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윈 캐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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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캐트멀
컴퓨터 과학자, 애니메이션 제작자, 픽사 공동 창업자, 기업 경영인 + 카테고리
에드윈 캐트멀은 컴퓨터 과학과 영화 예술의 결합을 이끌어낸 3D 그래픽 및 애니메이션 분야의 위대한 선구자입니다. 유타 대학교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핵심 기술을 발명한 그는 조지 루카스에 발탁되어 엔터테인먼트계에 입문한 뒤, 픽사를 공동 창립하며 세계 최초의 3D 장편 애니메이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디즈니와 픽사를 동시에 이끌며 다수의 아카데미상과 튜링상을 수상하였고, 예술적 창의성과 공학 기술을 융합하여 현대 영화 산업의 기술적 표준을 영구적으로 확립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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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5

[웨스트버지니아주 파커스버그 출생]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파커스버그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피터팬과 피노키오 같은 디즈니 영화에 큰 영감을 받아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웠습니다.
이후 가족과 함께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하여 고등학교 교장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플립북으로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 정도로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으나, 당시 관련 학교가 없어 자신이 좋아하던 수학과 물리학 등 과학 분야로 진로를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1969

[유타 대학교 학사 졸업]

유타 대학교에서 물리학 및 컴퓨터 과학 학사 학위를 성공적으로 취득하고 졸업했습니다. 초기에는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에 관심이 있었으나 스케치패드 설계자인 이반 서덜랜드를 만나 디지털 이미징으로 큰 관심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대학의 DARPA 프로그램 학생으로서 제임스 H. 클라크, 존 워녹, 앨런 케이와 함께 수업을 들으며 컴퓨터 그래픽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이 시기에 텍스처 매핑과 바이큐빅 패치 등 컴퓨터 그래픽의 근본적인 발견을 해냈으며, 독자적으로 Z-버퍼링 개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1972

[최초의 3D 손 애니메이션 제작]

프레드 파크와 함께 유타 대학교에서 1분 분량의 3D 왼손 애니메이션 영상인 'A Computer Animated Hand'를 제작했습니다. 이는 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해 장편 영화를 만든다는 당시로선 전례 없는 목표를 향한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이 영상은 컴퓨터 그래픽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시도로 평가받으며 영화 산업에 대한 그의 첫 번째 공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훗날 할리우드 제작자의 눈에 띄어 1976년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 '미래세계(Futureworld)'에 실제로 삽입되었습니다.

1974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 취득]

곡면의 컴퓨터 디스플레이를 위한 세분화 알고리즘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유타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 애플리콘(Applicon)이라는 기업에 처음으로 입사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고안한 세분화 표면(subdivision surfaces)에 대한 아이디어는 4면이 아닌 물체에 B-스플라인을 적용할 때 머릿속에 떠오른 수학적 구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컴퓨터 그래픽 렌더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업적 중 하나입니다.

[NYIT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 소장 발탁]

뉴욕 공과대학교(NYIT)의 설립자인 알렉산더 슈어의 제안을 받고 이적하여 대학에 신설된 컴퓨터 그래픽스 랩의 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영화 제작을 모색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이 연구소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훗날 픽사의 기반 기술이 되는 여러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와 렌더링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1976

[영화 '미래세계(Futureworld)'에 작품 삽입]

1972년에 그가 공동 제작했던 3D 손 애니메이션이 할리우드 영화 '미래세계'에 활용되며 스크린에 정식으로 데뷔했습니다. 이는 상업 영화 산업에서 3D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된 역사상 최초의 사례입니다.
영화 '미래세계'는 1973년 개봉하여 컴퓨터로 생성된 픽셀 이미지를 최초로 선보였던 '이시의 세계(Westworld)'의 공상과학 후속작입니다. 그의 연구가 단순한 실험을 넘어 대중 매체에 성공적으로 적용된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1977

[2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트윈(Tween)' 발명]

NYIT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두 개의 프레임 사이에 모션 프레임을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혁신적인 2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인 '트윈(Tween)'을 발명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시 수작업으로 일일이 그려야 했던 중간 프레임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 계산하여 효율을 높이려는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팀은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출 능력이 부족하여 장편 영화 제작이라는 최종 목표 달성에는 고전을 겪고 있었습니다.

