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슈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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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슈워츠
미국 금융인, 기업 경영자, 전 베어스턴스 최고경영자 + 카테고리
미국의 저명한 금융인이자 현재 구겐하임 파트너스(Guggenheim Partners)의 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man)입니다. 대학 시절 전도유망한 야구 선수였던 그는 1976년 베어스턴스에 입사하여 평사원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거대한 격랑 속에서 베어스턴스의 마지막 CEO로서 회사가 JP모건 체이스에 헐값으로 강제 인수되는 역사적 비극의 중심에 서야 했습니다. 이후 경쟁사들의 수많은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구겐하임 파트너스에서 새로운 금융 인생을 시작하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 월스트리트의 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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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0

[브루클린에서의 탄생]

뉴욕 브루클린 베이리지 지역에서 유대인 세일즈맨 아버지와 장로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미국 금융계를 호령할 거물의 조용한 시작이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정확한 출생일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1950년 또는 1951년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훗날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만큼 뛰어난 학업 및 운동 능력을 차근차근 키워나갔습니다.

1972

[듀크 대학교 졸업]

미국의 명문 듀크 대학교를 성공적으로 졸업하며 학창 시절을 마칩니다. 재학 중 체육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야구팀의 투수로 맹활약했습니다.
그는 야구팀에서 투수로 활동하면서도 학업에 매우 충실하여 애틀랜틱 코스트 컨퍼런스(ACC) 학업 우수자 명단에 무려 세 차례나 이름을 올렸습니다. 운동과 공부 모두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대학 야구 무대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팀의 드래프트 지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인해 실제 입단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 구단에 투수로 공식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불행히도 부상으로 인해 한 번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프로 야구 선수의 꿈을 접은 이 뼈아픈 사건은 훗날 그가 월스트리트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1976

[베어스턴스 첫 입사]

자신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몸담게 될 거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정식으로 입사합니다. 그의 첫 근무지는 뉴욕 본사가 아닌 댈러스 지점이었습니다.
야구 선수의 꿈을 접은 뒤 금융업에 발을 들인 그는 댈러스 지점에서 특유의 성실함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실적을 쌓았습니다. 이 입사를 시작으로 그는 장차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전설적인 행보를 걷게 됩니다.

1979

[리서치 및 투자 부문 이사]

입사 3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뉴욕 본사의 리서치 및 투자 부문 이사로 전격 발탁됩니다. 본격적으로 월스트리트의 중심에 입성하여 핵심 부서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댈러스에서의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주요 투자 전략을 연구하고 총괄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으며 경영진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습니다.

1985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

베어스턴스의 수석 부사장이자 투자은행(IB) 부문 총괄 책임자로 초고속 승진을 이뤄냅니다. 회사 내에서 명실상부한 핵심 리더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집니다.
그가 이끌게 된 투자은행 부문은 기업 인수합병(M&A)과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금융사의 심장부였습니다. 그의 뛰어난 리더십 아래 베어스턴스의 IB 부문은 월스트리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1994

[코먼 코즈 이사회 합류]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개혁 시민 단체인 '코먼 코즈'의 전국 이사회 위원으로 선출됩니다. 기업 경영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코먼 코즈(Common Cause)는 정치 자금 투명화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권위 있는 비당파적 단체입니다. 월스트리트의 고위 임원이 이러한 시민 단체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에 합류한 것은 그의 폭넓은 사회적 책임 의식을 보여줍니다.

2001

[공동 사장 및 COO 취임]

베어스턴스의 공동 사장이자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전격 취임합니다. 기존의 전설적인 의장인 지미 케인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 그룹에 공식적으로 합류했습니다.
당시 회사의 최고 권력자였던 지미 케인 체제 아래서 워런 스펙터와 함께 회사의 실무를 양분하여 통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회사의 주식 시장 내 위상이 더욱 높아지며 금융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부상합니다.

2005

[듀크 대학교 이사회 이사]

자신의 모교인 듀크 대학교의 공식 이사회 임원으로 지명되어 활동을 시작합니다. 또한 대학교 산하 푸쿠아 경영대학원의 방문위원회 의장직도 함께 역임합니다.
모교에 대한 깊은 애정과 기여를 바탕으로 학교 운영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금융계에서 쌓은 막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대학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적극적으로 환원하는 의미 있는 행보였습니다.

