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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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아폴로 13호는 1970년 4월 11일에 발사된 미국의 일곱 번째 유인 아폴로 비행 임무이자, 원래 세 번째로 달 착륙을 목표로 했던 우주선입니다. 발사 직전 예비 승무원의 풍진 감염으로 탑승조가 긴급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발사 이틀 만에 기계선의 산소 탱크가 폭발하는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하여 달 착륙이라는 본래의 목표는 완전히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휴스턴 임무 통제 센터의 기지와 세 우주비행사의 초인적인 인내력을 통해, 달 착륙선을 구명정으로 활용하며 극한의 추위와 전력 및 식수 부족을 이겨냈습니다. 결국 달의 이면을 선회한 후 4월 17일에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기적을 이뤄냈으며, 이 사건은 우주 탐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적인 실패'로 불리며 전 세계 대중문화에 깊은 감동과 영감을 남겼습니다.
연표
1961
1961
[존 F. 케네디의 달 탐사 도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국가적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NASA는 머큐리 계획과 제미니 계획을 거치며 아폴로 계획을 위한 점진적인 준비를 해나갔습니다.이는 우주 탐사 역사상 가장 야심 찬 도전 중 하나였으며, 훗날 아폴로 11호를 통해 마침내 그 목표가 완수되었습니다. 아폴로 13호 역시 이러한 거대한 국가적 계획의 일환으로 프라 마우로 지역 등 달의 특정 지점을 과학적으로 정밀 탐사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1969
1969
[아폴로 11호 달 착륙 성공]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무사히 착륙하며 케네디 대통령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걸었고, 마이클 콜린스는 사령선 콜롬비아호를 타고 달 궤도를 돌았습니다.미국은 우주 탐사 경쟁에서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폴로 11호의 엄청난 성공 이후 일반 대중의 우주 계획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식어갔습니다. 예산 삭감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결국 원래 예정되어 있던 아폴로 20호 임무가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1970
1970
[풍진 바이러스 노출 사태]
발사를 불과 7일 앞두고 예비 탑승조의 달 착륙선 조종사인 찰스 듀크가 아들 친구로부터 풍진에 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정조와 예비조는 훈련을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승무원 5명 모두가 이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노출되었습니다.노출된 승무원들 중 오직 켄 매팅리만이 과거에 풍진을 앓은 적이 없어 면역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주 비행 중 심각한 질병이 발병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기에 NASA 수뇌부와 임무 통제 센터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970
[잭 스위거트로 승무원 전격 교체]
발사를 불과 이틀 앞두고, 유일하게 풍진 면역이 없었던 사령선 조종사 켄 매팅리가 임무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되었습니다. 그의 빈자리는 예비조의 사령선 조종사였던 잭 스위거트로 긴급하게 교체되었습니다.일반적으로 정규 승무원 중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예비조 전체가 한꺼번에 투입되지만, 예비조인 듀크의 발병으로 그 규칙을 적용할 수 없어 이례적으로 개인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켄 매팅리는 끝내 풍진에 걸리지 않았고 훗날 아폴로 16호에 성공적으로 탑승했습니다.
1970
[아폴로 13호 우주로 발사]
협정 세계시(UTC) 기준 19시 13분에 케네디 우주센터 LC-39A 발사대에서 새턴 V 로켓에 실린 아폴로 13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습니다. 이 임무의 사령관은 짐 러벨이, 달 착륙선 조종사는 프레드 헤이즈가 맡았습니다.발사 과정에서 심한 포고 진동으로 인해 2단 로켓의 중앙 엔진이 예정보다 약 2분 일찍 꺼지는 아찔한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4개의 외곽 엔진과 3단 로켓이 더 오래 연소하여 이를 보완함으로써 계획된 지구 주차 궤도에 무사히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1970
[사령선과 달 착륙선 도킹]
달 투입 궤도 진입(TLI) 이후 사령선 조종사 잭 스위거트가 기체를 분리하고 위치를 180도 바꾸어 달 착륙선 '아쿠아리어스'와 도킹하는 기동을 수행했습니다. 이로써 사령선/기계선(오디세이)과 달 착륙선은 온전히 결합되었습니다.결합을 마친 우주선은 3단 로켓에서 성공적으로 분리되어 달을 향한 본격적인 순항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은 순조로운 출발에 안도하며 달 탐사의 부푼 꿈을 안고 비행을 계속했습니다.
