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num_of_likes 98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에드거 앨런 포
작가, 시인, 편집자, 문학평론가, 추리소설가, SF 선구자 문학가(시인/소설가)

미국 낭만주의의 거성이자 문학사 전체에 매우 중요한 작가입니다. 미스터리 마카브레 작품으로 유명하며 미국 단편소설과 추리소설 나아가 과학소설 장르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오직 저술만으로 생활하려 한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였으나 평생 재정난과 불행을 겪었습니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으며 작품 외적으로도 우주론 암호학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09

[천재의 탄생, 비극적 시작]

미국 문학사의 거장이 될 에드거 앨런 포가 보스턴에서 배우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영감을 받은 '에드거'라는 이름처럼,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비극과 미스터리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 작은 시작이 훗날 전 세계 문학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1810

[아버지의 가출, 고아의 운명]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듬해에는 어머니마저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포는 고아가 됩니다.

그의 유년기는 부모의 사랑 대신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상실감으로 채워졌고, 이는 훗날 그의 어둡고 섬세한 문학적 감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811

[새로운 가족, '앨런 포'로 살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 포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성공한 스코틀랜드계 상인 존 앨런과 프란세스 앨런 부부에게 거두어집니다.

비록 공식적인 입양은 아니었지만, 그는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으로 청소년기까지 앨런 가족과 함께 살며 잠시나마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1815

[런던에서 보낸 유년 시절]

앨런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스코틀랜드 어빈의 중등학교와 런던 첼시 지구의 기숙학교, 그리고 스토크뉴잉턴의 장원학교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국땅에서 보낸 유학 생활은 그의 문학적 상상력과 세계관을 넓히는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1826

[도박빚으로 대학 중퇴]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문에 열중했지만, 첫사랑과의 단절, 그리고 학비와 도박 빚 문제로 양아버지 존 앨런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됩니다.

결국 존 앨런의 충분한 지원 부족으로 포는 한 학기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그의 학업의 꿈은 좌절됩니다.

1827

[무명의 첫 시집 '타메를란']

군 복무 중 '보스턴 사람(Bostonian)'이라는 필명으로 40쪽짜리 시집 《타메를란 외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단 50부만 출판되어 대중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이 책은 훗날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천재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첫 작품이자, 그의 문학적 여정의 조용한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좌절 끝에 보스턴으로 도피]

대학 중퇴와 첫사랑의 결혼 소식에 크게 낙담한 포는 리치먼드를 떠나 보스턴으로 향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점포 계원이나 신문 기고가 같은 낯선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앙리 르 르네'라는 필명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 그의 작가 경력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가명으로 미 육군 입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포는 '에드거 A.

페리'라는 가짜 이름과 나이를 속여 미 육군에 사병으로 입대했습니다.

보스턴 항의 인디펜던스 요새에 배치되어 월급 5달러를 받으며 고된 군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한 그의 처절한 선택이었습니다.

1829

[두 번째 시집, 볼티모어에서 출간]

웨스트포인트 입학을 앞두고 볼티모어에서 두 번째 시집 《알 아라아프, 타메를란 외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이 시집은 그의 초기 문학적 시도를 더욱 깊게 보여주며, 앞으로 펼쳐질 그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예고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양어머니의 죽음, 군 전역의 계기]

포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양어머니 프란세스 앨런이 사망했습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포는 양아버지 존 앨런의 일시적인 화해를 얻어 군에서 전역하고,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포병원사로 육군 전역]

2년간의 군 복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비장교가 오를 수 있는 최고 계급인 포병원사까지 승진한 후 마침내 육군에서 전역했습니다.

웨스트포인트 입학을 준비하며 잠시 볼티모어로 돌아가 과부가 된 숙모 마리아 클렘과 사촌 버지니아 클렘 등 친가족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1830

[웨스트포인트 입학, 그러나...]

양아버지 존 앨런의 허락으로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사관생도로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앨런이 재혼하며 친자식 문제로 포와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포는 양아버지에게 완전히 파양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됩니다.

1831

[동기들의 기부로 세 번째 시집 출간]

사관학교에서 쫓겨난 후 뉴욕으로 가서 동기들이 기부한 170달러를 자본금으로 삼아 세 번째 시집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는 새로운 시 6편과 함께 웨스트포인트 시절 동기들에게 바치는 헌정사가 수록되어, 그의 파란만장했던 군 생활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작가의 길을 택하며 웨스트포인트 퇴학]

장교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포는 웨스트포인트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고의로 직무 태만과 명령 불복종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됩니다.

퇴학을 위해 자신의 비행을 부인하지 않았고, 이는 시인이자 작가가 되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친형 헨리의 죽음, 작가 열정 불태우다]

볼티모어에서 친가족들과 지내던 중, 알코올 중독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던 친형 헨리가 사망했습니다.

형의 죽음은 포에게 더욱 절박하게 작가 경력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고, 그는 더욱 깊이 문학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1833

[공모전 입상, 문학계 발판 마련]

지역 신문 《볼티모어 새터데이 비지터》의 단편 소설 공모전에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를 투고하여 입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볼티모어의 자산가 존 펜들턴 케네디의 주목을 받게 하여, 포가 리치먼드의 문예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로 진출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해 줍니다.

1835

['메신저' 부주필, 비평가로 명성]

존 펜들턴 케네디의 소개로 리치먼드의 문예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의 부주필이 되었습니다.

포는 이 잡지를 통해 날카로운 문학 비평과 여러 시, 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예리한 평론가'라는 명성을 쌓았지만, 음주 문제로 몇 주 만에 해고당하는 사건을 겪기도 했습니다.

