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연표
1954
[아베 신조 출생]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당시 마이니치 신문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아베 요코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친조부와 외조부, 외종조부 모두 정치 요직을 지낸 세습 정치 가문 출신이다.
1954년 9월 21일,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당시 《마이니치 신문》의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그 아내 아베 요코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야마구치현 오쓰군 유야정(현재의 나가토시)이다. 친조부는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베 간, 외조부는 제56·5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기시 노부스케이며, 외종조부(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는 제61·62·63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사토 에이사쿠이다. 이렇듯 세습 정치 가문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훗날 아베는 "어려서부터 나와 가까운 곳에 정치가 있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야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으며, TV를 즐겨보며 형사가 되기를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1979
[고베 제강소 입사]
세이케이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고베 제강소에 입사, 뉴욕 사무소, 가코가와 제철소, 도쿄 본사에서 3년간 근무하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졸업 이후 얼마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다가 1979년 4월 귀국한 뒤 고베 제강소에 입사하여 뉴욕 사무소, 가코가와 제철소, 도쿄 본사에서 근무했다. 이 중 가코가와 제철소에서의 경험에 대해 아베는 "나의 사회인으로서의 출발점", "나의 출발점"이었다고 회고했다.
1982
[아버지 신타로 외무대신 비서관 취임]
고베 제강소 퇴사 후, 당시 외무대신에 취임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관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각국 수뇌와의 회담에 동석하는 등 후계자 수업을 진행했다.
고베 제강소에서 3년간 근무한 뒤 1982년부터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에 취임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관을 맡았다. 비서를 맡는 동안 각국의 수뇌와의 회담에 동석하는 등 후계자 수업을 진행해갔다.
1987
[아베 아키에와 결혼]
모리나가 제과 사장 마쓰자키 아키오의 장녀 마쓰자키 아키에와 도쿄 프린스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은 전직 총리 후쿠다 다케오 내외가 주선했다.
1987년 6월 9일, 모리나가 제과 사장 마쓰자키 아키오의 장녀인 마쓰자키 아키에와 도쿄의 프린스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한 것은 전직 내각총리대신 후쿠다 다케오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3
[중의원 의원 첫 당선]
1991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급사 후,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제1구에 출마하여 처음으로 당선되며 정식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1991년,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급사하면서,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사망한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현 제1구(당시)에서 출마해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그 이후 야마구치현 제4구로 바뀐 해당 지역구에서 내리 9선에 성공하며 10선 중의원 의원이 되었다.
2000
[내각관방 부장관 취임]
소속 파벌 영수 모리 요시로의 제2차 모리 내각 개조내각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추천으로 내각관방 부장관에 취임했다. 2001년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소속 파벌의 영수였던 모리 요시로가 수상으로 조각한 2000년의 제2차 모리 내각 개조내각에서 나중에 총리대신이 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추천으로 내각관방 부장관에 취임한다. 모리 내각의 뒤를 이어 출범한 2001년의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2003
[자유민주당 간사장 발탁]
고이즈미 총리대신에 의해 자유민주당 간사장으로 발탁되었다. 3선 의원의 젊은 의원이 간사장에 취임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총선거를 앞두고 아베의 인기가 활용되었다.
2003년 9월에는 고이즈미 총리대신에 의해 자민당의 간사장으로 발탁되었다. 3선의 국무대신 경력도 없는 젊은 의원이 간사장에 취임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11월의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아베의 ‘인기’를 필요로 했던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후 자민당은 총선거에서 절대 안정 다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005
[내각관방장관 취임]
고이즈미 정권 말 '포스트 고이즈미'의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으며, 2005년 10월 31일 발족한 제3차 고이즈미 내각 개조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에 취임했다.
고이즈미 정권 말부터 ‘포스트 고이즈미’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일컬어졌고, 2005년 10월 31일에 발족한 제3차 고이즈미 내각 개조내각에서는 내각관방장관에 취임한다.
2006
[자유민주당 제21대 총재 선출]
고이즈미 총리 임기 종료 후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464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제21대 자유민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2006년 9월 1일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것을 발표하고, 일본국 헌법의 개정과 교육 개혁, 재정 건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후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가 끝나고, 9월 20일 실시된 총재 선거 투표에서 전체 703표(국회의원 403, 당원 300표) 가운데 464표를 얻어 경쟁 후보인 아소 다로 외무대신과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대신을 큰 표차로 물리치고 일본 자유민주당의 21대 총재로 선출되어, 9월 26일 국회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제90대 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다. 아베는 첫 전후 세대 총리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내각총리대신 중에서 가장 젊다.
