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힐러리
연표
1919
[힐러리, 세상에 나오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퍼시벌 오거스터스와 거트루드 힐러리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비교적 평범했지만, 이미 모험에 대한 공상을 즐기며 훗날 위대한 탐험가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1920
[투아카우로 이사]
아버지를 따라 오클랜드 남쪽 투아카우로 이사하며 자연과 더욱 가까워졌다.
이곳에서 어린 힐러리는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모험을 꿈꾸기 시작했다.
1936
[양봉가로서 첫발]
형제 렉스의 도움으로 양봉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여름에는 꿀벌을 돌보고, 겨울에는 등반과 스키/등산 지도자로 일하며 자연 속에서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을 길렀다.
1939
[첫 산 정상 정복]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던 중, 서던알프스 산맥의 쿡산 근처 1,933m 올리비어산을 등정하며 산악인으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중요한 등정 기록이다.
1943
[징병으로 공군 입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양심적 병역 거부 신념으로 자원서는 철회되었으나, 징병으로 뉴질랜드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정을 조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5
[보트 사고로 부상]
피지와 솔로몬 제도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보트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어 뉴질랜드로 송환되었다.
이 사고는 그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그의 도전 정신을 꺾지 못했다.
1948
[쿡산 남쪽 등반]
해리 에어스 등 동료들과 함께 뉴질랜드 최고봉 쿡 산의 남쪽 산등성이에 성공적으로 등반했다.
이는 그의 산악 경력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1951
[영국 정찰대 합류]
에릭 시프턴이 이끄는 영국 정찰 탐사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 탐사에 참여하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1952
[초오유 산 탐사]
조지 로와 함께 초오유 산 등정에 도전했다.
네팔 쪽 적절한 루트를 찾지 못해 티베트를 횡단하며 사전 탐사를 진행했고, 이 경험은 훗날 에베레스트 등정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1953
[에베레스트 캠프 설치]
총 400명 이상의 대원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탐사 캠프를 설치하며 인류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대장정의 서막을 열었다.
힐러리는 특히 불안정한 쿰부 아이스폴을 통과하는 루트 계획을 맡았다.
[첫 정상 도전 실패]
톰 버딜런과 찰스 에번스가 먼저 정상 등정에 나섰으나, 에번스의 산소통 불량으로 인해 정상에서 불과 91m를 남기고 아쉽게 되돌아와야 했다.
[최종 등정 캠프 설치]
이틀간 눈보라에 갇히는 악천후 속에서도 조지 로 등 서포터 3인이 해발 8,500m에 텐트를 설치하며 힐러리와 텐징의 최종 등정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네팔의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오전 11시 30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8,848m) 정상에 인류 최초로 발을 디뎠다.
이 역사적인 순간은 '꿈이 이루어졌다!'는 텐징의 외침으로 기억된다.
15분간 정상에 머물며 텐징의 유명한 사진을 찍었으나, 본인의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이 성과로 그는 뉴질랜드 5달러 지폐 인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마지막 난관인 12m 바위 면, '힐러리 계단'을 통과하여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서 힐러리는 십자가를, 텐징은 초콜릿을 남겼다. 그의 사후,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 인근 공항을 '텐징-힐러리 공항'으로 명명하며 두 영웅의 업적을 기렸다.
1955
[남극 탐험대 합류]
에베레스트 등정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던 그는 남극 탐험 대원이 되어 인류의 미지의 영역으로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겼다.
1958
[남극점 도달 성공]
남극 탐험 중 남극점에 성공적으로 도달하며 세계 최고봉과 최남단 극점을 모두 정복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그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탐험가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1985
[인도 대사로 활동]
1989년까지 인도 주재 뉴질랜드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자연을 정복한 영웅을 넘어,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도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8
[위대한 탐험가, 영면하다]
오클랜드 시티 병원에서 심근 경색으로 8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의 삶은 도전과 성취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인류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