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연표
1923
[엔도 슈사쿠 출생]
일본 도쿄에서 은행원 아버지 엔도 쓰네히사와 바이올린 학생 어머니 아사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훗날 실업가이자 작가로도 활동했으며, 어머니는 오카야마현의 토호 후손이었습니다.
1923년 3월 27일, 도쿄부 기타토요시마군 니시스가모정(지금의 도쿄도 도요시마구 기타오쓰카)에서 아버지 엔도 쓰네히사와 어머니 아사히(옛 성은 다케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제삼은행 은행원이었고 어머니는 도쿄 음악학교 바이올린과 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훗날 안도 공업 사장 등을 역임한 실업가이자 시라미즈 코지라는 필명으로 '기리시탄 다이묘 오토모 소린'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오카야마현 가사오카시 출신으로 오카야마현 토호인 다케이토의 먼 후손이었습니다.
1926
[만주 다롄으로 이주]
아버지의 전근으로 가족이 만주의 관동주 다롄으로 이사하며,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내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바이올린 연습에 매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의 학업 압박을 경험합니다.
1926년, 아버지 쓰네히사가 제삼은행에서 야스다 은행으로 전근하게 되면서 가족은 만주의 관동주 다롄으로 이사합니다. 엔도는 이곳에서 어머니가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고, 아버지에게서 공부를 잘하는 형 쇼스케와 비교당하며 강렬한 열등의식을 느끼며 성장했습니다.
1933
[귀국 및 가톨릭과의 인연 시작]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돌아와 백모의 집에서 동거합니다. 백모의 영향으로 가톨릭 슈쿠가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며, 기독교 신앙과의 첫 만남을 가집니다.
1933년, 엔도가 열 살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고(정식 이혼은 1937년), 엔도는 어머니 아사히를 따라 일본으로 돌아와 백모(아사히의 언니)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 해 8월 효고현 고베시의 시립 롯코 소학교로 전입했으며, 백모의 영향으로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가톨릭 슈쿠가와 교회 성 테레지아 대성당에 일가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공교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교회와 가까운 연못 주위로 이사했습니다.
1935
[가톨릭 세례를 받다]
사립 나다 중학교에 입학한 해, 어머니와 함께 가톨릭 슈쿠가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로'라는 세례명을 받으며 정식으로 크리스천이 됩니다. 이는 그의 삶과 작품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1935년 엔도는 사립 나다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고바야시 세이신 여자학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게 된 어머니 아사히가 5월 29일에 세례를 받고, 6월 23일에는 엔도와 형 쇼스케가 나란히 가톨릭 슈쿠가와 교회 성 테레지아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아사히의 세례명은 마리아, 슈사쿠의 세례명은 바울로였습니다.
1943
[게이오기주쿠 대학 입학 및 문학적 성장]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예과에 입학한 후, 아버지와의 의절로 생활 기반을 잃고 가톨릭 학생 기숙사 '흰 비둘기 기숙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철학자와 문학 평론가 등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며 프랑스 가톨릭 문학에 심취하게 됩니다.
1943년 4월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예과에 입학했지만, 의학부 예과를 바라던 아버지 쓰네히사가 격노하여 의절합니다. 생활 기반을 잃은 엔도 슈사쿠는 친구의 집에 의탁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다가 철학자 요시미쓰 요시히코가 사감을 맡고 있던 가톨릭 학생 기숙사 흰 비둘기 기숙사에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요시미쓰의 영향으로 자크 마리탱을, 친구 마쓰이 요시히로의 영향으로 릴케 등을 읽게 됩니다. 또한 요시미쓰의 소개로 문학평론가 가메이 가쓰이치로, 소설가 호리 다쓰오 등과 만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웁니다.
1947
[비평가로 데뷔]
평론 「신들과 신과」가 『사계』에 게재되며 비평가로 공식 데뷔합니다. 이후 여러 문학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져나갑니다.
1947년 12월, 엔도는 처음으로 평론 「신들과 신과」가 진자이 기요시의 인정을 받아 가도카와 서점의 『사계』 제5호에 게재되며 비평가로 데뷔합니다. 그 뒤 사토 사쿠의 추천으로 평론 「가톨릭 작가의 문제」를 『미타 문학』지상에 발표된 것을 계기로, 사토 사쿠의 추천으로 『미타 문학』, 진자이 기요시의 추천으로 『고원』 등의 문학 잡지에 평론을 다수 기고하게 됩니다.