2006

[로빈 후드 재단 창립 이사]

뉴욕시의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설립된 '로빈 후드 재단'의 창립 이사회 멤버로 합류합니다. 헤지펀드 및 월스트리트의 거물들과 함께 대규모 자선 활동을 조직적으로 이끎니다.
로빈 후드 재단(Robin Hood Foundation)은 부유층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모아 엄격한 금융 지표를 적용해 빈곤층을 돕는 혁신적인 자선 단체입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비즈니스 엘리트 사회 내에서 자선 활동을 하나의 멋진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7

[단독 사장 및 COO 등극]

공동 사장이었던 워런 스펙터가 사임하면서 베어스턴스의 단독 사장 및 최고운영책임자로 올라섭니다. 다가올 거대한 금융 위기의 먹구름 속에서 회사의 2인자로서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게 됩니다.
당시 지미 케인의 가장 유력한 1순위 후계자였던 워런 스펙터는 두 개의 사내 헤지펀드가 붕괴한 책임을 지고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이 헤지펀드들의 연쇄 붕괴는 곧 전 세계를 강타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섬뜩한 전조증상이었습니다.

[순이익 61% 폭락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여파가 회사 전체를 강타하며 분기 순이익이 무려 61%나 폭락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습니다. 단독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회사의 존립을 뒤흔드는 최악의 악재에 직면합니다.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베어스턴스가 보유한 막대한 파생상품들이 치명적인 손실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경영진의 필사적인 방어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고, 회사의 명성과 자본력은 급격히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2008

[베어스턴스 CEO 공식 취임]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물러난 지미 케인의 뒤를 이어 마침내 베어스턴스의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취임합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거대 투자은행을 살려내야 하는 구원 투수로 등판했습니다.
그가 CEO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베어스턴스의 주가는 주당 약 75달러 수준에서 위태롭게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1976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32년 만에 회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JP모건의 강제 인수 합병]

극심한 유동성 고갈로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하기 위해 결국 JP모건 체이스에 회사를 헐값으로 넘기는 굴욕적인 합병에 서명합니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5대 투자은행 중 하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강력한 압박과 구제 금융 지원 아래 이루어진 이 강제 인수로 인해, 주식은 불과 주당 5.33달러라는 처참한 가격에 매각되었습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본격적인 확산을 알리는 가장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사내 체육관에서의 언쟁]

굴욕적인 헐값 매각 발표 이후, 분노한 직원들과 경영진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사내 체육관에서 수석 트레이더와 격렬한 언쟁을 벌입니다. 평생을 바친 회사가 붕괴된 후 내부의 참담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수만 명의 직원이 하루아침에 직장과 평생 모은 자사주 재산을 잃게 되자 사내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석 트레이더 앨런 민츠(Alan Mintz)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인수 후 전환 업무 수행]

합병이 완료된 직후, 조직의 혼란을 수습하고 자산을 이관하기 위해 잠시 JP모건에 잔류하여 단기 전환 업무를 수행합니다. 승자의 밑에서 패자의 남은 조각들을 정리해야 하는 뼈아픈 시간이었습니다.
JP모건 측은 그의 풍부한 경험과 인맥을 높이 평가하여 인수 후 통합 과정을 매끄럽게 관리해 줄 것을 특별히 요청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짧은 기간 동안 성실히 협조하며 자신이 키운 회사가 완전히 흡수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경쟁사들의 영입 제안 고사]

전환 업무가 끝난 후 JP모건 측으로부터 정규 고위 임원직을 제안받았으나 이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또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굴지의 경쟁사들이 보낸 수많은 러브콜 역시 모두 고사하며 야인으로 돌아갑니다.
베어스턴스의 뼈아픈 몰락에도 불구하고 그의 탁월한 투자은행 업무 능력은 월스트리트 전체에서 여전히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권한을 제시하며 그를 원했지만, 그는 잠시 업계를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2009

[구겐하임 파트너스 회장 취임]

야인 생활을 끝내고 시카고와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투자 전문 기업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이사회 의장(Executive Chairman)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과거의 시련을 딛고 새로운 금융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운명이 내게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었다"고 담담히 소회를 밝혔습니다. 월스트리트 최고 거대 투자은행의 CEO였던 그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독립 투자 회사를 선택한 것은 당시 금융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11

[성공적인 재기와 부활 조명]

구겐하임 파트너스를 눈부시게 성장시키며 경제 전문지 포브스로부터 '앨런 슈워츠의 부활'이라는 벅찬 찬사를 받습니다. 실패한 CEO라는 꼬리표를 완벽하게 떼어내고 월스트리트의 거물로 완벽하게 재기했음을 세상에 증명합니다.
포브스 등 유력 언론들은 그가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인재 영입을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하며 회사의 체급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최악의 금융 위기 희생양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난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다시 한번 재조명되었습니다.

2014

[지속적인 사회 공헌]

성공적인 복귀 이후에도 아내 낸시 시먼과 함께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거주하며 안정적인 삶을 이어갑니다. 금융계에서의 맹활약과 더불어 각종 재단과 모교를 위한 헌신적인 자선 활동을 흔들림 없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낸시 시먼은 유명 부동산 기업 훌리한 로렌스(Houlihan Lawrence)의 회장으로, 부부가 모두 뛰어난 경영인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고 있으며,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듀크 대학교와 빈곤 퇴치 단체 등에 지속적인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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