민국 국방부는 해병대와 전사자 유족의 지속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사건의 공식 명칭을 기존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했다.이는 사건의 성격을 단순한 도발이 아닌 우리 군의 적극적인 교전 행위로 재평가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해병대사령부는 2012년과 2015년에도 명칭 변경을 건의했으나 당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변경 전에도 해병대는 자체적으로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2014
[美 국방장관 회고록 파문]
미국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회고록 를 출간, 연평도 포격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공중 공격과 포격이 포함된 보복 공격을 계획했으나, 미국 정부가 확전을 우려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하여 계획이 철회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가 한미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하는 서해 연합훈련 실시를 조건으로 보복 계획을 철회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