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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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비디오 게임 회사, 아케이드 게임 제조사, 홈 콘솔 제조사, 소비자 가전 기업 + 카테고리
1972년 캘리포니아의 작은 차고에서 시작된 아타리는 '퐁(Pong)'과 '아타리 2600'을 연달아 메가 히트시키며 19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전자 오락 산업을 정의하고 지배한 전설적인 개척자입니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과 저질 게임의 범람으로 인한 1983년 '아타리 쇼크'를 겪으며 기업이 산산조각 나는 뼈아픈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이후 수차례 회사가 쪼개지고 잭 트래미엘, 해즈브로, 인포그램즈 등 여러 거대 자본의 손을 거치며 상표권이 이리저리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었지만, 파산 보호를 이겨내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생존 전략을 꾀하며 여전히 대중문화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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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71

[시지지 엔지니어링 설립]

놀런 부슈널과 테드 답니가 소규모 엔지니어링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인 '컴퓨터 스페이스'를 설계했습니다. 이는 훗날 거대 게임 제국으로 성장할 회사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너팅 어소시에이츠(Nutting Associates)를 위해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판매된 아케이드 게임인 컴퓨터 스페이스를 개발하며 비디오 게임 산업의 태동을 알렸습니다. 이 경험은 독립적인 기업 설립의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1972

[아케이드 게임 '퐁' 개발]

최초의 디자인 엔지니어가 개발한 탁구 형태의 아케이드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는 게임성으로 전자 오락 산업을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비디오 게임이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알 알콘이 개발한 퐁(Pong)은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전례 없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회사가 19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비디오 게임 산업의 절대적인 개척자이자 지배자로 군림하는 튼튼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아타리 주식회사 법인 설립]

캘리포니아주에 새로운 이름의 회사를 정식으로 법인화했습니다. 바둑 용어인 '단수'에서 영감을 받아 회사 이름을 지었습니다. 엔지니어 알 알콘을 첫 번째 직원으로 채용하며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창업자들은 보드게임 바둑의 용어 중 상대방의 돌을 따내기 직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Atari)에서 착안하여 사명을 결정했습니다. 이후 알 알콘에게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테니스 게임을 아케이드 버전으로 제작할 것을 지시하며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73

[키 게임즈 비밀 설립]

핀볼 유통업자들의 독점 유통 요구를 우회하기 위해 비밀리에 경쟁 회사를 세웠습니다. 창업자의 이웃을 대표로 앉혀 동일한 게임을 다른 이름으로 공급했습니다.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발한 영업 전술이었습니다.
당시 유통업계의 폐쇄적인 관행을 돌파하고자 조 키넌(Joe Keenan)을 수장으로 하는 키 게임즈(Kee Games)를 몰래 설립했습니다. 두 회사는 사실상 같은 게임을 여러 유통업체에 독점인 것처럼 공급하며 시장 장악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습니다.

1974

[키 게임즈 합병 및 사장 임명]

비밀 자회사였던 회사를 본사로 공식 흡수 합병했습니다. 위장 회사의 대표로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 본사의 사장으로 전격 임명되었습니다. 이로써 경영진을 재정비하고 조직의 내실을 다졌습니다.
키 게임즈가 거둔 훌륭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해당 자회사를 본사 조직으로 완전히 통합시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 키넌의 관리 능력이 높이 평가되어 본사의 사장직을 맡으며 조직 개편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1975

[VCS (아타리 2600) 개발 착수]

캘리포니아 그래스 밸리의 자회사에서 획기적인 가정용 콘솔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게임을 카트리지로 교체하며 즐길 수 있는 유연한 기기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훗날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장의 혁명을 가져온 제품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자회사인 시안 엔지니어링(Cyan Engineering)은 기존의 내장형 게임기를 넘어, 카트리지만 교체하면 다양한 기존 게임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신개념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훗날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VCS), 즉 2600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1976

[워너 커뮤니케이션스에 매각]

