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토르 베를리오즈
연표
1803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
프랑스 라 코트 생 앙드레에서 의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훗날 세계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작곡가가 될 그의 첫 울음소리였습니다.
1822
[의학 대신 음악을 선택]
아버지의 뜻에 따라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글루크의 오페라에 깊이 매료되어 의사의 꿈을 접고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1826
[파리 음악원 입학]
23세에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하여 파리 음악원에 입학, 정식으로 작곡가의 길에 들어섭니다.보수적인 교수들과 잦은 음악적 마찰을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이 시기에 악기 음향의 효과적인 활용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으며, 그가 작성한 악기 사용법은 훗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증보하여 이 분야의 고전으로 남게 됩니다.
1830
[세계 최초 '환상 교향곡']
대표작이자 데뷔작인 《환상 교향곡》을 발표하며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그는 이 작품을 통해 '표제 음악'이라는 새롭고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세계 최초로 창시하며 낭만주의 음악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습니다.
《환상 교향곡》은 그가 짝사랑하던 여배우 해리엣 스미드슨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으며, 문학적 서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로마상 수상과 귀국]
칸타타 《사르다나팔의 죽음》으로 로마상 대상을 수상하여 유학을 떠났으나, 예정된 3년 중 18개월 만에 파리로 귀국하였습니다.
1839
[오페라 '첼리니' 참패]
야심 차게 선보인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한동안 예술가로서 깊은 침체기를 겪어야 했습니다.이는 프랑스 내에서 그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1842
[첫 해외 공연의 시작]
프랑스 음악계의 냉대 속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외국으로 첫 공연 여행을 떠났습니다.독일을 방문하여 새로운 영감을 얻었으며, 이 시기에 《로마의 사육제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1847
[러시아에서 대성공]
러시아 공연 여행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그의 혁신적인 음악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러시아 음악계의 거장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856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
오랜 기간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던 그에게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 선출은 큰 의미였습니다.이는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해주었습니다.
1869
[파란만장한 삶의 끝]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두며 파란만장했던 음악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생전에는 고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그의 위대한 업적이 재평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