1970
[하이브리드 궤도로의 전환 점화]
임무 시작 후 30시간 40분이 지난 시점에, 승무원들은 아폴로 13호를 자유 귀환 궤도에서 하이브리드 궤도로 진입시키기 위한 엔진 점화를 실시했습니다. 이는 목표 착륙 지점인 프라 마우로 지역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궤도 수정이었습니다.초기에 설정된 자유 귀환 궤도는 달의 적도 부근으로만 향할 수 있어 고위도 지역 착륙을 위해 이 하이브리드 궤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궤도는 이후 추가적인 엔진 점화를 하지 않을 경우 우주선이 지구를 빗겨나가게 되는 구조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1970
[우주선 내부 텔레비전 생중계]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인 임무 시간 55시간 무렵에 우주선 내부를 보여주는 텔레비전 방송이 지구로 전송되었습니다. 사령관 짐 러벨이 진행을 맡아 오디세이와 아쿠아리어스의 내부 생활 모습을 대중에게 소개했습니다.하지만 반복되는 달 탐사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 탓에 대부분의 텔레비전 네트워크들이 이 방송을 생중계하지 않아 실제 시청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짐 러벨의 아내인 매릴린조차 이 방송을 보기 위해 휴스턴 임무 통제 센터의 VIP룸을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1970
[치명적인 산소 탱크 폭발]
협정 세계시(UTC) 기준 03시 08분경, 기계선의 산소 탱크를 저어주는 일상적인 절차 도중 손상된 전선 절연체에 불꽃이 튀며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이 충격으로 두 개의 산소 탱크 내용물이 우주 공간으로 모두 빠져나갔습니다.스위거트는 폭발 직후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Houston, we've had a problem here)"라고 다급히 보고했으며, 러벨 역시 이를 즉각 재확인했습니다. 이 엄청난 사고로 인해 사령선의 전기 시스템과 생명 유지 장치가 사실상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970
[달의 이면을 통과하는 근접 비행]
협정 세계시(UTC) 기준 00시 21분, 아폴로 13호는 달에서 가장 가까운 약 254km 상공의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달의 중력을 십분 활용하여 우주선을 지구 방향으로 튕겨내는 자유 귀환 궤도를 성공적으로 탔습니다.원래 목표였던 달 착륙은 포기했지만 승무원들은 창밖으로 달의 삭막한 표면을 바라보며 지구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묵묵히 이어갔습니다. 사고 이후 모든 임무의 최우선 목표는 오직 승무원들의 생존과 무사 귀환 하나로 집중되었습니다.
1970
[달 착륙선을 구명정으로 활용]
호흡과 전력 생산에 필수적인 산소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달 착륙 임무는 즉시 취소되었습니다. 승무원들은 사령선의 전원을 모두 끄고 남은 자원을 지구 재진입을 위해 아껴두는 대신, 달 착륙선 아쿠아리어스로 피신하여 이를 생존을 위한 구명정으로 활용했습니다.본래 아쿠아리어스는 두 명이 달 표면에서 단 이틀 동안만 머물 수 있도록 설계된 작은 기체였습니다. 휴스턴 통제 센터는 긴급히 새로운 절차와 생존 매뉴얼을 고안하여 세 명의 승무원이 4일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시스템 운영 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쳤습니다.
1970
[3단 로켓의 달 표면 충돌]
아폴로 13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던 새턴 V의 3단 로켓(S-IVB)이 임무 시작 후 3일이 지난 무렵 달 표면에 의도적으로 충돌했습니다. 지상 통제소가 이전 아폴로 12호가 설치해 둔 지진계의 감지 범위 내로 충돌 코스를 정밀하게 설정한 결과였습니다.이 충돌은 달의 내부 구조를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한 인공 지진파 발생 실험의 일환이었습니다. 비록 우주선 본체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버려진 로켓 잔해는 본래 계획되었던 과학적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습니다.