차세대 콘솔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투자자를 찾았습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에 회사를 넘기며 대규모 자본을 수혈받았습니다. 이 매각은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내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창업자 놀런 부슈널은 VCS의 잠재력을 확신했지만, 생산 및 마케팅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워너 커뮤니케이션스(Warner Communications)에 2,800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넘기며 재정적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1978

[놀런 부슈널 해고]

회사의 방향성과 구형 콘솔의 단종 문제 등을 놓고 워너 경영진과 심각한 의견 충돌을 빚었습니다. 격렬한 언쟁 끝에 창업자가 회장 및 공동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회사의 문화를 확립했던 창업자가 고문직마저 거부하고 회사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놀런 부슈널은 핀볼 사업부의 폐지 여부와 아타리 2600의 수명 등 여러 핵심 전략을 두고 워너 측 임원인 매니 제라드와 좁힐 수 없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결국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나 창업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조직 내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1980

[800 및 400 컴퓨터 출시]

가정용 컴퓨터 혁명의 물결에 합류하여 키보드를 탑재한 새로운 기기 라인업을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게임 콘솔의 한계를 넘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도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강력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비자층을 공략했습니다.
본래 2600의 후속 콘솔로 기획되었던 프로젝트가 홈 컴퓨터 열풍에 힘입어 키보드와 확장 기능을 갖춘 가정용 PC로 궤도를 수정했습니다.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되면서 하드웨어 제조사로서의 입지를 크게 넓혔습니다.

1982

[아타리 5200 출시 및 실패]

성공적인 컴퓨터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세대 가정용 게임 콘솔을 야심 차게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전 모델과의 하위 호환성 부족과 고장이 잦은 컨트롤러 문제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이는 회사 역사상 뼈아픈 하드웨어 실패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아타리 8비트 컴퓨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5200을 내놓았으나, 정작 가장 인기 있던 2600 게임 카트리지를 구동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원되는 전용 게임의 수가 적고 조이스틱의 내구성마저 형편없어 큰 상업적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1983

[비디오 게임 시장 붕괴 쇼크]

치열한 가격 경쟁과 무분별한 게임 출시로 인해 비디오 게임 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며 모기업의 주가까지 폭락하는 참사를 겪었습니다. 이 위기로 인해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형편없는 품질로 아케이드 원작을 이식한 팩맨(Pac-Man) 등의 실패와 더불어 시장에 저질 게임들이 범람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가 붕괴했습니다. 이 사태로 인해 5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고, 워너의 주가는 60달러에서 20달러로 곤두박질쳤으며 레이 카사르 회장도 사임했습니다.

1984

[잭 트래미엘에게 자산 매각]

심각한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모기업이 가정용 콘솔 및 컴퓨터 사업부의 자산을 매각했습니다. 매수자는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명칭을 변경하며 하드웨어 사업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기존 회사는 아케이드 부문만 남아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워너 커뮤니케이션스는 기존 경영진 모르게 트라멜 테크놀로지(Tramel Technology)의 잭 트래미엘과 한밤중까지 협상을 벌인 끝에 2억 4천만 달러 규모의 어음 및 주식 거래로 매각을 성사시켰습니다. 인수된 부문은 아타리 코퍼레이션(Atari Corporation)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아케이드 부문은 아타리 게임즈(Atari Games)로 분리되었습니다.

1985

[8비트 컴퓨터 65XE 출시]

새로운 소유주의 지휘 아래 남은 콘솔 재고로 회사를 연명하며 신규 8비트 컴퓨터 라인업을 발표했습니다. 구형 기술을 다듬어 새로운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을 성공적으로 출시했습니다. 회사의 생존을 위한 과도기적 전략이 빛을 발했습니다.
잭 트래미엘은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차세대 16 및 32비트 컴퓨터 개발을 독려했습니다. 동시에 단기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기존 8비트 컴퓨터 라인업을 개선한 아타리 65XE를 출시하여 XE 시리즈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32비트 아타리 ST 출하]