1950
[프랑스 유학]
프랑스의 가톨릭 문학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패전 후 처음으로 프랑스 유학생으로 유럽으로 떠납니다. 리옹 대학에 입학하여 프랑스 생활을 만끽하며 견문을 넓히지만, 폐결핵이 재발하여 유학을 중단하고 1953년 귀국합니다.
1950년 6월 4일, 엔도 슈사쿠는 프랑스의 가톨릭 문학을 보다 깊이 연구하기 위해 패전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유학생으로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프랑스 국적의 배인 마르세예즈 호를 타고 요코하마 항을 출발, 7월 5일에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도착했습니다. 신학기까지 루앙의 건축가 로빈느의 집에 머물렀으며, 9월에 리옹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유학 시절 공부하는 틈틈이 통상의 평론 활동과 프랑스에서의 견문 등을 에세이나 소설풍의 르포르타주로 정리했습니다. 1951년 여름에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의 무대가 된 프랑스 남서부 랑드 지방을 도보로 여행하는 등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초여름에 폐결핵이 일어나 각혈을 하기에 이르렀고, 6월부터 8월까지 콩블루의 국제 학생 요양소에 입소했습니다. 퇴소 후에는 파리로 이동하였으나 12월에 또 다시 폐결핵이 악화되었고, 현지 주르당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병상의 악화로 프랑스에서의 생활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리용 대학의 박사논문 작성도 단념해야 했습니다. 1953년 1월에, 일본 국적의 배 아카기마루로 귀국길에 올랐고, 2월에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1953
[어머니의 급사]
어머니 아사히가 뇌일혈로 급사합니다. 유학 생활을 마친 후 비평가로서 서서히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1953년 12월에 엔도의 어머니 아사히가 뇌일혈로 급사했습니다. 귀국 이후 엔도의 몸 상태는 좋지 못했으나, 7월에 유학 시절의 에세이들을 모은 『프랑스의 대학생』을 하야카와 서방에서 처음으로 출판하며 비평가의 길을 천천히 내딛던 중이었습니다.
1955
[아쿠타카와 상 수상 및 결혼]
소설 「하얀 사람」으로 제33회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 9월, 오카다 준코와 결혼하며 가정을 꾸립니다.
1954년말에 집필한 그의 첫 소설 「아덴까지」는 동료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집필한 소설 「하얀 사람」은 이듬해 1955년 7월에 제33회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써 두각을 보였습니다. 그 해 9월, 2년간 교제해온 오카다 준코와 결혼했습니다. 처음에는 오카다의 아버지가 엔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나, 불문학자 고바야시 마사시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려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1957
[『바다와 독약』 발표, 작가 지위 확립]
규슈 대학 생체해부 사건을 다룬 소설 『바다와 독약』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합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57년 엔도 슈사쿠는 규슈 대학 생체해부 사건(일명 아이카와 사건)을 주제로 한 소설 『바다와 독약』(문학계, 6・8・10월)을 발표하고, 소설가로써의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작품에 대한 일각의 반발이 거셌고, 엔도가 이 작품을 발표한 후 엔도 가문에는 협박과 함께 일본도가 배달되기까지 했습니다. 『바다와 독약』은 이듬해 1958년 4월 문예춘추신사에서 출판되었고, 12월에 제5회 신쇼샤 문학상, 제12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하며 그의 문학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1960
[폐결핵 재발 및 대수술]
프랑스 등 유럽 여행 후 폐결핵이 재발하여 병원에 입원합니다. 이듬해 세 번의 폐 수술을 받는 등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이 경험은 그의 후기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1959년 11월 마르키 드 사드에 대한 공부를 위해 아내와 함께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예루살렘을 여행한 뒤 1960년 1월 귀국합니다. 귀국 후 4월에 폐결핵이 재발하여 도쿄 대학 전염병 연구소 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이 더뎌 연말에는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이듬해인 1961년에는 세 번에 걸쳐 폐 수술을 받았습니다(1월 7일, 21일, 12월 말). 위험도가 높은 세 번째 수술 전날에는 문병객이 가져온 종이 후미에를 보았다고 합니다. 한때 위독한 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이듬해인 1962년 5월에 간신히 퇴원했습니다.
