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제이아 토머스
연표
1961
[전설의 탄생]
시카고에서 아이제이아 로드 토머스 3세가 태어났습니다.그는 훗날 NBA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의 상징적인 포인트 가드로 자리매김하며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1981
[NCAA 우승과 MVP]
인디애나 대학교 후지어스 팀을 NCAA 국립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이끌고, 토너먼트의 가장 두드러진 선수 상(MVP)을 수상하며 농구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이 업적으로 NBA 드래프트 자격을 얻게 됩니다.
[NBA 데뷔 및 계약]
NBA 신인 선발 대회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에 지명되어, 4년간 16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프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1982
[루키 시즌 올스타]
루키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NBA 올루키 팀에 선정되었고, 그해 열린 올스타 경기에서 동부 컨퍼런스 대표로 선발되어 그의 뛰어난 잠재력을 입증했습니다.
1984
[닉스전 16점 폭발]
플레이오프 개막전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버나드 킹의 활약 속에 팀은 아쉽게 패배했지만, 경기 종료 94초를 남기고 홀로 16점을 몰아넣는 기염을 토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985
[셀틱스 벽에 가로막히다]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래리 버드가 이끄는 막강한 보스턴 셀틱스와 격돌했습니다.6경기 내내 명승부를 펼쳤으나 아쉽게 패배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1987
[래리 버드의 스틸]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다시 만난 셀틱스와의 5차전, 결정적인 순간 래리 버드에게 패스를 스틸 당해 역전패하며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습니다.이는 그의 커리어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1988
[첫 파이널, 부상 투혼]
매직 존슨, 제임스 워디가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생애 첫 NBA 파이널에서 맞붙었습니다.3-2로 뒤진 6차전,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투혼을 발휘했지만, 아쉽게 7차전에서 석패하며 우승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6차전에서 아이제이아 토머스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투혼을 발휘했으나, 7차전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경쟁하지 못했고 레이커스는 108-105로 승리하며 두 번째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1989
['배드 보이즈' 첫 우승]
조 듀마스, 데니스 로드맨 등 팀 동료들과 함께 '배드 보이즈'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정규시즌 63승 19패라는 특권 기록을 세웠습니다.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 불스를 꺾고 다시 만난 레이커스를 4경기만에 스윕하며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역사상 첫 NBA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1990
[2년 연속 우승 & MVP]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꺾고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를 2년 연속 NBA 챔피언에 올려놓았습니다.특히 결승전에서 평균 27.6득점, 7.0도움, 5.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파이널 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1991
[불스의 그림자 아래]
2년 연속 우승 이후에도 피스턴스는 좋은 경기력을 보였지만,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번성하는 시카고 불스에 밀려 NBA 파이널에 다시 진출하지 못하며 '배드 보이즈'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1994
[랩터스 부총장]
선수 은퇴 후 곧바로 NBA 확장 팀인 토론토 랩터스의 부총장직을 맡아 프런트 업무를 시작하며 새로운 경력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
1993-94 시즌 말 은퇴를 결정하였으나, 1994년 4월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입어 예정보다 일찍 은퇴하였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의 11번은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1998
[랩터스 떠나 해설가로]
랩터스 경영진과의 이견으로 팀을 떠난 후, NBC의 NBA 텔레비전 해설자로 변신하여 날카로운 분석과 해박한 지식으로 농구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CBA 소유주 활동]
콘티넨탈 농구 협회(CBA)를 10만 달러에 인수하여 소유주로 활동했습니다.하지만 NBA 총장 데이비드 스턴이 CBA를 대신할 NBDL을 창조하면서 2001년 CBA는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CBA를 10만 달러에 구입하였고 2001년 이 단체는 NBA 총장 데이비드 스턴이 CBA를 대신하여 NBDL을 창조하기로 결정한 후에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CBA의 감독들이 단체의 실패에 토머스를 비난하고, 그릇된 단속을 인용하였습니다.
2000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와 감독으로서 농구 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농구계 최고의 영예인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페이서스 감독 취임]
CBA 소유주 경험 이후, 래리 버드의 뒤를 이어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젊은 재능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2003
[올스타 감독 & 해임]
정규 시즌 48승 34패를 기록하며 2003년 NBA 올스타 경기에서 동부 컨퍼런스 팀을 감독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 후 오프시즌에 릭 칼리슬리로 교체되며 페이서스 감독직을 마무리했습니다.
[닉스 프런트 입성]
인디애나 페이서스 감독에서 물러난 후, 뉴욕 닉스의 농구 작전 회장으로 고용되어 팀 운영 전반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2006
[닉스 감독 겸임]
닉스 농구 작전 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는 래리 브라운 감독의 면직과 함께 뉴욕 닉스의 감독직까지 겸임하게 되며 프런트와 현장을 모두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2008
[닉스에서의 퇴진]
닉스가 구단 역사상 최악의 59패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하자, 농구 작전 회장직에서 도니 월시에게 교체되었고 다음 시즌 닉스 감독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닉스에서의 힘든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2009
[대학 농구 감독 부임]
5개 시즌 동안 부진했던 플로리다 국제 대학교 농구 팀의 총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여 대학 농구 무대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10
[닉스 복귀 논란]
FIU 감독직을 유지하며 뉴욕 닉스의 상담인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중 직책 유지가 NBA 규정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자 8월 11일 결국 철회하며 닉스 복귀는 무산되었습니다.
자신의 플로리다 국제 대학교 첫 시즌에 7승 25패의 기록을 세운 후, 토머스는 팀의 총감독 직을 지키면서 뉴욕 닉스의 상담인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였으나, 8월 11일 NBA 규정 위반으로 인해 닉스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