1970
[이산화탄소 제거용 임시 어댑터 제작]
달 착륙선에 세 명의 건장한 성인이 머물며 내뿜는 호흡으로 인해 이산화탄소 수치가 치명적인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령선의 사각형 이산화탄소 제거 카트리지를 달 착륙선의 둥근 시스템 구멍에 맞도록 연결하는 임시 장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휴스턴 통제 센터 기술진의 지도 아래, 승무원들은 비닐봉지, 우주복 호스, 테이프 등 선내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만을 이용하여 일명 '우체통'이라 불리는 어댑터를 극적으로 제작했습니다. 이 기발하고 절박한 조치 덕분에 우주비행사들은 질식의 끔찍한 위협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1970
[극한의 추위와 식수 부족 사태]
지구로 귀환하는 며칠 동안 승무원들은 제한된 전력을 아끼기 위해 난방 시스템마저 완전히 꺼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선내는 몹시 춥고 이슬이 맺히는 축축한 환경으로 돌변했으며, 마실 수 있는 식수마저 심각하게 고갈되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이러한 악전고투의 소식이 전해지자 기존 우주 탐사에 대한 대중의 차가운 무관심은 순식간에 뜨거운 응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텔레비전 속보를 초조하게 지켜보며 이 용감한 우주비행사들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1970
[파손된 기계선(SM) 분리]
지구 대기권 재진입을 앞두고 승무원들은 사고의 원인이었던 기계선을 본체에서 최종 분리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외부 패널이 날아가고 내부 부품이 처참하게 밖으로 드러난 기계선의 심각한 파손 상태를 직접 목격했습니다.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피해 규모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승무원과 지상 통제소는 폭발의 충격으로 사령선의 열보호막까지 손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우려에 휩싸였습니다. 열보호막의 손상 여부는 재진입 시 생사를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1970
[달 착륙선 분리 및 사령선 재가동]
협정 세계시(UTC) 16시 43분, 구명정으로서 생명을 지켜주었던 달 착륙선 아쿠아리어스가 사령선에서 무사히 분리되었습니다. 승무원들은 오직 재진입을 위해 아껴두었던 전력을 이용해 사령선 오디세이의 시스템을 다시 가동했습니다.분리된 아쿠아리어스는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며 마찰열에 의해 불타 없어졌고, 기체에 싣고 있던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RTG)의 플루토늄 연료통은 대기권 재진입을 견디도록 설계된 튼튼한 구조 덕분에 안전하게 태평양 심해 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1970
[남태평양 해상 무사 귀환]
협정 세계시(UTC) 18시 07분 41초, 사령선 오디세이가 낙하산을 펴고 남태평양 해상에 무사히 착수했습니다. 열보호막은 다행히 아무런 손상 없이 작동했으며,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감격적인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세 명의 승무원은 출동한 미 해군 강습상륙함 USS 이오지마 함에 의해 모두 안전하고 신속하게 구조되었습니다. 최악의 우주 비극이 될 뻔했던 사고가 NASA 컨트롤 타워와 우주비행사들의 완벽한 팀워크로 극복된 우주 탐사 역사의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1970
[사고 조사 위원회의 원인 규명]
임무 종료 후 아폴로 13호의 사고 원인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면밀한 조사 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조사 결과, 비행 전 산소 탱크의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한 결함과 탱크 내부에 배치된 가연성 테플론 물질이 화재와 폭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조사 위원회는 향후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산소 탱크 내부의 잠재적인 가연성 물질 사용을 철저히 최소화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이 권고 사항은 후속 임무인 아폴로 14호의 설계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어 안전성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1994
1994
[짐 러벨의 회고록 '잃어버린 달' 출간]
아폴로 13호의 사령관 짐 러벨이 공동 저자와 함께 당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고록 《잃어버린 달(Lost Moon)》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우주 공간에서 겪은 절망적인 사고와 이를 극복해 낸 인간의 굳건한 의지를 담담하게 서술했습니다.이 회고록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주 구조 작전의 내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상세히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승무원들과 지상 통제 센터의 눈물겨운 헌신에 많은 독자들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1995
1995
[영화 '아폴로 13'의 대성공]
회고록 《잃어버린 달》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아폴로 13》이 개봉하여 전 세계적인 흥행과 비평적 대성공을 동시에 거두었습니다. 할리우드 명배우 톰 행크스가 짐 러벨 사령관 역을 맡아 위기 상황 속의 감정을 탁월하게 연기했습니다.이 영화를 통해 1970년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우주 재난과 생환 스토리가 현대 대중문화 속에 다시 한번 매우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한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라는 대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명대사 중 하나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