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레틱 빌바오
연표
1898
[아틀레틱 클루브 창단]
바스크 학생들이 모여 영어 철자로 '아틀레틱 클루브'라는 구단을 창단하며, 아틀레틱 빌바오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영국인 노동자와 영국 유학파 바스크 학생들이 축구를 빌바오에 전래했습니다. 특히, 후안 데 아스토르키아와 루이스 아스토르키아 등 몇몇 학생들이 모여 '아틀레틱 클루브'라는 구단을 창단하며, 오늘날 아틀레틱 빌바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구단은 1898년을 공식 창단 연도로 보고 있습니다.
1902
[클루브 비스카야 창단 및 첫 코파 델 레이 우승]
당시 빌바오의 두 축구단, 빌바오 축구단과 아틀레틱 클루브가 합쳐져 '클루브 비스카야'를 창단하고, 스페인 최초의 코파 델 레이(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02년, 빌바오에 존재하던 '빌바오 축구단'과 '아틀레틱 클루브'는 통합하여 '클루브 비스카야'를 결성했습니다. 이 팀은 초대 회장 후안 데 아스토르키아의 지휘 아래 스페인 축구 역사상 최초의 전국 대회인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에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컵은 현재 아틀레틱 빌바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903
[아틀레틱 클루브 정식 출범 및 코파 델 레이 우승]
두 구단의 합병으로 '아틀레틱 클루브'가 정식 출범했으며, 같은 해 코파 델 레이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아틀레틱 클루브 마드리드(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창단되었습니다.
1903년, '빌바오 축구단'과 '아틀레틱 클루브'의 합병이 최종적으로 완료되어 현재의 '아틀레틱 클루브'가 정식으로 출범했습니다. 이 팀은 곧바로 그 해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강력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또한, 바스크 학생들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아틀레틱 클루브 마드리드'를 창단했는데, 이 팀이 오늘날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됩니다.
1911
[바스크인 선수 영입 정책 공식화]
아틀레틱 빌바오는 '바스크인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영입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11년을 기점으로 아틀레틱 빌바오는 구단의 고유한 철학이자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바스크인 선수 영입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은 물론 프랑스 바스크 지역 출신 선수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정책으로, 구단은 이를 통해 외부 영입 없이 자체 유소년 시스템과 바스크 지역 선수들로만 팀을 꾸려나가는 독특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13
[산 마메스 경기장 개장 및 피치치 1호 골]
아틀레틱 빌바오의 홈 구장인 산 마메스 경기장이 개장했으며, 전설적인 선수 피치치가 역사적인 1호 골을 기록했습니다.
1913년, 아틀레틱 빌바오의 상징적인 홈 구장인 '산 마메스'가 개장했습니다. 당시 팀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라파엘 모레노 아란사디, 일명 '피치치'가 이 새로운 구장의 첫 골을 기록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피치치는 훗날 라 리가 득점왕에게 수여되는 상의 이름이 될 정도로 팀과 스페인 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9
[라 리가 출범과 강등 없는 역사 시작]
스페인 라 리가가 출범했으며, 아틀레틱 빌바오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세 팀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1929년, 스페인 최고 축구 리그인 '프리메라 디비시온', 즉 라 리가가 출범했습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이 리그의 창립 멤버 중 하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단 한 번도 1부 리그에서 강등되지 않은 세 구단 중 하나라는 위대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1930
[라 리가 및 코파 델 레이 2연속 우승]
프레드 펜틀랜드 감독의 지휘 아래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2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강력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잉글랜드 출신 프레드 펜틀랜드 감독이 1929년 복귀한 후, 1930년과 1931년에 걸쳐 아틀레틱 빌바오는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연속으로 우승하는 2관왕을 두 차례 달성했습니다. 특히 1931년에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2-1이라는 라 리가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승리를 기록하며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1936
1936년 7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스페인 전역의 모든 축구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이는 아틀레틱 빌바오를 비롯한 스페인 축구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리그는 1939-40 시즌이 되어서야 재개될 수 있었습니다.
1941
[프랑코 정권에 의한 구단명 변경 및 텔모 사라 데뷔]
프랑코 정권의 정책에 따라 구단명을 '아틀레티코 빌바오'로 강제 개칭했습니다. 같은 해 전설적인 공격수 텔모 사라가 데뷔했습니다.
1941년,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의 비스페인어 작명 금지 정책에 따라 아틀레틱 클루브는 '아틀레티코 빌바오'로 구단명을 강제 개칭해야 했습니다. 같은 해, 구단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한 명인 텔모 사라가 데뷔하여 훗날 294골을 기록하며 팀의 전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1950-51 시즌에 38골을 기록, 60년 동안 리그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했습니다.
