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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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연방총리, 당 대표 + 카테고리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최초의 여성 연방총리로, 물리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모하여 독일 정치와 국제 외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독 출신으로 통일 후 기민당 대표와 총리직을 역임하며 그리스 경제 위기, 난민 사태 등 수많은 국제 현안을 해결했습니다. 포브스와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인정받으며 '자유 세계의 총리'로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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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54

[앙겔라 메르켈 출생]

서독 함부르크에서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로 태어났다.

1954년 7월 17일 서독 함부르크에서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와 헤어린트 카스너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 이름은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였다.

[동독으로 이주]

태어난 지 몇 주 후, 목회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동독 브란덴부르크 주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냈다.

1954년에 태어나서 몇 주가 지난 후, 부모님과 함께 동독으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당시 동독에 속한 브란덴부르크주 지방의 개신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목사관에서 살았으며, 공산국가였던 동독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목회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1970

[자유독일청년회(FDJ) 가입]

1970년대 초반에 동독의 청년 조직인 자유독일청년회(FDJ)에 가입했다.

1970년대 초반에 자유독일청년회(FDJ)에 가입한다.

1971

[기술고등학교 입학]

기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수학과 어학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71년 기술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고등학생 시절에는 수학과 어학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러시아어 경시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73

[라이프치히 대학 물리학 전공]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여 디플롬학위(석사학위에 해당)를 받는다.

1977

[첫 결혼]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하여 그의 성씨를 사용하게 되었다.

1977년 물리학자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다.

1978

[동독 국가보안부 제안 거절]

동독 국가보안부(슈타지)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1978년 동독 국가보안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지만 거절한다. 슈타지는 그녀의 동독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정부통제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는 자유노조를 주장한 폴란드 자유노조 사회 운동에 대한 동조적 성향을 기록하고 있다.

[물리화학 연구원 활동]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양자화학 분야 연구원으로 일했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양자화학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동안 그녀는 자유독일청년회 과학 아카데미에서 지구선도위원, 선전부 의장을 지낸다. 그러나 동독의 정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1982

[첫 결혼 생활 종료]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과 이혼했다.

1977년 물리학자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으나 1982년에 이혼했다.

1986

[박사 학위 취득]

루츠 췰리케 교수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루츠 췰리케 교수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은 간단한 탄화수소의 반응속도 상수 계산에 대한 내용이며, 제목은 〈양자화학적, 통계적 방법에 기반한 단순결합 붕괴와 그 반응상수 계산 메커니즘에 대한 조사〉이다.

1989

[정치 입문]

독일 통일 전 구 동독의 민주 개혁(DA)에 참여하며 정치에 입문하고, 후에 대변인이 되었다.

메르켈은 1989년 독일 통일 이전까지는 구 동독 반대 그룹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1989년의 격동 중 결성된 민주 개혁(Demokratischer Aufbruch, DA)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후에 대변인이 되었다.

1990

[동독 정부 대변인 및 기민당 입당]

민주 선거로 성립된 동독 로타어 드 메지에르 정권의 정부 대변인을 맡았으며, 8월에 DA와 기민당의 합당으로 기민당원이 되었다.

1990년 민주 선거로 성립된 동독의 로타어 드 메지에르 정권에서 정부 대변인을 맡았으며 1990년 8월 DA와 기민당(CDU)의 합당으로 기민당원이 되었다. 12월에 하원 의원 후보로 뽑혔다.

1991

[헬무트 콜 내각 여성 청소년부 장관]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 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1991년 1월 18일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 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1994

[환경부 장관 취임]

클라우스 툅퍼의 후임으로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1994년 11월 17일 클라우스 툅퍼의 후임으로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이 시기 (1993년 6월부터 2000년까지) 기민당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지역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1998

[재혼]

베를린 출신 화학과 교수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지만, 전 남편의 성을 계속 사용했다.

1998년 베를린 출신 화학과 교수인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다. 재혼 후에도 전 남편의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기민당 당수직 승계 준비]

볼프강 쇼이블레로부터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 당수 자리를 물려받으며 당의 리더십 교체 과정에 참여했다.