[13세 사촌 버지니아와의 비밀 결혼]

볼티모어에서 26세의 나이로 13살짜리 사촌 동생 버지니아 클렘과 비밀리에 결혼했습니다.

혼인신고서에는 신부의 나이를 21세로 거짓 기재하며 세간의 시선을 피하려 했습니다.

이 특이한 결혼은 그의 삶과 훗날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36

[버지니아와의 두 번째 결혼식]

리치먼드에서 버지니아와 두 번째 결혼식을 공개적으로 올렸습니다.

이후 포는 1837년 1월까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에서 활동하며 잡지 발행 부수를 크게 늘렸다고 주장할 만큼, 그의 문학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1838

[최초의 SF 소설, '아서 고든 핌']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발표하여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훗날 쥘 베른의 《남극의 미스터리》 등에게 영감을 주며 SF 장르의 형성에 이바지한 세계 최초의 중요한 선구작으로 평가받습니다.

1839

['버튼스 매거진' 부주필 활동]

《버튼스 젠틀맨스 매거진》의 부주필이 되어 셀 수 없이 많은 기사, 단편 소설, 서평을 발표하며 '예리한 평론가'로서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이 시기에 단편 소설집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도 발표했지만, 판매량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1840

['스타일러스' 창간 꿈을 꾸다]

자신의 문예지 《스타일러스》를 창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원래는 '펜'이라는 이름으로 필라델피아에 거점을 두고 사업을 할 생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꿈은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실현되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습니다.

1841

[암호학 소논문 발표, '황금충' 영감]

《그레이엄스 매거진》에 〈비밀기호에 대한 몇 가지 말〉이라는 소논문을 투고하며 대중의 암호학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켰습니다.

이 소논문은 훗날 암호 해독이 핵심 요소인 단편 소설 〈황금충〉을 쓰는 영감이 되었고, 그는 단순 치환 암호 해독을 대중화하는 데 세계 최초로 기여합니다.

1842

[아내의 병, 포에게 드리운 그림자]

어느 날 저녁, 아내 버지니아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중 돌연 폐결핵 증세를 나타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포의 음주량을 점점 늘어나게 했고,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성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주제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44

['열기구 보고서'로 대중을 속이다]

당시 신기술인 열기구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활용하여 〈열기구 보고서〉라는 지적 사기성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실제 사건처럼 위장했지만 사실은 허구로,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대중의 심리를 꿰뚫는 능력을 보여주며 SF적 면모를 드러냅니다.

1845

['도래까마귀' 발표, 불멸의 명성]

시 《도래까마귀》를 발표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포는 단숨에 불멸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대가로 받은 고료는 고작 9달러에 불과해, 당시 미국 전업작가의 비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1846

['브로드웨이 저널' 폐간과 이사]

포가 주필이자 자영소유주였던 《브로드웨이 저널》이 폐간되면서 그는 또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결국 뉴욕 시 브롱크스 구의 작은 시골집으로 이사해야 했고, 이 집은 훗날 '포의 시골집'으로 불리며 그의 생애 마지막 거처 중 하나로 남습니다.

1847

[사랑하는 아내, 버지니아의 죽음]

오랜 병고 끝에 사랑하는 아내 버지니아가 폐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13세에 결혼하여 2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은 포에게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 불안정감을 안겨주었고,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주제를 더욱 강화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1848

['유레카' 발표, 우주론적 통찰]

순수한 직관에 의존하여 쓴 소논문 《유레카: 산문시》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대폭발 우주론이 등장하기 80여 년 전 그 원리를 암시하는 내용이 실려 있으며, 올베르스의 역설에 대한 최초의 타당한 설명을 제시하는 등 문학 외 분야에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평생 걸작이라 생각했습니다.

1849

[길거리에서 발견된 의식불명 포]

볼티모어 길거리에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조지프 W.

워커에게 발견되어 워싱턴 의대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발견 당시 자기 옷이 아닌 옷을 입고 있었고, 죽을 때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그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죽음의 미스터리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40세, 미스터리한 죽음]

볼티모어 워싱턴 의대병원에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알코올, 뇌내출혈, 콜레라, 마약, 심장병, 광견병, 자살 등 다양한 사망 원인이 거론되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쿠핑'이라는 부정선거 행위의 희생자라는 설도 제기되는 등, 그의 죽음은 1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그의 죽음을 뇌출혈 또는 뇌염 때문이라고 보도했으나, 이는 알코올 중독사 같은 점잖지 못한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완곡어법이었다고 추정됩니다. 사망증명서를 비롯한 모든 관련 의료기록 또한 사라졌습니다. 죽기 전 밤에는 "레이놀즈"라는 이름을 여러 차례 불렀으며, 마지막 유언은 "주여 제 불쌍한 영혼을 도우소서"였다고 전해집니다.

1850

[그리즈월드의 비방성 '회상록']

포의 옛 정적이었던 루푸스 윌머트 그리즈월드가 포의 유고집을 발간하며 〈작가를 회상하며〉라는 제목의 비방성 글을 수록했습니다.

그는 포를 타락한 술주정뱅이에 마약 중독자로 묘사했으나, 훗날 그의 주장 대부분이 거짓이거나 왜곡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리즈월드는 1842년부터 포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고, 죽은 포의 명성을 훼손하려 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증거 편지'들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유일한 포의 전기물이었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 널리 읽히며 포의 이미지에 오랫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9

['타메를란', 문학 작품 역대 최고가]

1827년에 단 50부만 발행되었던 포의 첫 시집 《타메를란 외 시집》 중 한 부가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662,500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문학 작품으로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그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하여 얼마나 귀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다시 한번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에드거 앨런 포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