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 러브레이스
연표
1815
[에이다 러브레이스 출생]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저명한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앤 이사벨라 바이런의 외동딸로 영국에서 태어나다. 그녀는 바이런의 유일한 합법적 자녀였다.
1815년 12월 10일, 어거스터 에이다 바이런이라는 이름으로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앤 이사벨라 바이런의 외동딸로 영국에서 태어났다. 바이런에게는 혼외 자녀들이 있었지만, 에이다는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통해 출생한 유일한 법적 자녀였다.
1816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출국]
생후 한 달 된 에이다는 아버지 바이런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로 어머니와 함께 친정으로 쫓겨나다. 이후 아버지 바이런은 영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816년 1월 16일, 아버지 바이런은 앤 이사벨라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태어난 지 한 달 된 에이다와 함께 친정으로 쫓아냈다. 당시 영국법은 아버지에게 전적인 양육권을 부여했지만, 바이런은 친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석 달 뒤인 4월 21일 영원히 영국을 떠나버렸다.
1823
[아버지의 죽음과 어린 시절의 병약함]
에이다가 8살이 되던 해,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쟁 중 얻은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다. 에이다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여 같은 해 일시적인 시력 상실을 동반한 극심한 두통을 겪기도 했다.
에이다가 8살이 되던 해, 그리스 독립전쟁으로 얻은 질병으로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이 숨을 거두었다. 에이다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병약했고, 같은 해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할 정도의 두통을 앓았다. 14살 때는 홍역에 걸려 병상에서 지내다 16살이 되어서야 겨우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1832
[수학적 재능의 개화]
17세 무렵, 저명한 수학자 드모르간을 비롯한 여러 스승으로부터 수학과 과학을 배우며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하다. 드모르간은 그녀에게 일류 수학자가 될 재능이 있다고 평했다.
어머니는 에이다가 아버지를 닮는 것을 두려워하여 문학 대신 수학이나 논리학에 심취하게 유도했다. 에이다는 윌리엄 프렌드, 매리 소머빌, 드모르간 등 19세기의 저명한 과학자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웠다. 17세 무렵부터 에이다는 수학적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으며, 드모르간은 그녀에게 일류 수학자가 될 재능이 있다고 어머니에게 전했다.
1833
[찰스 배비지와의 운명적인 만남]
스승 매리 서머빌의 주선으로 당대의 저명한 발명가이자 수학자인 찰스 배비지를 만나다. 에이다는 배비지가 고안한 '해석기관'에 대한 연구에 매료되어 그와 깊은 협력 관계를 시작하다.
에이다는 그를 가르친 스승들 중에서도 여성 과학자인 매리 서머빌을 좋아하고 따랐으며, 서머빌의 주선을 통해 찰스 배비지를 만나게 되었다. 배비지로부터 '초기 컴퓨터'에 대한 연구에 매혹된 에이다는 서머빌과의 친분을 최대한 이용하여 배비지와 자주 접촉하려 했고, 이들의 만남은 에이다의 학문적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835
[윌리엄 킹 남작과의 결혼]
20살에 윌리엄 킹, 제8대 킹 남작과 결혼하여 '킹 남작부인'이 되다. 부부는 영국 서리 주의 대지와 런던 저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장남 바이런을 낳았다.
에이다는 20살이 되던 해 윌리엄 킹, 제8대 킹 남작과 결혼하여 킹 남작부인이 되었다. 부부는 영국 남부의 서리 주 대지와 토이돈 호수, 그리고 런던에 있는 저택에 거주했으며, 서머싯 주에 마련된 장원에서 신혼생활을 즐겼다. 이후 1836년 장남 바이런, 1837년 딸 이사벨라, 1839년 차남 랄프 고든을 낳았다.
1841
[어머니로부터의 충격적인 고백]
어머니 앤 이사벨라로부터 아버지 바이런과 이복 고모 어거스타 리의 근친상간 관계, 그리고 엘리자베스 메도라 리가 이복자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받다.
