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연표
BC 4C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2월, 아테네 출신 부모인 네오클레스와 카이레스트라테 사이에서 소아시아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헬레니즘 시대의 중요한 사상가로 성장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소년 시절부터 플라톤 학파의 팜필루스 밑에서 약 4년간 철학을 공부하며 그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그의 독자적인 철학 체계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피쿠로스는 18세부터 2년간 아테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이 기간 동안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사망(기원전 323년) 이후 페르디카스 통치 시기에 사모스섬의 아테네 이주민들이 콜로폰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군 복무를 마친 에피쿠로스도 콜로폰에서 가족과 재회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콜로폰으로 이주한 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한 자연주의 철학자 나우시파네스에게서 학문을 배우며 자신의 원자론적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원전 311년과 310년에 걸쳐 에피쿠로스는 미틸리니에서 자신의 철학을 강연했으나, 당시 보수적인 사상가들의 반발로 인해 결국 미틸리니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미틸리니에서 쫓겨난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10년, 람프사쿠스에 정착하여 자신만의 철학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는 훗날 아테네 '정원' 학파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아테네에 '정원' 학파 설립]
아테네에 '정원'(the Garden)이라는 학파의 거점을 마련하고 에피쿠로스 학파의 활동을 본격화했습니다. 이곳은 우정과 공동체를 중시한 독특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기원전 306년,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그의 학파가 만남의 장소로 사용했던 '정원'(the Garden)을 설립했습니다. 이 학파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예외 없이 받아들였으며, 우정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철학적 탐구를 실천하는 혁신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인간 평등 사상 도입 및 실천]
학파에 여성과 노예를 정식으로 받아들여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근본적인 인간 평등 사상을 도입하고 실천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정원' 학파를 설립하며, 당시 사회적 통념을 깨고 여성과 노예들을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그리스 사회에 근본적인 인간 평등 사상을 소개하고 실천한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BC 3C
[원자론 및 쾌락주의 철학 정립]
원자론적 유물론에 기반한 자연학과 쾌락을 고통의 부재로 정의하는 윤리학, 즉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를 목표로 하는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정립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주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면서도 결정론을 거부하고 자유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윤리학에서는 쾌락을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상태, 즉 마음의 평온(아타락시아)과 육체의 무통(아포니아)으로 정의하는 독자적인 쾌락주의를 정립하여 많은 추종자를 얻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270년, 지병인 요로결석과 이질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철학적 사색에서 오는 기쁨으로 고통을 상쇄하며 제자 이도메네우스에게 유언과 같은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에피쿠로스 학파에 큰 영향을 미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