사활을 걸고 개발했던 16 및 32비트 아키텍처 기반의 강력한 컴퓨터가 마침내 주요 소매점에 진열되었습니다. 전문가 그룹을 통한 사전 공개를 거쳐 대대적인 판매에 돌입했습니다. 이 기기는 회사의 재도약을 이끄는 결정적인 효자 상품이 되었습니다.
16비트 버스와 32비트 프로세서 코어를 의미하는 ST 라인업 중 520ST 모델이 선발대로 출시되었습니다. 사용자 그룹에 사전 샘플을 제공하여 호응을 얻은 뒤 대규모 출하를 시작했으며, 이는 애플 및 코모도어의 컴퓨터들과 경쟁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6

[기존 콘솔 재출시 및 흑자]

과거 모기업 시절 설계되었던 게임 콘솔 모델 두 종을 새롭게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철저한 비용 통제와 신제품의 잇따른 성공에 힘입어 회사가 극적으로 수천만 달러의 이익을 내며 부활했습니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결실을 맺은 한 해였습니다.
워너 산하에 있을 때 개발이 끝났으나 보류되었던 2600의 슬림형 버전인 2600jr과 7800 콘솔을 마침내 정식으로 발매했습니다. 이러한 구형 라인업의 재활용과 ST 컴퓨터의 선전 덕분에 한 해에만 2,5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1987

[페더레이티드 그룹 인수]

자사 브랜드 컴퓨터를 취급 꺼려하는 미국 내 주요 전자제품 매장들의 태도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유통망을 사들였습니다. 수천만 달러를 들여 여러 주에 걸친 수십 개의 소매 매장을 확보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보일 안정적인 진열대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전체 컴퓨터 생산량의 3분의 2가 유럽에서 팔릴 정도로 미국 내 유통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6,730만 달러를 투입하여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지에 6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페더레이티드 그룹(Federated Group)을 인수하여 자가 유통망을 구축했습니다.

1988

[트랜스퓨터 병렬 컴퓨터 공개]

비트 이미지 조작 칩을 탑재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 모델들과 함께 회사 최초의 병렬 컴퓨팅 기기를 선보였습니다. 기업 간 거래 고객과 그래픽 디자이너를 겨냥한 야심 찬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흥행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인모스(Inmos) T800 CPU를 기반으로 한 ATW-800 트랜스퓨터는 초당 1,500만 회의 명령어 처리 능력과 1,600만 색상을 지원하는 비디오 칩을 내장한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수요와 생태계 부재로 인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989

[아타리 링크스 휴대용 콘솔 출시]

세계 최초로 컬러 디스플레이와 백라이트를 탑재한 혁신적인 휴대용 게임기를 화려하게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부품 부족 현상으로 연말 성수기 공급에 차질을 빚으며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 더 저렴하고 배터리 수명이 긴 경쟁사의 제품에 시장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타리 링크스(Lynx)는 하드웨어 스펙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훌륭한 기기였으나, 생산 차질로 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흑백 화면이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널리 보급된 닌텐도의 게임보이(Game Boy)가 휩쓸면서 시장 경쟁에서 참패했습니다.

[닌텐도 상대 반독점 소송]

휴대용 기기 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후, 경쟁사가 불법적인 독점 행위를 하고 있다며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일으켰습니다. 게임 콘솔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는 가운데 폐쇄적인 타사 게임 개발 통제 정책을 문제 삼았습니다. 법정 공방을 통해 시장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절박한 시도였습니다.
하드웨어 경쟁에서 밀린 아타리 코퍼레이션은 닌텐도가 서드파티 개발사들에게 가하는 엄격한 통제와 독점적 계약 관행이 시장 경쟁을 해친다고 주장하며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거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는 부활한 콘솔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필사적인 법적 투쟁이었습니다.

1991

[인텔 칩 기반 PC 모델 출시]

독자적인 컴퓨터 아키텍처가 시장 표준의 벽에 부딪히자 주류 진영의 칩셋 부품을 채택한 일반 호환 컴퓨터 모델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주요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연합이 장악한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회사의 독자적인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윈텔 진영의 압도적인 성공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자, 인텔의 i386 칩을 기반으로 한 IBM PC 호환 기종인 ABC386SXII 및 ABC386DXII 모델을 시장에 내놓으며 생존을 도모했습니다.