[제90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취임]
국회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제90대 총리대신으로 지명되며 전후 세대 첫 총리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젊은 총리로 취임했다.
2006년 9월 1일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것을 발표하고, 일본국 헌법의 개정과 교육 개혁, 재정 건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후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가 끝나고, 9월 20일 실시된 총재 선거 투표에서 전체 703표(국회의원 403, 당원 300표) 가운데 464표를 얻어 경쟁 후보인 아소 다로 외무대신과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대신을 큰 표차로 물리치고 일본 자유민주당의 21대 총재로 선출되어, 9월 26일 국회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제90대 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다. 아베는 첫 전후 세대 총리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내각총리대신 중에서 가장 젊다.
2007
[위안부 강제 동원 부인 발언]
고노 담화와 관련하여 "일본군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이후 국내외 비판을 받았다.
2007년 3월 1일, 고노 담화에 관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일본군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제출된 것에 대해서는 그 해 3월 5일의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민주당의 오가와 도시오 위원과의 질의·응답에서 "이 결의안은 객관적인 사실에도 근거하고 있지 않다", "결의가 채택된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사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사죄 발언]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힘든 상황에 위안부들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 "우리는 전시의 환경에서 그러한 고난과 고통이 강제된 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이전 발언을 수정하고 사죄했다.
2007년 4월 7일에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힘든 상황에 위안부들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 "우리는 전시의 환경에서 그러한 고난과 고통이 강제된 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날 일본 언론에도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동정한다. 총리로서 매우 죄송하다", "그 여성들이 위안부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에 대해 우리는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베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 마이니치 신문은 "이번 발언은 일본 측의 '책임'도 지적함으로써 일각의 반발을 진정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건강 문제로 총리직 사의 표명]
2007년 9월 12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통해 궤양성 대장염 악화 등 건강상 이유로 내각총사직 및 총리직 사의를 표명하였습니다. 건강 악화와 함께 그는 사직의 이유로 “테러특별조치법의 재연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와의 회담을 타진했지만, 사실상 거절당했고, 이대로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보다는 새 총리가 수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며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일 예정되었던 중의원 대표 질문이 취소되었습니다. 다만 언급된 오자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타진을 받은 것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고 부정하였습니다.
2012
[자유민주당 제25대 총재 재선출]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이시바 시게루를 역전하고 제25대 총재로 재선출되었다. 자민당 역사상 한 번 사임한 총재가 다시 선출된 최초의 사례이다.
2012년 9월 12일,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의 임기 만료에 따라 열리는 2012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뜻을 표명했다. 자신이 소속된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마치무라파)의 회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의 출마가 이미 언급되고 있어서 출마에 대한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출마한다. 이로 인해 파벌이 분열되면서 아베는 자신의 파벌에서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5년 전 총리 사퇴 과정에서의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또 당시에 당내에서 대중의 인기가 높았던 이시바 시게루가 부상하고 있었던 것, 당내 중진의 도움을 받아 출마한 이시하라 노부테루 등 거물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아베는 이들에게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베 역시 아소 다로, 고무라 마사히코 등 당내 중진 및 유력 파벌의 지지를 바탕으로 9월 26일 열린 본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표가 역전되어 아베가 1위를 차지하면서 아베 108표 대 이시바 89표로써 총재에 당선되었다. 한번 사임한 총재가 다시 선출된 것은 자민당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고 결선 투표에서 표가 역전된 것은 1956년 12월 이후 처음이었다.
[제9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재취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며 약 3년 3개월 만에 다시 여당 자리를 탈환했다. 이후 아베가 제96대 내각총리대신에 선출되며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했다.
2012년 12월 16일 실시된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긴지 약 3년 3개월 만에 다시 여당 자리를 탈환했다. 이후 12월 26일 일본 국회에서 아베가 제9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에 선출되면서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했다. 한 번 재임했다가 사임한 내각총리대신의 재취임은 일본국 헌법 하에서는 요시다 시게루 이후 두 번째이다.
