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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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브론테
소설가, 시인 + 카테고리
영국 문학사를 빛낸 브론테 자매의 막내이자, 당대의 사회적 금기에 당당히 맞섰던 선구적인 페미니즘 작가입니다. 어머니와 두 언니를 일찍 여의는 비극적인 가정사 속에서도 자매들과 함께 고유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며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습니다. 수년간의 고단한 가정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소설들은 당시 문단에 큰 충격과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스물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후 언니 샬럿에 의해 주요 작품의 재출간이 막히며 한동안 천재적인 언니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여성의 독립과 알코올 중독 등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그녀의 급진성과 통찰력이 비평가들에 의해 재조명받으며, 오늘날 영문학의 위대한 고전 작가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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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20

[문학 가족의 막내로 태어나다]

영국 요크셔의 작은 마을에서 아일랜드 출신 목사의 막내딸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새로운 교구로 발령받으며 가족 모두가 하워스의 목사관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 곳은 훗날 세 자매의 위대한 문학적 고향이 됩니다.
앤 브론테는 손턴(Thornton)에서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의 여섯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같은 해 4월 가족과 함께 하워스(Haworth) 목사관으로 이주하여 평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위대한 브론테 자매의 전설이 시작되는 공간적 배경이 완성된 순간입니다.

1821

[어머니를 잃은 어린 시절]

갓 돌을 넘긴 무렵, 가정을 돌보던 어머니가 깊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습니다. 이후 이모인 엘리자베스 브랜웰이 목사관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엄격하게 양육하게 됩니다. 가족의 친구에 따르면 앤은 이모가 가장 총애하는 조카였습니다.
어머니 마리아 브론테는 자궁암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투병하다 사망했습니다. 이모 엘리자베스는 조카들에게 사랑보다는 존경을 강요하는 엄격한 성격이었으나, 앤과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앤은 이모와 방을 함께 쓰며 종교적 신념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1825

[기숙학교가 앗아간 두 언니]

기숙학교에 진학했던 두 언니가 열악한 환경 탓에 중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온 직후 연이어 숨을 거둡니다. 이 참혹한 비극으로 큰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남은 딸들을 학교에서 철수시킵니다. 이후 자매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아버지와 이모의 지도를 받으며 집에서 학업을 이어갑니다.
코완 브리지 학교(Cowan Bridge School)의 척박한 급식과 질병 유행으로 인해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장티푸스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연이어 사망했습니다. 이 뼈아픈 사건 이후 샬럿과 에밀리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하워스 목사관으로 돌아와 홈스쿨링을 받으며 그들만의 고립된 문학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1826

[상상의 왕국 앙그리아 창조]

아버지가 오빠에게 선물한 장난감 병정 세트가 남매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대한 불씨가 됩니다. 아이들은 각 병정에게 이름을 붙이고 서사를 부여하며 환상적인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 냅니다. 이 놀이는 훗날 이들의 위대한 문학적 재능을 꽃피우는 최초의 공동 창작 작업이 됩니다.
남매들은 서아프리카 해안의 가상 섬들을 배경으로 한 '앙그리아(Angria)'라는 환상 왕국을 만들고 지도와 수채화까지 그렸습니다. 또한 버려진 종이 조각들을 엮어 작은 책을 만들고 그 안에 앙그리아 주민들에 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 시, 희곡을 빼곡히 적어 넣었습니다.

1831

[에밀리와의 곤달 세계 구축]

오빠와 큰언니가 주도하던 기존의 가상 세계에서 독립하여, 자신과 가장 각별했던 언니 에밀리와 단둘이서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구축합니다. 이들만의 은밀하고 독창적인 상상 놀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며 두 사람의 문학적 자양분으로 작용합니다. 서로에게 가장 완벽한 창작 파트너가 되는 순간입니다.
샬럿이 로 헤드 학교로 떠난 후, 앤과 에밀리는 '곤달(Gondal)'이라는 자신들만의 웅장한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훗날 방문한 샬럿의 친구 엘렌 너시(Ellen Nussey)의 기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니는 "떨어질 수 없는 단짝(inseparable companions)"이었습니다.