1998년 11월 볼프강 쇼이블레로부터 기민당의 당수 자리를 물려받아 2000년 4월부터 보수 정당인 기민당의 대표로 활동했다.

1999

[기민당 헌금 스캔들 대응]

기민당의 암거래 헌금이 발각되자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당원에게 호소하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1999년 겨울 기민당의 암거래 헌금이 발각되자 메르켈은 재빨리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당원에게 호소했다. (현재는 콜 전 총리와 화해했다.)

2000

[기민당 대표 취임]

비밀 헌금 문제로 볼프강 쇼이블레 대표가 물러나자, 후임 대표로 취임하며 기독교민주연합의 첫 여성 대표가 되었다.

2000년 비밀 헌금 문제로 기민당 볼프강 쇼이블레 대표가 물러나자, 후임 대표로 취임했다. 여성이며 이혼 경력이 있는 비주류 보수주의자였던 메르켈은 보수 주류의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도 지방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대표가 되었다.

2002

[기민당 원내대표 겸 야당 당수]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후임으로 기독교민주연합 원내대표와 독일 야당 당수에 취임했다.

2002년 9월 22일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후임으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원내대표와 독일 야당 당수에 취임하여 2005년 11월 22일까지 재임했다.

2005

[독일 최초 여성 연방총리 취임]

독일 역사상 최초로 연방총리직에 오르며 제8대 독일 연방총리로 취임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그녀는 결국 독일 총리에 취임하였으나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했다.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재임했던 독일의 제8대 연방총리이다. 독일 역사상 최초로 연방총리직에 오른 여성이기도 하다.

2006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선정]

2006년부터 2015년까지 (2010년 제외) 포브스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인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2010년을 제외하고, 포브스는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하였다.

2009

[총리 재선 및 자유민주당과 연정]

독일 하원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승리하여 성향이 유사한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며 총리직을 이어갔다.

2009년에 실시된 독일 하원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승리하여 성향이 유사한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했으나 금융위기로 인해 그녀의 독일 내 인기가 점점 줄어들고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 대통령을 뽑을 때 연정 세력 중 일부가 반란표를 던지는 등 그녀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남유럽 경제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독일의 대유럽 영향력을 한껏 끌어올려 사회민주당보다 앞선 지지도를 유지하였다.

2013

[총리 재선 및 사회민주당과 대연정]

선거에서 기민당이 압승했지만 과반에 미달하여 사회민주당과 다시 대연정을 구성하고 총리직을 유지했다.

2013년 9월 22일에 치른 선거에서 기민당은 41.5%의 득표율로 전체 의석 630석 중 311석을 얻었다. 과반 316석에서 5석이 부족하긴 하지만 압승이라 표현해도 무리 없을 성과다. 다만 연정 파트너였던 자유민주당이 5% 득표율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의회 입성에 실패해 기민당은 사민당과 대연정을 했다.

2015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

타임지로부터 '자유 세계의 총리(Chancellor of the Free World)'라는 이름으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며 전 세계적인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2015년 '타임'은 '자유 세계의 총리(Chancellor of the Free World)'이라는 이름으로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였다.

2017

[총리 재선 및 4기 내각 발족]

선거에서 제1당을 유지한 후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여 4기 내각을 발족했다.

2017년 선거 결과 32.9%득표로 제1당을 유지했다. 이후 20.5%에 그친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유지하여 4기 내각을 발족했다.

2018

[기민련 당대표직 사임 및 총선 불출마 선언]

지속적인 지지도 하락과 지방선거 패배로 기독교민주연합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속적인 지지도 하락 및 지방선거 패배로 2018년 12월 기독교민주연합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21

[독일 연방총리직 공식 퇴임]

올라프 숄츠가 집권하며 16년간 역임했던 독일 연방총리직에서 공식 퇴임했다.

2021년 선거 결과로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가 집권하며 2021년 12월 7일에 공식적으로 연방총리직을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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