1992

[닌텐도 반독점 소송 패소]

경쟁사의 독점 행위를 규탄하며 제기했던 거액의 민사 소송이 연방 지방 법원에 의해 최종 기각되었습니다. 이 패소로 인해 시장 환경을 강제로 재편하려던 법적 승부수는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수년간 끈질기게 이어져 온 닌텐도와의 2억 5,000만 달러 규모 반독점 소송에서, 미국 지방 법원은 아타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이로 인해 콘솔 시장에서의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을 잃고 말았습니다.

1993

[64비트 아타리 재규어 출시]

시장에서 유일한 64비트 대화형 미디어 시스템이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차세대 가정용 콘솔을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개발사들의 빈약한 게임 지원과 복잡한 구조로 인해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이 기기는 회사가 직접 제작한 마지막 하드웨어가 되었습니다.
아타리 재규어(Jaguar)는 파격적인 64비트 마케팅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실제로는 여러 칩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 탓에 게임 개발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이로 인해 킬러 타이틀 확보에 실패하며 상업적으로 철저히 외면받았고, 훗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가 나오기 전까지 미국 제조사가 만든 마지막 거치형 콘솔로 남았습니다.

1996

[아케이드 부문 WMS에 매각]

과거 별도의 법인으로 쪼개져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아케이드 부문이 또 다른 거대 비디오 게임기 제조사에 통째로 매각되었습니다. 원년 창업자의 인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며 오락실 게임 브랜드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했습니다.
분할되어 나간 아타리 게임즈(Atari Games)는 텐겐 브랜드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오다, 원년 창업자인 놀런 부슈널의 인수 시도가 무산된 후 윌리엄스, 발리 등 유명 브랜드를 소유한 WMS 인더스트리에 매각되며 그 품에 안겼습니다.

[JTS와 합병 및 사업 철수]

새로운 하드웨어 기기의 연이은 처참한 실패로 팔 물건이 사라진 회사가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사와 역합병을 단행했습니다. 기존 경영진이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비디오 게임 제조사로서의 찬란했던 역사가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게임 잡지들은 회사의 몰락을 공식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수차례의 소송 승소로 은행 잔고는 넉넉했지만 판매할 주력 상품이 없던 아타리 코퍼레이션은 단명한 하드 디스크 제조사 JTS Inc.와 합병하여 JTS Corp.를 설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타리는 단순한 상표권 보유 조직으로 전락했고, 당시 언론들은 씁쓸한 작별을 고했습니다.

1998

[해즈브로, 아타리 브랜드 인수]

거대 장난감 회사가 파산 직전의 합병 법인으로부터 단돈 수백만 달러에 전설적인 브랜드의 지적재산권을 모조리 사들였습니다. 완전히 사라질 뻔했던 브랜드가 새로운 모기업의 인터랙티브 사업부를 통해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유명 완구 기업 해즈브로(Hasbro)의 디지털 부문인 해즈브로 인터랙티브가 JTS에 고작 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아타리의 모든 상표와 자산을 헐값에 인수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 아타리의 고전 명작인 센티피드(Centipede) 등을 PC용으로 리메이크하며 브랜드를 극적으로 부활시켰습니다.

1999

[아타리 게임즈 사명 변경 은퇴]

아케이드 시장을 호령하던 분할 법인이 모기업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사명을 완전히 변경하며 이름을 아케이드 시장에서 은퇴시켰습니다. 가정용 게임기로 부활한 다른 상표와의 혼동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WMS 산하에 있던 아타리 게임즈 코퍼레이션은 모기업 미드웨이의 전략에 따라 미드웨이 게임즈 웨스트로 사명을 전격 교체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락실에서 영원한 아이콘이었던 아타리 로고가 달린 신작 아케이드 게임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2000

[인포그램즈, 브랜드 부문 인수]