1835

[첫 집 떠남과 기숙학교 입학]

향수병에 심하게 시달려 학교를 그만둔 언니 에밀리를 대신해 기숙학교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납니다.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할 만큼 조용히 지냈지만, 훗날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굳은 의지로 학업에 매진합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특유의 성실함이 빛을 발합니다.
앤은 언니 샬럿이 교사로 있던 로 헤드 학교(Roe Head School)에 학생으로 입학하여 방학 때만 집에 돌아오는 고독한 기숙 생활을 2년간 지속했습니다. 교사들에게 눈에 띄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매우 근면하게 공부하여 우수 품행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837

[극심한 질병과 신앙의 위기]

학교생활 중 심각한 질병에 걸려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에 만연했던 엄격한 교리 때문에 내면적인 신앙의 위기까지 겹쳐 깊은 좌절에 빠집니다. 결국 언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은 아버지의 조치로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앤은 심각한 위염(gastritis)을 앓았으며, 당시 학교에 지배적이었던 엄격한 칼빈주의(Calvinism) 교리로 인해 극심한 영적 고뇌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모라비아파 목사가 여러 번 그녀를 방문해 신앙 상담을 했을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1839

[냉혹한 가정교사 생활의 시작]

당시 배운 여성이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었던 가정교사로 첫발을 내디뎠으나 끔찍한 좌절을 맛봅니다. 과도하게 버릇없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고, 고용주 역시 아무런 지원 없이 질책만 가했습니다. 결국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짐을 싸서 집으로 쫓겨나듯 돌아오는 수모를 겪습니다.
부유한 잉엄(Ingham) 가문의 블레이크 홀(Blake Hall)에서 첫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앤은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집 아이들을 "지나치게 버릇없는 바보들"이라고 묘사했으며, 이 고통스러운 경험은 훗날 그녀의 첫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의 결정적인 영감이 되었습니다.

1840

[소프 그린에서의 새로운 직장]

이전의 뼈아픈 실패를 딛고 새로운 가문의 가정교사로 부임하여 다시 한번 낯선 환경에 도전합니다. 초기에는 여전히 심한 향수병과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일기를 통해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굳은 의지로 어려움을 묵묵히 극복하며 서서히 고용주와 아이들의 깊은 신임을 얻어갑니다.
로빈슨 가문이 사는 소프 그린 홀(Thorp Green Hall)에서 1845년까지 5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곳의 경험 역시 '아그네스 그레이'의 호튼 로지(Horton Lodge) 배경으로 등장하며, 앤은 매년 여름 로빈슨 가족과 함께 스카버러(Scarborough)로 휴가를 떠나 그곳의 바다를 평생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845

[갑작스러운 사임과 영구 귀향]

비교적 안정적으로 다니며 고용주의 신임까지 얻었던 가정교사직을 돌연 사임하고 가족의 품으로 영구히 돌아옵니다. 명확한 사직의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같은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던 오빠의 부적절한 스캔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앤의 오빠 브랜웰은 소프 그린에서 남학생 가정교사로 일하던 중 여주인 로빈슨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큰 물의를 일으켰고, 앤이 사임한 직후 브랜웰 역시 불명예스럽게 쫓겨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은 로빈슨 가문의 딸들과 평생 우정을 유지하며 서신을 주고받았습니다.

1846

[세 자매의 은밀한 시집 출간]

세 자매가 각자 비밀리에 써두었던 시들을 모아 자비로 합동 시집을 전격 출판합니다. 여성 작가에 대한 시대적 편견과 조롱을 피하기 위해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비록 상업적으로는 철저히 실패했지만, 자매들의 끓어오르는 문학적 열정을 세상에 드러낸 역사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이모가 남긴 유산으로 31파운드 10실링을 들여 출판했으며, 앤은 '액턴 벨(Acton Bell)'이라는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일부 평단으로부터 호의적인 리뷰를 받기도 했으나, 출간 첫해에 단 2권만 팔리는 극심한 상업적 실패를 겪었습니다.

