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권
에드워드 권은 대한민국 요리계의 '스타 셰프' 시대를 개막한 선구적인 인물입니다. 강원도 영동전문대 출신이라는 평범한 배경에서 시작해 두바이 버즈 알 아랍의 수석 총괄 주방장 자리에 오르는 입지전적인 서사로 대중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거진 학력 및 경력 부풀리기 논란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으며, 이는 한국 사회에 전문직의 검증 시스템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방을 지켰고, '랩 24'를 통해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는 등 미식의 본질에 집중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김해와 부산 등 지방을 거점으로 다이닝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유튜브를 통해 대중과 친숙하게 소통하며 진정한 요리 거장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연표
1971
본명은 권영민이며, 어린 시절 요리사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며 신부를 꿈꾸기도 했으나, 현실적인 진로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시기 가졌던 소박한 입맛과 강원도의 풍부한 식재료 경험은 훗날 그의 요리 철학에 미세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1989
처음에는 성적에 맞춰 진학한 곳이었으나, 실습 과정에서 요리가 가진 창조적인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곳에서의 졸업은 훗날 학력 논란의 중심이 되었지만, 실질적인 요리 인생의 출발점임은 분명합니다.
1995
군 제대 후 본격적인 프로 셰프의 길을 걷기 위해 호텔 주방의 혹독한 위계질서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외국인 셰프들과 소통하기 위해 주방 벽에 영어 단어를 붙여가며 공부할 정도로 열정적인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쌓은 기본기는 훗날 그가 해외 리츠칼튼 체인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2001
한국인 요리사로서 본토의 서양 요리를 배우기 위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치열하게 생존했습니다. 서구권 주방의 문화를 익히고 다양한 식재료를 다루는 법을 배우며 글로벌 감각을 익힌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때 이수했다고 주장한 일부 교육 과정들이 훗날 '학위' 오인 문제로 불거지며 시련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2
[나파밸리 컬리지 교육 이수 및 논란의 시작]
나파밸리 컬리지에서 요리 관련 교육을 이수했으나, 훗날 정식 학위 여부로 논란이 됩니다.
당시 그는 실무 역량을 키우기 위해 현지 커뮤니티 컬리지 프로그램을 수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방송에서 '나파밸리 출신'으로 소개되면서 대중은 이를 정식 졸업 학위로 오해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2010년경 터진 학력 위조 논란의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2003
[미국 요리사 협회 선정 '올해의 요리사']
미국에서 활동 중이던 당시 지역 요리사 협회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습니다.
동양인 셰프가 서양 요리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소식은 당시 한국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이 수상은 그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인 셰프'로 브랜딩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다만 수상 기관의 규모나 성격에 대해서도 훗날 일부 비평가들 사이에서 검증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06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총주방장으로서 메뉴 개발부터 인사 관리까지 폭넓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중국 시장의 역동성을 경험하며 아시아 미식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시기였습니다. 이곳에서의 성과는 그가 중동의 상징인 두바이로 진출하는 데 핵심 포트폴리오가 되었습니다.
2007
[두바이 버즈 알 아랍 수석 총괄 주방장 부임]
세계 유일의 7성급 호텔이라 불리는 버즈 알 아랍의 수석 총괄 주방장(Head Executive Chef)으로 전격 발탁됩니다.
호텔 내 모든 레스토랑의 맛과 품질을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것으로, 한국인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사막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식재료의 향연을 지휘하며 전 세계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소식은 국내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며 에드워드 권을 단순한 요리사에서 '국가적 자존심'으로 격상시켰습니다.
2008
[저서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출간]
자신의 성공담과 요리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릅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두바이의 정점에 서기까지의 드라마틱한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내어 젊은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책 출간 이후 수많은 강연 요청이 쇄도하며 '동기부여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도 굳혔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 '셰프'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한 결정적인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2009
[한국 귀국 및 EK푸드 설립]
두바이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건 EK푸드를 설립합니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와 다이닝 문화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걸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컨설팅, 메뉴 개발, 방송 제작 등을 아우르는 전문 기업을 꿈꿨습니다. 그의 귀국 현장은 연예인 못지않은 취재진이 몰리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QTV '에드워드 권의 예스셰프' 시즌 1 방영]
리얼리티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합니다.
엄격하고 독설을 아끼지 않는 '고든 램지' 스타일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예스 셰프!'라는 구호는 당시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으며 요리 지망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그는 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국내 최고의 스타 셰프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2010
합리적인 가격에 호텔급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전략으로 오픈 초기 엄청난 대기 행렬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요리 대중화 철학이 처음으로 투영된 대형 프로젝트였으나, 운영 과정에서 수익성 문제로 부침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이후 판교 등으로 확장 이전하며 그의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학력 및 경력 부풀리기 논란과 공식 사과]
방송과 언론에서 주장해온 CIA 학위, 미쉐린 스타 경력 등이 사실과 다르다는 논란에 휩싸입니다.
CIA(미국 요리 학교)는 정규 졸업이 아닌 단기 과정 이수였으며, 미쉐린 스타는 본인의 수상이 아닌 소속 호텔의 등급임이 밝혀졌습니다.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며 '거짓말 셰프'라는 오명을 썼고, 그는 방송을 통해 일부 과장된 부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화려한 커리어에 치명적인 흠집을 냈으며, 한동안 대중의 냉담한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2011
[청담동 '랩 24(LAB XXIV)' 오픈]
자신의 요리 철학을 집대성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랩 24'를 청담동에 선보입니다.
논란 이후 주방으로 돌아가 요리사의 본질인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곳입니다. 분자 요리 기법 등을 도입한 실험적이고 세련된 프렌치 다이닝을 선보이며 미식가들의 호평을 다시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등재되며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성소와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2
[MBC '신들의 만찬' 요리 자문 및 출연]
인기 드라마 '신들의 만찬'의 메인 요리 자문을 맡고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며 화제성을 이어갑니다.