1841년, 어머니 앤 이사벨라는 딸 에이다와 '바이런의 조카' 엘리자베스에게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바이런이며 두 사람은 이복자매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에이다는 이에 놀라지 않았다고 답하며, 오히려 어거스타 리를 '타고난 사악함을 지닌 여자'라며 바이런을 유혹에 빠뜨렸다고 보았다.
1843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루이기 메나브레아의 해석기관 논문을 번역하고, 본문보다 방대한 주석을 추가하여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발표했다. 이 알고리즘은 현대에 들어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아 에이다에게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수식어를 안겨주었다.
1842년 찰스 배비지가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에서 해석기관에 대한 세미나를 열자, 젊은 과학자 루이기 메나브레아가 프랑스어로 논문을 작성했다. 배비지와 에이다의 친구 찰스 휘트스톤은 이를 영어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고, 에이다는 번역과 함께 본문보다 분량이 많은 주석을 논문에 추가했다. 이 주석 중 G 파트에 실린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해석기관용 알고리즘이 현대에 이르러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정되었다.
[가정교사의 불륜 시도와 거절]
어머니 앤 이사벨라가 손주들의 교육과 에이다의 '도덕적 교정'을 위해 심리학자 윌리엄 벤자민 카펜터를 가정교사로 고용했으나, 그는 에이다에게 불륜을 시도하다 단호히 거절당하다.
1843년, 에이다의 어머니 앤 이사벨라는 손주들의 교육과 에이다의 '도덕적 교정'을 위해 저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벤자민 카펜터를 가정교사로 고용했다. 카펜터는 에이다에게 연심을 품게 되었고, 그녀와 불륜 관계를 맺기를 원했지만 에이다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1844
[스캔들과 도박 중독]
친분을 맺은 과학자 앤드루 크로스의 아들인 존 크로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또한, 도박에 빠져 거액의 빚을 지고 남편에게 고백하는 등 여러 스캔들에 휩싸이다.
에이다는 바깥 남자들과의 '편안한 관계'로 숱한 소문이 퍼졌고, 도박에 빠져 돈을 잃기 시작했다. 바깥 남자들과 공동 출자하여 판돈을 만들고 야심차게 준비한 수학적인 모델에 따라 거액의 베팅을 시도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고, 거액의 빚을 지고 협박까지 당하는 신세가 되어 궁지에 몰린 끝에 이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했다. 또한, 앤드루 크로스의 아들 존 크로스와 1844년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1852
[이른 죽음과 아버지 곁에 안장]
자궁암과 의사의 잘못된 처방이 원인이 되어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다. 그녀는 유언에 따라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다.
1852년 11월 27일, 에이다는 자궁암과 의사의 잘못된 처방이 원인이 되어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사혈요법의 부작용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유물론자였으나 어머니의 종용으로 병상에서 자신의 삶을 신에게 회개했으며,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간통 고백을 들은 남편은 그녀의 병상을 지키지 않았다. 그녀는 유언에 따라 노팅엄셔주의 성 매리 막달렌 교회에 있는 바이런의 무덤 곁에 묻혔다.
1980
[프로그래밍 언어 '에이다' 명명]
에이다의 생일날을 기념하여 미국 국방부가 '에이다'라는 이름의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참조 설명서를 승인하다. 이는 그녀의 공헌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생일날인 1980년 12월 10일에 미국 국방부는 '에이다(Ada)'라는 이름의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참조 설명서를 승인했다. 이 언어의 미국 국방부 군사 규격(MIL-STD-1815)에 붙여진 숫자는 그녀가 태어난 해인 1815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2012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탄생 197주년인 2012년 12월 10일, 구글은 그녀의 업적과 삶을 기리기 위해 그녀를 모델로 한 특별한 구글 두들을 헌정했다. 이는 전 세계인들에게 그녀의 공헌을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