1847

[자전적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 출간]

자신의 혹독하고 굴욕적이었던 가정교사 경험을 가감 없이 녹여낸 첫 번째 장편 소설이 영국의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빛을 봅니다. 언니의 걸작과 함께 묶여 출판되며 문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묵묵히 글을 써오던 막내딸이 마침내 정식 소설가로 데뷔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토마스 코틀리 뉴비(Thomas Cautley Newby)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으며, 언니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과 함께 3권짜리 세트로 묶여 대중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당시 영국 사회의 위선적인 계급 문화와 가정교사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848

[파격적 페미니즘 소설의 탄생]

알코올 중독자 남편에게서 도망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두 번째 소설을 발표합니다.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파격적인 설정과 여성의 독립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며 문단에 큰 파란을 일으킵니다. 발간 직후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섭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The Tenant of Wildfell Hall)'은 출간 후 불과 6주 만에 초판이 매진되어 두 번째 판을 인쇄할 정도로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미권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선구적이고 초창기에 해당하는 페미니즘 소설 중 하나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1849

[마지막 희망을 품은 스카버러행]

오빠와 언니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 이후, 자신마저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죽음을 덤덤히 직감하면서도 병세 호전을 위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생전 가장 사랑했던 해변 도시로 요양을 떠납니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만큼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떠난 서글픈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앤은 치명적인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 언니 샬럿과 친구 엘렌의 부축을 받아 스카버러(Scarborough)로 떠났습니다. 여행 도중 요크에 들러 휠체어를 타고 요크 대성당을 구경하기도 했으나, 이미 기력을 거의 상실하여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해변 마을에서의 쓸쓸한 영면]

요양지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언니와 친구의 곁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습니다. "용기를 내라"는 숭고한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스물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짧고도 강렬했던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의 유해는 고향의 가족 묘역이 아닌,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를 내려다보는 성벽 아래에 쓸쓸히 묻혔습니다.
오후 2시경 스카버러에서 영면하였고, 언니 샬럿의 뜻에 따라 고향 하워스로 돌아가지 않고 스카버러의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St Mary's churchyard)에 안장되었습니다. 장례식에는 샬럿과 엘렌, 그리고 과거 학교 은사였던 울러 양 등 극소수만이 참석했습니다.

1850

[언니 샬럿에 의한 작품 출간 억제]

사후 그녀의 문학적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안타까운 결정이 내려집니다. 홀로 남은 언니 샬럿이 고인의 두 번째 소설이 작가의 얌전한 성품에 어울리지 않는 '실수'였다고 치부하며 재출판을 엄격하게 막아버립니다. 이 조치로 인해 그녀는 오랫동안 천재적인 언니들에 가려진 평범한 작가로 철저히 저평가받는 시련을 겪습니다.
샬럿 브론테는 앤의 최고 걸작인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주제 의식이 너무 급진적이고 자극적이라는 보수적인 이유로 공화국 재출간을 불허했습니다. 샬럿은 앤이 재능을 낭비하는 사람들(오빠 브랜웰의 알코올 중독)의 비극을 본 후 지나친 의무감에서 이 글을 썼다고 변호하며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축소시켰습니다.

2011

[160여 년 만에 바로잡힌 묘비의 오류]

사후 긴 세월이 흘러 글씨가 심하게 훼손되고 나이조차 잘못 적혀 있던 그녀의 묘역에 새로운 명판이 공식적으로 설치됩니다. 비록 오랜 시간 동안 위대한 언니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진보적인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위상을 완벽히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브론테 협회(Brontë Society)가 나서서 글씨가 지워진 기존 묘비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한 채 그 위에 새로운 명판을 수평으로 설치했습니다. 이를 통해 원래 묘비에 28세로 잘못 표기되었던 앤의 사망 나이를 29세로 공식적으로 바로잡았으며, 2013년에 헌정 예배를 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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