2013
[2020 도쿄 하계 올림픽 유치 성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IOC 총회에서 도쿄가 2020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아베는 유치위원회 최고 고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유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2013년 9월 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25차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가 2020년 하계 올림픽 및 2020년 하계 패럴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다. 아베는 재집권 이후 도쿄 올림픽 유치위원회 최고 고문으로서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이나 국제 회의 때마다 도쿄 올림픽 유치를 어필해왔다. 이어 2013년 3월 일본을 방문한 IOC 평가위원회와의 공식 환영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베는 1964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도쿄로 결정되었을 당시 총리가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IOC 총회에 참석해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는 의욕을 보였다. 또 아베는 개최지 결정 직전인 2013년 9월 5일~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도중 이탈해 급하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와 IOC 위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재집권 후 1년이 되는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다. 참배 전 미국, 중국 등에 사전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집권 후 1년이 되는 2013년 12월 26일, 1차 집권 기간 중에는 참배하지 않았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는데, 참배 전 중국, 미국 등의 외교 루트를 통해서 외국에도 참배 소식을 전한 후에 전격적으로 참배하였다. 모닝 드레스 차람으로 참배했으며,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이름이 쓰여진 국화를 헌화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있는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진레이샤"에도 참배했다. 참배 이후, "항구 평화에 대한 맹세"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아베는 참배 후 기자단에 "경건한 모습으로 방문했다. 지난 1년 간 아베 정권의 발걸음을 보고하고,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에 의해 사람들이 고통 받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결의를 전하기 위해서 이날을 택했다. 전정터에서 흩어진 영령의 명복을 비는 것은 세계 공통의 지도자의 자세이다. 중국, 한국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한중 양국 정상에게 이를 직접 설명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관여와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하는 조건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 측은 "위안부 동원에 있어 일본군의 관여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라고 하였으며, 일본 측이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화해·치유재단에 10억 엔을 내놓는 조건으로 양측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문제 해결"에 합의하였다. 이에 대해 아베는 "우리의 자손과,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할 숙명을 지울 수는 없다", "이번 합의에 따라 한일 양국이 힘을 합쳐 '한일 신시대'를 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9
[역대 내각총리대신 통산 재임일수 1위 기록]
일본 내각총리대신 통산 재임일수가 2,887일이 되어 이전 최장이었던 가쓰라 다로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는 아베 신조가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2019년 11월 20일,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통산 재임일수가 2,887일이 되어 이전까지 최장이었던 가쓰라 다로의 2,886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2020년 8월 24일에는 연속 재임일수가 2,799일을 돌파하여 이전까지 최장이었던 사토 에이사쿠의 2,798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2020
[역대 내각총리대신 연속 재임일수 1위 기록]
일본 내각총리대신 연속 재임일수가 2,799일을 돌파하여 이전 최장이었던 사토 에이사쿠의 2,798일을 넘어섰다.
2019년 11월 20일,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통산 재임일수가 2,887일이 되어 이전까지 최장이었던 가쓰라 다로의 2,886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2020년 8월 24일에는 연속 재임일수가 2,799일을 돌파하여 이전까지 최장이었던 사토 에이사쿠의 2,798일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건강 문제로 총리직 사임 발표]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총리직 수행에 차질이 생기자, 기자회견을 통해 총리직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후임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는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8월 28일,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악화로 총리직 수행과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는 사태를 막기 위해 총리직에서 사임하기로 뜻을 굳혔다는 여러 언론의 보도가 나왔고, 이후 총리대신 관저에서 열린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어 오후 5시에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는 공식적으로 사임을 표명하고, "여러 정책이 실현되는 와중에,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직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내각 총사퇴 및 총리직 퇴임]
각의를 소집하여 내각 총사퇴를 의결하고, 후임 스가 요시히데가 새 총리에 취임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연속 재임일수는 2,822일, 통산 재임일수는 3,188일을 기록했다.
2020년 9월 16일 오전, 아베는 각의(국무회의)를 소집하고 내각 총사퇴를 의결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스가 요시히데가 새 총리에 지명되었고, 오후 6시경 황거(황궁)에서 스가가 나루히토 천황의 임명장을 받고 총리직에 취임하면서 아베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연속 재임일수는 2,822일, 통산 재임일수는 3,188일을 기록했다.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두 번째 총리 사임 후 3일 만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총리 재임 중에는 1회 한계였던 참배를 7년 만에 다시 실시한 것이다.
두 번째 총리 사임 후 3일 후인 2020년 9월 19일, 총리 재임 중에는 1회 한계였던 야스쿠니 신사에의 참배를 7년 만에 실시한다. 다음달 19일에도 참배했다.
2022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총격 피살]
나라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 중 해상자위대 자위관 출신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같은 날 오후 5시 3분경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나라현 나라시에서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일원인 사토 게이의 참의원 선거 유세를 돕기 위해 야마토사이다이지역 부근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에 해상자위대 자위관 출신인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격을 받았다. 피습 직후 헬리콥터로 가시하라시의 나라현립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송 도중 심정지 상태로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이후 오후 5시 3분경 심장 및 대혈관 손상으로 인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자유민주당은 5시 46분경에 아베가 공식적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사망 당시의 나이와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