프랑스의 유명 소프트웨어 유통사가 게임 브랜드를 품고 있던 장난감 회사의 인터랙티브 부문을 전격적으로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전설적인 게임 브랜드의 소유권이 또다시 유럽의 거대 자본 손으로 넘어가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배급사 인포그램즈(Infogrames)가 해즈브로 인터랙티브를 통째로 인수하여 사명을 인포그램즈 인터랙티브로 변경했습니다. 이 거래를 통해 아타리의 모든 지적재산권과 상표권이 프랑스 기반의 글로벌 퍼블리셔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2001

[아타리 브랜드의 화려한 부활]

브랜드를 인수한 프랑스 모기업이 자사의 신작 게임 타이틀 박스에 유명 로고를 전면적으로 부착하며 브랜드의 대대적인 쇄신을 공표했습니다. 젊은 게이머들을 겨냥한 세련된 브랜드로 이미지를 재구축하려는 야심 찬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인포그램즈 엔터테인먼트(IESA)는 '스플래시다운', 'MX 라이더' 등 신작 비디오 게임 표지에 과거의 상징이었던 아타리 로고를 크게 배치하며 브랜드의 재창조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젊은 층을 집중 공략하는 핵심 게임 퍼블리싱 레이블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2003

[북미 지사, 정식 사명 변경]

모기업이 자사의 미국 내 자회사 이름을 아예 과거의 영광스러운 상호명으로 정식 변경하며 브랜드 통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글로벌 유통망에 전설적인 이름을 전면 배치하여 시장의 향수와 기대감을 동시에 자극했습니다.
IESA는 다수 지분을 보유한 미국 자회사 인포그램즈 Inc.의 사명을 아타리 주식회사(Atari, Inc.)로 공식 변경하고 유럽 사업부 역시 아타리 유럽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단, 모기업 자체는 한동안 인포그램즈라는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2008

[모기업의 자회사 완전 인수]

프랑스의 모기업이 미국 내 법인의 남은 공개 주식을 모두 사들이며 완전한 자회사로 편입시켰습니다. 분산되어 있던 지분 구조를 하나로 통일하여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중앙 통제 경영을 확립했습니다.
IESA는 아타리 주식회사의 잔여 주식을 총 1,100만 달러에 매입하는 공개 매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로써 미국 내 상장사였던 아타리 주식회사는 상장 폐지되고 인포그램즈의 완벽한 100% 개인 자회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2009

[모기업 사명 아타리 SA로 변경]

지속적인 재정 악화 속에서 쇄신을 꾀하던 모기업이 자신들의 이름마저 버리고 자회사의 유명 브랜드로 그룹의 사명을 전면 교체했습니다. 이로써 프랑스의 지주회사가 거대한 정체성 통합을 이뤄냈습니다.
수년간 수천만 달러의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인포그램즈 엔터테인먼트 SA(IESA)는 분위기 쇄신과 인지도 통합을 위해 아예 그룹 본사의 간판을 아타리 SA(Atari SA)로 공식 변경했습니다. 이로써 인포그램즈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13

[미국 내 4개 자회사 파산 보호]

누적된 막대한 적자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미국 내의 핵심 자회사들이 결국 연방 파산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습니다. 화려하게 부활했던 거대 게임 제국이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타리 주식회사, 아타리 인터랙티브, 휴몽거스, 캘리포니아 US 홀딩스 등 아타리 SA 산하의 미국 내 4개 핵심 계열사가 뉴욕 남부 연방 파산 법원에 챕터 11 파산 보호를 전격 신청했습니다. 이들은 채무를 조정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힘겨운 구조조정의 터널로 진입했습니다.

2014

[새로운 기업 생존 전략 발표]

파산의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난 후, 전통적인 콘솔 게임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이용자층을 공략하겠다는 극단적인 생존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소셜 카지노와 유튜브 등 최신 트렌드에 편승하여 회사를 재건하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파산 보호에서 졸업한 직후 취임한 프레데릭 체스네 최고경영자는 단 10명의 직원만으로 회사를 이끌며, 향후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 소셜 카지노, 리얼 머니 도박, 유튜브 등 새로운 디지털 관객층에 집중하는 완전히 탈바꿈한 사업 전략을 대외적으로 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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