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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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정치인, 국회의원 + 카테고리

노동운동의 최전선에서 투쟁해온 대한민국의 베테랑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입니다. 민주노총의 주요 직책을 거치며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했으며, 민주노동당과 정의당 창당에 핵심적으로 참여하며 진보정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파업과 구속, 해고 등 험난한 길을 걸었지만 꺾이지 않는 신념으로 노동자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국회의원까지 역임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59

[출생]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활동을 시작할 준비를 합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후 노동운동과 정치에 뛰어들어 정의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1987

[노동운동 시작]

서울상공회의소노조의 조합원으로 노동운동에 첫발을 내디디며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립니다.

1987년 서울상공회의소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하며 노동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그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는 삶의 시작점이 됩니다.

1988

[55일 파업 참여]

서울상공회의소노조 부위원장으로서 55일간의 장기 파업에 참여하여 노동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냅니다.

1988년 서울상공회의소노조 부위원장으로서 55일간의 파업에 참여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1989

[서울상공회의소노조 위원장 및 ILO 공대위 공동대표]

서울상공회의소노조 3, 4대 위원장을 역임하고, 민주노총의 전신인 ILO 공대위 서울지역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노동운동의 중요한 기반을 다집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상공회의소노조 3, 4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이 기간 민주노총의 맹아가 되는 ILO 공대위 서울지역 공동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민주노조 운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5

[전문노련 위원장 활동]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전문노련) 4, 5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노동계 내 리더십을 강화합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전문노련)에서 4, 5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노동운동의 폭을 넓히고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1996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민주노총 대표]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대정부 위원회에 참여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 민주노총 대표로 활동합니다.

1996년 민주노총이 처음으로 대정부 위원회에 참여한 대통령 자문위원회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 민주노총 대표로 참여하여 노동계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7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및 국민승리21 창립 주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으로서 노동자정치세력화 작업을 총괄하고, 국민승리21 창립을 주도하며 권영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1997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으로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중요 업무를 총괄했으며, 같은 해 국민승리21 창립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당시 권영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노동운동의 정치적 확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8

[민주노총 정리해고 합의 파동 비대위 부위원장]

민주노총의 정리해고 합의 파동 당시 비대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노총 정상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1998년 민주노총의 정리해고 합의 파동 시기에 단병호 비대위원장과 함께 비대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주노총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펼쳤습니다.

1999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 창립 초대 위원장]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을 창립하여 초대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냅니다.

1999년 전국공익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공익노련)을 재창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부문 노동자 단결과 대통합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여 현재의 공공연맹인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을 창립하고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 및 노동대학 학장]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정치위원장, 교육위원장, 노동대학 초대 학장을 겸임하며 노동 교육 및 정치 활동을 주도합니다.

1999년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정치위원장과 교육위원장을 함께 역임했으며, 민주노총 노동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활동하며 노동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공공연맹 총파업 지휘 및 수배]

공공연맹 총파업을 지휘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6개월간 수배 생활을 하였고, 이 기간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99년 공공연맹 창립과 동시에 4.19 공공연맹 총파업을 지휘했으며, 이로 인해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6개월의 수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 기간에 부모님이 모두 운명했지만, 수배 중이어서 두 분 모두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습니다.

2000

[민주노동당 창당 부대표]

민주노동당 창당 부대표를 역임하며 진보 정당 운동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합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부대표를 역임하며 진보정치의 발전에 기여하고, 진보 진영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2001

[공공분야 총파업 지휘 및 구속]

공공연맹 위원장으로서 조종사노조 파업 등 공공분야 총파업을 지휘하다 수배 및 구속되고, 이후에도 파업을 주도하며 노동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2001년 공공연맹 위원장으로서 조종사노조 파업을 포함한 5~6월 공공분야 총파업을 지휘하여 수배되고 구속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석방된 후에도 발전, 가스, 철도노조의 파업을 주도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2004

[공공연맹 6대 위원장 당선]

공공연맹 6대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리더십을 계속 이어갑니다.

2004년 공공연맹 6대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공공부문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5

[해고 및 WTO 반대 홍콩투쟁 참여]

파업 주도 혐의 유죄 확정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민주노총 비대위원으로서 WTO 반대 홍콩투쟁에 참여하여 현지에서 구속되는 등 고난의 시기를 겪습니다.