드라마 속 화려한 한식 대결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EK푸드 팀이 전면 투입되어 요리 퀄리티를 높였습니다. 방송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꾸준히 관리하며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지켜나갔습니다. 이 시기 그는 비즈니스 모델을 연예 매니지먼트 스타일로 변주하며 셰프의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2013
유통 재벌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레스토랑 브랜드들을 프랜차이즈화하거나 대형화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확장으로 인해 관리의 한계와 품질 저하 논란이 일부 발생하며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셰프 권영민과 사업가 에드워드 권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습니다.
2014
[평창 동계올림픽 특선 메뉴 개발 자문]
고향인 강원도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특선 메뉴 개발에 참여합니다.
강원도의 대표 식재료인 황태, 메밀 등을 활용한 현대적인 메뉴 10선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적 행사에 요리 전문가로 참여하며 자신의 공적 신뢰도를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지역 음식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5
[홈쇼핑 및 가정간편식(HMR) 시장 진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테이크, 갈비 등 간편식 제품을 홈쇼핑에 런칭하여 대박을 터뜨립니다.
레스토랑의 맛을 가정에서 재현한다는 콘셉트로 수백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비즈니스 수익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에드워드 권 스테이크'는 홈쇼핑 식품 부문의 전설적인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중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요리적 접점을 넓혔으나, 일각에서는 장인 이미지 훼손이라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2016
[미쉐린 가이드 서울 '랩 24' 등재]
세계적인 미식 지표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에 '랩 24'가 추천 레스토랑으로 등재됩니다.
과거 미쉐린 경력 논란을 실질적인 성과로 불식시킨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청담동 파인 다이닝 씬에서 그의 실력이 여전히 유효하며 경쟁력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이를 기점으로 방송보다는 주방의 현장감을 강조하는 행보로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급이 늦어진 부분에 대해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스타 셰프의 경영 책임론이 불거지며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으나, 이후 순차적으로 해결 과정을 거쳤습니다. 비즈니스 운영의 냉혹함과 요리사의 길 사이의 괴리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2019
[유튜브 채널 '에드워드권-집에서 만드는 요리' 개설]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며 대중과의 소통 방식을 전환합니다.
고급 요리가 아닌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요리 비법을 공유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특유의 시원시원한 입담과 전문 지식이 결합되어 빠르게 구독자를 확보하며 '유튜버 셰프'로 안착했습니다. 이 채널은 훗날 그의 활동 거점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겨갈 때도 든든한 팬덤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2020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사업 구조조정]
코로나 사태로 인한 외식업계의 직격탄을 맞으며 서울 내 주요 레스토랑의 운영을 재편합니다.
높은 임대료와 객수 감소로 인해 서울 청담동의 '랩 24' 운영 방식에 큰 변화를 주어야 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온라인 밀키트 시장과 비대면 콘텐츠에 집중하며 생존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이 위기는 그가 서울 중심의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1
서울의 높은 임대료와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진정한 로컬 다이닝을 실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타 셰프의 지방 행은 당시 요리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방의 미식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그의 포부는 김해 관광 활성화와도 맞물려 환영받았습니다.
서울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최정상급 파인 다이닝을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전국에서 예약이 몰려드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역 고용 창출과 더불어 인근 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 상생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지방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며 그의 요리 인생 2막이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2022
모던 한식을 지향하는 '엘리먼츠'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인들에게 한식의 새로운 매력을 전파했습니다. 동남권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에드워드 권 미식 벨트'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그의 매장은 오픈하는 곳마다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연일 만석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2023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 달성 및 골드버튼 수상]
유튜브 채널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합니다.
스타 셰프에서 이제는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굳힌 사건입니다. 과거의 논란을 딛고 실력과 진정성으로 대중과 다시 화해했다는 상징적인 지표로 해석됩니다. 그는 골드버튼 수상 소감에서 '요리로 다시 사랑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넷플릭스 및 글로벌 OTT 출연 논의]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들로부터 요리 관련 콘텐츠 출연 제의를 받으며 해외 진출을 재모색합니다.
K-푸드 열풍과 함께 그의 독보적인 서사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매력적인 소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직접적인 서바이벌 출연보다는 멘토나 심사위원 역할로서의 중량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국내 스타를 넘어 글로벌 미식 아이콘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의 시작이었습니다.
2024
지역 축제와 연계한 대규모 팝업 다이닝을 성공시키며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미식의 힘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매장을 찾기 위해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이른바 '미식 원정대'가 형성되는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행정기관에서도 그의 기여도를 높게 평가하여 지속적인 협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HMR 브랜드 '에드워드 권 고메' 리브랜딩]
기존 간편식 사업을 한층 고급화하여 '고메' 라인으로 새롭게 런칭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입니다.
오프라인 레스토랑의 성과를 온라인 커머스로 연결하여 비즈니스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단순한 판매를 넘어 유튜브 채널과의 협업 마케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연간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올리는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도 완벽히 다졌습니다.
2025
과거 두바이와 미국에서의 인맥을 활용해 한식 식재료의 해외 수출과 컨설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요리 인생은 이제 개인의 성공을 넘어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대 담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전 세계 요리계 인사들이 그를 '한국 미식의 살아있는 전설'로 대우하기 시작했습니다.
[후학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 설립 구상]
자신과 같은 지방대 출신 요리 지망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 교육 아카데미 설립을 구체화합니다.
학력 논란으로 고생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벌이 아닌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주방 문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최신 기술과 전통 기법을 아우르는 커리큘럼을 직접 설계하며 교육자로서의 마지막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아카데미는 대한민국 요리계의 세대교체를 이끄는 핵심 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