1979

[조지 루카스의 영입으로 루카스필름 부사장 취임]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스튜디오와 접촉하던 중 조지 루카스의 눈에 띄어 루카스필름의 부사장으로 영입되었습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조지 루카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루카스필름 내에 '컴퓨터 부서'를 신설하고 이를 총괄하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영화 산업의 기술적 혁신을 본격적으로 이끌기 위해 각 분야의 뛰어난 엔지니어와 창작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1980

[루카스필름 내 3대 핵심 프로젝트 출범]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서에서 디지털 혁신을 주도할 3개의 주요 프로젝트를 설립하고 이를 이끌 최고의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습니다.
앨비 레이 스미스에게 그래픽 그룹을, 앤디 무어러에게 오디오 프로젝트를, 랄프 구겐하임에게 비선형 편집 프로젝트의 리더십을 맡겼습니다. 이 팀이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적 성과들은 향후 영화 산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1986

[픽사(Pixar) 창립 및 합류]

스티브 잡스가 조지 루카스로부터 루카스필름의 디지털 부서를 전격 인수하면서 픽사(Pixar)가 새롭게 설립되었고, 캐트멀은 공동 창립자로서 이 새로운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루카스필름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핵심 기술진들이 그대로 픽사로 합류하며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발돋움할 독립적인 기반을 다졌습니다. 픽사는 이후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3D 장편 애니메이션 시대를 열게 됩니다.

1993

[첫 번째 아카데미 과학기술상 수상]

토머스 K. 포터와 함께 렌더맨(RenderMan)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로부터 첫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수상했습니다.
3D 컴퓨터 데이터에서 모션 픽처에 사용되는 매우 사실적인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렌더링해 낸 성과를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픽사의 렌더맨 기술력이 할리우드 영화 특수효과 및 애니메이션 제작의 절대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95

[ACM 펠로우(Fellow) 선정]

컴퓨터 과학 분야, 특히 그래픽스 및 애니메이션 알고리즘 개발에 대한 지속적이고 지대한 학술적 기여를 인정받아 계산기학회(ACM)의 펠로우로 선정되었습니다.
현업 스튜디오를 이끄는 경영자임과 동시에 학술 연구에서도 손을 놓지 않으며 학계와 산업계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권위와 명예를 인정받은 쾌거입니다. 컴퓨터 과학계에서 그가 지닌 압도적인 입지를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1996

[두 번째 아카데미 과학기술상 수상]

디지털 이미지 합성(Digital Image Compositing) 분야에서 영화 제작의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선구적인 발명품을 만들어낸 공로로 두 번째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뿐만 아니라 실사 영화의 특수효과(CGI) 작업 전반에 필수적인 디지털 합성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연구 덕분에 복잡한 이미지 층을 자연스럽게 겹치는 작업이 가능해져 시각 효과 산업 전체의 퀄리티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2000

[미국 국립공학아카데미 회원 선출]

완전한 합성 시각 효과와 혁신적인 모션 픽처의 도입을 주도한 디지털 이미지 창조 부문의 리더십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공학아카데미(NAE)의 정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컴퓨터 공학 기술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완벽하게 융합한 그의 탁월하고 헌신적인 기술적 기여를 미국 국가 차원의 공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매우 영예로운 성과입니다.

2001

[아카데미상(오스카) 수상]

픽사의 핵심 기술인 렌더맨(RenderMan)이 보여준 모션 픽처 렌더링 분야의 중대하고 혁신적인 발전을 기리기 위해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로부터 명예로운 아카데미상(Oscar)을 수상했습니다.
이전의 과학기술상을 넘어서 렌더맨 기술이 상업 영화의 시각 효과 및 CG 기술 발전에 미친 막대한 파급력과 절대적인 공로를 아카데미 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기념한 뜻깊은 수상입니다.

2006

[IEEE 존 폰 노이만 메달 수상]

컴퓨터 그래픽스의 모델링, 애니메이션, 렌더링 분야에서 이루어낸 선구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로부터 권위 있는 존 폰 노이만 메달을 수여받았습니다.
컴퓨터 관련 학계 및 산업계 전반에서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초기 3D 그래픽 알고리즘 발견부터 첨단 렌더링 시스템 구축에 이르기까지 그가 일생 동안 바친 컴퓨터 과학적 업적을 극찬한 상입니다.

2007

[디즈니 애니메이션 및 디즈니툰 스튜디오 총괄 임명]

2006년 디즈니의 픽사 인수 이후, 동료인 존 라세터와 함께 디즈니툰 스튜디오의 통제권을 부여받아 픽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디즈니툰 등 3개 대형 스튜디오를 모두 총괄 감독하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있는 픽사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들을 매주 왕복 통근하며 거대한 애니메이션 제국을 경영했습니다. 각 스튜디오의 일상 업무를 처리할 총괄 관리자를 임명하고, 자신은 사장으로서 거시적인 기술 파이프라인과 창의적 경영을 훌륭히 이끌었습니다.