2005년 양경규의 파업 주도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자 그의 현장인 서울상공회의소에서 해고당했습니다. 해고 직후 민주노총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며 WTO반대 홍콩투쟁의 민주노총 투쟁단장으로 홍콩원정투쟁에 나섰다가 현지에서 구속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6

[공공산별노조 결성 추진]

공공산별노조를 결성하고, 공공 및 운수분야를 포괄하는 대산별 건설을 위한 통합 작업을 진행합니다.

2006년 공공산별노조를 결성한 후 공공과 운수분야를 포괄하는 공공운수 대산별을 건설하기 위하여 화물, 택시, 버스 등 4개 연맹조직의 통합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홍콩투쟁 무죄 판결 및 귀국]

WTO 반대 홍콩투쟁 관련 재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 귀국하여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2005년 홍콩투쟁에서 구속된 후 재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 2006년 1월에 귀국하여 활동을 재개하며 다시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7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 창립 및 민주노총 위원장직 도전]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을 새롭게 창립하고 공공연맹 위원장직을 사퇴했으며, 민주노총 위원장직에 도전했으나 낙마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모색합니다.

2007년 1월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을 새롭게 창립하는 데 성공하고, 공공연맹 위원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이후 '공장의 담장을 넘어 지역운동, 부문운동과 연대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노총 위원장직에 도전했으나 낙마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2008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대통합 주력]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당적을 갖지 않고 진보대통합 작업에 주력하며 진보 진영의 재결집을 위해 노력합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자, 2015년 정의당, 국민모임, 진보결집 더하기 등과 함께 새로운 대중정당으로 합당하기까지 당적을 갖지 않고 진보대통합 작업에 주력하며 진보 진영의 재결집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1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 전국순회 시작]

진보대통합 실패와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은 후,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 시작을 위한 전국순회를 시작하며 정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2011년 진보대통합 실패와 통합진보당 창당, 그리고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한 또 다른 분열을 지켜보면서 구체적인 정치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2011년 11월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을 시작하기 위한 전국순회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 결성]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을 결성하여 진보정치 운동의 기반을 다집니다.

2011년 11월 시작한 전국순회의 성과를 모아 2011년 12월에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을 결성하며 노동자 정치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2012

[노동자정당 추진회의로 확대 전환]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을 '노동자정당 추진회의'로 확대 전환하여 진보정치 통일과 노동자정치운동 실천에 활발히 나섭니다.

2012년 12월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 모임'을 노동자정당 추진회의로 확대 전환하여 분열된 진보정치를 통일시키고 노동자정치운동의 새로운 실천을 만들어가기 위한 작업에 활발히 참여했습니다.

2013

[노동정치연대 대표 역임]

노동운동 내외의 여러 노동자정치세력을 규합하여 '노동정치연대'를 창설하고 대표를 역임하며 진보정당 통합을 위한 노력을 지속합니다.

2013년 11월 노동운동 내외의 여러 노동자정치세력을 규합하여 노동정치연대를 만들어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이후 노동정치연대 대표로서 진보정당의 통합과 노동자정치운동의 새로운 실천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2015

[정의당 창당 일조]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인 현재의 정의당 창당에 기여하며 진보정치 재편의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2015년 11월 22일, 노동정치연대 대표로서 진보정당의 통합과 노동자정치운동의 새로운 실천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인 현재의 정의당을 창당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2019

[정의당 대표 선거 출마 및 낙선]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심상정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으며, 이념적으로 민주사회주의를 주장하며 당의 급진적 노선을 대변했습니다.

2019년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심상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습니다. 당시 양경규 후보는 16.4%를 득표하여 83.6%의 득표를 얻은 심상정 후보에 비해 크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경선에서는 민주사회주의를 주장하며 당을 왼쪽으로 이동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2020

[제21대 국회의원 당선 및 승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8번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여 마침내 국회에 입성합니다.

2020년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8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여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2024

[제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제21대 국회의원으로서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동 및 환경 정책에 기여합니다.

2024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제21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의정 활동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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