1966
[대표작 『침묵』 발표 및 문학상 수상]
일본 막부의 기리시탄 탄압을 소재로 한 그의 대표작 『침묵』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으로 제2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1966년 엔도 슈사쿠는 그의 대표작이 될 작품 『침묵』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으로 엔도 슈사쿠는 제2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했습니다. 같은 해에 제7차 미타 문학의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침묵』은 홍성사에서 한국어판으로 출판되었으며, 서구권에서도 번역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레이엄 그린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지만, 소설의 테마와 결론이 당시 선고위원 일부로부터 거부감을 불러일으켜 무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973
[예수 관련 작품 및 문학상 수상]
『사해의 언저리』와 예수 평전인 『예수의 생애』를 발표합니다. 이후 1978년 『그리스도의 탄생』을 발표하며 제30회 요미우리 문학상 평론・전기상을 수상합니다.
1973년 『사해의 언저리』를 발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평전 『예수의 생애』를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1978년에는 또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평전 『그리스도의 탄생』을 발표했으며, 이 작품으로 제30회 요미우리 문학상 평론・전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예수를 천상의 그리스도나 교의에 의해 종교적 개념이 된 신앙의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1980
[『사무라이』로 노마 문예상 수상]
하세쿠라 쓰네나가를 소재로 한 『사무라이』로 제33회 노마 문예상을 수상합니다. 1980년대부터는 '전국 3부작'을 연재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갑니다.
1980년, 하세쿠라 쓰네나가를 소재로 한 『사무라이』로 제33회 노마 문예상을 수상했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무공야화》를 토대로 하는 소설 『반역』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1988년 1월 26일 - 1989년 2월 7일)하고, 소설 『결전의 때』를 산요 신문 등에 연재(1989년 7월 30일 - 1990년 5월 31일), 소설 『남자의 일생』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연재(1990년 9월 1일 - 1991년 9월 13일)했습니다. 이 세 작품은 엔도 슈사쿠의 '전국 3부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993
[『깊은 강』 발표]
『깊은 강』을 발표합니다. 이 소설은 '공시성'을 언급하며 인도 갠지스강을 무대로 사랑, 악, 영혼의 구제를 다루었으며, 1995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1993년 『깊은 강』을 발표했습니다. 이 소설은 첫머리에서 '공시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공시성'에 대해서는 1992년 8월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수필 「만화경」의 「인생의 우연」에서 F. 데이비드 피트의 『공시성』을 절찬하며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뛰어오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1995년 『깊은 강』을 원작으로, 인도의 대지모와도 같은 갠지스강을 무대로 사랑과 악과 영혼의 구제를 주제로 하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촬영할 때 인도 정부의 협력으로 인도에서의 첫 장기 로케이션이 실현되었습니다.
1996
[엔도 슈사쿠 사망]
신장병 치료 중 뇌출혈과 폐렴이 악화되어 73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많은 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으며, 유언에 따라 『침묵』과 『깊은 강』 두 작품이 그의 관에 함께 넣어졌습니다.
1996년 4월, 신장병 치료를 위해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에 입원했고, 9월에 뇌출혈이 일어났습니다. 그 달 28일에 점심을 먹다 폐로 잘못 넘기는 바람에 호흡 정지에 빠졌고, 병원균이 몸으로 확산되면서 폐렴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는 폐가 한쪽밖에 없는 그에게 치명적인 사태였습니다. 다음날인 9월 29일 오후 6시 36분,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으로 엔도 슈사쿠는 자신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장례는 기쿠정의 성 이그나시오 교회에서 이루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생전 본인의 의지대로 『침묵』과 『깊은 강』 두 작품이 그의 관에 함께 넣어졌으며 가톨릭 후추 묘지에 매장되었습니다. 2015년 12월에 성 이그나시오 교회 지하 납골당으로 옮겨졌습니다.
2000
[엔도 슈사쿠 문학관 개관]
『침묵』의 무대가 된 일본 나가사키현 니시소노기군 소토메정(지금의 나가사키시)에 '소토메 정립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개관했습니다.
유족이나 친교가 있던 관계자들에 의해 엔도 슈사쿠의 문학관 건설 구상이 추진되었고, 2000년 5월에 『침묵』의 무대가 된 일본 나가사키현 니시소노기군 소토메정(지금의 일본 나가사키 시)에 '소토메 정립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개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