2009

[아카데미 고든 E. 소여 상 수상]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압도적인 기술적 공로로 영화 산업에 막대한 명예와 발전을 가져다준 개인에게 특별 수여되는 고든 E. 소여 상(Gordon E. Sawyer Award)을 수상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3D 애니메이션 기술의 선구자로서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방식과 판도를 영구적으로 바꿔놓은 그의 독보적인 업적을 영화계 전체가 기립하여 찬사한 공로상입니다.

2011

[초기 작품 국립영화등재소 보존작 선정]

1972년에 유타 대학교에서 실험적으로 제작했던 3D 애니메이션 단편 'A Computer Animated Hand'가 미국 의회도서관의 국립영화등재소 보존작으로 공식 선정되었습니다.
3D 컴퓨터 그래픽의 여명기를 명확히 보여주는 이 짧은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 중요성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미국의 소중한 국가적 유산으로 영구 보존되게 되었습니다.

2013

[컴퓨터 역사 박물관 펠로우 명명]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및 영화 제작 분야에 걸친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융합 업적을 기리기 위해 컴퓨터 역사 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의 펠로우로 명명되었습니다.
박물관 측은 그가 컴퓨터 공학 기술을 발판 삼아 시각적 스토리텔링과 예술적 표현의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었음을 높게 평가하며, 그를 기술 역사의 주요 인물 전당에 등재했습니다.

2014

[하이테크 직원 독점 금지 스캔들 연루]

베이 에어리어 지역 주요 기술 기업들 간에 서로 직원을 스카우트하지 않기로 은밀히 담합한 불법 채용 스캔들에 픽사가 연루되면서, 조직의 수장이었던 캐트멀 또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소송과 관련한 증언에서 그는 "나는 급여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책임도 있다"며 방어 논리를 펼쳤으나, 디즈니와 픽사를 포함한 관련 기업들은 결국 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법적 합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월트 디즈니 및 픽사 사장(President) 직위 유지]

조직 개편을 통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픽사의 총괄 관리자들이 각각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캐트멀은 여전히 월트 디즈니 및 픽사의 최고 사장직을 굳건히 유지하며 두 스튜디오를 총괄했습니다.
스튜디오의 세부적이고 일상적인 운영은 새로운 사장들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전체적인 비전 설정과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조직의 안정성을 도모했습니다. 같은 해 그의 독보적인 경영 철학을 담은 저서 '창의성을 지휘하라(Creativity, Inc.)'가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018

[픽사 및 디즈니 애니메이션 은퇴 계획 발표]

수십 년간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끌어온 픽사 스튜디오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공식적인 은퇴 계획을 대외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발표 직후 즉시 회사를 떠나지 않고, 스튜디오의 원활한 리더십 교체와 안정적인 인수인계를 위해 2019년 7월까지 고문(adviser) 자격으로 회사에 머물며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2019

[디즈니와 픽사에서 최종 공식 은퇴]

사전에 예고했던 인수인계 고문 기간이 모두 종료됨에 따라 마침내 직책을 완전히 내려놓고 디즈니와 픽사 스튜디오에서 명예롭게 은퇴했습니다.
평생의 꿈이었던 컴퓨터 그래픽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현실로 만들고 위기의 스튜디오를 세계 최고로 키워낸 그는 애니메이션 역사에 대체 불가능한 족적을 남긴 채 박수갈채를 받으며 업계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2020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 '튜링상(Turing Award)' 수상]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 분야에서의 선구적인 발명과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팻 한라한과 함께 2019년도 ACM 튜링상의 영예로운 수상자로 발표되었습니다.
영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에 3D 그래픽을 도입하여 전 세계 시각 매체에 혁명을 일으킨 그의 근본적인 알고리즘 개발과 렌더맨 구축 등의 업적이 컴퓨팅 역사 전체를 진일보시킨 위대한 공로로 칭송받았습니다.

2022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 수석 고문 합류]

은퇴 이후 혁신적인 인디 게임 개발사로 유명한 댓게임컴퍼니의 창조적 문화 및 전략적 성장을 돕기 위한 수석 고문(principal adviser)으로 전격 합류했습니다.
영화 애니메이션계를 떠난 이후에도 비디오 게임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산업 영역에 자신의 픽사 경영 노하우와 창의적인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전수하며 여전한 열정과 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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