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연표
1915
[미국 뉴욕에서 탄생]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폴란드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아서 밀러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에 대한 깊은 관심을 키웠습니다.
그의 유년기는 이후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서 밀러는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코네티컷주 록스베리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미국의 사회 문제와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극작가로서 족적을 남겼습니다.
1940
1944
[브로드웨이 데뷔]
첫 희곡 <행운의 사나이>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며 극작가로서 공식적인 첫발을 내딛습니다.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1947
[첫 히트작, 모두 내 아들]
<모두 내 아들>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되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전쟁이 남긴 상처와 도덕적 책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1949
[세기의 걸작 <세일즈맨의 죽음> 탄생과 퓰리처상]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과 동시에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며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이 작품으로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와 함께 미국 현대 희곡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합니다.
평범한 세일즈맨의 비극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진 명작으로 평가받습니다.
1953
[매카시즘 비판 대작, <시련> 발표]
매카시즘 광풍을 비판하며 마녀사냥의 본질을 파헤친 희곡 <시련>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집단 히스테리와 개인의 양심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오늘날까지도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1955
[인간 욕망 탐구, <다리에서의 조망>]
뉴욕 브루클린 부두 이민자들의 삶과 욕망,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다리에서의 조망>을 발표하며, 인간 내면의 갈등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역량을 다시 한번 선보였습니다.
1956
[세기의 만남, 마릴린 먼로와 결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이자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와 결혼하며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지성과 미모의 결합으로 불리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으나, 서로 다른 세계에 속했던 두 사람의 만남은 복잡한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1961
[마릴린 먼로와 이혼]
마릴린 먼로와 5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합니다.
대중의 열광적인 관심 속에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으며 세간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1962
[사진작가 잉게 모라트와 재혼]
유명 매그넘 사진작가 잉게 모라트와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모라트와의 결혼 생활은 2002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지며, 딸 레베카 밀러를 포함한 자녀들을 두게 됩니다.
1964
[나치 잔혹상 비판 <비시에서 생긴 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잔혹상을 고발한 <비시에서 생긴 일>을 링컨 센터에서 상연하며, 역사적 비극 속 인간의 책임과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집니다.
월이 '가을'로 명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월은 불명확하여 00으로 표기했습니다.
[자전적 희곡 <전락 이후> 상연]
링컨 센터에서 자신의 삶과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를 모티브로 한 자전적인 색채의 희곡 <전락 이후>를 상연하며, 개인적인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1968
[가족 이야기 <프라이스> 상연]
가족 관계와 과거의 짐을 다룬 희곡 <프라이스>를 상연하며, 개인의 가치와 선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월이 '봄'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월은 불명확하여 00으로 표기했습니다.
1972
[후기 작품 <천지창조와 다른 일들>]
희곡 <천지창조와 다른 일들>이 상연되었으나, 이전의 걸작들만큼 비평가와 대중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월이 '가을'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월은 불명확하여 00으로 표기했습니다.
1984
[케네디 센터 명예상 수상]
미국 문화예술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상인 케네디 센터 명예상을 수상하며, 그의 평생에 걸친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2005
[20세기 거장의 타계]
89세의 나이로 코네티컷 자택에서 암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타계합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연극계에 깊은 애도를 표하게 했으며,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그를 추모하며 한동안 전등을 켜지 않았습니다.
2007
[모교에 '아서 밀러 극장' 개관]
그의 모교인 미시간 대학에 생전 그의 소망대로 '아서 밀러 극장'이 개관됩니다.
이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희곡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의 예술혼과 유산을 영원히 기리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