1956
[더블 달성 및 유러피언컵 첫 진출]
페르디난트 다우치크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 한 번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더블 우승을 달성하며 유러피언컵에 처음으로 진출했습니다.
페르디난트 다우치크 감독의 임기였던 1955-56 시즌, 아틀레틱 빌바오는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동시에 석권하는 2관왕을 달성했습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구단은 이듬해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처음으로 진출하며 유럽 무대에서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1976
[바스크 깃발 '이쿠리냐' 공식 게양]
프랑코 사후,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바스크 깃발인 이쿠리냐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선보이는 상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이 종말을 맞이한 1976년 12월,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아틀레틱 빌바오 주장 이리바르와 레알 소시에다드 주장 코르타바리아는 바스크 깃발인 '이쿠리냐'를 경기장 중앙에 함께 가져다 놓는 감격스러운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는 프랑코 사후 공적인 장소에 이쿠리냐가 처음으로 선보여진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77
[UEFA컵 준우승 및 구단명 '아틀레틱' 환원]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유벤투스에 아쉽게 패했습니다. 같은 해 프랑코 정권이 끝나면서 구단명을 원래의 '아틀레틱'으로 다시 환원했습니다.
1977년, 아틀레틱 빌바오는 UEFA컵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으나, 유벤투스에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석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시기 프랑코 정권이 종말을 맞이하자, 구단은 강제로 개칭했던 '아틀레티코 빌바오'라는 이름을 버리고 원래의 '아틀레틱'으로 구단명을 되찾았습니다.
1983
[클레멘테 감독 시대의 라 리가 우승 및 더블]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의 지휘 아래 27년 만에 라 리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동시 석권으로 더블을 달성하며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1981년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이 부임하며 아틀레틱 빌바오의 또 다른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83년, 팀은 27년 만에 라 리가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인 1984년에는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동시에 석권하며 '더블'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클레멘테 감독은 1980년대 초중반 구단 역사상 손꼽히는 성공기를 이끌었습니다.
1998
[라 리가 준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진출]
루이스 페르난데스 감독의 지도 아래 라 리가 준우승을 차지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1998년, 루이스 페르난데스 감독이 이끌던 아틀레틱 빌바오는 라 리가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 성과를 통해 팀은 유럽 최고 클럽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호세바 에체베리아, 라파엘 알코르타, 훌렌 게레로 등 주축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2012
[유로파리그 및 코파 델 레이 준우승]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지휘 아래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해 코파 델 레이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11-12 시즌,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체제 하에 아틀레틱 빌바오는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5월 9일, 아레나 나치오날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같은 스페인 리그 소속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0-3으로 완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어서 코파 델 레이에서도 결승에 올랐지만 FC 바르셀로나에 패하며 또다시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13
[신 산 마메스 경기장 개장]
일부만 완공된 '신 산 마메스' 경기장으로 홈 구장을 옮겼으며, 이는 구단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2013년 9월, 아틀레틱 빌바오는 과거의 영광을 함께했던 '구 산 마메스'를 떠나 '신 산 마메스' 경기장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습니다. 당시 경기장은 일부만 완공된 상태였지만,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구단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신 산 마메스는 2014년 8월에 전체 완공되었습니다.
2015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1984년 이후 31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2015년 8월, 아틀레틱 빌바오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차전 홈 경기에서 아리츠 아두리스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FC 바르셀로나를 4-0으로 완파했습니다. 이어진 캄 노우 원정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종합 전적에서 우위에 서, 1984년 이후 31년 만에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2021
[2020-21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연달아 격파하며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는 구단의 강력한 전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1년 1월 17일, 아틀레틱 빌바오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대회에서 스페인의 양대 산맥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구단 역사에 또 하나의 빛나는 우승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이는 마르셀리노 감독 부임 후 첫 우승이기도 합니다.
[유럽 유일 '외국인 선수 없는' 구단 기록]
스포츠과학 국제 센터(CIES)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틀레틱 빌바오는 유럽대항전에 진출한 구단 중 외국인 선수 없이 팀을 운영하는 유이한 구단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21년 10월, 스포츠과학 국제 센터(CIES)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틀레틱 빌바오는 우크라이나의 FC 데스나 체르니히우와 함께 유럽대항전에 진출한 구단 중 외국인 선수 없이 오직 자국(바스크 지역)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하는 유이한 구단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독특한 바스크인 정책이 국제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고 성공적인 사례임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2024
[2023-24 코파 델 레이 우승]
2023-24 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하며 구단의 오랜 숙원이자 염원이었던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2023-24 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오랜 기간 염원했던 컵대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구단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성과로, 바스크인 정책을 고수하는 팀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